가을 제철 과일에서는 사과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켓에 가면 어김없이 사야 하고 아침에는 피할 수 없이 꼭 먹어야만 합니다.
사과 종류가 70여 가지가 된다고 하지만, 한국은 1970년대부터 일본품종
후지사과가 70%를 잡고 있다 합니다.
생산성(수확량) 저장성 좋으니 생산자에 좋고 소비자 입맛에 딱이니 왕년의
아삭한 국광, 새콤한 홍옥은 이리저리 밀려 자취를 감춰 추억의 맛이 되었습니다.
사과가 1906년 일본에서 들어오다 보니 품종은 거의 일본식 이름으로 활개 치고,
그들 방식대로 껍질을 까서 먹는 사이가 되었으니, 이 방면에선 反日·克日도 별
도리가 없습니다.
사과는 뭐니해도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의 사과’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품종이 무엇일지 성서를 뒤져봐도 사과는커녕 선악과라는 표현도 없이
그냥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라고만 합니다.
히브리 성서에선 모든 종류의 열매와 그 즙까지 페리(Peri)라는 단어를 썼다는데,
이를 라틴어로 과일을 통칭하는 말룸(Malum)으로 번역했고, 발음에서 malum은
악을 의미하고 그 형용사인 나쁘다는 malus가 발음상으로 사과나무를 뜻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더해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 먹은
사건이 인류 원죄의 시작이었으니, 위에서 말하는 것처럼 악은 사과가 되어(악=사과
나무) 결국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사과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생각해 보면 기원전 4천여 년에 아담과 이브는 인류를 위하여 정말로 어마어마한 큰
일을 해낸 것입니다. 인간이 때론 삶의 고통은 있을지언정 사랑할 수 있는 감정을 갖게
되었고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 후로 사과와 관련하여 세계 역사를 지배하고 바꾼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 기원전 12세기, 그리스신화 속의 황금사과가 ‘트로이 전쟁’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었고
▶ 14세기 초, 전설을 희곡화한 ‘빌헬름 텔의 사과(스위스 William Tel)l’가 스위스 독립운동에
불을 지폈으며,
▶ 17세기, 뉴턴(영국 Isaac Newton)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정립 했고
▶20세기초, 세잔(프랑스 Paul Cezanne)은 사과 정물화로 현대미술을 이끌었으며,
▶ 20세기 중, 컴퓨터와 인공지능(AI) 연구의 길을 연 ‘앨런 튜링(영국 Alan M. Turing)’은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 21세기, 사과를 상표로 사용하는 기업 Apple Inc.는 2023년 10월 기준으로 주식시가 총액이
2조8천억 달러(3천8백조 원)의 세계 1위 기업으로 Apple 하면 사과 아닌 스마트폰 등이 떠오를
정도입니다. (삼성은 24위)
◆ 이러한 미국의 Apple Inc.보다도 더 먼저 Apple을 상표로 사용하고 인지도가 하늘만큼 높았던
기업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영국의 Apple Corp.입니다. 가난한 록밴드 The Beatles가 막 뜰 무렵
에 돈이 쏠쏠하게 들어와 숨통이 트이는가 했으나, 세금을 내고 나면 손에 쥐는 게 거의 없어,
회계사의 레코드 회사를 차려 절세하자는 아이디어에 1968년 4월 탄생한 것이 Apple Corp.입니다.
그 당시 영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사과나무 심기가 유행했는데, 비틀스도 이제 막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으니, 사과나무나 다름없다는 생각으로 Apple Corp.를 만들었고, 아직은 덜 익은 푸릇
푸릇한 사과가 초창기 비틀스의 상징으로는 딱 이었습니다.
◆ Apple로 잘 나가는가 싶었는데 자칭 애플 스크럽스(Apple scruffs 비틀스 광팬 마니아)라 하던
스티브 잡스(Steven P. Jobs)가 1976년 4월 1일 Apple Computer를 설립합니다.
잡스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백주대로에 날강도 같은 짓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열받은
비틀스는 1978년 애플컴퓨터를 상대로 Apple 상표권을 두고 법정 공방을 벌였습니다.
1981년 잡스가 8만 불을 물어주고 Apple 두 회사는 음악 분야와 컴퓨터 사업 분야를 서로 침범
하지 않는 조건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비틀스의 멍청한 또는 우월감의 관용이었던 것인지, 잡스의 야심을 몰랐던 것인지, 어쨌든
상표권 침해 소송치고는 싱겁게 끝났습니다.
이처럼 Apple Inc.는 미국이 자랑하는 미국 순혈의 창조적 기업이 아닌 화려한 카피캣(Copycat
흉내쟁이, 모방범)의 역사로부터 시작된 기업으로, 첫 출발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틀스의
브랜드를 모방해 자기 가치를 올렸습니다.
이후 기술이 발전하면서 컴퓨터 제품에 음악을 녹음하고 재생하는 기능이 생기자 1989년 다시
한번 양사의 소송이 진행됐고, 2003년에는 아이튠스(iTunes)에 애플 명칭을 사용하면서 또 한 번
양사의 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결국에는 잡스의 애플이 비틀스 애플의 APPLE 문자상표뿐만 아니라 도형상표 모두를 인수해
소유하고 있으며, 2007/8년 잡스의 애플이 비틀스 애플에 5억 달러(약 5,370억 원)의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고 상표를 모두 양도받으면서, Apple Corp.에는 음악 사업 관련 라이선스를 주
는 것으로 양사의 오랜 분쟁이 마무리됐습니다.
Apple Inc.는 2011년 잡스 사후인 지금도 미 국내는 물론 세계를 상대로 상대가 누구이든 상표권
싸움꾼으로 특히 사과 로고에 대한 집착은 상상 이상입니다.
잡스가 비틀스의 광팬(애플 스크럽스 Apple scruffs)이기 때문인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사과
때문인지, 사과 과수원에서 일한 추억 때문인지,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먹고 세상의 눈을 뜬
것처럼 컴퓨터로 인류의 눈을 뜨게 하겠다는 야심 때문인지, 만유인력의 뉴턴을 존경해서인지
아니면 컴퓨터의 아버지 튜링을 존경해서인지..,
어쨌든 사과는 Apple이 되었고 Apple은 사과 아닌 전 세계를 지배하는 Apple이 되어, 잡스는
상표가 지닌 강력한 힘을 일찍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6천여 년 전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유혹했던 사과는 이제 Apple이 되어
전 세계인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LA 김석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