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살아내며, 9월의 일기, 오늘 하루
2023년 9월 21일 목요일인 바로 오늘 일이다.
오전 11시쯤에 아내와 함께 이곳 문경읍에서 30여리 길인 가은으로 카니발 우리 차를 몰아 달려갔다.
그곳 가은 중앙병원을 찾을 일이 있어서였다.
보름쯤 전에 아내가 그 병원에서 했던 혈액검사 결과를 알아볼 작정에서였다.
결과만 알아보는 것이어서, 금방 나올 줄 알고 병원 앞쪽 길가에 차 시동을 걸어놓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었다.
꽤나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하는 수없이 걸어놓은 차 시동을 껐다.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혹시 무슨 큰 병이라도 발견이 되어 의사와 오랜 상담을 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혹 발견된 병이 있다면 그 병이 어떤 병일까 생각도 하고, 만약에 중병이면 어떻게 조치를 해야 할 것인가 생각도 하는 등, 이래저래 생각이 깊어졌다.
그때 차창을 똑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다.
아내였다.
“B형간염 항체가 없다고 해서, 예방주사 맞고 오느라 늦었네요.”
차 안으로 들어서는 아내가 꺼낸 첫마디가 그랬다.
아내의 그 한마디로, 나는 아내의 혈액검사 결과에 대해 일찌감치 이해를 다 했다.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B형간염 치료를 받았었고, 그 치료로 항체가 생성된 경험이 있는 나였기 때문이다.
B형간염 항체가 여태 없다면, 일흔 나이에 접어든 아내의 건강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증명을 받은 셈이었다.
그래도 확인 차원에서 이렇게 한마디 물었다.
“다른 건?”
내 그 질문에, 아내의 답은 이랬다.
“콜레스테롤이 좀 있다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아내의 혈액검사 결과가 모두 확인 됐다.
“콜레스테롤? 그거, 나는 40년 전에 이미 진단 받았었어요. 아무 탈없이 여태 살았고. 자, 이제 갑시다.”
그렇게 그 대화의 단락을 짓고, 다시 차를 몰았다.
달려간 곳은 가은 거기에서 30여리 길인 신기의 능이백숙 전문집인 ‘순이네 꿈’이었다.
내 국민학교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20여 년 전에 일찌감치 고향땅 문경으로 귀향을 해서 ‘만촌’(晩村)이라는 농원을 일구어가고 있는 안휘덕 내 친구와 부부동반으로 점심을 같이 하기로 약속된 집이었다.
“오늘은 우리들 농사를 도와주는 아내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야. 계산도 이미 다 해놨어. 맛있게 먹기만 하면 돼.”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의 말이 그랬다.
이날의 점심에 담긴 뜻이 그러니, 어느 때보다도 더 감동적인 자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 가까운 곳에 가볼 곳이 있어.”
점심 끝에 친구가 그렇게 우리를 이끌어 간 곳이 있었다.
틀모산 생태공원이었다.
작은 연못 하나를 가운데 놓고 조성된 공원으로, 그 중심에 ‘모휴정’(母休亭)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정자가 하나 있었다.
어머니가 쉴 수 있게끔 지었다는 뜻이 담긴 그 정자에 빙 둘러앉아 우리들이 겪은 인생사 세상사를 논했다.
각자 집안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서부터, 이날로 국회에서의 체포동의안이 표결에 붙여질 비겁하고 추악한 어느 범죄자에 대한 이야기까지 했다.
“우리 어떤 일이 있어도 잘 감당해내면서 행복하게 살아가세.”
대충 그렇게 우리들 미래의 이야기로 대화를 끝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저녁시간이었다.
우리 국민들 모두가 유심이 지켜본 그 범죄자에 대한 체포동의안 국회표결이 가결로 결정되면서 번개팅으로 마련된 저녁이었다.
안휘덕 친구가 내게 개별로 그 소식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즉시 전해왔었고, 우리나라의 국운이 걸려있다시피 한 그 소식이 하도 기뻐서, 내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을 했고, 그 소식을 같이 기뻐하는 우리 국민학교 중학교 한 해 선배인 김영철 형님까지 가세가 된 자리였다.
그 옛날 서울의 태릉 배밭 돼지갈비를 연상시키는 읍내 맛집인 ‘진미 숯불갈비’가 바로 그 집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희한한 풍경이 내 눈에 잡혀 들었다.
좀 전에 추가로 주문한 양념 꽃게장 접시가 밥상 저쪽 구석으로 밀려나가 있는 풍경이었다.
앞자리에 마주앉은 김 선배님이 그 꽃게장을 맛있게 드시는 것 같아서 추가 주문했던 것인데, 그렇게 밀려나가 있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팔을 내뻗어 그 접시를 밥상 중앙으로 다시 집어왔다.
그래서 나도 한 조각 집어 먹을 참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젓가락을 쥔 내 손이 그 접시 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앞자리 김 선배님이 그 접시를 냅다 들어 빼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때까지 감추고 있던 그 속마음을 털어내고 있었다.
그 털어내는 김 선배님의 말을 듣고, 나도 그렇고 안휘덕 내 친구도 그렇고, 큰 깨우침이 있었다.
아내 사랑에 대한 깨우침이었다.
김 선배님이 털어낸 말, 곧 이랬다.
“우리 마누라가 꽃게장을 하도 좋아해서 좀 갖다 줄까 하고 빼놓은 것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