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맛집(72)] 영계에 무 넣고 푹곤 '닭국' 구수해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2013.02.27
■ 닭고기 맛집들
남원 내촌식당 식객 유혹
곤지암 춘천초계탕 가마솥서 고기 기름 내려 원조 전통 그대로 남아
마포 박달재 닭매운볶음 칼칼한 맛 일품
널리 알려진 책 중에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가 있다. 영혼에 양식이 되는 닭고기 수프라는 뜻이다. 종교적 율법에 따라 쇠고기, 돼지고기 등을 먹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자주 먹다가 이제는 혐오식품 화 되다시피 한 개고기도 있다.
닭고기는 인류가 가장 널리 먹는 식재료 중 하나다. 서양인들 중에도 추억의 음식으로 닭고기 수프를 손꼽는 이들이 많다. "몸이 너무 아파서 학교도 못 갔다. 그날 엄마가 끓여준 닭고기 수프를 영원히 잊지 못한다"는 식이다. 닭고기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널리 사용된 식재료인 셈이다.
우리도 닭과 친숙하다. 경주의 계림(鷄林)도 닭을 의미하고 고대의 여러 왕들도 닭 혹은 달걀에서 태어난 이들이 많다. 우리는 닭과 퍽 친한 민족이다. 닭고기 관련 음식들에 대한 기록들도 흔하다. 연계백숙(軟鷄白熟)은 조선시대 기록에도 자주 나타난다. 오늘날의 '영계백숙'이 국적 불명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이라면 조선시대 연계백숙은 확실한 레시피도 있고 음식의 형태도 정확하게 남아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닭고기 관련 음식' 중 대표적인 것은 삼계탕이다. 인삼은 조선후기에나 비교적 많이 생산되었다. 수삼은 운반과 보관이 힘들다. 홍삼이 발달한 이유다. 홍삼은 수출품으로 대 중국 교역의 핵심 품목이었다. 그러나 민간에서 식재료로 사용하기는 힘들었다.
일제강점기, 닭에 건삼가루를 넣고 백숙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삼계탕의 원형인 '계삼탕(鷄蔘湯)'은 1960년대 무렵 시작된 음식이다. 인삼 생산이 증가하고 수삼의 보관과 운반이 쉬워지면서 가능해진 음식이다.
우리가 여름철에 즐겨먹는 삼계탕의 문제점은 인삼이 아니라 닭이다. 양계장의 닭들은 대부분 성장호르몬 등으로 속성으로 기른다. 최근에는 부화한 후 30일 된 어린 닭들을 삼계탕 닭으로 사용한다. 원래 닭고기 자체는 별 맛이 없다. 우리가 기억하는 닭고기의 맛은 주로 껍질과 뼈 등에 숨어 있다.
삼계탕을 푹 고면 껍질과 뼈 등에 숨어 있던 닭고기의 맛이 닭고기 살에 스며들면서 비로소 '맛있는 닭고기'가 된다. 어린 닭의 껍질과 뼈에는 '닭고기의 맛'이 없다. 결국 삼계탕도 맛이 없을 수밖에 없다. 단지 조미료, 견과류, 인공조미료로 개발한 치킨스톡 등을 사용하여 닭고기의 맛을 대신한다. 최근의 삼계탕이 여름철 보신식품이 되기 힘든 까닭이다.
남원의 육모정은 그리 번잡스럽지 않은 관광지다. 남원시 주천면 육모정 가는 길 한 켠에 자그마한 시골식당이 하나 있다. '내촌식당'이다. 동네슈퍼를 겸하고 있어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찾기도 힘들다. 이집에서 '닭국'을 내놓는다. 백숙도 아니고 닭찜도 아니다. 닭고기에 무를 넣어서 국으로 끓인 것이다. 구수한 고기의 냄새가 나고 시원한 맛이 압권이다. 숨어 있는 맛집이지만 몇몇 식객들은 은밀히 다닌다. 3개월 쯤 된 닭 한 마리를 거칠게 잘라서 넣고 무를 넣어서 맛을 낸 것이다.
내촌식당 ‘닭국’
어떤 음식이라도 전통적인 것을 확실하게 배운 다음,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야 음식문화는 발전할 수 있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의 '춘천초계탕'은 춘천 사람들의 닭 만지는 솜씨가 오롯이 전통으로 남고, 한편으로는 재해석을 통하여 발전한 경우다. 아직도 '미련하게' 가마솥에서 초계탕을 만든다. 초계탕은 여름철 보양식으로 궁중에서도 널리 사용했던 음식이다. 식초와 겨자, 각종 버섯 등으로 육수, 고명을 만들고 잘 삶아서 기름기를 내린 닭고기를 잘게 찢어 사용한다.
춘천 초계탕 ‘초계탕’
탕으로 만들 때는 메밀국수를 넣어서 시원하게 먹기도 한다. 가마솥을 사용하는 것은 번거롭지만 기름기를 잘 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환갑날 밥상에도 초계탕은 있었다. '춘천초계탕'은 가마솥에서 기름기를 내린 초계탕과 직접 화덕을 가동하여 만든 훈제오리 등을 내놓는다. 가격도 착한 편이다. 메밀국수의 메밀 함량은 50% 대로 입에 씹히는 맛이 좋다. 초계탕을 주문하면 비빔막국수와 초계탕 막국수를 맛볼 수 있다.
'박달재'는 맛집이 빼곡한 마포먹자골목에 있다. 한방백숙과 닭매운볶음(이른바 '닭도리탕')을 내놓는다. 닭매운볶음은 그리 맵지 않고 칼칼한 맛이 압권이다. 아주 어린 닭은 맛이 떨어지니 노계가 되기 전 적절한 크기의 닭을 선택한다. 간장으로 맛을 내고 조미료 사용을 최대한 절제한다. 겨울철에는 닭고기 비수기이니 다른 메뉴를 한번 해보라고 권하면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닭고기를 제일 잘 만진다"는 것이 주인의 '우문현답'이다.
박달재 ‘닭매운볶음’
전남 여수의 '약수닭집'은 닭고기 전문음식점으로 몇 가지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우선 이집에서는 닭 육회를 맛볼 수 있다. 지방 닭고기 음식점 중 육회를 내놓는 집들은 더러 있지만 이집처럼 닭 모래주머니와 가슴살을 잘 어울리게 내놓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생닭을 해체한 후 바로 숯불에 구운 '닭고기 구이'는 별다른 양념 없이 수준급의 맛을 자랑한다. 별미는 마지막에 나오는 녹두죽. 녹두를 일일이 가려서 좋은 녹두만 고른 다음 곱게 죽을 쑨 것이다.
약수 닭집 ‘닭육회’
닭고기 내장을 맛보고 싶은 사람들은 춘천의 '원조숯불닭불고기집'을 가면 된다. 닭 내장과 모래주머니 등을 숯불에 구워 먹을 수 있다. 춘천의 숱한 닭갈비집들이 비슷한 음식을 낸다. 철판에 양배추와 몇몇 채소들에 매운 양념을 섞어서 볶아 먹는다. 원래 춘천닭갈비는 직화로 구워 먹는 것이 정석이다. '원조숯불닭불고기집'에서는 이름 그대로 닭고기를 불고기 형태로 구워 먹을 수 있다. 손질이 번거로워 없어지다시피 한 음식인 닭 내장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장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