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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이재철 선생께서, 오늘 2011년 7월 7일 오전 2시 17분에 타계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장례식;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101호 (1호선 회기역)
* 영결식; 2011년 7월 9일 오전 7시
* 장지; 경북 금릉군 송죽동 선영하
선생의 장례는 한국아동문학인협회장으로 치러집니다.
많은 아동문학가들의 조문을 기다립니다.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길●
1931년 경북 청도읍에서 河濱 이씨 27대손(고려 말 二憂堂 李瓊의 25대손), 3대 독자로 귀하게 태어나셨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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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76 년 전 할머니 곁에 서 있는 똘망똘망한 저 작은 어린이의 눈동자 속에 훗날 한국 아동문학을 꽃피울 걸출한 인물이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어린 시절 부친의 서재에서 문학을 섭렵하고 시인이 되는 것을 꿈꾸셨던 선생님.
문학 청년으로 자라면서 1948년 중학교 때 ‘조선 문학가 동맹 청년 전위대 독서회 사건’으로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하기고, 6․25 전쟁을 5일 앞두고 문예부의 문학도들과 어울려 시집 ‘風船’을 출간하기도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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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스승의 학문을 계승하기 위해 청계 김사엽 박사의 호를 빌어 스스로 호를 '사계'라고 짓기도 하셨다. 아동문학은 민족의 거름이라는 사명감으로 선생님은 1963년부터 사재를 털어가며 아동문학 자료를 수집하고 본격적으로 아동 문학 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하셨다. 요즘이야 영인본이 잘 되어 있지만, 그 당시 교수 한 달 월급으로 최남선의 『소년』을 구입하기도 하고, 소파의 『어린이』를 구하기 위해 전국 헌책방을 수소문하고 다니셨다.
이렇게 아동 문학 관계 자료와 외국의 이론을 참고삼아 아동 문학 연구에 매달린 끝에 ‘아동 문학 개론’(1967) ‘한국현대아동문학사’(1978) 집필, 1982년 위암 선고를 받아놓은 채로 암과 투쟁하며 마침내 완성한 ‘세계아동문학사전’(1989)! 이 사전은 한국 아동문학을 세계 위에 조망해 보려는 그의 야심한 구상과 집념의 결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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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동문학 연구에서 이 세권의 저서와 이재철이라는 이름 석자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오늘날 아동문학 연구자는 사계 선생님의 이 세 권의 저서 속에서 수많은 영감과 논문 주제를 얻고 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돌아가신 바로 그 해(1931년)에 태어났다고 하는 인연설을 중히 여겼던 선생님……. 고통스런 암투쟁과 의사로부터 연장 받은 3개월씩 생명 속에서 축대도, 상석도 없이 허술했던 소파 방정환 묘소를 오늘날과 같이 수축하고 비문을 세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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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한국 아동 문학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선 안 되겠다 하는 생각으로 오사카 국제아동문학관에서 객원 교수를 지내고 , 그 이듬해 아시아 아동 문학 대회를 창설한 것은 이제 한국 아동문학을 세계로 끌고 나가려는 그의 첫 걸음이었다. 1990년 창설된 아시아 아동문학 대회는 이후 서울, 일본 큐슈, 중국 상해, 대만 대북시, 중국 대련, 일본 나고야……. 수많은 아시아의 도시들을 순회하며 이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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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과 2006년에는 이를 세계대회로 격상시켜 세계 아동문학 연구자들을 서울로 불러들여 교류의 장을 여셨다. 그리고 이 대회를 개최하면서 세계의 수많은 아동문학가들이 소파 방정환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돌아갔다. 독일의 클라우스 도더러, 파리의 장 뻬로, 스웨덴의 마리아 니꼴라예바, 이스라엘의 조하르 샤벳……. 이들은 그들의 나라로 가서 한국의 아동문학을 소개하고 알려 주었다.
이 모든 결실의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독일의 뮌헨과 일본의 오사카와 같은 규모의 국제아동문학관을 짓고, 자신이 소장한 한국 아동문학 자료 모두를 법인화 기관에 기증하여 후학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자료 보존의 터전을 만들고자 하셨다. 그리고 이 기관에 아동문화대학원을 병설하여 아동문학 연구의 전당을 갖추고 꽃을 피우고 싶어하셨다. 그러나 그의 원대한 구상과 높은 이상을 받아들이기에 현실은 구차하고 매우 협소했다.
제2차 세계대회가 끝난 뒤 영광을 누릴 여유도 없이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를 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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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란한 한때를 그리워하며 혼자의 힘으로 하루 세끼를 해결하시며 홀로서기를 하시던 중 그만 한겨울 얼음판에서 미끄러져 고관절 부상으로 입으시면서 누우시게 되었다. 병석에 계시면서도 큰 일을 연거푸 하셨으니, 평생에 모아 오신 2만여 권 아동문학 자료를 경희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기증하시고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를 설립하신 일, 몸소 36년간 끌어오셨던 계간 <아동문학평론>을 2대 발행인 송재진, 2대 주간 김용희 체제로 물려주신 일이다.
아,
그가 한 일을 어찌 이 짧은 지면에 기록할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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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새벽 갑자기 무서워짐에 선생의 근황이 어찌된 일일까, 노심초사 걱정이 되다가……. 혹시 꿈에라도 뵐까 하여 억지로 눈을 붙였던 것이 오늘 새벽인데. 그 시간에 임종하신 것을 아침에 일어나 문자로 확인하였다. 이미 마음으로 오래 준비해 온 일이지만 어찌 이렇게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일까? 그의 빈자리가 갑자기 커져버리는 것 같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성큼성큰 선생을 추억할 몇 개의 일들을 추려 보면서, 이제 일어나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글쓴이 장성유 동화작가
<조시>
하얀 나비 되어 떠나신 당신
-史溪 李在徹 박사 영전에 부쳐-
박상재
사계 선생님!
간밤에 근심으로 잠을 설치다가
소서날 이른 새벽 당신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흐린 아침 출근길 하얀 나비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당신께서 종암동 노래방에서 부르시던 그 <하얀 나비>를….
정녕 당신은 한 마리 나비되어 오매불망 그리던
난정 김미자 여사 곁으로 날아가셨나요?
당신이 안 계셨다면 한국의 아동문학 연구의 길은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마냥 머무름에 그치지 않았을까요?
당신이 공들여 펴내신 <아동문학개론>, <한국현대아동문학사>,
<한국아동문학연구>, <한국아동문학작가론>, <아동문학의 이론>,
<세계아동문학사전> 은 아동문학의 경전이지요.
당신이 피땀 흘려 가꾼 아동문학평론의 숲에는
일백 서른 아홉 그루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서 울창하게 우거지고
일찍이 그 숲 속에 동심지기들 모두 불러모아 세계아동문학 큰잔치도 열었지요.
1931년 10월 상달 경북 청도군 대성면 고수동에서 태어난 당신은
소파 선생 가신 해에 태어났다고 아동문학연구를 운명처럼 생각하셨지요.
그 큰 뜻 이루기 위해 1976년 어린이달 종암동산에
<아동문학평론>이라는 나무 한 그루 튼실하게 심어
그 나무 십 여년 자라 뿌리 깊게 내리니
1988년 7월에는 한국아동문학학회를 창립하셨지요.
이듬해 어린이날부터 망우리 소파 묘소에 전국의 대학생 불러 모아
해마다 동요동시 백일장을 열었지요.
1990년 아시아아동문학대회를 창설하여 공동 대회장 맡으시고
이듬해에는 제1회 방정환 아동문학상을 만들어 공들여 상을 주셨지요.
1997년 전세계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세계아동문학대회를 서울에서 열었고,
2006년에는 제2차 세계아동문학대회를 열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2010년 4월에는 사재 털어 평생 수집한 사계문고를 경희대학교에 기증하여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를 만드셨습니다.
당신은 아동문학평론가이기 전에
이미 낭만과 주지, 모더니즘을 넘나들던 시인이었지요.
한 때는 장미담배와 마주앙과, 보들레르를 좋아하던
인정과 열정 넘치던 시인이었지요.
그 탱천하던 열정 누르지 못해 때로 여린 가슴들을 아프게도 했던 당신
그 아픔이 이제는 그리움의 망울로 맺힙니다.
요양원에 계실 때 가까운 음식점에 모시고 가면
습관처럼 카스맥주만 몇 모금 드시던 당신.
그 모습 안타까워 밥 한술 뜨시라고 권하면
알았다고 고개만 주억인 후 맥주 한잔 그 뿐이었어요.
어렵게 다시 권하면 쇠잔한 불호령이 우리를 슬프게 했습니다.
사계 선생님! 이제 당신은
내년 여름 동경 아시아아동문학대회 함께 가겠다던 희망도 접으시고
2014년 제3차 세계대회 다시 유치하겠다는 꿈도 접으시고
모두들 잠자던 첫새벽 하얀 나비되어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당신의 육신 나비처럼 가벼워져 <나목의 고향>으로 가셨습니다.
이제 김천 송죽동 선영 난정 여사 곁에 나란히 누워
먼발치 가야산 바라보다 <석상의 노래>도 부르며
<에델바이스의 철학>을 회억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깨 굽도록 지셨던 그 무거운 짐
이제 불초 제자들과 어린 후학들이 기꺼이 짊어지겠습니다.
이승의 끈은 놓고 하늘나라 가시면
소파 선생도 만나시고 소천, 해송, 요섭, 동원, 난정(蘭丁) 선생과 해후하시어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2011년 7월 7일
불초 제자 박상재 사룀
첫댓글 금요일(8일) 오전에 경희의료원으로 출발합니다. 동행하실분은 011-605-4847로 연락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