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___시의공간 : 충북 대전
서정의 ‘한밭’ , 대전
박진희
1.
마미신탄 지나서 대전이르니
목포 가는 곧은 길 예가 시초라
오십 오척 돌미륵 은진에 있어
지나가는 행인의 눈을 놀래오
최남선의 「경부철도가」 중 ‘대전’이라는 지명이 나오는 대목이다. 대전이라는 지명은 우리말 ‘한밭’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큰 밭’이라는 뜻이다. ‘대전’ 하면 교통의 요지라는 수식어가 첫 번째로 따라붙는데 1908년 최남선의 시선이 포착한 지점도 교통의 맥락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경부철도가」 에는 신탄진에서 대전, 증약, 옥천으로 이어지는 철도역과 ‘오십 오척 돌미륵’이나 ‘마니산성 남은 터’ 등과 같은 이 지역 풍경이 소개되고 있다.
철도가 근대 산업문명의 상징이자 근대화를 이끌어가는 중요 동력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최남선 또한 철도의 개통을 이러한 근대문화의 수용이라는 관점에서 예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우리민족에게 있어 철도가 근대의 긍정성만을 담보하고 있는 문물이 아님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일제에 의한 철도 부설은 아시아 전역으로 세력을 뻗쳐나가던 일제의 제국주의적 욕망의 상징이자 식민지 수탈의 상징이기도 했다. 실상 일제는 1905년 한밭마을을 거쳐 경부선 철도를, 1913년 한밭을 기점으로 하는 호남선 철도를 완공시킨 후 대륙침략을 위한 거점으로 삼았다. 시골마을 ‘한밭’이 교통의 요지 대전으로 발전한 데에는 일제의 대륙침략에 대한 야망이 한 몫을 한 셈이다.
흔히 대전을 ‘철도와 함께 생긴 근대도시’라 일컫기도 한다. 대전을 소개함에 있어 철도에 관해 이토록 장황하게 늘어놓게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철도’로 표상되는 타자에 의한 근대화, 그러한 근대문명의 진보성과 폭력성의 역사를 모두 함의하고 있는 공간이 바로 대전이다. 이러한 배경이 대전의 속성이랄까 지방색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대전의 특성이라 하면 특별한 지방색이 없는게 특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어느 지역이라고 그렇지 않으랴마는 대전은 특히 유동하는 인구도 많고 외지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비율도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대전은 1900년대 초 철도 부설로 대전에서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많아지면서 급속하게 커졌고 6·25전쟁 때 대전을 지나던 피난민들이 그대로 눌러 살면서 또 한 번 인구가 크게 늘게 되었는바 이것이 대전에서 특별한 지역색을 찾기 힘든 까닭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이를 개성이 없는 것이라 보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달리 말하면 배타적이지 않은 성질, 타자와의 사이에 견고한 경계를 세우지 않는, 동화적·융합적인 속성으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시의 역사를 써왔던, 그리고 쓰고 있는 시인들은 누가 있을까.
2.
작고 시인들 중에 먼저 정훈시인이 있다. 호는 소정, 대전에서 태어나 휘문고보를 나오고 일본 메이지 대학 문과를 중퇴한 시조 시인이다. 1940년 시조 <머들령>이 《가톨릭 청년》에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민족적 서정을 직유적인 방법으로 노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광복과 더불어 발간된 대전의 향토문예지 《향토》와 1946년 2월에 창간된 《동백》의 동인으로 참여한 바 있다. 시집에 『머들령』(49), 『파적』(54), 『피맺힌 연륜』(58), 『산조』(66), 『정훈시집』(73) 등이 있고 시조집으로 『벽오동』(55), 『꽃 시첩』(60)이 있다. 호서중학과 호서대학을 설립, 교장과 학장을 지냈고, 충남 예술위원회 위원장· 문총 충남지부장 등을 역임하였다.(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한국사전연구사) 지난 7월 대전에서는 여러 문학단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훈 시인의 고택이 인근 요양병원에 매입된 후 바로 철거되어 많은 문학인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충청의 대표적 시인이라 할 수 있는 박용래 시인의 생가도 공영주차장으로 바뀌면서 표지석만 덩그러니 남아 그 처지가 별반 다를 바 없다. 박용래 시인은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여 강경상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전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했다. 해방 후 은행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본에서 귀국한 김소운을 방문하여 문학을 공부하고 동인지 《동백》을 펴내며 본격적인 시 습작기를 보낸다. 박두진에 의해 1955년 「가을의 노래」, 1956년 「황토길」, 「땅」을 추천받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게 된다. 시집으로는 『싸락눈』(1969), 『청와집』(1971, 박용래·한성기·임강빈·최원규·조남익·홍희표 공저), 『강아지풀』(1975), 『백발의 꽃대궁』(1979) 등이 있다. 25년이라는 창작 기간에 비하면 과작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박용래 시인이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추구하며 개척해 나아갔던 향토적 서정의 세계는—물론 현실 도피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현대사회가 상실해버린 가치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태어나기는 함경남도 정평에서 태어났지만 한성기 시인은 대전의 대표적 시인이라 할 만하다. 한성기 시인은 1942년 함흥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부터 대전사범학교에서 15년간 근무하였으며 한해 신병으로 입산한 일을 제외하고는 타계하기 전까지 줄곧 대전 근교에서 머물며 시창작에 전념하였기 때문이다. 1952년 『문예』에 「역」과, 1953년 「병후」를 발표하고 다시 1955년 『현대문학』에 「아이들」과 「꽃병」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산에서』(1963), 『낙향이후』(1969), 『실향』(1972), 『구암리』(1975), 『늦바람』(1979) 등이 있다. 자연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한 경험이 있는 시인은 전원시인이라 불릴 정도로 자연을 주된 모티프로 하여 창작활동을 이어갔다. 한성기의 시는 관조를 통해 사물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 본질을 재구성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 시인들은 대전이 철도와 함께 근대의 공간으로 태어나던 시기를 비롯하여 해방과, 6·25전쟁, 4·19혁명, 5·16쿠데타 등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이들이 천착했던 것은 향토와 전통, 소소한 사물과 같은 반근대적인 것을 기반으로 한 서정의 세계였다. 이러한 공통점을 두고 공간성과 결부시켜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또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만도 없다. 이 글에서 세세히 밝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거니와 다만 제어되지 않는 폭주기관차와 같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세계에서 이들이 선택했던 것은 시였으며, 소멸되어 가는 서정성의 세계였다는 것만 기억하면 될 것이다.
3.
그렇다면 현재 ‘시의 공간’으로서의 대전, 그것의 역사를 쓰고 있는 시인들에는 누가 있을까. 지극히 주관적인 소견으로 김완하, 김명원, 안현심 시인을 소개하고 싶다. 이들은 현재 대전을 중심으로 창작은 물론 비평, 후학 양성 등 문학과 관련된 제반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시인들이자 문학지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완하시인은 경기도 안성 출생으로 현재 한남대 문예창작과 교수이자 『시와정신』 편집인 겸 주간이다. 시인은 미국 한인문학 활성화에도 열정을 쏟고 있는데 그 노력이 『버클리문학』 창간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2016년 여름, 『버클리문학』 3호까지 발간된 상태다.
김완하는 1987년에 등단하여 1992년 첫 시집 『길은 마을에 닿는다』를 상재했다. 이후 『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1995), 『네가 밟고 가는 바다』(2002), 『허공이 키우는 나무』(2007), 『절정』(2013) 등을 내며 꾸준한 창작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김완하의 시세계에 대해서는 “관조와 명상, 성찰”, “세속적 욕망과 결별하고자 하는 무구의 집념”, “버림 혹은 비움의 철학” 등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의 사유가 존재론적인 차원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그림자 따라 걷다가/ 빈집 앞을 지난다/ 제 그림자 볼 수 없어 매미는/ 땡볕 속에 소리를 쏟아낸다/ 소리에는 그림자가 없다/ 마당엔 풀들이 가득 에워싸고/ 집에는 그림자 풍년이 들었다/ 제 그늘 속에 집은/ 턱 하니, 또 한 채의 집을 짓고/ 마당 가득 풀을 키웠다/ 우거진 그늘 안고 누웠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 밖의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집은 비로소 집에서 벗어나/그늘 속으로 내려 앉았다/ 집을 세운 사람들 품고,/ 낑낑대는 강아지 한 마리의 밤도/ 아늑하게 품어 키웠다/ 이제 새벽 별빛만 뜰팡 위로 구른다/ 사람들이 떠나자 집은/ 비로소 허물을 벗어버리고/ 한 채의 그늘로 돌아가/ 집 속에 집을 완성하였다
——「그늘 속의 집」(『절정』, 작가세계, 2013.)
한 때 “집을 세운 사람들 품고, 낑낑대는 강아지 한 마리의 밤도 아늑하게 품어 키웠”던 ‘집’이 사람들이 떠나고 ‘빈집’이 되었다. 이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폐가’일 것이다. 그러나 김완하의 시는 상투적인 의미를 허용하지 않는다. “비로소 허물을 벗어버리고 한 채의 그늘로 돌아가” 완성된 “집 속의 집”, 즉 본연의 존재로서의 ‘집’이, 이 시에서 ‘빈집’이 함의하고 있는 바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지어진 ‘집’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면 폐기되는 도구적 대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시인은 도구적 대상으로써의 ‘집’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김완하의 시에서는 이처럼 대립적 관계의 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자’, ‘그늘’, ‘밤’ 등은 주로 부정적 의미의 축에 드는 기표들이지만 위 시에서는 긍정과 부정의 어느 한 편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본연의 존재이게 하는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까닭도 동일한 맥락에서이다.
김완하의 시에는 유난히 별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별’에 함의되어 있는 의미 또한 매우 다양한데 「새벽 별을 보며」라는 시편에서는 위 시에서와 같이 인간 중심의 획일적이고 상투적인 의미화에서 벗어나 존재의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위의 시, 「그늘 속의 집」 과는 10여 년의 시간적 거리가 있는 시편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이러한 의지는 시인이 초기부터 견지해온 시 창작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속박해온 별들을 풀어/ 모두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그 별들을 끌어와 나는 얼마나/ 나의 화려한 생각 속에/ 가두어두려 했던가// 새벽이 안간힘을 쓰며 올 때/ 지상의 가난한 사람/ 마지막 잠을 비우는 순간까지/ 스스로 빛을 품으며 별은 어둠 속으로 잠긴다/ 저 숱한 별빛도 다 바라볼 수 없는/ 어둠이 있다는 것을 나는 헤아려 왔던가// 어둠길 한 마장 질러 오기 위해/ 무수한 별빛은 내 발 아래로 죽고 /발길에 치인다는 것을/ 새벽이면 풀잎 끝마다/ 고이는 별들의 목마름을/ 나 얼마나 뒤돌아보았던가// 눈을 들어 다시/ 새벽 별을 바라본다/ 아직은 미루나무 버드나무 시린 손 비비며/ 별빛 향해 손을 뻗는다/ 마을마다 작은 불빛 사윈 뒤에야/ 마지막 저 별 하나도 깊은 잠이 들리라// 이제야 나는/ 가슴속에 묻어온 이름 하나 꺼내/ 제자리로 날려 보낸다/ 비로소 내 집착의 그늘 걷고/ 말갛게 씻겨진 별빛 사이로/ 밝게 밝게 살아나는 얼굴
——「새벽 별을 보며」(『네가 밟고 가는 바다』, 문학사상사, 2002.)
김명원 시인은 충남 천안 출생으로 시집 『슬픔이 익어, 투명한 핏줄이 보일 때까지』(1999), 『달빛 손가락』(2007), 『사랑을 견디다』(2010) 등이 있다. 김명원이 시인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시인은 약학을 전공하고 한미약품에서 근무하던 중 1995년 대장암 3기 판정을 받는다. 시인은 그제야 “주위 시선에 의한 삶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기를 택했고 암 투병 중이던 1996년 《시문학》으로 등단하게 된 것이다.
현재 대전대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으며 《애지》, 《시선》, 《시와상상》, 《시와인식》, 《시인광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방면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주목을 끄는 것은 2009년부터 묵묵히, 그리고 성실히 해오고 있는 ‘시인 대담’이다. 이는 국내 시인들의 삶을 집대성 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김명원은 2014년 대담집 『시인을 훔치다』로 그 첫 성과물을 내놓았으며 이후로도 웹진 《시인광장》에 ‘시인탐방’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연재해오고 있다. 그의 시는 시의 소재에 있어서든 시적 형식에 있어서든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밑바탕에는 타인에 대한, 세상에 대한 따듯한 시선과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탐조여행探鳥旅行에 필요하다는/ 조류도감을 사기 위해 교보문고로 가며/ 호주머니 깊숙이 삼만 원을 넣었다// 내가 서 있는 지하철 첫 칸에서 왼쪽으로/ 창 밖의 나무들이 바람에 쏠리며 발 빠르게 지나는 사이/ 금정역에서 한 여인이 탔다/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은 더듬더듬/ 노래를 한다, 주님 내 발 붙드사 그 곁에 서게 하소서…/ 들고 있는 초록색 바구니 하얀 은닢을 만지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만이 느리게 살아 움직이는 삼 분간/ 나는 삼십 번을 망설이다 오천 원을 넣었다/ 이제 조류도감은 살 수 없지만 읽고 싶었던 책 몇 권은 살 수 있어/ 나는 작게 안도했다// 사당역에서 검은 안경의 부부가 탔다/ 남편은 앞에서 지팡이를 휘두르고/ 아내는 남편의 허리를 잡고 한 쪽에는/ 초록색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었다 그들도/ 노래를 한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우리 주 은혜 놀라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오천 원을 넣었다/ 아직도 얼마든지 책은 살 수 있어,/ 나는 다시 오천 원어치 마음이 가벼워졌다// 서울역에 거의 다 와 아홉 살쯤 여자아이가/ 올라탔다, 첫돌도 지나지 않았을 아기를/ 업은 채 껌을 돌리며 아기가 운다고 아홉 살 아이는/ 버럭버럭 욕을 해댔다, 흘러내린 포대기를/ 올려주는 아주머니에게도 바득바득/ 화를 냈다, 나는 다시 만 원을 꺼냈다/ 고맙다는 말조차 없는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만 원어치 가벼워지기 위해서였다// 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제 내 마음이 무거워지는 누구도/ 만나지 말기를 바랐다, 아직도 호주머니에는/ 만 원어치의 무거움이 남아 있으니까// 조류도감은 살 수 없지만/ 내가 사고 싶은 시집은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종각역에서 무사히 내렸을 때/ 형광등이 반만 켜져 깜박이는 지하보도 끝 편/ 고단함과 추위에 나부끼는 할아버지와 만났다// 포장용 색 테이프를 붙여 입은 해진 바지에/ 주름살 투성이의 파카 위로 머리칼조차/ 남겨져 있지 않은 대머리가 눈 시리게 빛났다/ 나는 벗겨진 신발 옆에 남아 있던 만 원을 놓았다// 한 달을 벼르던 교보문고 행은 거기서 끝났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먼 여행을 마치고/ 이동하는 철새 떼에 섞여 있었다// 아주 아주 가벼워져 날아가고 있었다
——「교보문고행」(『달빛 손가락』, 시학, 2007.)
시에 서사가 도입되는 경우 대체로 압축된 형태의 불완전한 구조를 보이기 마련인데 위 시의 경우 도입에서 결말까지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 행연의 구분이 없다면 그대로 한 편의 짧은 수필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이처럼 서사가 강조되면 서정이 위축되기가 쉬운데 위 시에서는 마지막 두 연으로 인해 서사 자체가 서정성을 담보하게 된다. 마지막 두 연은 이 시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진술로 자칫 느슨해질 수 있었던 긴장감이나 압축성을 마지막 두 연에서 갈무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의 초반, ‘탐조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서정적 자아와 지하철에서 만나게 되는 걸인·노숙자와의 심리적 거리는 ‘조류도감’ 속의 새와 실제 ‘철새’와의 거리만큼 멀다. 이 거리는 ‘조류도감’을 사기 위한 돈을 그들과 나누는 과정을 통해 점점 좁혀진다. 결국 서정적 자아의 초점은 ‘조류도감’이라는 물질성에서 “이동하는 철새 떼”에 동일화되는 것으로 전화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세상의 온갖 슬프지 않은 일에도 슬퍼할 줄 아는 혼’이 시인이라던 백석의 말을 상기해보면 김명원은 천상 시인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시인의 심성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겠는가. 시인이 ‘진짜 시인’이라 부르는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그대로 물려받은 듯하다.
평생을 퍼주기 좋아하고 내 것 네 것이 없던 아버지를, 학생들이며 학부형들이며 선생님들이며 누구도 경외해 마지않는 아버지를, 유독 우리 가족만은 존경하지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인데,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아침, 중환자실 면회 시간에 내게 이르신 말, 바쁜데 왜 이런 델 부러 왔느냐, 산 사람은 죽는 사람을 마중할 필요가 없다, 사는 데 열중해라, 아이들 잘 크냐? 그리고 나에게 꽂혀 있는 저 링겔 주사기 바늘 빼다오, 내게 먹일 주사약이 있다면, 살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 놔다오. 그게 유언이었는데, 나는 왜 이 말씀이 자꾸 진짜 詩라고 여겨지는 것인지
——「진짜시인」부분 (『달빛 손가락』, 시학, 2007.)
안현심시인은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2004년《불교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꽃살미 가는길』(1991), 『수숫대가 자라는 가슴』(1992), 『사랑은 눈 감을 수 없다』(1999), 『하늘소리』(2002), 『하늘사다리』(2012), 『연꽃무덤』(2015) 등이 있다. 현재 《불교문예》 주간으로 있으며 한남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시에 대해 나태주 시인은 “안현심의 시는 대체적으로 비극적인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울분이나 슬픔이나 절망을 있는 그대로 거칠게 보여주지 않고, 발이 고운채로 거르듯 잘 거르고 정돈해서 보여준다. 전혀 격한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차라리 유리알처럼 투명하기까지 하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의 시가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것은 관념적 초월보다는 ‘하늘에 탯줄을 건/ 한 마리 애벌레’와도 같이 탈속의 공간을 엿보며 세속의 공간을 조율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강희안 시인의 분석도 동일한 의미망에 자리하는 평가라 할 수 있다.
안현심은 “어떠한 희망도 슬픔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는 견고한 생명체가 될 수 없다. 슬픔을 잘 어루만진 사람만이 찬란한 정신의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래서일까. 안현심의 시선을 통과한 세계의 표정은 서러움이고 쓸쓸함이고 아픔이다. 안현심 시의 곰삭은 슬픔, ‘찬란한 정신’의 근원은 바로 ‘어머니’다. 안현심의 시에 유난히 어머니에 관한 시가 많은 까닭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주검을 닦아드리다가/ 짓무른 생식기에 손이 닿았다// 탄탄한 자신감으로/ 생명을 피워올리던 황금빛 바다// 휘파람이 피어나고 풀잎이 피어나고/ 사슴이 피어나던 연꽃 생식기// 생명의 바다를 사모하다,/ 사모하다 스러진 연꽃무덤이다
——「연꽃무덤」(『연꽃무덤』, 서정시학, 2015)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그것에 물들지 않는 속성으로 불교에서는 부처를 상징하기도 한다. 시인은 어머니의 “짓무른 생식기”를 ‘연꽃무덤’이라 부르고 있다. 무참한 세월이 없었으랴만 어머니라는 세계는 “생명을 피워올리던 황금빛 바다”였고 “휘파람이 피어나고 풀잎이 피어나고/ 사슴이 피어나던” 세계였기 때문이다. 끝끝내 “생명의 바다를 사모하다, 사모하다 스러진” 존재가 어머니이기에 그 주검을, “짓무른 생식기”를 ‘연꽃무덤’이라 하는 것이다. ‘슬픔을 기반으로’ 생명을 피워올린 어머니, “슬픔을 잘 어루만진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찬란한 정신’의 집이란 바로 이 어머니로부터 기인하는 것일 터이다.
자신 또한 어머니이기도 한 시인은 “순간의 몸짓이 삶을 짓는다”고 믿으며 쉼 없이 세상을 ‘사모하고 사모하는’ 중이다.
당신의 삶이 고단한 것은 개미를 밟아 죽인 일, 댓돌에 신발을 가지런히 놓지 않은 일, 거리에 침 뱉은 일,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일들이 산처럼 자랐기 때문,// 당신의 항해가 빛나는 것은 노인을 부축해준 일, 꽃을 어루만진 일, 이웃과 호박을 나눠 먹은 일, 하늘 바라 웃은 일이 강물을 이뤘기 때문,// 순간의 몸짓이// 삶을 짓는다.
——「나비효과」(『연꽃무덤』, 서정시학, 2015)
4.
‘시의 공간’이라 하면 시가 창작된 공간, 시에 등장하는 공간, 시인의 탄생과 관계된 공간, 시심을 키운 공간 등등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청탁을 받은 후 여러 측면에서 시인과 작품을 살펴보게 된 것이 사실이다. 시를 읽을 때 공간이란 주로 주제 혹은 시적 자아의 정서를 드러내는 장치로 의미가 있었다. 그러하기에 그것이 자아내는 분위기, 이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 지명은 그리 중요한 것이 못되었다. 그런데 이 글을 준비하면서 새로웠던 경험이라 하면 공간의 의미가 아닌 기표에 집중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머들령’, ‘서대전역’, ‘삼성시장’ 등, 시에 대전과 관련된 지명이 등장하면 저절로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었다. 새삼 그것 또한 의미가 깊다는 것을 생각게 되었다. 100년이 지나고 200년이 지나 시 속에서 불러보게 되는 머, 들, 령이라든지 가, 수, 원……. 그때 그 시간에 이 공간들은 무엇을 말해 줄는지, 이 공간 속에서 읽게 될 시인의 몸짓, 시선, 목소리 등등이 자아낼 서정의 표정은 어떠할지.
시문학 연구에서 공간성은 이미 중요한 주제의 한 분야로 자리하고 있지만 지역의 역사와 조응하는 시, 또는 시인의 측면에서도 이러한 작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여 지역에서 역량 있는 시인들이, 그리고 그러한 시인들에 의해 ‘시의 공간’으로서의 지역 또한 더불어 조명되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시의 공간’이라는 지면이 매우 소중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기도 하다.
박진희 / 문학평론가. 저서 『유치환 문학과 아나키즘』, 『문학과 존재의 지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