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의 이브는 이브닝(evening)에서 앞대가리를 떼어내 eve라고 한다는
별로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었는데 알고보니 좀 허무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그런데 왜 성탄절 당일보다 전날 밤이 더 요란할까?
하긴 뭐 우리 전통 설날에도 설 전날인 섣달 그믐날 밤을 작은 설 또는 까치설이라고 부르고
그냘 밤 잠을 자면 눈섭이 하얗게 쇤다고 협박하는 말도 있었다.
동양과 서양 지역은 달라도 뭔가 일맥 상통하는 그런 뭐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서울에서도 북쪽 끝 수락산역이 집인 나
서울에서도 한참이나 저 아래 남쪽의 수원역까지 가려니 전철로 무려 두 시간
서둘러 준비하긴 했는데 나이라고 먹어가니 시공간에 대한 개념이 매우 혼란스러워져 도대체 소요시간 + 준비시간 그런 설정을 제대로 하지못해 혼란스럽다.
게다가 스마트폰 앱을 보고 시간계산을 하면 전화기가 제시하는 오직 교통편에 소비되는 시간 외에 소요되는 시간을 간과해서 낭패를 보기 일쑤..............
모두 다 궁색하고 비겁한 변명이고 그냥 크게 지각했다는 이야기
수원역에서 걸어서 30분 도심 시가지 한가운데 팔달문이 나타난다. 옹성이 있고 거기도 문루가 있어 팔달문 현판이 보이지 않는다.
팔달문 시장통을 지나서 본격적으로 수원 화성 탐방이 시작된다.
수원 화성 산파역을 담당했던 정조임금의 작은 형상이 그곳에 있었다. (정식 동상은 화서문 근처에)
시장이 많은 동네라 엽전을 많이 걸어 놓았다. 남문 통보라고 씌여 있는데 실제로 사용한 화폐는 아닌듯 예전 그때 이런 화폐를 썼다면 대박이었겠다. 지금의 지역화폐나 마찬가지일테니
남수문을 건너 본격적인 화성 탐방을 시작하게 된다.
포루라고 해서 당연히 포(砲)를 쏘는 포루(砲樓) 인줄 알았는데 鋪樓도 같이 있다. 鋪樓의 포자는 가게 점포 할 때의 포자니까 특이하다. 가게는 아니고 포대에 지붕을 씌워서 포루라고 하는 모양인가 했는데 포루(砲樓)에도 지붕이 있다.
여기가 예전 군사들 훈련하던 병영청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걸맞게 현재 여기에 국궁 체험장이 있다. 그것도 한번 경험해 보면 좋으련만 우리 동무들은 그냥 앞으로 내빼기 바쁘다.
수원을 구경시켜주는 열기구가 보인다 왔다리갔다리 하는 건 아니고 오르락 내리락만 한다고
우리나라 정자에 이렇게 긴 이름을 가진 정자가 있었던가?
방화수류정이라는 이름은 한시에 나온 거라는데 訪花隨柳亭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니는 정자라는 뜻이라고
수문인 화홍문의 虹자는 무지개 홍짜로 화홍문 아래는 물이 흘러나가는7개의 虹霓(홍예 - 무지개다리)가 있다.
곧이어 나타나는 장안문 장안문은 수원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을 담당하고 있다.
한양 도성의 정문은 숭례문이고 남대문이다. 한양 도성의 북문은 아예 닫아 걸어 놓고 사람을 들이지 않는다.
늘 북쪽에서 오랑캐가 침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 수원화성은 서울에서 내려오니 북문이 정문이 되고 있다
그리고 금방 나타나는 화서문 이름 그대로 서문을 담당하고 있다. 화서문과 장안문은 매우 가깝다.
화서문을 지나서 수원사람 김소영님이 우리를 안내한 곳은 화성 행궁 근처의 매향 통닭 수원을 대표하는 통닭집이라네요
가마솥 통닭이라더니 예전 1970년대 많이 보았던 전기구이 통닭이랑은 모양이 좀 다르다.
그런데 거기다가 큰 접시에 담겨온 넙적한 통닭을 가위로 사정없이 도려낸다. 이름하여 닭도로리
이건 통닭이 변하여 닭도리가 되었다는
맛있어서 맛있는 건지 배가 고파서 맛있는 건지(그때 시간이 3시20분) 암튼 맛있게 잘 먹었다.
8명이 4마리 시켰다가 나중에 한마리 더 추가하고 그것도 남김없이 다 냠냠냠 했다는 거
수원 주민이신 김소영님 길안내도 해주시고 통닭집도 소개하시고 멀리 서울서 왔다고 우리들에게 통닭까지 사주셨습니다.
오늘 운행코스 사전 답사까지 하셨으니 오늘 대장은 김소영님이십니다. 저는 다만 공지만 했을 뿐
너무 감사드립니다.
오늘 운행 예정이 팔달산 야경도 있으니 5시 정도 해가 설핏해져서 통닭집을 나서 화성 행궁으로 간다.
행궁이라는 것은 왕이 정전이 아닌 어디 행차 했을 때 묵기 위하여 만든 궁이다.
어쩌다 한번 가는 곳에 굳이 궁궐을 지어야 했나?
그게 그런데 왕이 사가에서 자게 되면 그 집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 집은 왕실에 귀속되어야 한다는데
갑질 중에 왕갑질이라고 하겠다. 왕이니까 뭐
석파정이라고 서울 자하문 넘어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건물
그 건물이 석파정이 된것은 바로 왕이 거기서 하루 잤기 때문에 그게 왕실 소유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흥선대원군이 왕의 섭정으로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 석파정을 탐내었는데 당시 세도가 당당하던 안동김씨 일문의 소유라 맘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영의정 출신인 김흥근에게 대원군이 자기 부인이 아프니 거기서 정양을 하게 잠시 빌려달라고 했다.
썩 내키지는 않았겠지만 당시 절대 권력이기도 하고 또 빌려달라는데 살림집도 아닌 별서로 쓰고 있는 건물을 안빌려주는 것은 너무 쪼잔해 보일 수 있어 그넘의 양반 체면때문에라도 대원군에게 잠시 빌려 주었다.
그런데 대원군이 아들인 고종을 그곳으로 불렀다. 생모가 아프니 와서 보라고.........
그리고 아직은 어린 고종을 거기 석파정의 엄마 곁에서 하룻밤 재워 보냈다.
고종이 하룻밤 자고 갔으니 그 집은 이제 당연히 왕실의 소유가 되었고 왕실의 소유라는 것은 곧 대원군의 소유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름도 석파정이라고 고치고 대원군 별서가 되었고 대원군의 아호도 석파가 되었다.
행궁을 나와서 팔달산 서장대로 향한다.
팔달산은 해발 150m 정도의 나즈막한 동산이다. 행궁에서 20분 정도 소요된다. 어둑해진 길 입구를 찾느라 조금 헤매다.
화성장대 즉 서장대
그 이름을 들어본지 무려 50여년만에 상봉했다. 영상으로 한번 보기는 했을텐데
서장대라는 이름이 대중가요 가사에도 나오는데 그거 아는 분이 계실랑가 모르겠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수원처녀"라는 노래
철쭉꽃 딸기꽃이 수원에 피며는~
타네요 수원처녀 가슴이타네요
달뜨는 호반길 임과 놀던길
첫사랑 맺어 놓고 멀리 떠난 사람아
서장대의 푸른 꿈을 잊으셨나요
기다리고 있습니다아~~~~
1970년대 초반 나온 노래니 무려 50년전 노래
그래서 늘 궁금하던 서장대를 이제 만나보게 되었다는
그런데 1972년 그때 크리스마스 이브에 당시는 나도 청소년이었는데
그때 당시 크리스마스 이브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일년에 단 하루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 되었었다. 그래서 더욱 들뜬 분이기
그때 당시 내가 심부름 하던 업소 형이 자기 크리스마스 기분 내느라고 우리에게 한턱 쏜다.
당시 ㅇ휴행하던 전기구이 통닭을 사주고 또 영화구경까지 시켜준다.
그냘 청계천 4가 천일극장에서 본 영화가 "강산에 노래 싣고 웃음싣고"였다.
엄밀히 말하면 영화라기보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뮤직비디오였다.
TV가 흑백이었고 그마저도 보급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매우 인기 좋은 영화였다.
당시 재개봉관이던 천일극장 사람이 콩나물시루처럼 모여서 서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코미디언 몇명이 나와 사회처럼 가끔 꽁트도 하고 했지만 대부분 가수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노래하는 거였다.
패티김이 서울에서 서울의 찬가 나훈아가 물레방아 앞에서 물레방아 도는데 남진이 목화밭에서 목화아가씨 하춘화가 하동포구 아가씨를 섬진강과 지리산에서 ........
그중에 이미자의 수원처녀가 있었고 설명은 없지만 서장대가 나왔다. 그런데 그때 내가 본 화면은 화려한 2층누각 화성장대보다는 벽돌로 된 서노대가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서장대하면 2층누각이 아닌 벽돌탑 서노대가 서장대로 생각했었다.
첫댓글 함께 보았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수원에서 군생활을 했지만, 나라를 지키느랴 수원구경은 못했네요.
저는 기억에 없지만, '수원처녀' 한 번 들어 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OLi3mPTS5BA
PLAY
나라 지키느라 ㅎㅎㅎ
수고 많았구만
종진이 같은 사람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편하게 잘 살고 있는 거지
그리고 수원처녀 음악 고마워 나도 진짜 오랜만에 노래 들어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