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의무소방대원의 꿈」
2008년 8월 18일 오후 4시를 조금 넘긴 시각.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전국에서 몰려든 피서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지만, 이 날의 바다 풍경은 조금 달랐다. 파고가 평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 해운대 119수상구조대에서 피서객들의 입수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당일 근무에 임하는 수상구조대 소속 소방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 중 대부분이 하루 온종일 수변에서 불만에 가득찬 피서객들을 통제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해운대해수욕장 관리사무소 역시 피서객들의 민원에 시달려 수상구조대 측에 통제를 한 시간이라도 해제하면 안되겠나, 하고 울음 반 섞인 요청을 하고 있었다.
결국 16시를 조금 넘긴 시각 즈음, 수상구조대 박호덕 대장은 무릎까지-라는 단서하에 입수를 허용했고, 현 바다 상황에서 그 단서의 위험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수변의 대원들은 신이 나 다이빙을 해대는 피서객들을 통제함에 더욱 더 필사적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 시각, 해운대해수욕장 전 구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자리한 119수상구조대 CP(Command Post).
“영환아 ! 제트 한 바리 하러 가자!”
“47! 문제없습니다!”
당일 근무조인 1팀의 권용욱 팀장의 박력있는 목소리와, 그를 따라하기라도 하듯 나름의 박력을 담은 앳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해수욕장 입수통제를 조금이나마 해제함에 따라, 높은 파도로 인해 계류해놓았던 수상오토바이 한 대를 결국 근무에 편성하기로 결정하였고 팀장이 의무소방대원 한명과 함께 수상근무에 임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해운대 수상구조대에는 2교대로 근무하는 소방공무원 외에 의무소방 총 5명(상방 1명, 이방 4명)이 상주하며 복무하고 있었고, 그 중 그해 5월군번인 이방 오영환은 의무소방대원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소방공무원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함께 근무하는 대원들뿐 아니라 수상구조대 대장과 각 팀장들은 그런 그가 대견했는지, 구조정 또는 해변망루 근무에 자주 배정시켜주곤 했다.
구조대 근무경력 십 수 년에 해수욕장 수상구조대 창설부터 매년 근무를 나왔던 베테랑 권영옥 팀장이 제트스키(본 명칭은 수상오토바이이나 통상적으로 제트스키라고 칭하곤 하였다) 운전대를 잡고, 이방 오영환은 몸에 딱 붙는 습식슈트에 휠 대로 휘어버린 스킨핀을 착용한 채, 레스큐 튜브를 둘러메고 높디높은 파도 속에 수상근무에 임하기 시작했다.
불과 한 삼십여분 지났을까. 권팀장의 노련한 운전실력에도 불구하고 제트스키가 그 해 여름 최초로 세 번이나 전복되었다. 피서객들 쪽으로 아주 잠깐 시선을 돌려도 집채만한 파도가 덮쳐왔기 때문이다. 이방 오영환 역시 핀 한 짝을 잃어버리고 해변까지 휩쓸려 왔다가 어린아이가 떠내려온 핀을 주워줘 간신히 다시 제트스키로 복귀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들은 1차 부표선(피서객들의 입수 가능지역임을 표시하는 부표)까지 휩쓸려와 겁에 질린 채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피서객들을 다수 구조하여 수변대원들에게 인계하였고, 애초의 무릎까지-라는 단서는 높은 파도 속에 무의미해진지 오래였다. 넓디넓은 해운대바다 위에서 그들은, 힘든 것도 잊은 채 눈을 부릅뜨고 또 다시 위험에 빠진 피서객이 있는지 살피며 온 바다를 지켜내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권 팀장의 목에 걸어놓은 무전기에 다급한 소리가 울렸다.
“제트 하나, 여기 CP. 즉시 13망루 전방 열한시 방향 2차부표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47!”
자세한 상황설명은 없었으나 다급한 목소리로 보아 좋지못한 상황임을 짐작한 권팀장은 높은 파도를 뚫고 최대속도로 제트를 몰아 명령지점으로 향했고, 뒷자리의 대원 오영환은 다급한 제트스키와 성난 바다의 마찰로 인한 심각한 충격을 엉덩이로 감내하며 멀미감 속에서도 시야를 확보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전방 십 여 미터 앞에 수면위로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요구조자를 발견했다. 높은 파도에 휩쓸려 2차부표 인근까지 떠내려 온 것으로 보여 상황은 자못 심각했다. 권 팀장은 제트의 속도를 올려 최대한 근접한 뒤 제트의 방향을 틀며 소리쳤다.
“영환아 내리라!”
이미 레스큐 튜브를 한 쪽 옆구리에 낀 채 제트 측면으로 돌아앉은 그는 대답할 새도 없이 오른 다리를 전방으로 길게 쭉 내뻗으며 바다로 입수했다.
풍덩. 여전히 성난 바다는 쉴 새 없이 파도를 껴안은 채 그들을 덮쳐왔고, 권팀장은 제트를 몰아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그는 파도 속에서 고개를 들어 요구조자의 위치를 확인하려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서늘한 기분을 느꼈다.
보이지 않았다. 분명 바로 앞에 있어야만 하는 요구조자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는 생각할 겨를없이 그 즉시 바다 속으로 무작정 입수를 시도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속으로 몸을 굴려 있는 힘껏 솓구친 그 순간.
깊은 수심으로 내뻗은 그의 손에 아주 작으면서도 강력한,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간절한 손길이 느껴졌다. 그가 잡은 것이 아니었다. 그 어떤 간절한 힘이, 그의 손을 잡은 것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 수면으로 끌어올렸다. 아주 작은 여자아이였다. 열 살정도나 되었을까, 조그만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동공이 풀려있었다. 소리칠 힘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그러나 아이의 손은, 그가 놀랄 정도의 강한 힘으로 그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레스큐 튜브를 그 아이의 몸에 두르고 양 끝을 연결했다. 몸이 작아 행여 빠질세라 튜브에 달린 슬링으로 한 번 더 고정했다.
그 와중에도 파도는 쉴새 없이 그들을 덮쳐왔고, 그는 그의 최대한의 힘과 속도로, 도저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던 파도를 뚫고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해변가 위에는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안전한 위치까지 빠져나온 그는 지원을 위해 들어온 수변근무대원에게 요구조자.. 그 작은 아이를 인계했다.
저기 해변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부부가 보였다. 아이의 부모일까. 파도를 뚫고나가 이제 아이는 안전하니 안심하라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몸을 돌려 다시 바다로 향했다. 그가 다시 힘겹게 제트스키에 복귀했을 때, 권팀장이 그에게 소리쳤다.
“잘 했다 영환아! 니가 사람 생명하나 살린기다!”
저 멀리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이의 간절한 손길이, 그 온기가 아직 그의 손에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 의무소방대원에게 평생 잊을 수 없을, 첫 인명구조의 강렬한 기억을 새긴 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약 1년 전, 2007년 10월 18일, 아침 8시 50분.
소방시설관리업과 공사업을 병행하는 대한방재이엔지.
사무실 문이 열리며 목요일 아침의 나른함을 깨는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안녕하십니까아-!”
회사에서 반년 넘게 보조인력으로 일하고 있는 스무 살의 청년, 오영환이다.
사무실에 가득한 열댓명 남짓한 직원들은 언제나처럼 점검, 공사 팀별로 각자 그날 대상처에 필요한 자료와 장비들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오늘 그의 임무는 남구 용당동에 위치한 냉동창고 소방시설 보수공사팀 보조였다.
무더웠던 한여름에 정밀점검했던 대상인데 보수가 이제야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그래도 직접 점검한 대상이라 조금 수월하겠구나, 하고 그는 생각한다.
작년,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자퇴한 후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들어오게 된 소방시설업체. 어느 새 점검이나 보수공사, 그 어떤 현장에서도 실력을 꽤나 인정받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보조인력으로 들어왔지만, 단지 ‘소방’이라는 글자가 가슴에 새겨진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대단히 뿌듯하고 하루하루가 만족스러웠다. 조금이나마 자신의 꿈에 가까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작업하는 기사들의 어깨너머로,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시설관련 이론, 실무교재들을 파고들며 누구보다 늦게 퇴근했던 그 시간 속에 조금씩 실력이 쌓였던 것만 같아 뿌듯한 요즘이다. 사장님도 마음에 들었는지 내년에는 월급도 올려주고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겠다는 약속까지 하셨지만, 사실 그는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그만둘 계획이다. 대학도 뒤로하게 만들었던 꿈, 소방공무원이 최대한 빨리 되고 싶었던 그는 군 전환복무로 의무소방대에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다가오는 12월에 만만치 않은 필기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등을 통해 알아본 바, 의무소방대는 제2의 카투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개인시간도 많고 군복무 중 가장 편하다는 소문이 퍼져 서울대 연고대 등의 고학력자들이 몰린다고 한다. 결코 쉽지만은 않은 시험이 될 터였다.
그들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전혀 다른 이유이기에 더욱, 반드시 합격해야만 한다고 마음먹은 그였다. 그렇기에 퇴근 후에도 항상 시험과목들을 붙들고 있는 요즈음이었으나 아무래도 시간상의 부족함을 느껴 일을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오늘은 비교적 쉬운 작업이었다. 파손되거나 램프 수명이 다된 유도등들을 교체하고 엉켜있던 감지기 선로와 방화셔터들을 모두 원활하게 보수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많이 기울어진 오후 네 시.
도시를 관통하는 고가도로인 부산 도시고속도로를 타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회사의 낡아빠진 1톤 용달트럭 안에서, 그는 허리에 찬 장비벨트(일명 사쿠)를 정리하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작은 빌딩부터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각종 공장, 백화점, 호텔 그리고 김해국제공항 등.. 수없이 많은 현장에서, 자신보다 연식이 더 된 낡아빠진 것부터 최신 기술이 응용된 첨단 자동식설비들까지.. 다양한 소방시설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배워갈 수 있었던 시간들. 언제나 열심이었던 만큼, 언젠간 소방서에 들어가서도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될거라 믿어져 든든하기만 하다.
물론 예방담당 소방공무원들과 항상 좋은 관계일 수만은 없는 민간업체에서 일하고 있지만, 오늘날 점점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소방시설 분야에 있어 다방면으로 시야를 넓힐 수 있었기에.. 입대 전인 지금으로선 자신의 꿈에 있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믿고 있다.
아직은 소방점검제도에 부조리하고 또 비효율적인 부분들이 너무나 많음을 또 그 누구보다 가까이서 실감할 수 있었기에, 언젠간 - 소방에서 높은 사람이 되어 그 모든 것들을 바꿔놓아야겠다고 큰 꿈에 부풀기도 했던, 어린 그에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시간들.
석양지는 노을 아래 그는, 유난히 좋아하는 자리인 회사 옥상의 고장난 사다리에 걸터앉은 채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서 또 다시 머나먼.. 그러나 확실히 다가오고 있는 꿈들을 다시금 가슴에 되새긴다.
2010년 5월 17일 아침, 부산소방본부 의무소방대기실.
너무도 익숙한 내무실 이불 속에서 그는 눈을 떴다. 햇살이 눈부신, 어느 초여름날의 아침. 잠시 헤매이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다.
그는 2년 전 육군훈련소에서 마지막으로 입었던, 전날 정성스레 다려놓은 육군 군복을 꺼내입기 시작했다. 오른 쪽 어깨에는 전역병장 마크가 새겨져 있다.
길고도 짧았던 2년 2주간의 의무소방 복무를 마치고.. 드디어 전역하는 날.
훈련탑 1층의 전신거울에 비친, 군복차림이 어색한 자신을 잠시 들여다본다.
마지막 몇 개월간, 예방안전과장님을 모시는 운전병으로 근무했던 부산소방본부.
각 과 사무실마다 들려 정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니는 동안, 점점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정말.. 내가 전역을 하긴 하는구나.’
돌아보면 힘든 순간도 분명 있었다. 의무소방대원으로써, 소방관들의 격렬한 현장활동에 아주 미약한 힘일지라도 보태고 싶었던 그에겐 불편한 넥타이를 메고 구두를 신어야하는 소방본부 생활은 너무나 답답하고 또 슬프게 느껴지곤 했다.
물론 조직생활에서 원하는 업무만 담당할 수는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료하고 또 중요한 현실이었지만, 현장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컸던 어린 의무소방대원에겐 그 ‘현실’을 배우는 과정이 괴로울 수 밖에 없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본부에서의 신고를 모두 마치고 이곳저곳 부산 전역 소방서에 흩어져 근무하고 있는 감사한 분들- 함께 근무했던 분들께 인사를 다니다가, 점심시간 즈음이 되어서 동래소방서 구조대에 도착했다.
출동을 나갔는지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기에 구조대 청사 옆에 있는 냉면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너무나 익숙한 또 어딜 가도 비슷비슷한 소방차량 차고 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지금 이 순간 자신은 소방서를 떠나 전역했음을 떠올리고선 왠지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특별하고도 귀중한 한 순간에 함께 있었던, 동래구조대 권영옥 팀장님이 귀소하기를 기다리는 시간. 딱히 바쁜 일도 없고 해서, 그는 햇볕 잘드는 자리에 앉아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의무소방대원이라는 이름으로, 그에겐 그토록 간절했던 119 소방마크를 머리와 어깨, 그리고 가슴에 새길 수 있었던 시간. 그 시간 속의 너무도 많은 순간들, 소중한 추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2008년 초여름의 중앙소방학교, 4주간의 의무소방대 기본교육 수료식 날.
그토록 기다리던, 고향 부산의 소방서로 떠나는 날이지만 그는 왠지 마음이 착잡하다. 논산 육군훈련소에서부터 두달이라는 시간동안 모든 순간을 함께 했던 동기들과 기약없는 이별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각 생활실은 어수선하기만 하다.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휴가를 맞춰 꼭 만나자는 친구들도 있고, 마음이 격해졌는지 벌써부터 눈물을 보이는 녀석도 있다. 뭔가 들뜨는 동시에, 또 왠지 가라앉는 듯한 기분.
같은 생활실 동기들과 에이포 용지 한 장씩에 서로에 대한 인사말을 남긴다. 왠지 우스꽝스럽지만 또 그만큼, 너무나 진지한 모습들에 괜히 마음 한 켠이 찡하다.
예고도 없이, 사열대 앞에 부산소방차량이 도착했으니 해당 교육생들은 집합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부산은 거리가 멀어 인사를 나눌 시간이 많을거라 생각하고 있었던 그에겐 너무나 갑작스럽다. 당혹스러움을 감추며 같은 생활실 동기들의 요란스런 작별인사를 받다가 문득, 한 친구를 찾는다. 전국에서 모여든 100명의 의무소방 동기, 그 중에서도 특히나 너무도 마음이 잘 맞았던 충청도 친구 이우종. 잊지 못하는 첫사랑 이야기부터 서로가 꿈꾸는 미래에 대해서까지, 다양하고도 깊은 이야기를 수없이 나누곤 했다. 때론 배를 잡고 웃었고 또 때론 이 세상 누구보다도 진지했던 그 순간들. 생활실 입구에 방송을 듣고 달려온 그 친구가 서 있다. 왠지 문득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당황했지만 꾹 참아본다. 악수를 나누며, 둘 다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 다음에 반드시 만나자는 증표라며 서로 바꿔차고 있던 군용시계만 계속 두드리다가 결국, 둘 다 눈만 시뻘개졌던.. 쑥스럽기도 하지만 결코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기억 하나.
시간이 흘러 초가을, 해운대소방서 우동119안전센터.
간호사 출신 구급대원 한 명이 육아 휴직을 하게 된 시점에, 두달 간의 해수욕장 수상구조대 근무를 마치고 해운대소방서로 복귀한 의무소방대원 오영환. 외근직에 의무소방대원을 잘 내보내지 않는 부산 소속으로서는 운좋게도, 마침 자리가 비었던 구급대 보조대원으로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인연이 닿게 된 주정호 부장님.
많은 날들에 밤낮없이 함께 벤츠 구급차로 해운대를 누비며, 정말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며 배워갈 수 있었던 그 시간들. 물론 수상구조대에서의 강렬한 경험 때문인지 그는 뼛속 깊이 구조대원이 되고 싶었지만, 부장님의 깊은 지식과 전문적인 응급구조활동을 지켜보며 그 당당한 모습을 존경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어느덧 그는 부장님을 스승님이라 부르게 되었고, 매 출동 건마다 당해 환자의 병명과 증상, 응급처치 등을 책과 컴퓨터를 뒤져 공부하고 또 스승님께 궁금한 것을 여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해 봄이 오기 전, 인사발령으로 스승님께서 기장119안전센터로 떠나시는 날. 해운대 일대에는 비가 쏟아져 내렸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해운대소방서를 떠나는 스승님의 낡은 무쏘차량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리던 그의 모습. 차가운 비를 맞고 있으면서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격렬히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잊지 못할 또 하나의 강렬한 기억.
동래구조대 사무실에 앉아 커피 한 잔과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눈 뒤, 권영옥 팀장님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섰다. 슬슬 부모님께서 퇴근하실 시간이 다 되어간다. ‘나도 이제, 돌아가야지. 집으로..’
비록 전역한 오늘이지만, 홀가분하지만은 않다. 몇주 뒤에 소방공무원선발 2차 실기(체력)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복무 중이라 공부 시간이 짧았던 탓에 부산시험은 최종단계에서 미끄러졌지만, 한 달뒤였던 중앙소방학교 의무소방 특별채용 분야에서 필기시험에 합격해 한숨 돌린 그였다. 부산TO가 없어 서울로 지원하였기에 최종합격하면 고향과도 같은 부산을 떠나야하겠지만, 그 나름대로의 장점도 있을거라 생각하며 이번에는 결코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라 다짐한다.
‘반드시.. 이번에는 이루고야 만다. 나의 꿈.. 더 미뤄질 순 없다.’
2007년 12월 14일, 부산소방본부 소회의실. 제14차 의무소방대원 선발 최종면접시간.
“1001번 지원자 오영환씨, 들어오세요.”
소방본부 의무소방 담당자의 목소리가 면접 순서를 기다리는 지원자들 사이로 울려퍼진다. 1001번. 원서접수가 시작되는 첫 날, 아침 9시가 되자마자 소방본부 행정과 사무실로 방문하여 첫 번째로 접수했던 그였다.
“음.. 너무 추상적인데요.”
“..예?”
“뭐랄까 너무.. 추상적이고 마치 좋은 글로 대답을 준비한 듯한 느낌이 드네요.”
“...저는 항상 그 마음으로 소방관이 되기를 꿈꿔왔습니다.”
그에겐 너무도 중요한 순간이었던지라, 등이 땀으로 축축해질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형식적인 면접관의 질문들에 뻣뻣하게 굳은 채 기계처럼 대답하던 그는,
‘왜 소방관이 되고 싶었느냐’는 물음에 항상 가슴 속에 간직해온- 수없이 되새겨온 그 마음을 대답으로 대신하였지만, 다시 돌아온 물음에 순간 당황했다.
‘추상적..이라.’
정확히 언제쯤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잊혀지지 않는 건.. 그 순간의 너무나 강렬했던 그 느낌.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 군인장교였던 아버지가 제대하신 후, 잇따른 사업실패 등으로 가세가 기울었었다. 언젠가 몇 년 간 단칸방 신세도 졌으나, 항상 따뜻하고 단란했던 가정.
늘 어렵고 얼마든지 절망스러울 수 있는 순간들에도 그의 부모님은, 두 살 터울의 누이와 그에게 늘 웃는 얼굴로 밝은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셨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지니고 항상 웃으며 힘을 내곤 하셨기에 남매 역시 그런 부모님의 영향으로 너무나 밝은 모습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
“..다음 뉴스입니다. 어제 xx시 xx동 4단 상가건물에 불이나 인근 주민들이 모두 대피하고..... 소방대원들이 출동하여.. 사망자는 없었으나...”
고등학생 시절 언젠가, 티비를 틀어놓은 채 등교할 준비를 하던 그의 눈에 거대하게 치솟는 불길이 보였다. 낡은 재래시장에, 개성이라곤 전혀 없어보이는 한 상가건물이 3층까지 붉은 화염에 휩싸여 모든 구멍으로 시커먼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울부짖는 상인들이 보였다. 경찰들의 제지를 받으면서도, 무너지고 있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려 하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그의 눈에, 주저앉아 타는 울음을 내뱉는 상인 아주머니의 모습에 자신의 어머니가 겹쳐졌다. 안된다고 안된다고 외치며 달려나가려는,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한 중년 아저씨의 모습은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일 수도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비약적인 생각이 들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사실 고민해봐도 아직까지도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때 그 순간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티비에 시선을 못박을수 밖에 없었다. 울부짖는 사람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듯한, 너무도 평범한 그 사람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채.. 절망하는 그 사람들.
그리고 그 앞에, 그들이 있었다. 그들이 싸우고 있었다.
18인치 고물 티비 안에서조차 너무도 거대하게 타올라, 가늠할 수 없는 거리를 넘어그를 움츠러들게 하는 무시무시한 불길. 그에 맞서 너무도 빈약해보이는 호스와 장난감같이 조그마한 관창으로, 용감하게 거대한 불길과 싸우고 있었다.
그 시커먼 연기 속에서, 그들은 울며 스러지는 작은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소방관들이었다.
화재 앞에 무너지고 있는 작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소박한 시민들의 행복을 위한.. 작지만 한없이 소중한 그 희망의 발판을, 그들이 지켜내려 애쓰고 있었다.
작은 사람들의 그 모든 것이 무너지려 하는 잔인한 재난의 현장에서, 소방관들은 시뻘건 불길 속에 타오르는 절망과, 새까만 연기에 뒤엉킨 사람들의 한숨.. 그 모든 안타까운 것들을 진압하려 최전선에서 있는 힘껏 맞서 싸우고 있었다.
영웅.
그는 그 순간, 가슴 속에 뜨거운 무엇인가가, 너무도 뚜렷이 각인되는 것을 느꼈다.
작고 어린 고등학생일 뿐이었던 그에게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그 순간은,
그렇게 너무도 우연히 찾아왔다. 그렇게 운명적으로, 그저 평범한 청소년일 뿐이었던 그의 가슴에 꿈이라는 것이 찾아들었다.
2011년 11월 21일 월요일 아침.
눈을 떴다. 따뜻한 이불 속에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힘겹게 일어나 기지개를 편다.
'오늘도 많이 추우려나...'
평년보다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던 11월이었지만,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길거리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두꺼운 겨울점퍼를 꺼내입은 사람들, 목도리를 둘러멘 사람들도 간간히 보인다. 손을 잡고 다니던 젊은 남녀들이 이젠 아주 품에 안고 다닌다. 왠지 모르게 더 추운 기분이다. 커피와 책을 좋아해 즐겨 찾는 집앞 카페엔 벌써부터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하더니, 이젠 캐롤마저 흘러나온다. 잘생긴 총각인 젊은 점장님께 괜히 한탄을 하고 싶어진다.
소방서 근처 그의 보금자리 옥탑방을 나와 마을버스를 타고 테크노마트 건너편에 위치한 수영장으로 향한다. 지난 주 주간근무 일주일 간 한 번도 가지 못했기에 야간근무인 2주 동안은 열심히 나가야지, 하고 다짐한다.
서울 광진소방서 119구조대의 막내, 소방사 오영환의 월요일 아침은 그렇게 시작된다.
작년 10월, 서울소방학교에 입교하여 9주간 신규임용자 훈련을 받고 일선 소방서로 발령받은 지 어느새 1년이 다되어간다. 특전사를 주축으로 한 특수부대 출신이 근간을 이루는 119구조대였지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던가. 의무소방 출신임에도 첫 발령부터 그토록 원하던 구조대원의 꿈을 이룬 그였다. 물론 특전사 출신 선배들에 비해 기술적인 부분이나 경험 면에서 부족한 면이 있을 수도 있었으나,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구조대원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요즘이다.
지난 주말에는 클라이밍센터 회원들과 함께 용인에 자리한 조비산에서 첫 암벽등반을 다녀왔다. 지난여름 충청소방학교 산악인명구조과정에 다녀온 뒤 암벽에 반했던 그는 클라이밍을 배워보려 했지만, 결국 몇 달이나 미뤄진 지금에야 우선 실내암장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하고선 푹 빠져버렸다. 산악전문가인 구조대 선배의 조언을 들어 내년에는 등산학교를 가볼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중이다.
서울로 상경한 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아주 오랜 시간, 소중히 키워온 마음 속의 소방사 계급장을 드디어 어깨에 달았건만 딱히 이루어놓은 일이 없다. 1년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버려, 초조한 마음에 상당히 심각하게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있다.
물론 그토록 간절한 꿈이었던 119구조대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것. 분명 그 하나만으로도 그에겐 더없이 큰 영광인 동시에 행복이었지만, 늘 마음이 너무나 앞서는 그이기 때문일까. 요즈음 새삼 진중하게 진로 설계에 한창이다.
간절했던 119구조대에 이어, 또 다른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우러러보던 중앙119구조단에 대한 동경이, 이젠 어떻게든 손을 뻗어 잡고 싶은 새로운 꿈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그에겐 그저 바라만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가장 큰 로망, 항공구조대.
중앙119구조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존경하는 대선배의 말씀을 들어 한 분야에 전문적인 실력을 갖추고 도전해야겠다 마음먹은 그는, 우선적으로 항공구조대에 필수자격인 1급 응급구조사에 목표를 두었다. 의무소방대원 시절, 존경하는 스승님과 구급대원으로 근무할 때 미약하나마 더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어 틈틈이 공부했던 순간들이 그에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기에 왠지 더 가슴이 부풀어오른다. 그 때, 그 순간들에.. 스승님의 오렌지색 기동복 어깨에 새겨져있던, 너무도 강렬했던 푸른 색의 생명의 별.
당장 내년은 힘들지라도, 입시준비를 해서라도 응급구조학과가 있는 인근 전문대에 다녀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응급구조사를 취득할 때까지 일선 구조대에서 근무하며 기본적인 경험과 든든한 실력을 쌓고, 시기에 맞춰 특수항공구조과정 교육을 받는다면 서울소방 항공구조대에 갈 수 있을거라 굳게 마음먹는다.
물론, 그도 이미 알고 있다. 구조특채가 아닌 이상 언제까지고 구조대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당장 대학 진학조차 확신할 수 없는 지금..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풀려나가지만은 않을거라는 사실.
우리 소방조직 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수없이 많은 변수와 뜻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만큼 걱정도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또한 알고 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노력하고 도전하고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멈춰서서 고민하기보다 한 발 앞서 노력하고 도전했기에, 흔들리지 않고 원하는 대로 소방서에 최단시간 내에 들어올 수 있었던 그였으므로.
전혀 다른 분야이긴 하지만 똑같이 크고 높은 꿈을 지니고 사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이우종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될 때까지 할꺼니까, 걱정같은 건 안 헌다."-라고.
아주 오래 전, 소방관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 이후로-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장소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로부터 크고 작은 영향을 꾸준히 받으며 살아왔지만,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한 그 꿈의 근원은 단 한 번도 침범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그는 생각한다.
너무 뚜렷하고 구체적이고, 또 너무나 현실적인 시선으로만 이 세상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이 세상의 소중한 것들은, 분명 많은 부분들이 추상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내가 하고 싶은 어떠한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기보단,반드시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반드시 이루고야 말거라 굳게 마음먹고, 그저 묵묵히 노력하는 편이 행복하다고. 그리고 또한, 그렇게 마음먹으면 반드시 이루어질거라고.그는 믿는다. 그리고 말한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자신은 앞으로 나아간다고.
분명, 나아갈 수 있다고.
다시.. 2007년 12월 14일, 부산소방본부 소회의실.
실내임에도 공기가 차갑다. 내 신상에 관한 사소하고도 형식적인 질문들이 날아든다.
내가 무슨 대답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진즉에 우황청심환이라도 하나 마셔둘걸 하고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나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첫 번째 계단, 의무소방대 선발을 위한 최종면접시간.
할 수 있다. 나는, 그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 수없이 되뇌었다. 수없이 그려왔다.
소방관이 된 나의 모습을. 소방관 오영환, 그 간절한 꿈을. 한없이 작기만 했던 나를, 이 세상 앞에 가장 당당하게 만들어주었던.. 나의 소중한 그 꿈.
그리고 그에 앞서,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나 당연히 짊어져야 하는 병역의 의무.
나는 그 귀하고도 신성한 의무를, 내가 꿈꾸는 그 곳에서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난 뒤 하늘이 내려준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거라 굳게 다짐했었다.
이제 코 앞이다. 정말,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쉰다.
..그 때, 시종일관 무관심한 표정이었던 오른쪽 면접관이 고개를 들어 차가운 목소리로 묻는다.
"그럼.. 1001번 지원자는 왜 소방관이 되고 싶었습니까?"
나는 떠올린다. 내가 소방관이 되고 싶었던 이유.
내 가슴 속에 그 자랑스런 꿈이 처음 자라나던 순간.
그 꿈을 소중히 키워온,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당당했던 그 시간들.
“..저희 부모님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에 대한 희망을 간직한 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웃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그 최소한의 발판을 지켜내는 이들이 소방관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소중한 그 모든 것들이 차마 감당키 힘든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것은 소방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깨달은 순간 이후로 저는, 소방관이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다. 다분히 추상적일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추상적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분명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 때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일선 소방서 최전선에서 근무하고 있는 오늘 이 순간에도, 나는 그 추상성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채 사고현장으로 출동한다.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며 우리의 손길을 절실히 기다리는, 그 수많은 사고현장으로..
소중한 이 도시를, 나아가 이 나라를, 그 안의 너무도 많은 사람들- 그들의 희망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내는 대한민국 소방관.
24세의 막내구조대원, 소방사 오영환은 오늘도 땀흘려 있는 힘껏 그렇게, 그 꿈을 이뤄내고 있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cadam&logNo=20144249259
의무소방대 화우회 사람들은 생명을 구하는 숭고한 소방정신을 기억하며 세상에 긍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데에 관심이 있습니다.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화우와 이야기하고, 친해지기를 원합니다. 화우회원들은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힘을 합해 그 꿈을 이루어나갑니다. 화우회는 이러한 다양한 분야에 있는 의무소방원 출신분들이 서로간의 존재를 인식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사람 중심의 커뮤니티를 만들고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