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쉬는 일요일에 달라스 시내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잠시 휴식도 할 겸 전시장 바깥으로 나오니, 가까이에 소몰이 조각상들이 있고, 그 뒤편 낮은 언덕을 평평하게 고른 자리에 공원묘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공원묘지엔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의 흔적들이 묘지와 묘비로 남아있었다.
120년 전쯤 영국에서 혹은 프랑스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와 서부 개척시대를 살다가 간 사람들의 자취에 이끌려 묘지들을 둘러보다가 한 묘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고 할로웨이 씨의 묘비엔 그분이 1849년 가을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903년 봄, 달라스 이 언덕에 묻혔노라고 적혀있었다.
다른 이들의 묘비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묘비였지만 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 것은 바로 그 아래 적혀있는 또 다른 내용 때문이었다.
고 할로웨이 씨의 딸, 앨리스...
1891년 여름에 태어나 그 해를 못 넘기고 크리스마스를 닷새 앞둔 날 세상을 떠난 그분의 딸 앨리스.
부녀는 그렇게 한자리에 묻혀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신대륙의 꿈을 품고 영국에서 건너와 이곳 텍사스 땅에 뿌리를 내리려 애쓰는 한 강인한 서부 사나이가 떠올랐다.
서부 영화에 나오는 멋진 건맨은 아니었고, 따가운 햇살에 흰 피부는 어느새 강건한 구릿빛, 눌러쓴 모자 아래엔 면도날 댄 지가 한참 오래 전인 거친 수염, 가죽 덧댄 바지를 입고 노을 지는 더 넓은 달라스의 서쪽 하늘을 바라보는 한 사나이가 떠올랐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느라 젊은 날 바삐 보내고, 늦은 나이 마흔둘에 얻은 딸.
울어도 예쁘고, 똥을 싸도 귀엽고, 잠이 들면 바로 천사가 되는 그 보석 같은 아이를 위해서라면 세상에서 못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그 아이. 앨리스...
척박한 땅에서 오다가다 만난 아내는 아이를 낳고는 떠나버렸고, 고 할로웨이 씨의 모든 삶의 이유는 그 아이 하나에게로 귀결되었다.
'너를 위해 살겠다.'
굳게 다문 입술은 앨리스를 볼 때만 활짝 열렸고, 굳은 팔뚝은 앨리스를 안을 때만 부드러워졌다.
그해 늦여름 허리케인이 지나간 뒤 풍토병이 돌았고, 가을 지나 이제 곧 겨울만 오면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거라 소망하고 또 소망했는데, 하늘은 무엇이 급해 그 어린 생명 거두어 가버렸을까.
짧은 부녀간의 인연이었지만 할로웨이 씨의 모든 행복의 시발점이 되었던 앨리스가 떠난 후의 삶은... 할로웨이 씨에겐 별 의미가 없었다. 그저 살아지니 살아냈을 뿐...
쉰넷, 앨래스가 떠난 지 열두 해가 다 되어가던 어느 봄날, 할로웨이 씨는 척박한 땅에서 보낸 거친 세월에 종지부를 찍었고, 그 임종의 순간에 곁을 지키던 친구의 손을 잡고 이렇게 부탁하였다.
"딸과 함께 묻어 주게."
...................................
그 후로도 나의 상념은 멈추질 않았고, 나는 한참을 그곳에 더 머물다가 자리를 떴다. 고 할로웨이 씨에게 마음 하나 전하며...
'100년이 넘는 세월을 격해 당신을 먼 이국땅에서 만났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딸을 제가 떠올린 모습으로 기억하고 잊지 않겠습니다.
어쩌면 제 꿈도 당신이 신대륙으로 건너오며 품었던 꿈과 같은 꿈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꿈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세요.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첫댓글 감동이네요 딸과 함께 묻고 너를 위해 살겠다 모든 인연이란 정해진 것일까요 생각하게 하네요
인연이야 그저 모를 뿐이지요.
살다가는 모습들이 참 애틋하고 사연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요즘 제가 드리는 기도 입니다.
더 많이 나누고
넘치는 사랑을 나누고
신께서 베푸시는 수많은
사랑만 나누고 살고 싶습니다.
아낌없이 나누고 살다가
내삶의 환희 정상에서
환하게 웃음 후후 날리면서
참사랑이었다고
고마웠다고
말하고 떠나고 싶습니다.
영원한 천국으로 입니다.
엄마가 웃으면
세상이 웃는다.
엄마여서 감사롭습니다.
엄마가 웃으면 세상이 웃는다~
세상을 일으키는 힘입니다.
이국 땅에 한자로 이름이 새겨진 비석 아랫쪽에는
40중반에 세상을 떠난 부인이 중국 무한대학 물리학 박사라 적혀있습니다
그 부인에게 곧 당신 곁에 함께 할것이라는 애틋한 기원을 남편이 새겼습니다
Godd night 00, I will be back
이 여인은 어쩌다 젊은 나이에 이국땅에 묻혔을까요?
마음자리님의 상념에
이곳에서 제가 겪었던 흔치않은 경험을 떠올리며 동참해 봅니다
아... 그런 묘비도 있군요.
주거지 가까운 곳곳에 공원묘지가 있어
삶과 죽음의 거리가 그렇게 먼 것처럼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여기는..
'누구와 어디 묻힌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과연 그런지, 역이민을 한 저를 돌아 봅니다.
누구와 어디에 묻히든...
그 진솔한 마음만 남겠지요.
마음이 울컥하네요.
딸과 함께 묻히고 싶은 아버지의 정.
저는 성주(마음자리 님은 지명을 아시겠지요.)에
있는 친정 선산 나무 밑에 뿌려 달라 합니다.
마음자리 님, 늘 좋은 날 되시고요~!!
성주... 참 아름다운 고장이지요.
많은 친구들이 성주에서 대구로 나와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저는 낙동강변 다사로 가는 길풍경이 좋아, 친구들과 다사강변을 자주 찾곤했습니다. 강 건너 성주 가 보이던 곳이었지요.
@마음자리 지금은 다사도 많이 변했나 보더라고요.
옛날에 강창나루 건너면 다사가 보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대구에서 고향에 가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보기 위해서
혼자서 강가를 향해 뛰어가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태어난 곳을 떠날 때 맘은,
원대한 꿈이라든지
포부를 품고
먼 타국 땅을 밟아겠지요.
어디에서 살던 사람은
가족을 이루며 둥지를 만들고
살아가는 것이 본능입니다.
엘리스를 잃고 얼마나 방황을 했을까요,
척박한 땅에서라도 살아가는 힘은
가족이 있기 때문이지요.
어디에서 살든
삶은 가족을 이루고 함께 행복한 것이
제일인 것 같아요.
글 잘 읽었습니다.
어린 딸을 떠나보낸 아빠의 사랑과 아픔이
척박한 땅 달라스와 함께 대비되어 느껴지더라구요.
늦은 나이에 얻은 귀한 딸을
너무나 일찍 보내고
열두 해 동안
가슴이 얼마나 까맣게 탔을까요.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사실 지금 여행중 숙소에서
잠시 들렀다 나갑니다.
그 아빠의 회한이 공감되며 깊이
느껴지더라구요...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느다는 글이 생각나는군요.
아빠의 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절절하였을까요?
그리고 딸의 죽음에 얼마나 애절하였을까요?
모두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그 묘비명을 보는 순간, 머리 속이 멍해지며 그런 영화같은 장면들이 떠올랐어요.
아무 연고도 없는 묘비 앞에서
상념에 젖어 상상의 날개를 펴는
마음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천생 글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ㅎ
건필 유지하시고 즐겁게 지내세요.
연고는 없었지만 묘한 끌림은 있었답니다. ㅎ
단명 가족이네요.
시절 치고도 일찍 가 버려
더 안타깝습니다.
마음자리님의
애틋하고 아름다운 상상 속으로
저도 잠시 들어가 봤습니다.
마음자리님의 기원이 모두
이루어지길 저도 빕니다.
그 당시엔 많이들 단명했지요.
머리 속에 별도의 상상 공간이 있나 봅니다. ㅎ
단지 부녀가 합장한 묘비명을 보며
험란한 이민사를 단편으로 만들어내는
맘 자리님은 천상 작가같아요.^^
타고난 재주를 꽃 피우지 못해
못내 아쉽기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꿈은 이루어질 것같아요.
왜냐면요 꿈이 있기때문에 이렇게
가슴 뭉글한 글도 쓸수 있으니까요.
ㅎㅎ 이 정도면 재 재주 넘치게 피운겁니다.
꿈은 젊다고 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구나 언제든 품을.수 있으니까요. 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메리카에서도 배울 점은 많습니다. 어디에 살든 다 정붙이기 나름이지요. ㅎ
읽다보니 눈물이 납니다
제게도 하나뿐인 제딸이 인생의 전부이기에
오래오래 그애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데
어린딸을 앞세웠으니 얼마나 비통했을까요
두부녀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