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에는 자아방종의 넓은 길과 자아희생의 좁은 길 즉 두 길이 있다.
자연 법칙 순종
자연법칙(自然法則)은 하나님의 법칙이므로 이 법칙들을, 자세히 연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우리 몸에 관계된 자연법칙의, 요구[청구]를 잘 연구하여, 그 법칙을 따라야 한다. 이 방면[분야]에서의 무지는 죄다.(6T 369.1)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5,19,20).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께서 사신[십자가의 보혈] 소유물이다. 우리 마음대로 몸을 사용할 자유가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해 왔다. 몸의 법칙을 어겨도 벌이 없는 듯이, 몸을 마구 다루었다. 부패한 입맛을 통하여 그 기관과 힘은 연약해지고, 병들고 불구[장애인]가 되었다.
사단의 그럴듯한 유혹에 의해 생긴 이 결과들을 사단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데 사용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소유물로 사신 인간의 몸을 하나님께 제시한다. 인간은 그의 조물주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형편이 아닌가! 인간이 자기 몸에 죄를 짓고, 그 길을 부패케 함으로 하나님은 욕을 당하신다.(6T 369.2)
사람들이 참으로 회심[회개로 순종]하면, 그들은 그들의 신체 속에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칙을, 양심껏 지키며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 연약함을 피하고자 할 것이다. 이 법칙들을 순종하는 것은, 개인적인 의무로 인식되어야 한다. 우리는 법칙을 범함으로 받는 해를, 스스로 당하고 만다. 우리는 우리의 습관과 버릇에 관하여, 하나님의 추궁[따져 물으심]에 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세상이 무엇이라 말할까?”가 아니다.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이 몸을 어떻게 관리할까? 내 몸을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 생각하고,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노력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사상과 행습에 내 자신을 희생시킬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6T 369.3)
건강한 삶은, 가정의 중요한 관심이 되어야 한다. 부모들은,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잘 알아야 한다. 부모들은 건강개혁의 원칙을 연구하고 자녀들에게, 극기의 길이 유일의 안전한 길임을 가르쳐야 한다. 세계 거민의 다수가 신체적 법칙을 무시함으로, 자제력을 파괴하고 영원한 것들을 이해하는 데, 스스로를 부적합하게 한다.
자기 몸의 구조를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그들은 자녀들을 자아 방종의 길로 접어들게 하며, 자녀들이 자연법칙을 범한 벌을 받도록 준비시킨다. 이것은 그들 가족들의 복지에 관하여, 현명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는 것이다.(6T 370.1)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분이 우리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해 주시는 것에 대해 여호와께 감사하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 2).(2SAT 285.5)
그대들 각자 앞에는, 기쁨과 십자가가 놓여 있다. 그대는 십자가를 지기에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그러나 그대 앞에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작은 구름[사소한 범죄 행동]이 그대의 마음 앞을 지나간다고, 하나님께서 그대를 버리셨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성경”을 들고 ‘시편’의 말씀으로 돌아가 언제나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가를 읽어라.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경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시34:1). 하나님은 자비가 충만하시다. 그분이 그대에게 원하시는 모든 것은, 그대의 마음의 문을 열고 그분을 안으로 들어오시게 하여, 그대의 마음과 심령을 성화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다.(2SAT 285.6)
어느 길로 선택하여야 영생복락과 영멸의 소멸인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이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14.)(OHC 8.1) 그대의 앞에는 자아방종의 넓은 길과 자아희생의 좁은 길 즉, 두 길이 있다.
넓은 길에서는 그대는 이기심과 교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좁은 길에서는 모든 무거운 짐과, 범하기 쉬운 죄악들은 벗어버려야 한다. 영원한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과 영광과 불멸로 인도하는 길, 이것들 중에 어느 길을 그대는 택하였는가?(OHC 8.2)
세상 역사 가운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때보다 더욱 엄숙한 시기는 없었다. 우리의 영원한 관심은, 위기에 처하여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어나서 우리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선택은 확실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관심을, 다만 있을 법한 곳에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들은 반드시 정착하여야 한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한 순간이라도, 계획 없이 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영원이란 것은, 나에게 어떤 것인가? 각자는 스스로 물어 볼 것이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길인가? 혹은 멸망으로, 이끄는 길인가?”(OHC 8.3) 우리들은 우리가 가야할 길은, 곧고 좁은 길임을 안다. 우리는 다 같이 이 길로 행하자.
그리스도인 생애를 성공적으로 살아갈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탁월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만이, 무엇이 진실 된 생애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참된 종교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그들은 그들의 감화와 재물과 재능의 달란트를, 헌신의 제단에 가져오며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분의 뜻을 행하며 알기를 구한다. 그들은 그들이 반드시 가야 할 길을 아는데, 그 길은 좁고도 궁핍한 길이며 그들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에 매혹적인 유혹들을 대항해야 할 많은 시험과, 장애들을 만나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분별하며, 그들의 주요 구속자이신 예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향상과 전진의 길로 간다. 그들은, 하늘로 인도하는 왕의 길을 택할 것이다.(OHC 8.4)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두르심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많은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시32:10) (OHC 9.1) 우리는 자주 하나님을 봉사하는 이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련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저들을 위하여 지정된 길은, 울퉁불퉁한 길이다.... 그러면 죄인들은 이 세상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으로서 그칠 것인가? 아! 저들에게는, 참으로 무서운 날이 이를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만,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OHC 9.2) 악인들은, 실망과 고통과 빈곤과 재난에서 자유를 누리는가? 저들 중 많은 사람은 불치의 병으로 고통을 당하나, 저들이 의뢰할 강하신 분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저들의 연약한 것을, 붙들어주실 분으로부터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저들은, 저들 자신의 힘에만 의존한다. 저들은 장대[‘모세’의 놋 뱀 장대]를 바라다 볼 때, 아무 위안도 못 받는다. 저들은 오히려 불안과, 두려움에 싸인다. 저들의 앞에는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뿐, 부활의 아침의 기쁨을 기대할 수 없다. 그 까닭은 저들에게는 첫째 부활에, 참석할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OHC 9.3)
그리스도인들도, 병마와 시련과 낙심과 빈곤을 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 중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들은 그분의 뜻 행하기를 선택하며 그분이 시인하시는 것처럼, 그렇게도 높고도 고상하게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시련의 투쟁 속에서도 이 생의 변화되는 장면에, 모든 것을 아시는 한 분이 계시다는 것을 그는 아는데, 그분은 슬픔과 낙망 중에 부르짖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모든 슬픔을 위로하시고 동정하시는 한분, 모든 이의 심령이 터질 듯 한 고통도 위로하시는 분이다.... (OHC 9.4)
이 모든 고통 중에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강하신 위로자가 계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그가 죽음의 눈을 감기 전에, 괴로운 질병으로 오래 고통을 당할지라도, 그는 이것을 기쁨으로 감당한다.... 그는 하늘의 만족함으로, 장래를 바라본다.
무덤에서 잠깐 쉴 것이며 생명을 주시는 분에 의하며, 무덤의 속박을 깨뜨리시고 포로에서 해방시키고, 흙무덤에서 불멸을 주시고 결코 슬픔과 죽음의 고통이, 더 이상 없게 됨을 안다. 아! 이 어떠한 그리스도인의 소망인가! 이 소망을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품자. 이것이 그대의 것이 되게 하라.(OHC 9.5)
우리에게 허락된 축복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시31:19)(OHC 10.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여행을 명랑하게 하고, 그를 사랑하고 그를 찬양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앞길에 많은 축복들을 허락하여 주셨다. 그리고 그는 우리들이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들은 시온의 노래를 노래할 수 있고,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다. 즉 희망을 굳게 잡을 수 있으며, 어두움을 빛으로 변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흑암의 세계 가운데 남겨 두지 않으셨다. 우리의 앞길에는 아름다운 꽃밭들로, 장식되어 있을 것이 약속되어 있다. 이 꽃들은 어디든지 있으며, 풍부한 향기를 발할 것이다.(OHC 10.2)
우리들의 매일 받는 축복을 그대로 넘겨 버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가지고자 함으로써 우리는, 얼마나 많은 축복들을 잃어버리는가! 일반적으로 받는 축복[항상 주시는 영육 충만]은, 축복으로 생각지 않고 지나친다. 우리는 자연 가운데서 보잘 것 없는, 하나님의 사물들로부터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그늘지고 보잘 것 없는 장소에 핀 꽃도 빛의 광선을, 모두 받을 수 있음을 응답하며 잎을 낸다.
태양 없는 집 속의 감옥 같은 새장 안에 새도, 양지에서 사는 것처럼 당당하게 노래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축복들을 사용할 때, 지혜 있고 알뜰하게 쓸 것인지 아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남용하도록 주시지는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부터 평화와 희망과 위로를 수집하기 위하여, 그분의 약속의 말씀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자들, 감사하는 심령을 사랑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직 그분의 사랑의 더욱 깊음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것이다(OHC 10.3)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우리 마음과 입술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이것이 무익한 대화나 게으름에 대한 방종의 유혹을,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OHC 10.4)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늘이 있음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하고 바라보도록 하신다.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들을 산 믿음으로 붙잡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감사하도록 하자.(OHC 10.5)
피하기 어려움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나이다.”(렘10:23)(OHC 11.1) 경험이 없는 여행자들에게 항상 위험한, ‘나이즈 캐년’을 통하는 길은 장마철에는 통과할 수 없는 길이다. 우리는 이 곳을 통과할 때, 한 안내자에 대하여 대단히 감사하였다.
나는 좌우 쪽을 볼 수 없었으나 그는 줄을 꼭 붙들고, 나의 탄 말은 그를 따라서 그 좁은 길을 지나갔다. 나는 우리 인도자를 따랐다. 이곳에서 부주의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만일 우리의 탄 말이 오른 쪽으로 한발 헛디딘다면, 우리는 골짜기로 떨어졌을 것이다.(OHC 11.2)
우리는 이 길을, 거의 숨도 못 쉬고 따라갔다. 나는 이 위험한 길을 가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경험으로 예증[하나의 비유로 증명]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였다. 우리는 위태한 날을 향하여, 인생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크신 인도자를 따르고 있는지 분명히 하기 위하여, 매 발걸음마다 주의 깊게 파수하는 것이 요구된다. 무신론과 방탕, 범죄가 사면팔방[세상전체]에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자제의 고삐를 쉽게 풀어 버리게 하며, 분명하게 멸망의 절벽으로 던져 버린다.(OHC 11.3)
무한한 사랑은 주님의 대속하심을 통하여, 이 땅에서 하늘로 가는 길을 만들어 놓으셨다. 그 길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정로에서 벗어나는 발걸음을, 지시하여 주도록 보냄을 받는다. 하늘의 영광스러운 사닥다리가, 모든 사람의 앞길에 놓여 있으며, 악습과 어리석음의 자신의 길을 금하도록 해준다. 그는 죄의 생애로 나가기 전에,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를 짓밟는다....
겸손하고 신뢰하는 자들은, 평화의 길로 가도록 보호되며 인도될 것이다. 그러나 무한하신 지혜자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강제로 가장 귀중한 하늘의 선물을 받으라고 하지 않으시며, 어느 누구에게도 무한한 값을 치루신 길로, 걷도록 강제하지 않으신다. 모든 사람들은 하늘로 인도하는 좁고도 빛나는 절벽 길을, 가든지 종말은 죽음인 넓고도 쉬운 길을 가든지, 자신들이 택하도록[자유의지] 허락되었다.(OHC 11.4)
사랑은 화목케 하는 다리를 놓음
형제자매들이여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의 매일의 생애에 들어오실 산 구주이시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신다. 우리가 이것을 하지 않으면 영생에 우리는, 그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누가 그리스도를 자신의, 실제적인 생애에 모셔 오는가? 그분께서는 말씀하신다. 전파된 말씀이 믿음으로 수반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히4:2 참조).(2SAT 51.1)
내가 그대들에게 준 말씀이 이것이다.(2SAT 51.2) 자,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에 정통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마음이 덜 중요한 것에 빼앗기고, 이 세상의 사업에 몰두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에 관하여, 알기 위해 연구하지 않을 것인가?
그대들이 왕들 앞에 서야 할 때가 바로 우리 앞에 있으며, 배운 자들에 의해 비평받을 때와 그대들 안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대야 할 때가 바로 우리 앞에 있다. 그대들의 소망의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 우리는 아버지가 지켰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킨다고, 어떤 이들이 말한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왜 그대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을, 지키는지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대들은 왜 그것을 지키는지,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대들은 발을 토대 위에 내릴 수 있으며, 그대들은 믿음의 모든 원칙들을 이해할 수 있고, 두려움과 온유함으로 그대들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 분별 있게 이유를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2SAT 51.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몸을 싸서 우리의 믿음과 신뢰가, 다른 이들에게 그대들이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행하며, 예수님의 영[성령]이 그대들의 심령 안에서 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겸손과 온유함과 영의 부서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을 원한다. 이렇게 해서 그대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갖게 될 것이며, 우리 사업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두 감싸지며 빛을 비취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일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일꾼들은 너무 자주 어떤 사람이 선교사업을 함에 있어서, 큰 희생을 하는 것처럼 일하며 그들이 예수님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한 영혼이 회심할 때, 우리는 절반도 충분히 기뻐하지 않는다.
한 영혼의 회심을 위해, 그 영혼이 하늘과 산 연결이 되었을 때, 그대들은 얼마나 많은 감사를 하늘로 보내고 있는가? 형제자매들이여 이제 나는 그대들에게, 자신들의 위치에서 잠들지 말기를 간청한다. 그대들은 적합한, 그리스도의 종인 것을 기억하라. 그대들은 시기와 악한 추측과 질투와, 이 모든 것으로 가득 차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2SAT 51.4)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마땅히 대접받아야 할 만큼 대접받지 못하면,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적절한 경로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자, 나는 더 이상 일하지 않을 것이며 내 의무를, 당분간 벗어 놓아야 하겠다.
하나님은 그대들의, 아버지가 아니신가? 그리고 그대들은, 그분을 섬기지 않는가? 우리는 번창할 때와 같이 실망 중에서도, 그분을 섬겨야 하지 않는가? 만일 우리가 시선을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도록 한다면, 우리는 어둠과 슬픔의 이런 날들에 고통당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희생 안에서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드리워 진, 그분의 의의 광선 중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희생에 우리의 눈을 고정시켜야 하며, 그렇게 할 때에 그분의 손은 그분과 우리 사이에 오는, 구름[죄악의 먹구름]을 흩어 버리실 것이다. 우리는 이 사소한 시련들로 넘어져서는 안 되며,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 위를 바라보라! 위를 쳐다보라! 우리는 아래를 내려다봄으로, 어떤 용기나 힘을 얻을 수 없다.(2SAT 52.1)
지금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때인 것을 기억하라.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교류했기 때문에 하늘로 올라갔다. 우리가 종말의 때로 다가갈수록, ‘에녹’이 한 것처럼 하나님과 함께 교류해야 한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오른편에 계심을 알아야 하며, 그분이 나의 사상을 아시고 우리가 사업에, 충성하고 참된지를 그분이 아심을 깨달아야 한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아신다.
우리는 한 증인이 계심을 알아야 하고, 사랑하시는 관찰자가 계심을 알아야 하며, 우리의 동기를 아시고 우리의 삶의 방식이 거룩한지를 아시는 한 분이 계심을 알아야 하며, 우리가 정결하고 그리스도의 의인 흰 세마포를 위해, 준비되었는지를 아시는 한 분이 계심을 알아야 한다. 그분은 그것이 나에게 입혀졌는지를 아시며, 영광의 왕국에서 거룩한 천사들의 무리와 내가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아신다.(2SAT 52.2)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 그렇다, 모든 사람이 이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든 사람들이, 그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공언하는가? 아니다,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비신자들보다 더 나쁜 상황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이해하지만, 자신들을 세상의 빛으로 세우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모본으로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예모를 나타내야 하며, 혹평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 항상 이끌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의 사업이다. 사업에서 불법을 제거해야 하며, 우리의 옷을 어린양의 피로 씻어야 한다. 우리는 세탁하고 다리는 시간에 있다.
지금 우리는 모든 죄와 불법을 우리에게서 제거해야 하며, 혼인 예복인 흰 세마포를 입어야 한다. (2SAT 52.3) 아,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그분의 은혜의 산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나의 심령은 그분에 목말라 있다. 나는 그분을 내 가정에 모시기를 원한다. 나는 이웃에게 그분을 말하기를 원한다. 나는 그분을 슬픔의 사람 질고를 아는 분으로, ‘갈바리’의 사람으로 내 이웃 앞에 높이기를 원한다. (2SAT 53.1)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낙망해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예수님을 알기를 열망해야 한다. 그분은 그대들의 마음의 문 앞에 서 계시며,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고 말씀하신다. 자, 문제는 무엇인가? 그대들이 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다. 그대들은 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아마도 그대는 제거해야 할 자아방종의 죄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제거해야 할 어떤 지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지체를 가지고 멸망하는 것보다, 불구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대 심판이 있을 것이며, 장차 어느 정도 진행될 것이다.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성전과 거기에서 예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
그대들이 자신들의 사업으로 거리를 걷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척량하고 계심을 기억하라. 그대들이 가정의 의무를 행하고 있을 때, 대화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을 척량하고 계신다. 미술가에 의해 얼굴이 반짝이는 판에 재생되듯이 그대들의 말과 행동이, 하늘에 있는 책에 사진 찍히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2SAT 53.2)
진리에서 떠나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취한 길이, 증언들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든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우상을 버릴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그릇된 방종의 길을 계속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이 좋아하는 바로 그것을 견책하기 위하여, 주신 빛을 거절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들에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내가 자아를 부인하고 나의 죄를 견책하기 위하여 주신 증언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 증언들이 나의 죄를 책망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거절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2TT 289.2)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 그대들의 앞에는 “성경”의 귀한 약속들이 있거늘, 어찌 의심을 품을 수 있겠는가? 그 불쌍한 죄인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갈망하고 그 죄를 버리려고, 원하는데 주께서 통회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발 앞에 나오는 자를, 엄히 물리치시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생각은 단연 버리라! 우리 하늘 아버지에 대하여 이러한 생각을 가지는 것보다, 더 그대들의 신념을 손상시키는 것은 없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나 죄인은 사랑하신다. 그대들이 하나님의 허락들을 읽을 때에 그것들이 말로 할 수 없는, 사랑과 긍휼을 표시한 것임을 기억하라. 무한하신 사랑의 하나님의 마음은 죄인을, 무궁한 자애(慈愛:자비와 사랑)로 생각하신다. 그는 그분의 도덕적 형상을, 사람들에게서 회복시키기를 원하신다. 그대들이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그에게로 가까이 나아갈 때에, 그는 자비와 용서로 그대들을 가까이 하실 것이다.(AG 82.4)
하늘을 향하여 - 나는 모든 교회신자들이 지금 하늘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 곧 성령을 구하기를 원하는 바이다. 만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성령]을 많이 구하면, 그대는 계속해서 그것을 호흡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매일 신선한 공급을 받을 것이다.
매일의 경험은 하나님의 품성하신 사랑으로, 더욱 풍부하게 될 것이다. 그대 앞에는 진리의 광활한 터, 곧 권능의 광대한 근원이 놓여 있다. “그분께서 택하신 모든 것을 취해 가시되, 성령만은 남겨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매일 드리도록 하라. 우리는 성령의 선물을 받아야 한다.(UL 1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