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개숙인 남자들... / 민달팽이 "

[민달팽이]

                                                     ♬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Gtr inst)


돌아오는 길에 시부야 거리를 걸어본다. 
멍한 눈길로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패션의 거리답게 다들 화사한 차림새지만, 
정말 근사한 사람은 몇몇뿐이다.

거의가 평범하고, 
그 중 20퍼센트 정도는 경치를 망치는 불순물들이다. 
그것은 단순히 미추의 문제가 아니다. 
그 존재 자체에서 풍겨나는 맛이라곤 도무지 없다.
물론 나 역시 그들 눈에는 그렇게 비치겠지.

그런데 정작 이 사람들은 뭘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뭔가를 달성하지도 못했고 남한테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보지도 못한 사람들..
타고난 재능도 없고 그렇다고 용모도 받쳐주지 않고
특별히 뭐 하나 자랑할 거라곤 없는 사람들..

그런데도 인생은 계속되지 않는가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살고 있을까..
여기저기서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마치 거리 전체가 억지로 즐거움을 가장한 채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오쿠다 히데오 / 라라피포




퇴근 시간..

사무실을 나서 2층 주자장을 지나 다시 3층 계단을 통해 매장동으로 건너갔다.

늘상 습관처럼 그렇게 매장 한바퀴를 살펴보고는 마트를 나서곤 한다.

목요일 저녁시간이라 그렇게 사람이 붐비지는 않는다.

이미 추석 전부터 바닥까지 떨어진 매출이 뚜렷한 어떤 동기가 없이는

어느날 갑자기 다시 예전처럼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각종 메스컴에선 경기지표가 좋아졌니.. 소비지수가 올라갔느니 하지만..

다른 형태의(가령 맞벌이로 바쁜 젊은층들을 겨냥한 인터넷 쇼핑몰 같은) 마케팅 기법과

무엇보다도 신종플루의 영향이 매우 클 것이었다.

더더구나 전국에서 가장 감염율이 높아 휴업한 학교수도 제일 많은 대전이고보니

도시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급이 결코 적지는 않을 것이었다.


3층에서 2층을 돌아 마지막으로 1층 매장을 거의 다 살피고 나갈 즈음..

농수산 코너에서 열심히 걸레(마포)질을 하는 'S'선생님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입사한지 며칠되지 않는 분이셨다.

그는 내가 가까이 다가간 것도 모르는체 바닥에 쓸어모은 온갖 지저분한 이물질들을

호주머니에 각자 넣어다니는 작고 책받침 같은 얇은 플라스틱판위에 주워 담고 있었다.

이제 출근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자루걸레(마포)가 새카맣다.


"선생님.. 걸레가 조금 더럽네요.. 걸레도 빨 겸 잠시 바깥공기를 좀 쐬고 오시죠.

 아니면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오시든지(면접볼 때 그는 아직도 담배를 못 끊었노라고 했었다)"


"네.. 안그래도 지금 막 걸레를 빨려고 나갈려던 참입니다"


그는 순순히 고개를 숙여 대답을 하면서 무척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갑자기 마음이 짠~해 진다.

그리고 막 돌아서는데 바로 뒷 편에서 역시 입사한지 보름도 채 안된 'L' 선생님이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살피면서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어깨죽지를 가만히 잡아주며 내가 말한다.


"어렵고, 힘드시더라도 꼭 잘 참아내셔야 합니다.. 아셨죠..??"


그도 수줍고 민망스런 얼굴로 순순하게 답한다.


"네.. 그렇잖아도 소장님이 처음 입사할 때 해주시던 말씀 명심하면서

 어떻게든 꿋꿋하게 참고 견뎌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며칠 사이를 두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입사를 한 두사람 모두..

아직 이 바닥에선 보기 그리 흔치않은 정규대학 출신이다.

출신 대학도 그저 별 볼일 없는.. 꼭 그런 곳도 아니었다.

그들도 대부분의 이런 일을 하는 사람(특히 남자)들 처럼 사연이 있었다.

젊은 시절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다가 중년 무렵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든지.. 아니면 운이 따라주지 않았든지..

그도 아니면 본인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결국은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고, 가정은 몰락하고,

가족들과 뿔뿔히 흩어지거나 또는 아내와 자식들 곁을 떠나 혼자서 객지를 떠돌고

보증금없는 변두리 월셋방을(심지어는 고시원 같은 곳도) 전전하며..

어떻게든 살아볼려고 몸부림치는.. 바로 나같은 사람들이다.


나는 면접 볼 때 항상 그런 점을 미리 못 박아 둔다.

우리가 하는 일은 육신이 아주 힘들고(무거운 것을 들거나 하는)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단지 마음이 무척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속된 말로.. 정말 '쪽'팔리는.. 그런 일이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비록 이런 일이라도 꼭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하면서 찾아오지만

막상 자루걸레(마포)를 들고 매장으로 들어가 오가는 수많은 고객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부딪치고 피해가면서 그네들이 버리고, 뱉고, 내던지고..

심지어는 싼 것까지 줍고, 쓸어 모으고, 닦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전혀 낯선 사람과도 눈길이 마주치면 괜히 마음이 오그라드는데

어쩌다가 재수없게도 잘 아는 사람과 맞부닥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쥐구멍이라도 찾거나 차라리 죽고 싶을만큼 비참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그런 과정을 참고 이겨내야만 한다.

여기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가 처음 그런 일들을 자신과의 싸움으로 극복한 사람들이다.

이 곳에서 진다면..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릎을 끓는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갈 곳은 없다.

왜냐하면 이 곳은.. 예전에 우리가 말하던.. 탄광의 막장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사업에 실패하면 세가지의 길 밖에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죽든지.. 구차하게 노숙자로 전락하든지..

(아니면 평생 주위 사람들에게 빈대붙어 양아치처럼 살든지)

어떻게든 개처럼 세상 가장 밑바닥을 기어서라도 다시 살아남든지......


그네들을 뒤로 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가슴이 아파왔다.


"에이~ 엿같은 세상!"


예전 같으면 그정도 경력과 학력 내지는 실력이라면

아직도 어느 공장에서 공장장을 하거나.. 영업 담당 상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위치의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었다.(다소 내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하지만 나이 오십이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낡고 한물 건너간 그런 류의 기술 밖에 몰라서..

(그런 공장들은 벌써 없어지거나 중국 아니면 북한 개성공단 등지로 떠나 버려서)

그래서 세상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아이들이 아르바이트할 때나 받는

국가가 정한 최저임금을 받으면 남들이 안하려는 더럽고, 궂고, 힘든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현실이 아직도 꿈처럼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우리도.. 나도.. 아직 충분히 책임감있고.. 중요한 일을 맡아서 거뜬히 해낼 수 있는데..." 싶었다.


마침 농산에 일하는 청과 담당 직원이 스쳐지나가는 투로..


"소장님 사과 좀 팔아 주세요!" 한다.


매장에 손님이 없으니 미처 팔지 못한 상품이 유통기간(과일류는 전시기한)을 넘겨

자칫하면 모조리 폐기처분되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위기에 처해 있을 것이었다.

한봉지 3,850원하던 사과를 2,000원씩에 열봉지를 샀다.

그정도면 한 사람당 두어 개 이상 돌아갈 수 있는 숫자였다.

다섯봉지는 야간에 먹고 나머지 다섯봉지는 남겨뒀다가 내일 주간에 먹도록 하라고 하고는

어둠이 짙어진 거리로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내가 그네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고작 그정도밖에 안된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더 슬프게 했고

고개를 푹 숙인채 바닥을 닦고 있던 그네들의 모습이 눈 앞에 자꾸만 어련거려..

눈빛이 흐릿해지면서 자꾸만 이빨이 악물어졌다.

생각없는 어떤 여자가 하던 말이 내 가슴에 천 근 같은 돌이 되어 올라 앉아 있었다.


"집에서 안쫓겨 나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니기미.. 언제부터 세상이 그렇게 변해 있었든가..??'


평생을 가족들 위해 허리 굽도록 일하다가 말년에 사업에 실패하고

더 이상 돈을 많이.. 듬뿍 벌어다 주지 못하면.. 그런 푸대접을 받아야만 하는 가..??

평생을 사랑하고 아껴왔던 여편네에겐 자식은 커녕 애완견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고

애지중지 키웠던 자식들에겐 동네 아저씨같은 취급을 받고.. 

마치 돈버는 기계가 오래 되서 낡고 고장나..

더 이상 써먹을 수 없는 고물이 되어버린 것 같은 존재로 쇠락하는 것이 남자의 운명이란 말인가..??


그래.. 좋다!

시대가 변해서 '삼강오륜'은 이젠 말도 안되는 전설이 되어 버렸고..

'남존여비(男尊女卑)'는 커녕 아에 '여존남비(女尊男卑)'라도 괜찮다.

예전.. 그네들의 힘으로 먹고, 입고, 공부하고, 쓰고, 편히 자던 생각을 해서라도..

최소한의 인격적인 대우는 해줘야만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는 누군가인지에게 모를 격심한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기어이.. 죽도록 아파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