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엠립(Seamleap)을 떠나는 날 아침.
예약된 교통편의 픽업을 기다리
는 동안 우리는 느긋하고 여유있
게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비수기라 투숙객이 많지 않았던 탓에 금방 얼굴을 익힌 호텔의 스
탭들과 함께 행복했던 3박 4일의 시간들을 반추하면서...
우기라고는 했지만 4일 내내 시
원한 열대의 소낙비 한번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재랄맞게 헉헉
대던 폭염의 추억만 담고 떠나던 날, 쏟아지는 그 아침의 뜨거운 햇살에도 우리는 아랑곳 않는 밝
은 미소를 주고 받으며 기꺼운 마
음으로 별리(別離)의 정을 나누
었다.
머무는 동안 마주치는 내내 깊고 초롱한 눈매 가득 그윽한 미소로 화답해 주던 크메르 여인은 아쉬
운 이별에 더한 안타까운 석별의 정을 담아 떠나는 우덜의 가슴에 뿅뿅뿅 하트를 날리고 또 날렸
다. 고맙고 감사한 행복했던 시간들...
번역기를 돌려가며 서빙을 도와
주던 수줍은 크메르 아가씨의 상
냥한 미소와 행운의 2달러 지폐
에 골든벨을 울린 것 같은 환호로 화답하며활기넘치던 바베큐샵은 떠나온 뒤에도 돌아보고 또 돌아
보게 만드는 아슴아슴한 추억으
로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몸도 마음도 꾸밈없이 가볍게 떠난 여행의 작은 배낭은 속이 비좁도록 담고 싶은것도 많았
지만 버리기가 아까운 남겨야 할 것들로 차고도 넘친다.
만나고 떠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여행은 길 동무 인생은 새옹지
마(塞翁之馬) 만남도 떠남도 언
제나 자유스런 우리는 자유인, 자유인의 즐겁고 행복한 추억의 여행 길.
20년 전 혼자 이곳을 찾아와 5박 6일을 머물고 떠나면서는 친구가 아니었다면 이곳에 다시 올 생각
은 꿈에도 못했을텐데. 다시 또 세월이 흐른 뒤에도 지금처럼 기꺼이 헌신하고 베풀며 동행해 준 친구의 덕(德)을 보게 될까나
...?
그때는 몰랐던 소중한 청춘과 아
름다운 여행의 나날들.
20년의 시차를 되돌아 보게되는 프놈펜 가는 길 주변 마을들은 나무 말뚝에 중간층을 만들어 올
린 수상 가옥에 진배없던 허름한 그 시절 그 모습이 정돈되고 세련
된 떼깔난 모습으로 변모해 있었
다.
시야가 확 트인 길 군데군데 신호
등 없는 교차로를 지나치지만 도
로 위를 달리는 많지 않은 차량들
은 막힘이 없는 순탄 대로를 거침
이 없이 달리고 또 달린다.
추월 해 지나가는 차량도 없지는 않았지만 차도 사람도 드문드문
한 시골길을 앞만 보고 내달리는 미니밴은 사위 온 날 처갓집 수탉 같이 꽁무늬에 불이 붙어 혼비백
산(魂飛魄散) 달음질 치는 사당
동이나 영등포에서 늦은 시간에 수원이나 안산 인천으로 내달리
던 왕년에 총알 택시는 명함도 못 내밀 속도다.
썬팅된 창유리로 햇볕이 차단된 차안의 어둠은 생각지도 않은 작
은 소동으로 쓴 웃음을 짓게한다. 껍질 채 포장된 피스타치오
(pistachio/캘리포니아산 구운 견과류의 일종)를 심심풀이 간식
으로 먹다 앂힐 일 없는 그 절대 식감(?)에 투덜대던 친구가 껍질
은 버리고 속에 든 콩만 먹는걸 알고 나서는 무식과 상식의 한계
치를 확인하며 쓴 웃음을 나누었
다. 먹거리가 귀하던 그 시절 우
렁쉥이 꼭지살을 껍질까지 앂어 먹던 추억. 억지웃음 쓴웃음이 미
소가 되고 폭소가 되어 썩소(?)로 마무리 되는 흔치않은 경험.
중간 기착지인 간이 휴게소를 찾
아든 점심 식사시간. 가짓수가 많지않은 뷔페식 상차림으로 '잘알못' 낯선 메뉴는 패쓰하며 지나쳤지만 헛헛해진 뱃구레에 회가 동한 식욕은 쌀밥에 간장
으로 졸임한 돼지고기 만으로도 소박하고 푸짐한 왕후장상 진수
성찬이 부럽지 않은 맛깔난 식사
가 되었다.
맞춤으로 삶아 낸 고기가 밥과 어우러진 졸긋하고 잔득한 입
속의 하모니(harmony)는 길위
에서 맞은 맛의 극치. 자르르 윤
기 나도록 뜸이 든 밥쌀은 인디
카(Indica rice/安南米)나 자포
니카(Japonica rice/秋晴米) 품종 중간쯤의 맛으로 씹을수록 단맛 꼬순맛 감칠맛의 달보드레
한 미감(味感)에 혓바닥이 유린
(蹂躪)당하는 맛의 앙상블
(ensemble)이 입 안 가득 펼쳐
졌다.
* 왕후장상(王侯將相) 왕과 제후
(봉건시대 영주), 장수와 재상을 아울러 이르는 말
* 하모니(harmony) 일정한 법칙
에 따른 화음의 연결
* 앙상블(ensemble) 전체적인
분위기나 짜임에 맞는 어울림
밥값은 1인 2.5$ 두사람 식대로 5$ 원화로 6700원 꼴이다. 리엘로는 1만 리엘이 넘지만 1만 리엘만 받는다. 한국의 식사 한끼
도 1만원에 근접하는 현실이고 보면 비록 외국인 상대이긴 하지
만 이것도 동조화 현상인가, 낯선 타국의 간단 셈법 1만리엘 두사
람 한끼 식대에 므흣한 미소를 흘
리며 나온다.
창 밖에 펼쳐지는 이색적인 풍광
에도 무거워진 눈꺼풀에 달디단 꿀잠은 천근 더하기 만근이다. 타는듯한 열기속에 흐물거리는 풍정의 변화는 느리고 더디다.
노변을 따라걷는 물소들의 느린 걸음이 여유로운 한갓진 시골 풍
경이지만 음악도 없고 대화도 없
는 침묵속에 빠른 속도로 프놈펜
으로 향하는 이 길은 지금의 우리
와 달리 폴포트 혁명 정권의 소개
령(疏開令)에 따라 강제로 수도
에서 추방 당하는 시민들이 등짐 가득 남부여대(男負女戴)한 힘
겨운 차림으로 시골로 향하던 길
이다.
* 소개령(疏開令) : 공습이나 화
재 등에 대비하기 위해, 한곳에 집중되어 있는 주민이나 물자, 시설물 등을 분산시키는 명령.
* 남부여대(男負女戴) : 남자는
짐을 지고 여자는 짐을 인다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살 곳을 찾지 못하고 온갖 고생을 하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구천을 떠돌며 방황하는 킬링필
드의 잔흔이 어른거리는 길. 멀지도 않은 과거사로 지울 수도 없고 지워 지지도 않는 통념(痛念)의 원혼들이 얼핏설핏 실루
엣(silhouette)으로 투영되는 길, 그 길이 이 길이고 이 길이 그 길
이다.
'죽여도 그만 살려 둬도 그만'
'살려 둬도 이익이 없고 없애도 손해가 없다'
크메르 루주의 소개령(疏開令)과 폴포트 앙카라(조직)의 위세에 눌려 저항 한번 못하고 24시간 내에 수도 프놈펜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에서떠나게 되는 인민들
의 고난의 길은 낙원을 표방(標
榜)하던 새 정권의 이데올로기가 '천국으로 가는 길'로 표장(標章)
한 죽음길로 변질된 요단강 건너
건너 황천(黃泉)으로 가는 길이 되었다.
사흘만 떠나 있으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혁명군의 공약이 감언
이설로 확인되는 데에는 긴 시간
이 필요하지 않았다. 노인과 환자
들과 어린 자식들을 앞세워 소개
를 거부하는 시민을 즉결 처형하
는 총성에 굴복한 인민들은 식량
이든 생필품 가재 도구든 가지고 이동할 수 있는 만큼만 들고 지고 머리에 인채 표표히 집을 떠난 황
천길을 걸으며 지옥같은 삶을 시
작하게 되었다.
지상의 낙원 유토피아로 안내하
는 크메르 루주 혁명군들의 불타
는 사명감은 꼭두각시 총칼놀음
에 너무도 허약하고 빈약하게 무너진다. 혁명으로 기치를 올린 깃발의 펄럭임에 천국은 지척이
었지만 도시의 추방령/소개령은 저주의 굿판을 벌리는 킬링필드/대량 학살의 지름 길이 되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없거나 얼굴
이 해사하고 안경을 쓰며 책을 읽는 인텔리로 판명이 되면 모두
가 아웃. 펜이 있고 시계를 볼 줄 알며 외국어를 알아듣는 지식인
들과 전 정권의 군인 공무원 의사 약사 예술가들. 스포츠에 몸을 담
았다는 이유로 죽음의 길을 걷게
된 통한(痛恨)의 원혼(魂)들~
..... .......
모택동과 김일성을 흠모한 폴포
트가 꿈꿨던 지상 낙원은 거추장
스런 전문가 집단이나 장애가 된 지식층을 소년병을 앞세운 무차
별적인 학살극으로 세상을 지옥
으로 만들었다.
44개월의 킬링필드가 끝이 나면
서 주인없이 비워졌던 고급한 주
거지들은 두말도 없이 먼저 들어
가 눌러 앉은 사람들의 고스란한 몫이 되었다.
이념에 세뇌당한 광란의 지배층
에 집단 학살 당한 인민들이 200
만(추정). 캄보디아 전 인구의
1/4로 추정되는 원혼들에 대해 2018년 캄보디아 정부는 5월 20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희생
자들을 추모한다.
* 프놈펜 소개령/추방령 : 미군의 폭격으로 황폐화된 농촌을 떠나 프놈펜이나 도시로 집중된 난민
들을 집단농장이나 수용소로 보
내는 과정으로 미군의 폭격이 예
고된 3일이 지나면 집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폴포트 정권의 공식 발표는 후일 모두 허언(虛言)으
로 확인되었다.
* 킬링필드/Killing Field : 1975 04 17~1979 01 08의 캄보디아 내전으로 빚어진 대량 학살극 또는 대량 학살이 자행된 지역을 이른다.이 단어는 84년 개봉 된 조셉폴라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제목에서 기인한다.
* 캄푸치아 폴포트 정권의 대량
학살을 영상화한 롤랑조페 감독
의 영화 '킬링필드' (1984)는 아
카데미상 3개 부문을 수상하였
으며 삽입곡 존 레논의 Immage 는 충격적인 영상과 더불은 시적
인 가사로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
다.
*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
나
ㅡ 유재현 / 도서출판 창비 / 20031210
*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ㅡ 유재현 / 도서출판 그린비/ 20070716
* 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ㅡ 로웅 웅 지음 이승숙 장미란 옮김/평화를품은책/20190824
혁명의 기치 아래 영욕(榮辱)으
로 점철된 캄보디아 현대사의 뒤
안 길에 묻힌 통념의 원혼들은 오늘도 유리상자 쑈 윈도 속에 갇
혀 시엠립의 크메르 유적에 버금
가는 관광 캄보디아(프놈펜)의 주요한 수입원으로 활용되는 아
이러니(irony)에 고개가 갸웃해
진다.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뚤 슬랭(Toul Sleng /S-21/정치
범 수용소)의 20년은 많은 변화
가 있었다. 20년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입장료 없이 관광객들의 자발적인 기부금
(5$)으로 운영되던 전시관은 입
장료(10$)를 받고부터 다양한 추모관의 모습으로 변모되었다. 수집된 해골로 캄보디아 지도를 만들어 놓았던 초창기의 소름끼
치던 그 모습을 지금은 볼 수 없
지만 아직도 저승으로 떠나 보내
지 못한 킬링필드의 유골들은 오
늘도 전시장의 쇼 윈도우 속에 갇
힌 처연한 모습으로 오가는 관람
객들의 느린 발걸음을 잡으며 부
끄러운 역사와 감추고 싶은 과거
의 치부를 희미하게 조영(照影)
하고있다.
* 크메르루주 정권 1인자였던 폴포트는 1998년 사망하였으며 대량학살의 주범들은 16년간 이어진 재판 중 법의 심판을 받
지않은 채 모두자연사로 생을 마감했다. 2022년 9월 크메르
루주의 핵심인물로 마지막 생존
자인 키우삼판의 종신형이 확정
됐다./네이버 지식백과
동족을 겨냥한 총뿌리에 300만(추정)이 희생당한 과거사에도 덤덤하다 못해 찬양과 찬사가 종횡으로 난무하는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
슬픈 마음과 애도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참파꽃이 오롯한 킬링필드 기념관(Choeung Ek Killing Fields/입장료 10$)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마주친 현지인 아이들이 미소를 지으며 이방인을 반기는 천진한 모습.
아직도 채 잉크가 마르지 않은 부관참시(剖棺斬屍)* 해도 마뜩찮을 민족의 미래를 말살한 범죄 집단. 이 참담(慘澹)한 과거사를 오롯하게 맨 몸으로 살아내야하는 현실을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 부관참시(剖棺斬屍) : 예전에, 죽은 뒤에 큰 죄가 드러난 사람을 다시 극형에 처하는 형벌로, 관을 쪼개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걸던 일
모든사람들이 오늘하루에 충실하며 살아간다고 상상해보세요
국가라는것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리 어려운일도 아니죠
죽이는일이나 목숨을바쳐야할일도없고 종교도없다고 생각해보세요
모든사람들이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것을 상상해보세요
* 영국의 싱어송 라이터 John Lennon(19401009~19801208) 의 'Imagine' (영화 'Klling Field' 삽입곡) 가사/부분
여행은 걸어 다니면서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
여행을 위한 독서로 내공을 더하면서 여행이든 독서든 책을 읽는 행위로 부터 진중하게 글을 쓰는 과정까지 주어진 인생 허투루 살지 않는 방편으로 독서는 바르게 살기위한 삶의 이정표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목표가 희미해져 삶이 가볍고 헛헛해져 오면 책을 펴십시오. 책 속에 길이 있고 책 속에 그 답이 있습니다. 책을열고 책을덮고 그러고서 혼자이든 함께이든 여행을 떠나십시오.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지만 갈 곳도 가야할 곳도 볼 것도 보아야 할 것도 많고 많습니다.
* "여행과 독서" 잔홍즈 저 / 오하나 역 | 시그마북스 | 2017년 05월 12일
“2016 타이베이 국제도서전 대상 수상작” - 책이 있는 곳에, 여행이 있다
2023 10 29
https://cafe.naver.com/jiniteacher/107422?tc=shared_link
첫댓글
Sampeah
글 잘 읽었습니다.원전
은 찾지 못했지만, 잔홍
즈(Hong Tzi Jan)이라
는 작가가 쓴 책이 '여행
과 독서'라는 서명으로 번역본이 출간되었던 것 같습니다.
2023.10.30. 21:26
쎄미나
소중한 정보 감사드립
니다
여행과 독서 잔홍즈 저
/ 오하나 역 | 시그마북스 | 2017년 05월 12일
“2016 타이베이국제도
서전 대상 수상작” 책이 있는 곳에, 여행이 있다
/진 홍즈
2023.10.30. 2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