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 교육으로 세상 보는 눈을 뜨게 한다
‘난곡사랑의집’ 배지용 대표
‘난곡사랑의집’은 1970년대부터 서울시 관악구 난곡 지역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아동 청소년 마을학교, 어르신 서로도움 배움터, 성인 문해학교 등의 교육을 제공해 온 마을학교다. 그중 ‘성인문해학교’는 한글을 모르는 성인들에게 한글을 읽는 방법과 글쓰기를 가르치는 과정이다.
문해율이 99%에 달한다는 지금, 문해 교육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50년 가까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난곡사랑의집을 찾아, 문해 교육의 의미와 중요성, 앞으로의 방향에 관한 배지용 대표의 생각을 들어 본다.
문해 교육에 대한 관점부터 달라져야
<<쉼표, 마침표.>>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문해 교육은 주로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난곡사랑의집도 70년대부터 운영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난곡이었을까요?
배지용
원래 난곡은 달동네였습니다. 1969년 청계천이 재개발되면서 그곳에 거주하셨던 분들이 난곡으로 이주해 달동네를 이루었고, 인근 ‘구로공단(구로디지털단지)’에서 일하는 청년들도 많이 살고 있었 습니다. 주거비가 저렴한 데다 구로공단까지 도보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죠. ‘난곡사랑의집’은 남부경찰서에서 운영한 ‘남부야학’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봉사 차원에서 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검정고시 교육을 했던 것이 출발이었죠.
그런데 90년대에 들어서며 구로공단이 해체되고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야학 활동도 주춤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지역 주민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바로 문해 학습자였습니다. 처음 문해 교육을 시작할 당시 학습자들의 연령대는 40대부터 70대까지 무척 폭넓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연령으로는 60~80대로 축소되었지만 2000년대부터는 결혼이민자들이 참여하며 문해 교육의 대상은 오히려 다양해졌습니다.
<<쉼표, 마침표.>>
여러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인 비문해율은 1%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기관에서 문해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배지용
난곡사랑의집에서 문해 교육을 시작하던 90년대에도, 평생학습의 측면에서 문해 교육이 법제화된 2007년에도 “요새 글을 모르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은 반복되어 왔습니다. 문해 교육을 두 가지 측면에서 본다면, 소위 말하는 ‘까막눈’은 1% 미만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또 다릅니다. 실제로 문해 교육을 받고도 글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은 30~40%나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문해율을 추적하는 근거는 5년마다 한 번씩 진행하는 인구주택총조사입니다. 이 수치를 보면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인구가 200여만 명,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인구는 500만 명이나 됩니다. 또한 2017년 국가 문해 교육센터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7.2%인 약 311만 명의 교육 수준이 초등학교 1~2학년 정도의 수준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비문해인들은 대부분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숨깁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조사에도 아주 소극적으로 임했을 가능성이 크죠. 실제 비문해인의 비율은 수치로 추정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쉼표, 마침표.>>
비문해인이라고 하면 경제적으로 빈곤하거나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의 모습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실제 문해 교육은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까.
배지용
처음 문해 교육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저 역시 비문해인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울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강남 3구에 거주하는 사람 중에도 비문해인이 많습니다. ‘여성들은 공부할 필요 없다’는 과거의 인식 때문에 경제적인 여건이 넉넉함에도 학교를 보내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 분들은 글자를 모른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일부러 먼 지역까지 찾아가 문해 교육을 받기도 합니다. 농어촌에는 더 많은 수가 글을 모릅니다. 한 동네 전체가 비문해인인 경우도 있죠. 그런데 그들 중 대다수가 여성입니다. 이렇게 보면 문해 교육에 대한 관점이 달라집니다. 문해 교육은 단지 경제적이거나 시대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전 사회적인 문제죠.
비문해 청소년 문제에도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10여 년 전, 밤에 20대 중반의 한 청년이 찾아온 적이 있는데요. 이 청년은 과거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고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소년원에 들어가며 글을 배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의류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주인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손님이 영수증을 써 달라고 한 겁니다. 순간 머리가 하얘져 도망치고 말았다고 하더라고요. 이 청년뿐만이 아닙니다. 글자를 읽을 수 있어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글자를 아는 게 아니라 글자의 모양을 사진으로 찍듯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문제는 나이가 어릴수록, 성인 남성일수록 밖으로 드러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만큼 새로운 계층의 비문해인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죠.
문해 교육, 글자를 익히고 자존감을 세우는 일
<<쉼표, 마침표.>>
많은 사람이 비문해 학습자들이 쓴 ‘시’에 감동합니다. 여러 문학의 분야가 있고, 문학이 아닌 글을 쓸 수도 있는데 ‘시’를 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배지용
‘시’라기보다 사실 ‘짧은 글’입니다. 기초 문해 교육을 받는 분들이 서술어가 완성된 형태의 글을 쓰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완성도가 낮더라도 짧은 글을 편하게 쓰도록 하죠. 마침 ‘시’가 허용이 많은 문학이다 보니 그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마치 시처럼 보이는 겁니다. ‘시’를 한 편 썼다고 하면 학습자 입장에서는 훨씬 자부심도 가질 테니, 그렇게 쓴 글을 모아 시화전을 열고는 하는 것이죠.
▲문해학교 학생이 쓴 시
<<쉼표, 마침표.>>
이렇게 짧은 글 한 편을 쓰기까지 학습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배지용
비문해 학습자가 넘어야 할 큰 산 중의 하나는 닿소리와 홀소리가 합쳐져 글자가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습자는 한자를 외우듯 글자를 하나하나 외우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더 높은 수준에 다다르기가 어렵죠. 또한 글을 소리내 읽을 때 연음 법칙 등이 작용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먹었습니다’를 읽으면 [머걷씀니다]가 되는데, 왜 글과 말이 다른지 헷갈리는 것이죠.
기초 문해 단계를 넘어서면 어휘력의 측면에서 어려움을 느끼는데요. 사실상 이 단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물건에도 상황에 따라 다양한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더하기·빼기 등의 기호를 이해하는 것, 숫자를 표기할 때의 자릿값 개념 등은 글자를 읽는 차원을 넘어서 새롭게 학습해야 하는 부분이죠.
하지만 가르치는 입장에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자존감의 문제입니다. 아이들은 경험하는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에 배울 때도 새롭게 배웁니다. 하지만 성인들은 살아오며 이미 많은 것을 경험했죠. 알고 있는 것이 많은 만큼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도 높은데 문해 교육으로 배운 기초 지식으로는 그 욕구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책하는 학습자가 상당히 많아요.
초등 기초 과정을 3단계로 나눌 때 1단계에서는 글자를, 2단계에서는 짧은 글을 배웁니다. 그 과정 중에 한두 줄이라도 일기를 써 오도록 과제를 내 주는데요. 열에 아홉은 숙제를 못 해옵니다. 일기를 썼다가도 쓴 것이 맞는지를 검열하면서 하나씩 지우다 보면 결국 다 지우게 되는 것이죠. 문해 교육을 받는다는 소문을 낼 수 없으니 주변에 물어보지도 못합니다.
중등 과정만 되어도 틀린 걸 아무렇지 않게 지우고 다시 씁니다. 그런데 이 단계에 이르기까지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문해 교육이 자존감의 문제와 그만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앞으로의 과제는 바로 이러한 부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요? 시, 음악, 그림 등의 수업을 병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글자만 교육하면 맞고 틀리는 것이 평가의 잣대가 되지만, 다양한 수업을 병행하면 평가 요소가 다양해질 수 있으니까요. 자서전을 써 보도록 할 때도 있습니다. 자기 과거를 써 내려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원망과 죄책감의 양가감정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럴 때는 문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돕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 치유가 이루어지죠. 이처럼 지금도 문해 교육은 비단 글자에 한정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측면이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난곡사랑의집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모습
문해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소통’
<<쉼표, 마침표.>>
오늘날 문해 교육의 의미는 ‘글자를 읽고 쓰는 것’에서 ‘인쇄 또는 문서화 된 자료를 이해하고 해석하며 활용하는 능력’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학습자들이 글자를 읽고 쓰는 것을 넘어서 평생 학습으로 이어 가기 위해서, 문해 교육의 현장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배지용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실력을 갖춘 교사’가 많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문해 교육을 하는 사람은 전문성이나 헌신의 마음에서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해 교육 교사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전문 역량을 기르도록 할 체계도 필요하죠.
두 번째로는 장기적으로 기초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기관, 즉 ‘학교’가 필요합니다. 이때 학교의 의미를 좀 더 폭넓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문해 교육을 받으면 학력 인정이 되는데요. 사실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에게는 학력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졸업장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것이죠. 더 중요한 것은 생활과 관련한 문해 교육입니다.
지난 한 해 학습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디지털 사용에 대한 교육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가족들을 만날 수 없으니 스마트폰으로나마 소통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상당히 높았죠. 하지만 실생활에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만한 환경이 안 되거나, 방법을 몰라 사용하지 못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무인 안내기 역시 마찬가지죠. 요즘에는 은행을 갈 때도 현금 입출금기를 사용하고 공공기관의 민원 처리도 모두 기계로 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으면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이 실생활로까지 이어지기가 어렵습니다.
<<쉼표, 마침표.>>
끝으로 문해학교를 운영하며 기억에 남는, 혹은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배지용
저희 반 학습자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병문안을 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사고가 난 순간 정신이 가물거리면서도 물이 마시고 싶었다고 합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한 구조대원의 손을 더듬어 잡고 손바닥에 ‘물’이라고 썼죠. 다행히 그 구조대원이 물을 가져다주었으니 글자를 틀리지 않은 것이라며 신이 나서 자랑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그 어르신은 지금까지 그 기억을 간직하고 계시겠죠.
공부하며 “세상에 나 말고 다른 많은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처음 기초 문해 교육을 받으러 오는 학생들은 선생님이 자신만 봐주기를 바라고, 자리 때문에 서로 다투기도 합니다. 그런데 ‘짝꿍’이라는 단어를 배우면서 교실 안에서의 관계를 이해해 나가죠. 언어의 확장은 곧 관계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나’의 존재를 이해하고 사람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찾아 나가는 것은 물론, ‘우리’와 ‘사회’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사회에 기여할 마음을 갖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문해 교육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해 교육은 기능적으로 글자를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인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글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그래서 더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이 문해 교육을 받는다면 그때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뀔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더 건강하고 따뜻한 사회가 될 겁니다. 문해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소통’에 있기 때문입니다
글: 김은주
사진: 김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