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아내의 칠순, 사랑의 정의
아서 힐러(Arthur Hiller) 감독에 라이언 오닐(Ryan O'Neal)과 알리 맥그로우(Ali MacGraw) 주연의 1970년 미국 제작의 영화 ‘러브 스토리’(Love Story) 이야기다.
모차르트, 바흐, 비틀즈를 사랑했고, 그리고 또 다른 한 남자를 한껏 사랑하고는, 스물다섯 살의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던, 아름답고 총명했던 어느 여인의 너무나 슬픈 사랑이야기다.
명문 하버드 법대생으로서 공부는 잘 하는데다가, 그 학교 아이스하키 대표 선수로서 건강미가 뚝뚝 흐르는 명문 부호 배럿 집안의 외아들 올리버와, 이탈리아 이민가정 출신으로 지방 대학인 레드클리프 음대에 다니면서, 그 대학 도서관 사서 일을 보던, 똑똑하고 당찬 그러나 가난한 여성 제니, 그 둘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느닷없이 제니의 뺨에 키스를 해버리는 올리버, 그래서 화가 난 제니에게 도리어 ‘네가 날 쥐고 흔들 순 없어!’라면서 막말을 내 뱉어 버리는 너무나 오만한 녀석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수적 집안의 전통을 고수하는 아버지와 맞부딪쳐 가면서까지 확고한 자신의 주관을 키워가는 올리버의 모습에서, 제니는 깊은 신뢰를 느낀다.
그 신뢰는 곧 사랑으로 이어진다.
사랑이 깊어진 두 사람, 흰 눈이 푹 쌓인 광장에서 엉켜 뒹굴고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고 하면서, 그들의 사랑은 더욱 더 깊어만 간다.
제니와의 결혼을 끝까지 고집한다면, 한 푼의 유산도 넘겨주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협박도, 제니를 사랑하는 아들 올리버를 굴복시킬 수는 없었다.
‘난, 너 뿐만이 아니라 네 이름과 그 뒤에 붙은 숫자도 사랑해. 그것도 너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게 사랑이라는 거야... 이 바보야!’
아버지와 맞서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제니의 그와 같은 끊임없는 설득도, 아버지를 이미 등진 올리버를 돌려세우지 못한다.
둘은 결국 자기네들만의 조촐한 결혼식을 치른다.
제니는 그 결혼식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우리 둘의 영혼이 힘차게 일어나서, 말없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와, 길게 펼친 날개에 불이 붙을 때까지, 세상이 우리에게 어떤 험난한 고통을 주더라도, 만족하며 살아갈 시간은 얼마 되지 않으니, 생각하라! 더 높은 곳에서 천사들이 우리를 재촉하면, 완벽한 노래의 황금구슬을 우리의 깊고 소중한 침묵 속으로 떨어뜨리기를 열망하노라. 이 땅에 머물면서 사랑 받기를, 이곳은 고집스러운 인간들의 마음이 사라져 버리는 곳, 순수한 영혼만이 남아 있는 곳, 하루 동안 머물면서 사랑을 하는 곳, 어둠과 죽음의 시간이 둘러싼 곳.’
올리버는 또 이렇게 화답한다.
‘난 그대와 결혼합니다. 돈 보다 소중한 내 사랑을 주고, 설교나 법률 이전에, 먼저 나 자신을 주겠습니다. 그대 자신을 내게 주고, 나와 함께 여행을 합시다. 우리 살아 있는 한 함께 영원히 있기를.’
그리고 둘은 서로 이렇게 약속한다.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올리버는, 아버지가 가난한 제니를 인격적으로 무시한 것에 분노하여, 엄청난 부호인 아버지의 지원을 팽개치고 아버지와 의절의 길을 선택한다.
위선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둘은 하나님의 존재까지도 부정한다.
이제 둘은 서로 자기네만의 참 아름다운 사랑의 길로 접어든다.
빈민가의 춥고 좁은 월세 방이기는 하지만, 이들 둘에게는 그 삶이 너무나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잠시, 이들에게 서서히 불행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버지의 환갑잔치에 초대되었음에도, 올리버가 아버지와의 의절 의지를 굽히지 아니하자, 제니는 슬퍼지기 시작한다.
한바탕 말다툼 끝에 올리버가 집을 뛰쳐나가고, 뒤늦게나마 그 잘못을 깨우친 올리버가 집으로 돌아오지만, 아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올리버는 아내 제니가 다닐만한, 동네 세탁소로, 슈퍼로, 학교로, 온갖 곳을 다 다니면서 제니를 찾아보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밤늦은 시간 혼자서 터덜터덜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집 앞에는, 열쇠를 잃어버려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추위에 떨며 울고 있는 제니가 있었다.
‘Jenny, I am sorry.’
‘제니, 미안해.’라고 하는 올리버의 그 말 한마디에, 제니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이런 답을 한다.
‘No,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제니는 그렇듯 ‘사랑이란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자기를 안쓰러워하는 올리버를 도리어 위로해준다.
이때만 해도, 제니가 이미 불치의 병을 얻고 있음을, 제니 본인을 비롯해서 그 어느 누구도 알지를 못했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다가왔어도, 아내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트리 하나 마련해주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생활에 찌든 올리버였지만, 그 거듭된 고난을 극복하고 드디어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고, 그리고 변호사가 되어 성공의 문턱에 올라선다.
이 기쁜 소식도 잠시, 이제 스물네 살 밖에 안 된 제니에게, 불치의 병이 진단된다.
곧바로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데, 당장은 돈이 없다.
‘아버지... 이유를 묻지 말고 5,000불만 빌려주세요. 제발요.’
올리버는 정말 무거운 발걸음으로 의절한 아버지한테까지 찾아가 그렇게 치료비를 얻어오지만, 아름다운 심성의 제니는 이미 어쩔 수없는 임종을 향해 가고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올리버에게, 임종의 제니가 힘들게 말을 잇는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그리고 그 음악이 있는 파리 같은 곳, 이러한 것들을 자기가 내게서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는 건 이젠 잊어버려야 해...그러니까 미안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
그리고 제니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Oliver... I'm sorry...'
뒤늦게 제니가 숨진 병원을 찾아온 아버지가, 아들 올리버에게 할 수 있었던 말은 머뭇거리면서 던진 그 말 한마디뿐이었다.
살아생전의 그 제니를 결코 받아들여주지 않았던 아버지였고, 그로 인해 너무나 한스러웠던 올리버다.
그 올리버가, 어쨌든 며느리가 된 제니에게 지난날 너무나 매몰차기만 했던 그 아버지에게 차가운 눈초리로 말 한마디 던진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로, 그것은 사랑의 정의였다.
곧 이 한마디였다.
‘Love...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나도 그동안 ‘사랑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몇 개의 문장을 지어냈다.
오랜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지은 문장인데, ‘사랑이란 집적거림으로 시작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완성된다.’라고 지은 문장도 있고,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지은 문장도 있다.
또 있다.
‘사랑은 챙김이다.’
그 문장이다.
십 수 년 전에, 내 지어낸 문장이다.
한 갑자 세월을 살아오면서 경험한 온갖 인생사 세상사를 통해서, 어느 날 문득 그와 같은 깨우침이 있었다.
국어사전에서는 그 챙김에 대하여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필요한 물건을 빠짐이 없도록 갖추어 간수하다. 거르지 않고 잘 거두다. 갖추어 차리다. 어떤 것을 자기 것으로 취하다.’
쉽게 말해서 관심이다.
관심에 대해서 국어사전에서는 또 이렇게 풀고 있다.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임. 또는 그런 마음이나 주의.’
곧 마음씀씀이다.
쉽게 말해서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써주는 것, 그것이 곧 사랑이다 그 말이다.
도무지 관심도 없고 마음도 써주지 않는 곳에서는, 인간관계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
상대를 위해서 마음을 써야 하고, 그 마음씀씀이를 바탕으로 요모조모 챙길 때 인간관계가 발전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 정분도 생기는 것이다.
내 그래서 사랑은 곧 챙김이라고 한 것이다.
‘저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은혜에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큰며느리 지영이와 작은며느리 은영이 그 둘이, 칠순을 맞은 시어머니인 아내를 위해 장만한 상차림에 내건 슬로건이 그랬다.
그 상차림을 봤다.
백설기에 송편에 수수팥떡 해서 떡이 한 상 올라와 있고, 꽃바구니에 꽃다발까지 올라와 있고, 사과에 감에 포도에 귤 해서 과일도 풍성하게 올려놓은 상차림이었다.
더 빛나는 선물이 상차림 되어있었다.
하나는 두 며느리가 돈을 모아 장만했다는 금팔찌였고, 다른 하나는 열다섯 나이로 중학교 1학년인 손녀 서현이가 자기가 직접 디자인해서 주문했다는 케이크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빛나는 것은 서현이의 케이크였다.
‘할머니!! 칠순 축하드려요.♥’
그와 같은 축하메시지도 서현이가 직접 썼다 했고, 그 메시지 위에 예쁘게 그린 할머니의 모습도 서현이가 직접 그렸다 했다.
게다가 케이크 둘레로 줄을 잇듯 얹어놓은 팥앙금의 색깔을 할머니가 좋아하는 보랏빛으로 선택한 것은 더 더욱 특별한 챙김이었다.
하나같이 고마운 챙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