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몸을 내리니 어둠이 감싸안은 신치토세 공항은 희미하고 흐릿하게 조금씩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일곱시반 집을 나서 열시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열두시반 제주항공에 몸을 실은 일곱시간 반의 여정 끝이다.
조촐하고 단촐한 열다섯명 여행객이 탑승한 버스의 창 밖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이정표 없는 미로'에 들어 선 열다섯 범샘님들에게 조곤조곤 자분자분한 가이드 장연우님의 설명은 충직한 안내자 확실한 동반자로 각인이된다. 말 잘 듣는 열다섯 맞춤한 여행객들이 찰라의 경관도 놓칠 수 없어 두 눈을 반짝이고 팔랑귀를 쫑긋 세운 북해도 3박 4일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여행이 시작된다.
대한민국의 80%나 되는 땅에 사람은 적어 관광객이 무리지어 제 세상처럼 활개를 치며 다니는 주인과 나그네의 자리가 바뀐 섬. 미국의 인디언 같이 아이누족 원주민은 주권을 상실한 채 명맥만 유지하는 여기는 일본 땅 홋카이도이다.
도착이 늦어진 호텔 체크인 시간에 주변은 이미 깜깜해져 호텔 밖 맛집을 향한 일탈(逸脫 )의 꿈은 애저녁에 풍비박산(風飛雹散).
야외 온천탕을 거쳐 온 몸도 마음도 한결 뽀스스해진 일행이 패키지 여행 첫 날 호텔의 뷔페 메뉴가 대한민국 줄 서는 맛집의 메뉴만 못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과유(過猶)는 불급(不及)이라. 풍족함은 모자람만 못하고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첫날부터 코가 비뚤어진 친구들은 하마님*의 성화에 밤잠을 설친 그악한 새벽 아침 희미하게 밝아오는 여명(黎明)속에서 심기를 일전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더부룩 텁텁한 거울 속 모습에도 재기를 다짐하는 심지(心志)를 꺽지 않는다.
*하마님:하늘같은 마나님의 약칭이지만 비속어가 아닌 표준어에 가까운 단어로 호주객(好酒客)들의 생존 필수어.
비에이(美瑛)로 향한 둘쨋날의 여정은 호수와 폭포와 눈 덮인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파노라마 처럼 아스라히 펼쳐지는 비산비야(非山非野) 광활한 대지 위 대규모 농장들의 목가적 풍경에 시선이 압도 당한다.
견줄데 없는 호쾌한 풍광. 가슴 속 맺히고 쌓인 응어리와 아직 오지않은 스트레스까지 소리를 내며 흐트러진다. 유쾌 통쾌 상쾌의 순간들이다.
"오 겡끼 데스까?"
모두들 서로서로 펼친 폰을 주고받으며 남는건 사진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진뿐이 남는게 없다는 여행에 나는 핍진한 문력(文力)으로 짧은 추억 깊은 감회를 되새긴다.
화산의 기를 누르는 관음상이 우뚝한 가든 뷰 레스토랑의 조촐한 점심 식사 메뉴에 가이드는 미안해 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러나 왠걸 단품(單品)으로 올려진 카레 덮밥은 장인의 아우라(Aura)*가 온존히 느껴지는 고품격 고품위 북해도 쌀 나나 츠보시. 밥알의 식감이 예사롭지가 않다.
잡내없는 카레와 어우러진 한 톨 한 톨 밥알의 오래도록 기억되는 쫄긋함과 더불어 소시지와 야채 서껀이 함께 어우러 내는 맛의 하모니는 쉽게 만날수 없는 범접하기 어려운 극강의 맛. 300가지가 넘는 밥쌀이나 밥솥의 가짓 수 만큼이나 수많은 밥짓기 장인까지 있다는 이것이 자포니카 쌀 원산지의 위력이자 현주소이다.
* 아우라(Aura) • 예술 작품에서, 흉내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 • 어떤 대상이 가진, 다른 것과 구별되는 독특한 분위기
탁신관 마에다 전시관은 한장의 사진만으로도 깊고 옹골찬 느낌이 오는 비에이 사계의 풍광을 오롯하게 담아낸다. 지나 온 여정과 거쳐 갈 행로를 다양한 포스로 잡아 낸 사진들이 여행객들의 시선을 파고 들며 속삭여 주는 감동의 순간. 어디선가 장인의 숨소리가 들리고 숨결이 느껴지는 듯한 감격의 순간이다.
땅 덩이가 크니 볼 것도 많지만 이동하는 거리나 시간도 여간만 만만치가 않다. 대한민국 땅의 80프로를 3박4일로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이 벅찬 여정을 명석하고 명쾌하게 설명해 내는 가이드의 능력에서 여행의 완성도가 결정이 되는 여행의 법칙. 그래서 선택한 사람과 선택 받은 사람들의 운명같은 만남이 중요한거다. 노사연의 '만남'이라는 노래의 첫 머리 가사가 우연이 아니라고 했기에 오래오래 인기를 유지하 는거다. 그리하여 만남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 되는 반전의 순간 '우연'은 도치(倒置)되어 '연우'가 된다.
노랑풍선 일본팀 장연우 가이드. .
15명 여행팀의 일정을 쥐락펴락하는 그녀가 앞장 선 곳엔 오던 비도 그치면서 무지개가 걸리고 지나치는 호수의 구름 사이 찬란한 황금 빛 일몰의 장관에 넋을 놓게된다. 서광을 비추이는 황홀경에 가던 걸음을 되짚어 보게 하는 감동을 몰아온다.
눈 덮인 평범한 산능선 조차 그녀의 족집게 해설 한 마디로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섭렵한 노회한 여행객들도 전신을 엄습하며 몰아치는 감격으로 전율하게된다. '님도보고 뽕도따는' 홋카이도 여행에 진지해 지는 이유 하나가 더해진다.
지옥계곡 유황온천.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 없는 스산한 계곡에 모락모락 유황 연기가 피어오르고 군데군데 뽀글뽀글 솟구치는 온천수는 불순물이 포함되 100도 이상으로 끓는 김을 내뿜으며 넘쳐 흐른다.이곳저곳 황량하고 귀살스런 이 풍광을 지옥계곡이라 빗댄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돌아보는 곳곳마다 광기가 뿜뿜한 소름 돋고 오싹한 느낌에 죄 짓고는 못 사는 이 몸도 죄 짓고도 펀펀한 그 몸도 서둘러 걸음을 되잡아 내린다.
전세버스에서 타고 내리는 승강구는 진행 방향기준으로 좌측이다. 좌측 우선은 일본의 시스템으로 정착이 되어있어 야구에서는 좌투수가 연봉이 높고 축구에서는 좌측발이 능숙한 스트라이커가 공격의 주축이 되고 공포의 대상이된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원칙론에 '좌'가 우선인 이유가 남성의 거시기 발음으로 비약되는 것은 넌센스를 빙자한 아재 개그.
'좌남 우녀'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예외의 경우가 지옥계곡 유황 온천과 오타루의 전통 유리공예점 화장실이었다. 여행을 다닌 홋카이도의 어느곳도 이 원칙을 따르고 있었는데 이 두 곳만은 원칙을 벗어나 있어 '좌지 우지'의 개념이면 지옥계곡이나 오타루 공예점은 여성이 우위를 점하는 별나고 특출난 지역이 되는 셈이다.
예사롭지 않은 감자떡 하나에도 가이드가 추천한 메뉴에는 맛의 의미가 깊고 오묘해지며 플러스 알파가 숨겨져 있다. 아는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가이드의 법칙.
달지도 고소하지도 않으면서 부드럽고 은은하게 입 속을 휘젓는 방금전에 갓 구워낸 감자떡에서는 감자의 식감이나 감자향은 전연 느낄수가 없어 아~ 이거슨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이치일까? 닿을 수 없는 장인의 솜씨로 빚어 낸 맛의 극치일까?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가정집 개인 전화는 부의 상징이었다. 발신자 표시가 없던 시절이라 장난 전화가 유행처럼 번지던 때 이야기.
일정한 시간대에 노출된 가게 번호로 전화를 걸어 '고구마 원' 하고 끊는 전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같은 시간에 '고구마 투' '고구마 쓰리' 하고는 끊어지는 수화기 저쪽의 소리. '여보세요~' 할 새도 없이 전화를 끊는 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가게 주인은 회심의 일격을 준비 하지만... 다음날 같은 시간에 네번 째 걸려온 전화기를 들자말자 기습적으로 선빵을 날렸다.
'야~ 너 이번엔 고구마 포 할거지?'
'감자 원!'
예상외의 되받아 친 스매싱에 그로기 아웃된 2000년 이전 '작란 전화'의 웃픈 이야기
치즈를 좋아하지 않는 탓에 피자도 별로인 나에게 치즈공방의 치즈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꼬슨 맛 짭쪼럼한 맛이 향과 함께 어우러진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별스런 치즈 맛, 치즈 하나로 이 많은 관광객을 그러모은 홋카이도 관광의 저력. 대한민국 임실에도 독보적인 치즈가 있지만 명맥만 유지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우리의 가이드님은 비분하고 강개하며 열변을 쏟아놓는다.
"게 누구 없습니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현지식당 예약도 솔찮한 일이었겠지만 다양하고 푸짐한 메뉴로 차려낸 현지식은 허리띠 한두칸은 더 늘려놓은 여행. 한 칸 정도는 예상을 했었지만 두칸 넘어 세칸까지 이를 줄이야...
샤부샤부가 푸짐했던 둘쨋날 저녁식사는 마구마구 사케를 부르는 메뉴였었고 회덮밥으로 안내된 두번째 호텔 조식 뷔페는 해산물 천국의 면모를 가감없이 보여준 진수 성찬. 아침 식사로 밥을 두번씩 퍼다 먹는 밥충이로 만들어 준 가이드에게는 식욕이 없어 닭고기 두어점으로 점심식사를 끝냈다는 행복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거스름 돈 셈하는 것 보다 더 빠르게 배달된 생맥주를 나오지 않은 것으로 착각한 테마파크에서의 작은 소동.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었지만 하마님에 대한 이러한 서비스는 너나없이 경험하는 꾼들의 생존 전략. 찜통 곰국의 혼밥이 무서븐 노객들의 최소한의 전략적 행위일 뿐이다.
삿포로의 현란한 야경은 완상(玩賞)하고 돌아서기 아까운 황홀경이었지만 빠듯한 일정에 우리는 걸음을 재우치며 만찬장으로 향했다.
북해도 특산품 게의 비쥬얼이 일행의 눈길을 사로 잡은 마지막 디너는 술과 음료까지 무한 리필이라 보는 맛 먹는 맛에 마시는 맛 까지 섭렵하며 최후의 일각까지 최후의 일잔까지 간빠이를 연호하는 일행앞에 펼쳐진 호화로운 만찬은 시간을 꽉 채우도록 끊임없이 이어졌다.
세상 오르골은 다 모아놓은 듯, 태어나서 처음보고 듣는 신비한 오르골의 천국. 소리도 디자인도 눈이 휘번쩍이는데 선물로 선택한 비슷한 두개 제품을 나중에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포장지 겉면에 손수 그린 그림 스티커를 붙여서 포장해 주는 센스쟁이 여직원. 우리는 그녀에게 혀를 내두르며 엄지를 치켜 세우고 칭찬을하며 쌩큐와 아리가또 고자이마쓰로 감사를 표시했다. 나는 뒤켠에 서서 '쵝오여' 라며 한마디를 더 걸쳤다.
눈도보고 비도 맞고 무지개까지 동행해 준 북해도 여행. 홋카이도 야키니쿠에 비린내 없는 특산품 날 계란까지 후루룩 츱츱하니 3박4일이 휘리릭이다. 눈도 입도 마음도 꽉 채운 3박4일. 일정을 늘이자고 해도 더 채울 공간도 빈틈도 없을 만족한 여행 쵝오의 날들이었다.
패키지 여행은 모두가 고만고만한 경험이었지만 이번 여행의 북해도 3박4일은 예상치 못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여행으로서 행복해 지는 경험. 여행에서 만난 음식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는 경험. 해박하고 노련하고 능수능란한 가이드를 만난 행운과 행복이 겹치는 경험
장연우 어머머~♡ 감동 받았 어요^^ 세상에 사진만 잘 찍는분인줄 알았는 데, 유머와 위트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추신 선생님이시네요~^^ 글이 맛깔나요~^^ 사진 아래부터 8번째줄 제이름이 정연우 로 되어있네요~~ㅋ 그것만 수정 해 주시면 완벽~!!!! 저 목 날아갈일은 없겠 어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김윤성
맛깔나는 글솜씨~~
글에서풍기는 기품찬 향내♡♡너무너무글을잘쓰셔서 맛잇게 읽엇
읍니다^^땡큐입니다^^
김상은
명관아 부럽다 암턴 멋저버려
한국희
북해도에 다녀오고,
즐거운 여행 즐거운 시간되시기 바람~~~
장연우
어머머~♡ 감동 받았
어요^^ 세상에 사진만 잘 찍는분인줄 알았는
데, 유머와 위트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추신 선생님이시네요~^^
글이 맛깔나요~^^
사진 아래부터 8번째줄 제이름이 정연우 로 되어있네요~~ㅋ
그것만 수정 해 주시면 완벽~!!!!
저 목 날아갈일은 없겠
어요^&^
감사합니다!!
장연우
직업이 궁금하네요~ 글을 너무 잘 쓰셔요^^
장연우
아~!! 그리고, 북해도 쌀의 고시히카리가 아니고, 나나츠보시 입니다^^
ㅋㅋ 지산지소 일본 일품이라서
북해도에서는 북해도산 쌀만 사용하거든요^^
장연우
행복함이 묻어나는 글입니다. 저도 다시한번 생각하게되었습니다. 손님분들 더 행복한 여행이 될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명관-->장연우
쵝오예요~
인연이 닿으면 몇번 이
고 다시 뵙고싶은 내가 경험한 최고의 별 다섯
가이드 님~
현용권
우와 좋은 여행하셨구나
이유리수
감자원 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납니다 ㅋㅋ
유황온천도 좋았을거 같네요 ~~~
알차고 즐거운 여행^^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셨네요 👍👍👍
정원용
야 나도 같이
김도수
형님 감사합니다
심전택
쪽발이들 실어요~~
이진현
명관..인생은 즐겁게 사는게 최고네요..
권두환
잘 단녀 오셨습니다^^
이근우
☆☆☆☆☆
역시....
언제 다시 한번?
심전택
행님아~~
말년에 좋은추억 잘 만들어가는 모습 아름다워요^^
토한 글도 어쩜 이리 잘쓰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