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번 퍼온적 있는 명언록에 이어 오늘은 또 다른 명언록을 퍼왔소.
즐감들 하시길 바라오.
내가 선택한길이 옳았다. 계속 나의 길을 가겠다. - 前한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스마일즈-
성공은 밤낮없이 거듭되었던 작고도 작은 노력들이 한 데 모인 것이다.
고승덕 변호사
서울법대 재학중 사법시험 최연소, 행정고시 수석, 외무고시 차섭합격
서울법대 수석졸업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 - 고승덕 변호사 -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죽지는 않는다. - 고승덕 변호사 -
나폴레옹 1세 (1769.8.15 ∼ 1821.5.5)
본명: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군사·정치적 천재
고통을 거치지 않고 얻은 승리는 영광이 아니다. - 나폴레옹 -
굳은 결심은 가장 유용한 지식이다. - 나폴레옹 -
숙고할 시간을 가져라. 그러나 일단 행동할 시간이 되면 생각을 멈추고 돌진하라. - 나폴레옹 -
승리는 가장 끈기있는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 나폴레옹 -
여론의 흐름에 따르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 여론은 세상의 지배자이다. - 나폴레옹 -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 나폴레옹 -
승리는 노력과 사랑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승리는 가장 끈기있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간다.
어떤 고난의 한가운데 있더라도 노력으로 정복해야 한다. 그것뿐이다. 이것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다. - 나폴레옹 -
그대의 길을 가라. 남들이 무엇이라 하든 내 버려 두어라. - 단테 -
지식이 깊은 사람은 시간의 손실을 가장 슬퍼한다. - 단테 -
읽고 또 읽어라. 그것이 인생의 어딘가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 커트 슈미트 -
하루 공부하지 않으면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이틀이 걸린다. 이틀 공부하지 않으면 그것을
되찾기 의해서는 나흘이 걸린다. 1년 공부하지 않으면,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2년 걸린다.
- 탈무드 -
공부하다 잠이 오면 두사람을 생각하라. 너의 아버지와 너의 라이벌을...
공부하다 잡념이 생각나면 두사람을 생각하라. 너의 어머니와 너를 비웃는자를...
공부하다 포기하고 싶으면 두사람을 생각하라. 너의 소중한 친구들과 네가사랑하는 사람을...
필자 메세지... 공부.. 그건 내가 만족하기 위해 택한 수단이었다.
경주 근처 안강이라는 시골 농촌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에 다닐 돈이 없었다. 그래서 학비를 벌기 위해 1년 동안 산에 가서 나무를 해서
적으나마 학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포항에 가면 공짜로 공부하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게되었다. 3시간이나 걸어서 그 학교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입학하겠다고 때를 썼다.
교장은 너무 머니 포기하라고 했지만 끝까지 우겨서 입학하게 되었다. 그 후로 이 소년은
3년동안이나 새벽 4시에 책 보따리를 짊어지고 먼 길을 다녀야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입학금이 부족해서 인근 시골 농업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갔다.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어렵게 사범대학에 입학했다. 잠시 교사생활을 하다가 더 큰 꿈을 품고 국민대 사회체육학과
에서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의학에 관심이 생겨서 의대 청강생으로 들어갔다.
의대 교수들이 의대생도 아닌데 청강한다고 나이 많은사람에게 온갖 수모를 주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고 의학 수업을 계속 청강했다. 중간고사때 시험지를 주지 않자 나도 한장 달라며
교수에게 항의하는 뻔뻔함도 있었다. 그리고 답안지에 의대생들보다 더 훌륭한 답을 써서
의대 교수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동안 의학 수업을 청강했다. 졸업장도 못받는
수업을 10년이나 청강했던것이다. 그리고 의대 졸업장도 없는데 연세대 의대 교수 공개
채용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유학파 출신, 명문대 의대 졸업생 출신의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하게 실력으로 연세대 의대교수가 되었다. 우리는 그를 신바람박사 "황수관" 이라고
부른다.
책을 읽는 이유
인조때 학자 조위한이 유생들과 함께 홍문관에서 글을 읽고 있는데, 한 유생이 느닷없이 책을
내던졌다. "책을 덮기만 하면 방금 읽은 것도 머릿속에서 달아나니 책을 읽은들 무슨 소용이람?"
이를 본 조위한이 말했다. "밥이 항상 사람의 뱃속에 남아 있는것이 아니라 똥이 되어 빠져
나가고 그 정기만 남아 신체를 윤택하게 하는것처럼 책을 읽고 당장 그 내용을 잊어버린다 해도
무엇인가 진전되는 것이 있는 법이네."
칭기즈칸
몽골제국의 창시자(재위 1206∼1227) 어렸을 때 아버지가 타타르 부족에게 독살되어 부족이
흩어졌기 때문에 빈곤 속에서 성장.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나라를 세웠다. 칭기즈칸은
지난 97년 4월 뉴욕타임즈에서 선정한 "세계를 움직인 가장 역사적인 인물" 중 첫 번째 자리로
뽑힌 바 있다.
징기즈칸의 명언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었다.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자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
진실한 말(言) 은 사람을 움직인다. 노닥거리는 말은 힘이 없다. - 칭기즈칸 -
일을 성사시키려면 세심해야 한다. - 칭기즈칸 -
나는 몽골의 푸른늑대다. 너희는 신의 군대다. 우리의 신인 쾌쾌 탱그리와 시조 불테치노는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너희에겐 패배란 없다. 나를 따르면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 칭기즈칸 -
에디슨Thomas Alva Edison
미국의 발명가 국민학교에 들어갔으나 겨우 3개월 만에 퇴학을 당해 교육은 주로 어머니로부터
받았다. 특허수가 1,000종을 넘어 ‘발명왕’이라 불리고 있다. 에디슨의 어린시절을 돌이켜보면
그가 세계적인 "발명왕"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에디슨이 7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입니다. 에디슨의 담인 선생님이 그의 어머니를 학교로 불렀습니다.
"저는 더이상 에디슨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 아이는 지능이 모자라는것 같아요."
에디슨은 그만 퇴학당하고 말았습니다. 학교에 입학한 지 겨우 3개월 쯤 되었을 때 입니다.
이 일로 해서 이웃들이 에디슨을 손가락질 하고, 또 불쌍히 여겼지만 정작 에디슨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서 자신들이 좋아 하는 과학 실험을 하게
된 것을 오히려 기뻐하는 눈치였습니다.
과거는 모두 잊었다. 나는 미래만 보고 있다. - 에디슨 -
고생 없이 얻을 수 있는 진실로 귀중한 것은 하나도 없다. - 에디슨 -
변명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고 못난 변명은 "시간이 없어서..."라는 변명이다. - 에디슨 -
전구를 발명할 때 토마스 에디슨은 무려 2천번의 실험 끝에 성공했다.
한 젊은 기자가 그에게 그토록 수 없이 실패 했을 때의 기분이 어떠했는가를 묻자 에디슨은
말했다.
"실패라니요? 난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난 단지 2천번의 단계를 거쳐 전구를 발명했을 뿐입니다."
절대로 시계를 보지 말라. 이것은 젊은이가 꼭 기억해 주기 바라는 일이다.
천재는 99퍼센트의 땀(노력)과 1퍼센트의 영감(靈感) 으로 구성된다.
- 에디슨 -
천재 아인슈타인의 학창시절
아인슈타인 Einstein, Albert, 1879.3.14~1955.4.18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국적 : 미국
활동분야 : 이론물리학
출생지 : 독일 울름
주요수상 : 노벨물리학상(1921)
미국에서는 그의 이름을 기념하여 아인슈타인상(賞)을 마련하고 해마다 2명의 과학자에게
시상하고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과학의 천재를 말해 보라고 하면,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아인슈타인이 아닐까 싶다. 이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결코 쉽지 않은 그의 이론을
이해해서라거나, 그가 말년에 가졌던 사상적 측면을 공감해서도 아닐 것이다 단지 다른
과학자들 보다 그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우리들에게 많이 들려왔고, 그의 이론들이 기존의
이론들을 완전히 뒤엎을 만한 위대한 것이라는 막연한 동경심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토록 천재성을 인정받은 대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을까?
아인슈타인은 1879년 3월 14일 남부 독일 울름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족들에게 지속적인 걱정거리를 안겨주곤 했는데 그 첫째가 지나치게 머리가 커서 기형아가
아닐 까 하는 점이었다. 그의 뒷머리가 들어갈 즈음에는 지나치게 살이 찌기 시작했고,
거의 말을 하지 않고 혼자 놀기만 해서 벙어리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게 했다.2년 6개월이
지나자 거의 정상은 되었으나,자신이 말한 내용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습관을 7살까지
지니고 살았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다분히 신경질적이어서 여동생을 다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사고를 치기고 했다. 그러한 그를 가르쳤던 교사들의 평가는 한결같이 나쁘기만 했다.
그가 공립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구구단을 외우지 못했고, 반사신경이 너무 둔하여 늘 엄한
교사로부터 손바닥을 맞아야만 했다 계산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었고 그나마 틀린
답을 내놓기 일쑤였다. 아무도 그가 수학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9살에 뉴욕의
루이트포르트 김나지움에 진학했는데 그 학교는 인문주의 교육을 주로 하는 학교 였기 때문에 언어 기억력이 부족한 그에게는 큰 고통거리였다. 라틴어는 "양", 그리스어는"가"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급기야는 그를 담당한 그리스어 교사가 "너는 제구실을 해 낼 인물은 못될 것
같다."는 예언을 하게 만들었다. 뒤에 그는 결국 학교를 중퇴하고 마는 데 7학년 때 만났던
그리스어 교사의 퇴학 권고 사유는 "너의 존재가 내 학급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한다."는
것이 었다.
이러한 교사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은 뒷날 모든 사람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천재 과학자가 되었다.
훌륭하고 영감있는 모든 것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 의해서 창조된다.
- 아인슈타인 -
교사의 임무는 독창적인 표현과 지식의 희열을 불러 일으켜주는 일이다. - 아인슈타인 -
보고 이해하는 기쁨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 아인슈타인 -
분노는 바보들의 가슴속에서만 살아간다. - 아인슈타인 -
오직 남들을 위하여 산 인생만이 가치 있는 것이다. - 아인슈타인 -
그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22세에 사업에 실패했다.
23세에 주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24세에 또 사업에 실패했다.
26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29세에 의회 의장 선거에 낙선했다.
31세에 대통령 선거에 낙선했다.
34세에는 국회의원 선거에도 낙선했으며,
39세에 또다시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했다.
46세에 상원의원 선거에 낙선하고,
47세에 부통령 선거에낙선하고,
49세엔 상원의원 선거에서 또 낙선했다.
그러나 51세에..
그는 드디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꿈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링컨은 켄터키주(州)
호젠빌 출생.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노동을 하였기 때문에 학교교육은
거의 받지 않았지만, 독학하여 1837년 변호사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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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임 스틸.. 헝그리.. 엄마 왜 안와..ㅠ 배고픈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