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베이와 인접한 산호세(San Jose) 근교의 작은 호텔. 아침 안개가 가득하다. 아침 일찍 출발한 버스가 내륙 쪽으로 방향을 잡아 어느만큼 달려가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열린다. 미국 서부 여행 네쨋날인 10월 21일(토)의 여정은 샌프란시스코로부터 동쪽으로 200km쯤의 거리에 있는 요세미티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 탐방. 요세미티 계곡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웅장한 바위산의 위용을 마주하고 주변 자연의 경이로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 센트럴 밸리의 동쪽을 연하는 99번 도로는 수많은 작고 큰 타운과 마을을 끼고 달린다. 땅이 넓은 만큼 드문드문 한 타운이나 마을이기는 하나 모두가 한가로운 풍경 속에 있다. 두 시간 여 150km쯤을 달려 도착한 곳은 메르세드(Merced)라는 이름의 작은 도시. 그 이름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서 발원한 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관통해서 서쪽으로 흐르는 강 이름인 메르세드 강(Merced River)의 이름과 같다. 이곳에서 요세미티 공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던 길을 왼쪽으로 꺾어서 동쪽으로 달려가야 한다.
오늘의 점심은 미국인들이 간편 점심으로 즐겨 드는 햄버거. 점심을 들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지만 요세미티의 길목인 이곳 메르세드에 있는 햄버거 맛집 인앤아웃 버거(In N Out Burger)라고 한다. 들락날락 햄버거? 신선한 로컬 푸드 조달 및 엄격한 식자재 관리로 정평이 나 있다는 이 햄버거집은 캘리포니아 지역에만 프랜차이즈된 밋집이어서 한 번쯤은 들려야 하는 음식점이란다. 패스트 푸드라는 선입견이 없지 않았지만, 맛 만큼은 품질 보장(Quality You Can Taste)이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침샘을 자극한다.
우리 단체 여행객의 메뉴는 쇠고기버거에 감자 튀김과 콜라 한 잔. 스탠다드 주문품이다. 양파와 양배추가 치즈, 쇠고기 다짐 구이와 함께 먹음직스레 들어있는 햄버거는 맛이 아주 좋다. 이웃 네바다에서 생산된 감자로 만들었다는 감자 튀김 맛이 특히 신선했다. 시장이 반찬인 걸까? 문득 햄버거야말로 영양의 균형이 잘 잡힌 실용의 영양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햄버거는 우리가 경계해야만 하는 패스트 푸드라는 나의 고정관념이 일시에 사라졌다. 우리의 김밥마냥 채소와 고기, 탄수화물과 단백질 등이 이 단 두 가지의 메뉴에 집약된 대중 음식, 실용을 중시하는 미국인다운 사람들의 간편식이라는 생각도 든다. 시간을 아껴써야 하는 한국식 그룹투어인지라 앞으로 일주일쯤 남은 여행기간 동안 서너 차례의 또다른 햄버거를 먹을 거라고 한다. 각각의 맛이 어떨지가 궁금해진다. Habit이라는 낯선 브랜드의 햄버거가 앞으로의 점심 식사 메뉴에 들어있는 데, 버거킹, 맥도날드는 물론이고 웬디스와 서브웨이가 식단에 오르지 않을까?
메르세드로부터 북동쪽으로 한 시간쯤의 거리에 마리포사(Mariposa)라는 작은 타운을 지나간다. 요세미티 공원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은 인구 천 여 명의 작은 타운이지만 역사가 깊은 곳이라고 한다. 서부개척지대에 미국의 군대가 서부 연안지대로 진출하기 전의 교두보로서 이곳에서 아메리컨 인디언과의 전쟁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의 점령을 시작으로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지로 그 영역을 넓혀나갔다고 한다.
유럽인의 아메리카 진출 이전의 대륙에는 약 5천 만 명의 원주민이, 많게는 약 1억 명으로 추산되는 아메리컨 인디언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지역에 거주하던 원주민은 아화니치(Ahwahneechee)라는 부족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당시 약 30만 명에 달하던 그 부족의 사람들은 1850~1851년의 마리포사 전쟁(Mariposa Wars)을 통하여 대다수가 희생되었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이 이곳에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 나비들의 많은 군락지가 있었던 때문에 이곳의 이름을 스페인어로 나비라는 뜻의 Mariposa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화니치 부족을 토벌한 당시 미국의 기병대는 그 무용이 뛰어났으며, 그 이후에도 마리포사 대대(Mariposa Battlion)라는 이름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마리포사 타운으로부터 요세미티 공원의 서문으로 이르는 길은 미국 서부의 평지답지 않게 길이 굽고 계곡이 깊어지기 시작한다. 계곡 사이를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많지는 않지만 계곡 양편으로 솟아오른 산세는 매우 가파르다. 11월부터는 악천후의 날씨로 인하여 도로가 봉쇄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계곡을 거슬러 오를수록 좌우의 산세는 험해지고 숲은 두터워진다. 이어서 거대한 암벽이 좌우로 병풍을 두른듯 이어진다.
버스가 처음으로 정차한 곳은 오른쪽으로 역광을 받아서 더욱 눈부신 물보라를 일으키며 폭포수가 쏟아져내리는 광경이 보이는 곳이다. 이름하여 면사포 폭포(Bridalveil Falls), 흘러내리는 물보라가 새하얀 실루엣의 면사포를 떠올리게 한다. 왼편으로는 요세미티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초장대 바위가 서 있다. El Capitan이라는 이름의 바위채, 스페인어로 캡틴(Captian) 또는 치프(Chief)라는 뜻의 이름이다. 바위의 정상 고도가 2,308m, 바라보이는 이 단일 바위채의 솟아오른 높이만 914m이다. 요세미티의 돋보이는 대장바위의 하나다.
때로는 가암절벽으로 이어진 바위벽은 2단으로 흘러내리는 요세미티 폭포(Yosemite Falls)에서 그 경관의 절정을 이룬다. 길게 2단으로 이어져내리는 폭포는 그 길이가 739m, 윗쪽의 폭포는 440m에 이른다. 이 폭포의 아래쪽 근처까지는 숲속의 오두막 롯지촌으로부터 걸어서 아름드리가 넘는 소나무, 세콰이어, 삼나무, 측백나무 따위의 울창한 숲속 길을 걸었다.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촬영 포인트에서는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남문을 향해 돌아나오는 길 어디쯤에서는 요세미티 공원을 가장 높은 곳에서 조망해볼 수 있다는 뷰 포인트, Tumnel View에서 잠시 멈췄다. 해발고도 2,199m. 동쪽으로 멀리 높이 2,699미터의 요세미티 최고봉 하프 돔(Half Dome)을 위시하여 즐비한 바위 준봉들이 보이고 계곡을 따라 요세미티 계곡의 아스라한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남문을 향해 30분이 넘게 가파르고 굴곡진 산허리의 길을 아슬아슬하게 내려온 요세미티에서의 하루 반쪽의 관광. 험준하기 그지없는 3,000평방km가 넘는 광대한 공원의 극히 일부 만을 접한 셈이다. 공원이 품고 지니고 있는 것들을 보고 느끼기에는 역부족이 아닐 수 없었다. 산과 바위, 호수, 폭포와 시내(brook), 원시림의 숲과 초원, 그 속에 기대는 수많은 동물과 식물의 생명체... 그 어느곳보다도 자연의 다양성이 크고 풍부한 곳이 요세미티라고 한다. 그래서 요세미티 공원은 "크고도 작다"고 말하는 지 모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환경 운동가 죤 뮤어는 요세미티를 자연의 모든 특별한 사원 중에서도 가장 더 장엄한 곳(by far the grandest of all the temples of Nature)이라고 말했다. 한편 요세미티는 미국 자연환경 보전과 공익적인 보호 차원의 국가적 노력의 단초를 제공한 곳이기도 하다. 요세미티 밸리는 1864년 링컨 대통령의 승인으로 미국 최초의 자연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다. 1872년 국립공원제도가 만들어지면서 Yellowstone 공원이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의 일이다.
이후 1890년 요세미티 역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지엑에서 요세미티를 국가 자연보전지역, 더 나아가서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도록 노력하고 지속적인 자연 환경 보호 활동을 전개한 사람이 있다. John Muier라는 자연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데 그는 이 지역을 기반으로 Sierra Club이라는 국제 환경보호 활동 조직을 만들어 지금까지도 국내외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지난해 펴낸《자연을 사랑하는 법》이라는 수필집의 두문에 쓴 "사람은 자연과 함께하는 발걸음에서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말도 그가 한 것이다. 자연의 경이로움, 이번의 요세미티 여행에서도 짧은 시간이지만 생각보다도 더 많을 것들을 얻은 것 같다.
장대한 화강암 바위가 거대한 성채의 요새, 신비로운 자연의 성지와도 같은 느낌으로 나를 압도했던 요세미티. 그 장대함이야 솟아오른 바위벽 준봉들을 눈으로 보며 실감할 수 있었지만 그 거대한 바위산과 계곡이 품고있는 보다 다양한 모습은 사실 제대로 살펴볼 수 없었다. 이곳의 사진과 그림 등을 전시하는 Ansel Adams라는 사진작가의 갤러리와 요세미티 방문자센터도 시간관계상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시에라 네바다의 또다른 공원에서 볼 수 있다는 키가 130m에 달한다는 General Sherman Giant Sequoia 나무, 수령이 4,800년을 넘는다는 Bristlecone Pine 소나무도 물론이었다. 큰 아쉬움이 남지만 요세미티보다도 더 장관이라는 다음 여정의 서부 캐년 여행에 기대를 보태며 우리는 오늘의 기착지인 Bakersfield라는 도시를 향했다. (2023.11.16)
첫댓글 요세미테 국립공원 여행 추억이 생각
납니다. 그런데 수년전 대형화재로
수많은 거목들이 소실되었다니
안타까워요
국토면적이 넓은 미국, 캐나다, 중국, 스칸디아반도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역시 땅이 넓어야 그만큼 장대한 자연 유산을 가질 수 있단 것을 절감했지요. 설악산, 한라산, 금강산, 백두산은 한국적으로 아름다운 산들이지요. 타임캡슐을 타고 다시 못볼 그랜드캐년, 모하비사막, 요세미티, 록키 산맥을 회상해보면서 다녀와서 기록해 두었던 기행문도 다시 읽어보게 됩니다. 늦기 전에 가족여행 잘 다녀오셨습니다.
요세미티 역시 못 가본 곳이라 우선 부러운 생각부터 듭니다. 더 늙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데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네요.
사진만 봐서는 나무의 굵기가 어느쯤인지 가늠하기가 어렵군요. 구경 잘 했습니다.
요세미티 폭포로 가는 산책로 옆의 나무들이 이 정도인 것들이 많습니다~
옐로우스톤과 요세미티는 처음으로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원의 효시가 되었지요. 이전까지는 현대적 개념의 공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자연을 제대로 관리하고 보호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문화재를 보호하듯....2015년 5월, 저는 요새미티공원에서 1박2일 있으면서 집사람과 함께 폭포수의 원점까지 등산을 했던 추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2000고지 이상 등하산하는데 온종일 걸렸습니다. 캘리포니아에 가시면 In N Out 햄버거를 꼭 드셔야 합니다....ㅋㅋ
소나무의 굵기가 어마어마하군요.
소나무가 저렇기는 어려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