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94/어느 봄날]“오춘떡같이 일을 잘허네잉”
늙은 아버지를 늘 마음에 걸려하는 바로 밑 애틋한 여동생이 또 왔다. 시골(친정)만 왔다하면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동생은 어제 아침 8시 반부터 꽃씨 바구니를 챙겨들었다. 대문앞 30여평의 공터(40여년만의 귀향을 기념한 ‘동네사람들을 위한’ 꽃밭)에 각종 꽃씨를 두어 시간 심었다. 괭이로 골을 파고, 동생은 심고, 흙을 덮고, 물을 뿌리는 작업은 힘들었어도 보람졌다. 메리 골드, 백일홍, 맨드라미, 뻐꾹나리, 봉선화, 해바라기 등이 가득 피어나리라. 엊그제는 뒷산에서 진달래 몇 뿌리와 개나리를 꺾어다가 울타리 삼아 심고 물을 몇 번 줬더니 '자리'를 잡은 것같다. 첫해에는 아버지와 꽃밭을 만들었는데, 올해에는 여동생과 함께 만드는 꽃밭. 꽃을 싫어하는 자가 있을 것인가. 할머니들이 가족들이 오면 '포토존'이라고 찾으니, 이 아니 좋을손가.
들판 논 600평에 옥수수를 심어 3주가 넘었는데 ‘무소식’이어서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하루이틀 사이에 80%는 올라온 것같다. 씨앗의 힘이라니, 무섭다. 그래서 서양 어느 시인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이 피어난다'며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 것이다. 솟아나는 옥수수가 좁은 비닐구멍에 막혀 제대로 뻗지 못하므로, 일일이 쑤욱쑥 자라 올라오도록 구멍을 넓혀주고 흙으로 '북'을 주어야 한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한 고랑이 80m인데, 모두 28고랑. 동생이 또 팔벗고 나섰다. 불감청고소원. 오전 2시간 꼬박 매달렸는데, 일곱 고랑 작업을 했다. 동생이 있으니 점심 걱정도 없다. 비빔국수를 ‘만나게’ 먹고 ‘한 숨 눈 좀 붙이라’는 당부를 뒤로 하고 뒷산에 올라 두릅순-엄나무순-고사리를 1시간여 동안 꺾었다. 갑자기 30도를 육박하는 여름날씨에 진달래가 숨을 죽이고, 취나물이 솟아나고 있다. 비 오고나면 고사리가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겠지. 어느새 고사리 꺾는 때가 왔다. 고사리는 ‘꺾는 손맛’이 신바람이 날 정도로, 허리 아픈 줄도 모르게 재밌고 좋다. 두릅순도 좋지만 엄나무(개두릅) 순이 더 좋고, 최고로 치는 것은 옻순이라 한다. 이 순들을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먹보시라. 얼굴이 미소로 절로 펴지는 것을 느낀다.
오후 3시반, 몰래 들판 논으로 향했는데, 동생이 또 달려왔다. 5시까지 여섯 고랑 작업을 하다. 남은 고랑이 아직도 11개고랑. 아이구, 허리야. 내일 하루종일 해도 못하겠다. 까치가 옥수수씨앗을 파먹을 걸 염려했지만, 그런 것같지는 않다. 쫑긋쫑긋 솟아나는 옥수수 여린 잎새들이 일곱 살 손자마냥 한없이 예쁘다. 여전히 소식이 없는 건 씨앗이 곯은 때문이리라. 기쁨 반, 속상함 반. 수확하여 지인들에게 나눠줄 생각을 하면 힘이 난다. 하지만, 이건 정말 힘든 일이다. 혼자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팍팍할 일인가? 도저히 못할 일이다. 농사를 농기계가 다 해주는데, 무엇이 힘드냐고 묻는가? 어불성설. 와서 30분만 허리를 굽혀 보라. 말 함부로 하면 안된다. 오늘 일을 전폭적으로 도와준 동생이 고맙고 예쁘고 너무 좋다. 나보다 손이 훨씬 빠르다. 어쩌면 저렇게 일을 잘 할까? 내가 불쑥 한마디 했다. “오촌떡(어머니의 댁호宅號)만큼 일을 잘허네잉” 동생은 “그려? 내가 엄마만큼이나?” 하며 웃는다. 6학년 4반, 늘 동생이 아니고 누나같은 존재이다. 큰딸이 무슨 숙명이라고 친정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동생, 오죽하면 아버지는 동생의 별명을 '최(심)청'이라고 했을까? 그랬다. '봄만 오기를 기다리던' 대춘녀待春女, 우리 어머니는 ‘일 선수’였다. 오죽하면 여자몸으로 ‘상머슴’만큼 한다고 했을까? 겨우내 움추린 몸이 봄이 오자마자 밭으로, 논으로 내달렸다. 쑥을 얼마나 많이 며칠을 캤으면 대처의 자식들집에 택배로 하나 가득 보냈을 것인가? 실제로 내가 캐보니 장난이 아니던데, 올 봄에 어머니의 그 정성에 새삼 감격하며 흐느꼈다. 땅밑에서 천년만년 영면하시지만, 얼마나 심심하실까? 당신 자식들이 살아가는 것들을 다 보고 계실까?
점심에 따온 엄나무와 두릅순을 데쳐 먹는, 혀에 부드럽게 '감기는 맛'이라니? 쌉싸름한 머위무침은 또 어떤가? 봄나물은 모두가 보약이라고 하지 않던가? 쓴나물 데온 물이 고기도곤 맛이 이쎄'에 다름 아니다. 아이야, 박주산채일망정 없다말고 내어라. 하이고, 오늘 동생 덕분에 작업도 많이 하고, 만난 것도 앉아서 대접받으며 많이 먹었다. 몸뗑이는 천근만근, 힘은 들어도 매우 흐뭇했던 어느 봄날의 일기. 아이-아이-, 봄날은 간다. 가객 장사익의 부르는 '봄날이 간다' 노랫말이 얄궂기만 하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 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 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