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담D의 죽음
평화롭고 일상에 젖어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에서
사건의 시작은 마담D의 죽음입니다.
공교롭게도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같은 날이죠.
마담D가 상징하고 있던 것은 쇠약하고 불안불안하던
2차대전 직전의 세계 평화를 암시하는 듯 보입니다.
뮤슈 구스타프와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 덮치는 모든 위기는 결국
파괴된 평화와 숨겨진 진실 때문입니다.
유언장을 자연사 했을 때와 살인 당했을 때의 경우에 따라서
다르게 작성한 것을 보아도
마담D가 불안해 하던 이유도 곧 붕괴할 평화를 예감했기 때문이겠죠.
5. 열차는 보리밭에서 멈춘다. - 폭력에 의해 멈춰진 일상
보리밭에서 열차가 멈추는 것은 점령군에 의해 장악당한 질서를 의미합니다.
불명확한 신분증을 소유한 제로는 점령군들에게 항상 끌려나갈 위기에 처하죠.
그 때마다 무슈 구스타프는 그를 위해 떨치고 일어나
"이 파시스트 새끼들아~"를 외치며 맞서 싸웁니다.
전쟁과 인류애가 열차 칸 안에서 대립하는 장면이지만
무력과 평화가 맞서 싸우듯 항상 결과는 뻔합니다.
무슈 구스타프의 열과 성을 다한 서비스를 경험하지 못한
러시아 군에게는 더더욱.
영화의 말미에서 군인들이 투숙하던 호텔에서
드미트리가 구스타프에게 총을 쏘기 시작하자
총소리를 들은 군인들이 모두 달려나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맞은 편 현관에 대고 서로 총질을 해대는 장면은
감독이 전쟁을 얼마나 혐오하고 경멸하는지,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통제불가하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명장면입니다.
6. 모두 각자의 해답이 있다. 그리고 그 해답은 뭉칠수록 강력해진다. - 십자 열쇠 클럽
탈옥에 성공한 구스타프는 자신이 속해져 있는 비밀결사인 십자열쇠 클럽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합니다.
비밀결사 이름이 재미있게도 이 영화에서 열쇠는, 케잌만큼이나 매우 의미있는 소품입니다.
영화 첫장면 작가동상(이 사람은 이름도 없습니다. 그냥 Author라고 동상에 새겨져 있습니다.)에
독자들이 찾아와서 걸어놓은 열쇠들처럼,
Author가 처음으로 구스타프와 욕탕 너머로 대화를 나눌 때 무스타파 뒤에 걸려있던 열쇠 보관함처럼
주렁주렁 달려있는 열쇠는 고색창연한 호텔의 상징이자
각자 자신의 문제를 푸는 열쇠인 셈입니다.
그 열쇠들이 구스타프를 돕기 위해 연대하여 결국 구스타프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게 됩니다.
전세계에 퍼져있는 회원들이
서로에게 다급한 일이 생길 때 마다 만사 제쳐놓고 서로를 돕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미소를 머금게 되는 흐뭇한 모습니다.
(구스타프가 교환원이 연결해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제로에게
자신이 어떻게 불가능한 미션들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를 묻는 대사는 정말 압권입니다.)
다행히도 그 열쇠 클럽 회원들은 모두 자신들의 수제자가 있어서
다급한 일을 처리할 때 그들의 일을 넘겨받게 되죠. (Take over~)
7. 영화예찬 혹은 back to the core
감독의 메시지는 아주 명확합니다.
영화란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영화가 굳이 현실적이고 실감이 날 필요도 없고
관객이 굳이 강한 현장감으로 정서적으로 주인공에 몰입할 필요도 없다고...
영화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며
더욱이 영화는 영화만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소녀가 공동묘지에서 책을 읽는 것과는
무스타파가 Author에게 마주앉아 이야기 하는 것과는
더 영화적으로 보여주고 더 독특하게 표현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알록달록한 호텔과, 만화같이 움직이는 케이블카의 모습
설원에서의 추격전까지
너무 영화적이어서 마음에 드는 그런 영화입니다.
*. 놓치기엔 아쉬운 소소한 것들
1. 구스타프가 산위의 수도원에 갔을 때 고해성사하는 격실 안에 들어가서 수도승으로 위장한 서지X의 고백을 듣습니다. 카톨릭 신도가 신부의 고해성사를 받는 셈이지요.
2. 저는 어떻게 보면 이 영화 자체가 영화 산업 자체를 돌아보고 예찬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회고하는 시대별로 그 당시 유행하던 화면비를 쓴 것을 봐도 그러하지만, 무슈 구스타프나 벨보이가 어찌보면 까탈스러운 관객들을 상대하는 영화인들의 모습으로 은유될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그들은 화려한 공간 안에서 돋보이는 유니폼을 입고 유려한 시들을 읊지만 정작 그들이 머무는 거처는 참으로 구석지고 궁색한 것도 영화인들의 외화내빈의 모습을 나타낸 것 같기도 합니다.
3. 시얼샤 로넌(아가사)의 얼굴의 흉터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참으로 궁금한 데 딱히 나오는 데가 없네요. 아시는 분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영화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바로 나가지 마세요.
중반 이후 자막에서는 우하단에 러시아 민속 춤꾼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나와서
멋드러진 전통무용을 선보이며 크레딧 마지막까지 함께 합니다.
첫댓글 흐 이렇게 깊은 뜻이,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군요
그냥 넘겨짚는 통밥이지요 ^^ 영화 보고 나서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가 정말 좋은 영화인 것 같더라구요.
와 정말 위에 말씀처럼 아는 만큼 보이는 듯요~
아름드리님 글 꼼꼼히 읽고 영화 꼭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