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도끼가 들어오지 않은
숲속에
진액을 흘리며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나무가 있었다
새들이 내려앉기만 해도
울음이 찌릿해지는
나무
비 그친
아침
들녘 한가운데
잎사귀마다 가득
물방울을 매달고 있는 나무가 있었다
물방울이 아니라
공기에 얼굴이 비치는
것 같은 나무
달이 굴뚝이 되어
불티를 내뿜는 밤이면
하늘엔
연기가 퍼져 은하수가 생기고
불티가 별이 되어
날리고
어떤 저녁엔
숲에서
그리고 어떤
새벽엔
들녘에서
식은
은빛 못을 주워 모아다
집에 창문을 하나
새로 내었다
불이 켜지는 가로등과
저녁나절의 햇살이 뒤섞여
있다
밤과
저녁이 구별 안 되는
황홀의 시간
빛이 있으라 하면
거기, 하루살이가 있다
가로등의 빛을 둥글게
휘감아
날개를 떨며
태양이 도는 소리를 내느라 여념 없다
나는 것만 생각하느라
우화하자마자
입이 퇴화해버린 단식가
하루살이
떼는 배가 고프면
일몰 속에서 일출의 신비를 안다는 듯
가로등을
휘감으며
이글거리는 알을 낳는다
갈대의 흰 털처럼 날린다
자선 근작시
바닥에는 시계와 제국이 있다
바닥에는 이동하는 사막이
있다
바닥에는 은하수나 성운이 있다
바닥에는 아이들 그림이 있다
바닥에는 벌레들이
기어가다가
남겨놓은 흔적이 있다
땅바닥에 반쯤 처박힌 채
녹슬어가는 부풀은 못대가리
곁에서
죽은
잠자리의 날개를 파먹는
개미들의 행렬이 있다
소년 때는 십오도 각도로 하늘을 보며
걷거나
반대로 십오도 각도로 땅을 보며 걷는다
흠씬 누군가를 두들겨 패거나
흠씬 누군가로부터 두들겨
맞거나
둘
중 하나뿐
소년 때는 사람들이 만든 세상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
소년 때는 하늘도 바닥
땅도 바닥
손도 바닥
하늘바닥 땅바닥
손바닥에
세상에 없는 것들만 올려놓거나 내려놓거나
때로는 움켜쥔다
성년이 되면 하늘은
사라지고
땅바닥 같은
손바닥만 남는다
그리고 바닥은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다고
절망한 사람에겐 더 큰 바닥으로 나타난다
바닥은
바다
수천
미터 심연이 있다
*장 뒤뷔페 화집,
『우를루프 정원』,
94쪽(장 뒤뷔페의
말).
교각은 나날이
튼튼해져간다
사내의 잠으로 떠받쳐진 교각 위 도로로
자동차들은 새벽이면 더 날쌔지고 미끈해진다
물고기들은 자신의 속력을 주체하지
못해
물
위로 힘껏 뛰어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강물에서는 정말로 용수철 튕기는 소리가 난다
팅팅, 교각 아래 사내의 잠은
불안하게
긴장되어 있다
처음엔 교각 아래에서 자는 사내의 잠이 평온해보였다
강물이 사내의 잠에도 공평하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어느
날부터 교각의 벽에 조금씩 변화가 생겨났다
처음엔 주워온 듯한 낡은 자전거가 받쳐져 있었다
그러고 얼마 뒤부터 짐받이에 박스가
올려지기 시작했다
사내의 머리맡에도 변화가 생긴다
비닐봉지에 감자가 몇 알 담겨져
있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감자의 개수는 줄지 않았다
때때로 사내의 곁을 지나며 비닐봉지에서 감자 싹이 터서
사내의 잠을 감고 교각의 벽면을 타고
올라가는 생각에 빠지곤 했다
그러나 나는 사내가 한 번도 잠에서 깨어난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산책을 나올 때마다 사내 곁을
스쳐간다
여전히 낡은 자전거는 교각의 벽에 기대여 있고
짐받이엔 박스가 점점 더 높게 쌓여간다
사내의 머리맡에도 점점 더 많은 물건이
쌓여져 간다
날이 무더워지기 시작하자
사내의 머리맡엔 수박이 반통 랩에 싸여져 있다
비닐 랩에 덮여 더 붉게 보이는 쪼개진
수박의 붉은 속살이
사내의 잠을 더욱 동물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나는 사내를 스쳐서 강을 향해
걸어간다
점점 더 강이 넓어지고 풀밭이 나오고 저녁이 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나는 홍금강앵무를 날리는 또 다른 사내와 마주쳤다
앵무새도 개처럼 산책을 시키고
가끔은
날려주어야 한다고 사내는 주위의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한다
홍금강앵무가 뛰듯이 강을 향해 나아갔다가 공중을 한 바퀴 돌고
사람들의 머리 위를 스치듯이 지나 사내의
손에 다시 내려앉는다
헉헉 숨을 내쉬는 스프린터가 결승 테이프를 끊는 듯한
새의
비행(飛行)을 보며 구경꾼들은 탄성을
지른다
새에겐 공중을 나는 시간만 있을 뿐이지
땅에 내려앉는 공간 같은 건 없는 건
아닌가,
나는 그 순간 홍금강앵무의 화려한 비행을
비상이 아닌 거꾸러짐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홍금강앵무의 색깔보다 더한 내 정신의 채색과 허영일 뿐
내 몸은 벌써 저 건너 강변에 켜지는
마천루의 불빛에 별빛보다 반응한다
멀리 나갔던 강변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각 밑에서 잠을 자는 사내의 곁을 다시
지나간다
교각의 벽면이 노을을 받아 번지고 있다
곤충채집판처럼 교각의 벽면에 노을이
사내의 기억을 압핀으로 꽂아서 물들일 것 같다
염천에 더 질긴 그리움으로 생생해지는
능소화의 그림자 같은
노을이 교각의 벽면에 잠시 머물러 있다
벼에 뜨물이 드는 계절이 오면
코부랭이 아저씨는 마을 앞 논가를
지나다가
코를 한번 풀고 나서 나락을 훑어 입에 넣고
기막히게 껍질만 툭 허공에 뱉어내곤 했지
코를 팽팽 풀며 논가를 지나가는 아저씨의
발걸음을 따라
벼가 익어가는 계절이 온 거지
찰랑찰랑대는 논물이 땅에서
굳고
벼에도
힘이 맺혀 달게 새벽이슬이 구르던 날
나는 지난밤부터 결심해두었던
형의 반바지에 숨겨진 동전을 훔쳐다
논바닥에
던져놓았지
형은 꿈에도 내가 돈을 훔쳐냈는지 알지 못할 거야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새벽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세계가
내가 논바닥에 던져놓은 동전 같았지
하지만 장남인 형은 나보다 머리가 좋았어
아침부터 어린 누이는
물론이고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누이들까지
도둑 취급을 하며 회초리를 들 태세였어
하,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볼 재간이
없었어
물
한 잔 떠 먹는 것도 손가락을 까닥까닥하며
누이들을 부리는 형을
막내인 내가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굳세디굳센
우리 가족에겐 도저히 없었던 거야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막내 도둑은 본체만체하고
형은 누이들을 앞세우고 마을 앞 논바닥을
향해 달려갔지
뒤에서 형의 모습을 보니 여유마저 느껴졌어
코부랭이 아저씨가 코를 팽
풀며
동구를
향해 걸어오는 여름을 코앞에 둔 아침
아저씨가 나락을 훑어
입에 넣을 때마다 뜨물 맛이 공기에
배어나고
논바닥에서 빛나는 동전을 찾는
나락 껍질 같은 누이들의 눈망울,
여름이 오는 계절이면
새벽하늘에 올려다보는 아기 별자리로
반짝반짝 맺혀 있지
전북 정읍 출생.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
냄새를 풍기는 거울』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있다』
『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불탄 집』이 있음.
나는 아직도 박형준 시인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
**
이와 같은 고백을 나는 조금 먼 추억으로부터
빌어오고 싶다.
그러니까 우리의 첫 만남은 1983년 내가 열일곱 살 때이다. 시인은 나보다 한 학년이 높은 고등학교 문예반
선배로 시를 앓았다. 그 시절의 선배는 모두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처음으로 만난 그의 시는 원고지 무늬가 새겨진
칠판에서였다. 조금 긴 호흡의 시를 흐트러짐 없이 한 글자씩 네모 칸에 들이는 것을 나는 숨죽여
봤다.
거뭇한 수염이 삐죽
솟아나는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선배의 글씨는 겉멋을 부리지 않은 채로 소박한 기운이 반듯해서 오래전부터 참
좋아했다. 그 시절부터 나는 선배가 등단을 하고 이후로 계속해서 보내준 책의 겉장을 펼칠 때마다 속으로 끌끌
웃었다. “시는 문단에서 최고로 업그레이드 하면서도 글씨는 여적…….” 나는 그의 글씨에서 조약돌 비슷한 그늘의
선(善)이 비치는 것이 좋다.
선배에게
문학과지성사에서 이제 막 나온 첫 시집을 선물 받은 날에도 나는 선배가 먼 시절 칠판에 적어놓은 분필가루 날리는 시행들을
떠올렸다. 그가 밤새 고뇌한 시행들은 등굣길의 보랏빛 라일락향보다도 더 뭉클했다. 또 학교 울타리를 훨훨 날아가는 자유공원 비둘기를
뒤쫓는 시행은 시를 앓는 후배들을 이곳저곳으로 이끌었다. 아마도 후배들은 그의 포로임을 좋아했을 것이다. 또 어느 날의 시행들은 불쑥 바다를 건너온 정읍의
노을이 돼서 문예반실로 갑자기 뛰어들었다. 그때 시인이 품었던 노을은 “시가 도대체 뭔지” 눈만 껌벅거리는 아해들을 부끄럼으로 불타오르게 했다.
이 모두가
손을 뻗으면 쉽게 만져지는 어제의 실감(實感)이었다. 그러다 보니 선배의 시는 언제나 내게
“이해한다” 이전에 다가오는 뜨거움이었다. 그렇게 마냥 좋아라고 했다. 그 무한정이 내가 만나는 그의 시였다.
어쩌면 나는
그의 시를 방관하고도 좋아했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
시인의 근작을 살핀 이번 일은 내게 그의 옛
걸음을 뒤따르게 하였다.
**
메트로놈처럼 한 음씩 그리고 한 걸음씩 뒤로
뒤로 그의 근작을 따라갔다. 그리하여 시인이 오래전에 붉게 토해낸 말씨까지 찾아보도록 하였다. 나도 모르게 작동하는 뭔가가
있었다. 멀고 가까운 기시감도 있었다.
동시에 박형준 시의 표정을 이미 잘 포착한
이윤학, 김춘식, 최현식, 이광호 등의 빛나는 글이 그의 시 가까이에 있음을 알았다. 시인의 주위에 이처럼 찬란한 빛들이 널려
있었다니! 선험적인 글이 있어서 나는 시인의 ‘다른’ 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특히 김춘식의 “박형준이 자신의 시집을 출간할 때마다 보여 준 핵심적인 이미지인 맹인, 유성, 거울, 신발, 흰 손, 우물, 불탄 집, 팔찌” 등의 주목은 아주 선명해서
놀랐다. 그의 시가 “감각적 비유나 상징이라기보다는 더 큰 상상력의 세계와 맞닿아 있는 알레고리로
보인다”는 지적은 최근의 작품에서도 유효하다는 내 소견을 묶어두고 싶다.
**
「바닥 예찬」을 떠올리면서 나는 시인의 산문을 뒤좇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그 길은 오래된 옛길이었다. 나는 촉촉한 시인의 산문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놓쳤던 이야기를 다시 찾아낸 일이
많았다. 시인이 되지 않았으면 공원(工員)이 됐을 것이라는, 공장의 먼지가 뒤섞인 도시에 살았던 시인은 인천의
수문통시절을 일테면 다음과 같이 얘기한 적이 있다. 그의 비애(悲哀)가 자세히 남아있는 데는 나름의 문학적 사연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교길에 시장으로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소금창고 속 같은 목조건물의 틈바귀로
저녁햇살이 쏟아져들어왔다. 시장 사람들은 따로 화장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바닥의 목재를 뜯어 볼일을
봤다. 목재를 들어올리면 화장실이었고 닫으면 시장바닥이었다.
그
밑으로 바닷물이 흘러갔다. 언젠가는 내 또래쯤 되는 갈래머리 소녀가 사장바닥을 열고 흰 엉덩이를 드러낸 채
바다를 향해 오줌 누는 것을 바라본 적도 있었다. 소녀의 흰 엉덩이와 낡은 목조건물 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저녁햇살과 막 사춘기가
시작되던 내 나이의 서글픈 어울림. 그곳에서 바다는 바닥일 뿐이었고,
푸른색의 갈망을 잊어버린 낡은 생의 쓰라린 뒤척임일 뿐이었다.
ㅡ 「자식의 발자국을 되밟아가는 어머니처럼」 ,
산문집 『아름다움에
허기지다』 부분
도시의 원체험 공간인 수문통시장에서의 아픔은
성장통을 멈춘 시인에게 “통증이었고 두려움이었고 조로(早老)하고 싶은 아득한 바닥이었다. 그런 바닥에 백중사리 때 비까지
내리면, 수문통 사람들은 소풍날처럼 바빠졌다. 형과 누나와 내가 차오르는 바닷물을 연신
퍼내다보면, 어느새 바닷물이 수챗구멍으로 빠져나가며 꾸르륵대는 소리가 식탐에 빠진 노인이 배불리 식사한 뒤 내는
트림소리처럼 들렸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바닷물을 헤치고 등굣길에 나서면 동네 아이들은 모두 신이 나 소리를
질러댔다”
시인에게 있어서 ‘바닥’은 어떤 시였을까. 그 바닥은 얼마나 깊고 넓은 시였을까. 한 시절에는 무릎까지 차오른 물의 깊이가
‘체험’이었다면 이후로는 얼마나 더 깊은 물을 퍼내야 하는 시였을까. 시인의 ‘바닥’에 대한 기원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이에게
어느 시간의 공(空)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이후로 그의 공(空)은 무엇이었을까, 비유와 상징을 넘어서는 하나의 알레고리임을
암시하는 그의 시세계는 이제 무엇이란 말인가.
**
바닥은
바다
수천 미터 심연이 있다
ㅡ 「바닥
예찬」 부분
**
거기... 어디쯤.
박형준의 시가 태어나는 것을 나는 이번에도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직도 시인을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다만 이번에는 수천 미터 심연에 그가 적어놓은 시를 만났다. 분필가루 날리는 시는 그곳까지 어떻게 간
것일까.
글 · 이기인
| 200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