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에 삶은 소면, 순대, 돼지머리 눌린 것, 삶은 내장을 썰어 담고 돼지 뼈 삶은 육수를 부어 끓인 후 양념장을 넣어 밥과 함께 먹는 음식, 순대 국. 전국 어디를 가도 순대 국은 있으며 고장마다 특색 있는 맛을 지녔다. 우리와 친하기는 하지만 알고 보면 순대는 우리 고유의 음식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부뎅’이라 하고 스페인에는 ‘효리소’가 있으며 이름은 잘 모르지만 베트남이든 동유럽이든 유사한 생김이 많다. 어디를 가든 뱅그르르 꼬부라진 순대가 먹음직스럽게 자리하여 이방의 곳임에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몽골제국이 유럽원정길에 장정들에게 양의 창자에 쌀과 채소를 넣어 지니고 다니도록 한 것이 유래하여 지금의 유럽 소시지가 탄생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 시대쯤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네 재래시장이나 뒷골목에는 늘 순대 국밥집이 있다. 장터의 후미진 끝에는 길목을 가로지른 천막이 존재하고 그 천막보다도 작은 허름한 순대 집은 안탉이 알을 품 듯 장작개비와 큰 솥을 따스히 보듬고 큰 김을 모락모락 피어 올렸다. 채에 걸러진 고기를 인절미 썰듯 바쁜 손놀림이신 안채의 할머니. 배꼽 시간을 알아차린 듯 펄럭이며 호객행위에 여념이 없던 붉은 장대 깃발. 눈에 띄는 깃발이 아니어도 바람결 타고 퍼지는 삶은 돼지 특유의 냄새나 주변 똥개들이 기웃하는 풍경으로서도 곳이 어디이고 무슨 광경이 사는지도 소상히 알듯하였다. 막 끄집어 올린 돌돌말린 희뿌연 순대가 긴 꼬챙이에 들려 너울너울 춤을 추면 어린 눈은 금세 휘둥그레 하였다. 고기 맛보기 귀하던 그 시절 그렇게 광경을 꼭꼭 채워 담았지만 통 털어서 너댓번이나 먹었을까. 어느 부위인지도 모를 온갖 돼지부위들이 총망라된 늘 따스한 순대 국 한 그릇이다. 독재타도를 외쳤던 때의 나의 학창시절의 보신은 늘 허름한 동네 시장의 순대 집이었다. 세상이 허기져 시작한 순대 집에서의 밀담은 늘 길었다. 역력히 지친 모습이었지만 순대 할머니는 우리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졸린 눈을 비비고는 국물을 데우고 간도 더 쓸어 내오곤 하였다. 그리고 헤어질 때는 “학생들! 공부나 잘 혀”란 말을 남겨두었었다. 할머니가 아픈 후렴을 늘 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대학생이라고 추켜세우고 달리 보아준 애틋함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안다. 얼마 전 산길을 내려와 늘 가는 학교 앞 순대 국밥집에 들려서다. 막걸리를 한잔 들고 막 오소리감투의 쫄깃한 맛을 음미하려던 참이었다. 젊은 친구와 아버지 인 듯 둘이 옆에 자리를 했다. 모처럼 만나는 것 같은데 둘은 시종 말이 없었다. 나올 법한 가족 이야기도 엄마에 대한 얘기도 없이 둘은 국밥을 시키고 TV를 응시한 채 가만 기다렸다. 싱겁다기보다는 괜한 슬픔이 느껴졌다. 잠시 후 아버지가 말문을 열었다. “ 어째 공부 할 만하니.”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하였다. “ 아버지가 힘드시지요.” 그런 아버지의 형색은 꽤 변변하지 않았다. 오랜만의 부자상봉인데 학교 뒷골목 순대 국밥집이란 장소도 그러하지만 모듬 순대 만 원 짜리도 없이 국밥을 달랑 시킨다는 것이 그들의 사정을 말해주는 듯싶었다. 그리고 또 잠시 불쑥 아들이 말을 꺼냈다. “아버지 술 한 잔 하셔요.” 아버지는 말 대신 머뭇하였다. 나는 그들의 어설픈 대화에 취해 막걸리 한 병을 다 비운 것을 까먹고 있었다. 아주머니도 연실 행주를 훔치고는 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데 있는 듯 보였다. “ 막걸리 한 병 더하고 국물도 좀 데워주고 간도 더 주면 안 될까요.” 아주머니가 느닷없는 주문에 놀라 나를 빤히 본다. 잠시 후 아주머니는 간에 순대가 담긴 두 접시를 들고 나왔다. 하나는 나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옆자리의 몫이었다. “오늘은 서비스가 좋네요. 한 턱 내는 거죠” 하자 아주머니는 그냥 웃기만 한다. 내 속 뜻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 일까. 일순 흐뭇하였다. 그 시절의 순대 할머니도 그러하였는데 아주머니도 마치 전수라도 받은 양 풍성하고 후덕하다. 순대를 안주삼아 뒤돌아 소주 한 잔을 비우고는 두 손을 모아 아버지에게 술잔을 건네는 아들의 모습이 차분하면서도 정겹다.
나도 막걸리 한 잔을 그들의 술 장단에 맞춰 바로 비웠다. 아버지가 깍두기를 집으며 나와 눈이 마주치자 뜻 모를 목례를 한다. 나도 따라 깍두기를 집으며 살포시 웃었다. 아주머니는 그런 나와 그들 모두를 총총 바라보며 역시 뜻 모를 미소를 짓는다. 좁다란 공간에 수더분한 감정이 일체로 살아 따사로이 숨 쉬는 틈이라니. 나는 순대가 흔하디흔하고 뒷골목을 전전하는 촌스럽기 짝이 없지만 푸짐하여 좋다.
솔직히 순대는 배고파 먹는 음식이라 해야 맞다. 그러한 순대는 가난함이 원천인지 지구촌 어디를 가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비록 천박하지만 내게 순대 국밥은 서정이 녹는 애틋함이며 어설픈 기억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아득한 꿈이고 허룩한 시골장터를 땀으로 지키는 무식한 옛 할머니의 순박한 정서이다. 그 시절 할머니는 "큰 일 나니께 딴 생각말구" 란 말을 가슴에 담고 하지 않았을까. 밖은 어느 참 땅거미가 짙더니 묵연한 밤이 찾아왔다. "학생들! 공부나 잘 혀." 오늘따라 그 말이 하늘에 별되어 총총히 가슴에 박힌다. "
(조성원 님의 수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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