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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의 정확한 개념 연구 界 dhātu
봄봄 추천 0 조회 143 15.02.08 18:39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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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5.02.09 10:49

    첫댓글 界를 요소/원소(element)로는 생뚱? 아닌가 하여...
    界의 자료를 찾다가... 갑갑하여 직접 어떻게 이해 볼려다...
    어휴~ 번역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번역하시는지... ㅠ
    어학 실력마저 없으니 영어로도 빠알리어로도 방법이 없네요.
    그냥 없앨려다가 그나마 자료로서 남겨 둡니다.
    대략... 동사로 표현하면 "나누어, 분류하여 담다/지니다/지니게 하다..."쯤,
    명사로 표현하면 "배당/할당/부담/지님.."쯤 되는 의미인 듯? 혹은 그렇게 되도록 하는 규격 틀/范?
    法<element로 영역한 이유도 이 때문?>과 緣起와 아주 관련성이 높은 단어인 듯하나 모르겠음. ㅠ

  • 15.02.09 00:50

    공부짓고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작성자 15.02.09 10:44

    dh?tu

  • 15.02.09 12:19

    <法(dhamma)을 관찰하는 3가지 방법>[=三觀]이 <界, 處, 緣起>입니다.
    경전에 있는 말이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외우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 '관찰해 본 적'이 없기에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15.02.09 12:24

    @아위자 답답한 상황이긴 매 일반이지만, 추측에 근거하여 '장님 더듬듯이' 생각을 표현해 보면요..........
    法(dhamma)을 <處>로 관찰할 때는 <색처와 무색처>라는 분류가 '가장 큰 범위의 분류'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분류할 때는 '산냐(想)'라는 것이 '處(아야따나)'와 깊은 관계[=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것 같더라구요...........

  • 15.02.09 12:36

    @아위자 반면에 ..... 法(dhamma)을 <界>로 관찰하는 경우의 해당경문을 보면요.........
    <處>의 경우와는 판이하게 더르게, '크게 분류하는 경우'를 발견하지 못했구요
    '대상의 숫자'만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오온>을 <處>로 관찰하면
    <색처>와 <무색처(=수상행식)>로 분류가 되는데 반하여, <界>로 관찰하면 그냥 <다섯개의 界>입니다.
    그리고 해당경문을 유심히 보면요 ..... 識이 대상인 <오온>을 명색으로 보고서 '그렇게 다섯 종류로 나누는 것' 같습니다. ....... 조심스러운 말입니다만.... <界, 處, 緣起>는 <識, 意, 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는 말.[=자신 없는 말임]

  • 15.02.09 13:17

    @아위자 '자신 없는 말'이지만 ... 혹시나 참조로 하실 수도 있으시므로 ...... 입을 엽니다.
    <心意識과 오온(=명색)의 관계>는 이미 '명색의 集'이 완성된 관계로 보입니다.
    거기에서 <識과 오온(=명색)의 관계>만을 따로 떼어서 볼 때, 그것이 완벽한 <界>의 모습이거든요....
    그러할 때, 心은 <그 界>를 놀이터로 삼아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어린이(=반야를 갖추지 못한,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청정하기는 하지만 '무명'이 잠재되어 있는)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른(=아라한, =반야를 갖춘)들은 種種界를 파악한(=꿰뚫고 있는, =반야를 갖춘) 분들로서 <界>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기에 <界>를 즐거워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 15.02.09 13:21

    @아위자 <法(dhamma)을 관찰하는 3가지 방법>[=三觀]을 잘 알고 있는 어른들은 .... 도무지 <法(dhamma)>이라는 것을 좋아할 수가 없도록 되는 모양입니다. 그러한 용도로 사용되는 용어가 <界>인 것 같은데요..........

  • 15.02.26 07:51

    @아위자 님 반갑네요. 번역이 마무리되어가서 며칠 전부터 '붓다의 재발견'이란 책을 쓰기 시작했네요. 불교와 칸트 동학을 연결해보려 합니다. 혹 도움 필요하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界문제는 界를 서로 다름이라는 분리가 아니라 서로 관련이라는 기회로 될 때 담마가 보이기 때문이죠. 어위자님과 저도 서로 다른 界에 있긴 하나 특정 연결고리가 확실히 있죠. 이것이 바로.....
    그래서 界를 선호하기 어렵죠. 무시하면 재미없지만 말이죠. ㅋㅋ

  • 15.02.26 08:12

    @아위자 계와 자신과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바로 ....
    나에겐 아위자님은 !!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 15.02.09 13:38

    '반야'를 갖추고서 대상[법이든, 명색이든, 일체든, 일체법이든 간에]을 보는 것이 <智見(=알고서 보는 것)>인데요.......
    <智見없이(=무명상태에서)> 대상을 대하는 것이 바로 '생로병사'의 원인이라는 것이 불교의 지적 아닙니까?
    <界>에 불과한 것, <處>에 불과한 것, <연기된 것>에 불과한 것을 붙들고 .......... 거기에 혹시 '본질'이, '실체'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기대를 해 보는 것이 중생들의 삶이고요...........

  • 15.02.09 13:47

    '아위자'의 견해로는 ...... 대충 그러한 의미에서 <界>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입적하신 고익진교수님과 그 제자 분들은 <界>를 '무척 고상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보았는데요....... "과연 그러한 의미로 부처님께서 <界>라는 용어를 사용하셨던 것인가?"에 대하여..... '아위자'는 회의적입니다........

  • 15.02.09 13:53

    @아위자 경전상 분명한 점은 ......... 識의 識住가 없으면 <界>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히 <삼계>에 관한 교설들이 그러합니다. <삼계>라는 '명색'에 대한 識住가 없으면 그것이 바로 <혜해탈>입니다.

  • 15.02.09 13:55

    @아위자 <七識住 二處>가 바로 그 점을 지적하는 교설입니다.

  • 작성자 15.02.09 16:38

    아위자님께 감사드립니다.
    界중에는 無爲界도 있네요. 열반의 동의어 인 듯 합니다.

  • 15.02.26 07:50

    無爲界란 무경계가 아닌 비경계란 뜻으로 보이네요.
    경계란 기회로 삼는다는 뜻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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