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릴 적 추억 속에서 가을을 떠올려 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가을 소풍과 가을 운동회가 아닐까 싶다. 가을소풍은 말 그대로 가을의 자연을 만끽하고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고 장기자랑을 하고 촌놈들이 평상시에 먹기 힘든 음료수와 계란을 먹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 반면, 가을운동회는 동네잔치 한마당이었다. 동네 어른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은 발표회를 앞둔 것처럼, 한 달 여 전부터 연습과 준비를 거치고 설레는 마음과 달리기에서 몇 등을 할까 하는 걱정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설치곤 했다. 청색과 백색 운동복을 입고 운동화도 신고, 운동화 없으면 고무신 신은 채로 학교에 들어서면 파란 하늘 아래 세계 만국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고 벌써부터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응원을 시작했다. 운동장에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 경기와 응원전을 펼치면 점심 무렵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어린 동생들까지 점심 도시락을 한 아람을 안고 들어와 운동장 한쪽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같이 응원을 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조금 전까지는 어린아이들의 소리였지만 어느덧 온 식구들 온 동네 사람들이 다함께 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쳐 응원을 하노라면 벌써 모두가 승리한 운동회였다.
점심때가 되면 친구들과 그리고 동네 이웃들까지 함께 둥글게 앉아 보자기에 싸온 도시락을 펼쳐 놓았다. 김밥과 가짓수 별로 없는 반찬이지만 옛날 임금님도 이렇게 맛있는 밥상을 못 받았을 그런 꿀맛 같은 점심이었다.
부모님과 같이 뛰고 부모님이 오지 못한 친구들은 이웃 어른이 부모님이 되어 같이 뛰면서 또 다른 가족을 얻는 보람도 있었다.
4, 50대 이상 어른들에게는 이렇게 오래 전 향수처럼 가을 운동회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요즈음은 학교 운동장이 콘크리트 아파트로 둘러싸이고, 농촌 지역은 어린 아이들이 없어서 아름다운 추억을 뒤로한 채 폐교된 학교가 많아졌다.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고, 그만큼 변했다.
최근 가을운동회를 한 학교를 직접 보지 못하고 언론에서나마 가끔 소식으로 듣는다. 운동회를 평일에 하니 맞벌이 학부모가 많아져서 참석하지 못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한다. 참석한 학부모도 자기 아이만 보기 위해 참석하고 온 동네 떠나갈 듯한 응원전도 안 보인다고 한다. 가족과 동네 사람들이 다함께 모여 맛있게 먹었던 점심시간도 식당에서 평상시처럼 배식으로 한다니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을 빼앗긴 것 같아 왠지 씁쓸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지금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는 우리들이 어릴 때 느꼈던 향수를 그리워하고 맛보는 것처럼, 운동회 풍경이 옛날보다 많이 변하고 새로워졌지만, 또 다른 동심 속에 추억할 수 있게 가을운동회가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옛 것에 대한 보존 노력이 우리들의 책임이고 또 다른 숙제가 아닐까?
정원선, 평화동마을신문 발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