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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경우에도, 평소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교회에 잘 나오지 못했던 사람일지라도 감사주일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하나님의 집에 나아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된 예배를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 본문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이 물질이 아쉬워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천지 만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이렇게 명하신 이유는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이 전혀 없으면 형식적인 감사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할 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2장 28절에서 29절에 나온 것처럼 표면적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이면적 유대인 마음 심령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드리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주일 아침에 나와 호주머니에 있는 것을 꺼내 드리는 감사가 감사입니까? 요즘 아이들 용돈 천원짜리 몇장 주면 장난하냐고 그런답니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 드리는 것이 없는 감사가 계속 반복되다보면 형식적인 감사의 절기만 될 뿐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절기는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정성이 담긴 감사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평소에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을 위해 언제부터 준비하셨습니까?
저는 가족과 일년 계획을 세울 때 감사의 절기는 이렇게 지키자고 정해놓고 지킵니다. 상황에 따라 넉넉하면 많이 드리고 어려우면 적게 드리고 하지 않습니다. 미리 기도하면서 마음의 결정을 해놓고 이날을 위해 일년을 준비하고 맞이합니다. 그러면 어떤지 아십니까? 이 감사절이 그렇게 기다려질 수가 없어요. 빨리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하게 되면, 있을 때는 드리고 없을 때는 드리지 못하는 사람과 얼마나 큰 차이가 나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오늘부터 시작하여 153일 남았는데 11월에 있을 추수감사절을 위해 일년동안 준비하면서 마음에 결정하고 살아보십시오.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시편 116편 12절을 보면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라고 하면서 시편기자가 진정한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감사의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더불어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 힘써 감사하되 찬양으로 감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늘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아갈 때 우리 자신이 행복해질 뿐만 아니라 세상이 밝아집니다.
“여보, 고마워요.” “수고 많았어요.” “잘 먹었어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이런 말 한마디가 가정을 얼마나 밝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직장에서도 “사장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라고 해보세요. 직장생활이 즐거워집니다.
이와 같이 저와 여러분이 늘 감사하며 기뻐하고 찬양하며 살아갈 때,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광명한 빛과 같이 밝아질 줄로 믿습니다.
둘째, 이렇게 서로 감사하며 칭찬하며 살 때 행복해 집니다.
사람들은 각각 장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단점만 지적한다면 살맛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아홉 가지의 단점을 지적하기보다 한 가지의 장점이라도 서로 칭찬해주고 격려해줄 때 세상이 행복해질 줄 믿습니다. 이렇게 친절을 베풀고 봉사하는 것, 비록 작더라도 그것으로 얼마나 세상이 행복해 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원망하고 불평하면 자신도 불행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어둡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창세 전에 택하시고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을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할 일이 많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찬송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항상 찬양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편 69편 30~31절을 보면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고 했습니다.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하나님 앞에 많은 재물을 드리지 못하지만, 찬송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릴 때 황소를 드림보다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된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항상 찬양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라고 했습니다(시 22:3).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면 마귀가 좋아하나, 찬양할 때 마귀는 떠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또한 감사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울 왕이 악신에게 시달릴 때 다윗이 찬양하자 악신이 사울에게서 물러갔습니다.
여러분의 집안에 우환이 많고, 자주 부부싸움을 하게 되고, 아이들이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고 근심이 떠나가지 않는다면, 그것 때문에 불평하며 짜증낼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모여 찬양하며 그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이켜보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어느 순간 성령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여러분의 가정을 괴롭히는 원수 마귀는 물러가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중에 한 가정이 귀신들린 가족으로 인해 큰 괴로움을 받다가 할 수 없이 그 가족을 교회로 데리고 오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기도를 많이 하는 집사님과 권사님 십여 명이 모여 그 아픈 분을 가운데 앉혀 놓고 둘러앉아 무작정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힘있게 찬양을 계속하던 순간 갑자기 “못살겠다” 라고 소리를 지르며 그 사람에게서 귀신이 떠나가고 말았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찬양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찬양할 때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마귀가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못견디고 도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밤낮 원망하고 불평하면 하나님이 그 집에서 떠나십니다. 그 대신 악신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간혹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극도로 분에 차서 화를 내고 욕을 하다가 사람이 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우리가 찬양하고 감사하면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마귀가 물러갈 줄로 믿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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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기는 출애굽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가까이는 영국 교회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500년대 스페인과 영국은 그 국력에 있어 양대 산맥이라 할 만큼 쌍벽을 이루었습니다.
그 당시 세상은 두 나라의 침략 역사라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요란했습니다.
지금의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23개국 언어가 스페인어 하나로 통하는 이유는 수백 년 동안 식민지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침략전쟁을 일삼고 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세계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들이 거의 40여 개국이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국이 온 세계를 지배했던 역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스페인어와 영어만 가지면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불편이 없을 만큼 이 두 나라 언어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상대를 너무나 잘 알았던 두 나라는 전쟁의 충돌을 막는 것이 현명하리라는 정치적 판단 하에 왕실끼리 정략적 결혼을 했습니다. 스페인의 공주 캐더린과 영국 왕실의 헨리 7세의 큰 아들 아더 왕자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영국의 아더 왕자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죽은 대로 처리를 했으면 될 터인데 동생인 헨리 8세가 형수를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 때부터 왕실과 교회가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헨리 8세는 캐더린과 살아 6명의 자녀를 출산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다섯명의 아들이 다 죽고 메리만 라고 하는 딸만 살았습니다.
이때부터 헨리는 이성을 잃고 잔인해져 자기를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자기 부인이 여섯명인데 그 중에 2명을 사형시켰습니다.
그러다가 헨리 8세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들 중 다 죽고 유일하게 살았던 에드워드가 왕위에 올랐는데 또 금방 죽었습니다.
그래서 헨리 8세의 후손들 가운데는 오직 메리라고 하는 딸 한명만 남았습니다.
그 딸밖에 없으니 여왕으로 나라를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메리가 37살에 왕위에 올랐지만, 원한에 쌓여있던 터라,
아버지 헨리보다도 훨씬 더 잔인하게,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 당시 영국 교회의 최고의 지도자인 크랜머, 래티머, 리들리, 후퍼 감독들이 다 화형을 당해 죽었습니다.
모두 불태워 죽인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계속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망명자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마침내 1620년 9월 필립 파더스라고 불리는 청교의 망명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기록이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망명 올 때 남자 78명, 여자 24명, 합해서 102명이 왔습니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정처 없이 간 겁니다. 다만 가다가다 보니까 그들이 닿은 땅이 메사츄세스 프리모스라고 하는 땅이었습니다.
영국을 떠난 지 거의 2개월 만에 그곳에 닿았습니다.
9월에 도착해서 곧 추위가 닥쳤는데 그곳에 온 사람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추위와 굶주림에 죽었습니다.
그 이듬해 봄이 되어 인디언들을 만나 그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래서 겨우겨우 옥수수, 완두콩, 밀, 보리 등을 파종을 해 첫 번째 거둔 곡식에 너무 감격해서 통나무로 예배당을 지어놓고 추수된 곡식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지고 가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드립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도와준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야생 칠면조를 잡아서 요리를 만들고 팬케이크를 구워서 잔치를 벌여서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서 지금도 추수감사절이 되면 집집마다 한집에 하나씩은 칠면조 요리를 해서 나누는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해마다 더 아름답게 발전해 나갔습니다.
드디어 1864년 링컨 대통령은 11월 넷째 목요일을 감사절기로 선포하게 됩니다.
그 때 링컨 대통령이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우리들의 조상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준 가장 위대한 신앙 유산을 만대에 계승하기 위해 이 날을 국가 축제일로 전하자." 선언하니 온 국민이 환호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기도하면서 추수감사의 절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보면 전 세계적 단위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절기가 세 가지인데 그것이 다 기독교 행사입니다. 온 세계가 다 참여하는 절기입니다.
그 첫째가 성탄절이고 부활절이고, 그리고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모든 기독교 국가들은 이때를 휴가일로 정하고 지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2008년이라고 하는 기준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기준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 큰 의미가 있는 데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한 중앙에 서 계시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음주에 있을 추수감사절기를 준비하면서,
한 주간 동안 청교도들과 인디언들이 나누었던 칠면조 파티를 생각합시다.
그리고 추수에 대한 넘치는 감사와 즐거움을 함께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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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떤 형편에 처해 있습니까?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마시고 감사하며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찬양하며 감사할 때 병마가 물러갑니다. 질고와 우환이 물러갑니다.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몇 마온 사람과 함께 연합군을 이루어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이에 여호사밧이 온 유다 백성들에게 금식하라 공포하고 백성들을 소집하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여호사밧이 회중 가운데 서서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대하 20:6)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고 응답하셨습니다(대하 20:15~17).
이에 여호사밧이 너무나 감사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라” 라고 했습니다(대하 20:21~25).
이러한 소문이 주위 나라까지 퍼져나갔습니다. 그리하여 감히 유다를 치러오는 나라가 없었으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온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 찬양하며 감사할 때 받는 복이 많습니다만, 그 중에 가장 큰 복은 믿음의 없는 사람에게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죽어있던 사람의 믿음이 살아나고, 믿음이 커지고 강해지는 축복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환난과 시험을 이기고, 기도응답을 받으며, 기적을 체험하게 되고, 큰 축복을 받게 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항상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아감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체험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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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골로새서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 생활을 할 때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해석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이 크지 않다고 하여도 그 여건보다 감사는 넘치게 하라는 뜻입니다.
별로 감사할 것이 없다 하여도 하나님을 향해서는 감사를 넘치게 해야 합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이 말씀에 순종할 뿐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함도 마땅히 넘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낭비가 아닙니다. 결코 손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언제나 축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더 큰 감사를 낳게 마련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감사를 연습하고, 감사에 익숙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없어진 것, 사라진 것을 바라보지 말고, 이미 내게 주신 것, 받은 복을 세어보며 감사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를 늘 고백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환경도 달라지고, 내 육신과 마음과 영혼도 바꿔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도무지 감사 할 수 없었던 것도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게 하십니다.
때문에의 감사가 아닌, 그리아니하실찌라도의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도 감사를 표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감사는 우선 말부터 넘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음식 대접을 잘 받고 나서 "별로 솜씨도 없는 음식을 먹느라고 혼났습니다."
이렇게 말한다든지 "그럭저럭 한 끼 떼웠습니다."
이것은 감사의 전달이 아닙니다.
마치 오늘과 같은 음식은 처음 먹어보는 듯이 감사를 넘치게 하면, 그 대접하는 자의 즐거움이 커집니다. 하나님께도 그렇게 해야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60대 노인 한 분이 목사님의 손을 꼭 잡고 하시는 말이, 이제야 찾았습니다.
목사님은 6 25때 헤어진 가족을 찾았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시는 말씀이 60평생 설교를 듣고 자기 마음에 꼭 맞는 목사님을 찾았다고 합니다.
여태껏 그 목사님의 기분이 좋겠습니까?
'이야! 이런 교인도 다 만날 때가 있구나!'
그런데 그러고는 다음 주에는 교회에 안 나오는 겁니다.
나중에 다 알게 되었는데 이후로 매주일 다른 교회를 다니면서 다니는 교회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목사들이 나쁘게 생각을 안 한단 말입니다.
목사님들이 모이기만 하면 "나도 그런분을 만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목회를 하느라고 하도 지쳐있으니까?
하나님이 이 교회 저 교회 다니면서 용기를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분이 정신적으로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지 모르겠지만,
빈 말이라도 감사는 사람을 즐겁게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 대하여 넘치는 감사는 왜 해야 되는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쉽게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넘치는 감사 생활을 해야 되는 이유는,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한다는 말 자체는 어떤 은혜에 대한 답변입니다.
감사한 일도 여러 가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때는 식사 한 끼를 나누는 정도의 감사가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옷 한 벌의 사랑을 나누는 감사가 있습니다.
또한 어떤 때는 몇 년 동안 계속되는 감사가 있습니다.
또한 어떤 때 감사는 일생과 관계되는 가치도 있습니다.
물에 빠져서 다 죽게 되었는 데,
어떤 사람이 와서 구해주었으면 평생 그것이 대해 감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크고 오래가는 감사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영생의 문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연결되는 영원한 가치가 부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를 넘치게 해야합니다.
바클레이라는 주석가는 은혜를 ‘매력'이라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정말 은혜는 사람을 매력 있게 만들어 줍니다.
은혜는 받으면 받을수록 아름다워지고 매력적이게 됩니다.
외모도 그렇게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봅니다.
은혜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고, 아무리 많아도 부작용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하면 마음과 삶은 황폐해집니다.
은혜를 떠나서는 도저히 우리가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미는 용서입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 앞에서 아름다운 자태,
천사의 얼굴과 같은 모습을 했습니다.
말 없이 선전하지 않아도 속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아름다움이 저절로 있는 매력,
성령 충만하면 그 아름다움의 매력이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매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서 그런 광채가 나고 그런 진한 향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감사지수, 행복지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믿음은 더욱더 좋아지고, 더욱더 행복해 지고,
세상사람 앞에서 매력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까지 불평하고 원망하던 것과 만족하지 못한 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늘 감사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어떤 형편이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할 것들을 찾아,
하나님 앞에 감사하도록 노력한다면,
우리의 믿음이 좋아지고 우리가 행복해지고,
우리가 강해지고 우리가 세상 사람에게서 매력을 줄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음을 상실하고 퇴보하기 시작할 때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답은 한마디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당시 유대인들 중에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이 모세의 율법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신앙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 둘 배교하는 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히브리서 기자의 대답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분명한 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렇게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을 따라 가는 것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할 예수는 어떤 예수입니까?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깊이 생각하면 나의 관심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인들 특히 예수를 오래 믿다보면 신앙의 전통 습관 그리고 제도는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예수님의 생명, 복음의 감격은 잃어버리고 신앙생활할 때가 많습니다.
다시한번 예수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요!
아직도 유대인들같이 전통의 껍데기만 남아있지 아니하는지?
오늘 우리가 감사의 삶을 회복하는 길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길밖엔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권세를 물리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 예수 예수로 승리하시고, 예수로 거룩한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년 세 차례의 절기를 지키라 하셨습니다.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23:14~16).
무교절은 누룩 없는 떡을 먹으면서 출애굽의 역사를 기념하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맥추절은 무교절을 지나 50일째 되는 날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서 처음 거둔 보리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지키는 절기입니다.
수장절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수확물을 저장한 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지키는 절기로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과 같습니다. 이 모든 절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지키는 절기입니다.
본문 시편 50편 14절에 보면,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가 환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그를 환난에서 건져주시며,
그 건짐을 받은 자로 인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얻으시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진정한 넘치는 감사의 제사란 무엇입니다.
첫째,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꿇어 경배하는 것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시 50:14) 하나님께로부터 지음 받은 우리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생활을 항상 지속해야 합니다.
시편 95:6,7에 보면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을 ‘우리의 통치자요, 우리의 목자’로 표현했습니다.
감사의 제사란 우리의 통지자요,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 앞에 항상 우리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무릎 꿇고 엎드려 경배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제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드리는,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인 기도의 삶을 통하여 드릴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아드리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시 50:14) 여기에서 ‘서원을 갚으라’는 말은 ‘하나님과 약속한 바를 지키는 바른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는 생활이란
①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생활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자가 될 때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고침 받은 문둥병자는 열 명이었는데, 그 중에 아홉은 그냥 돌아가고 한 명만 예수님께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7:19)라고 칭찬했습니다.
②앞으로 받을 축복을 인하여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앞으로의 생활도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여호수아 17:18에 보면,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매우 좋아합니다.
노력해보지도 않고 낙심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행위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히 6:14)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앞으로 받을 축복을 인하여 감사하면서 인내했던 아브라함은,
믿은 대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셋째, 환난 날에 하나님께로부터 건져주시는 보장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는 환난 날에 하나님께로부터 건져주시는 보장을 받게 됩니다.
①위험한 길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출 23:20)
②하나님께서 대적을 물리쳐주십니다.
“네가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나의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출 23:22)
③양식과 물에 복을 내려주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 (출 23:25)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개인이나 나라는 절대로 양식과 물이 궁핍하지 않습니다.
④낙태하는 자와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게 됩니다.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출 23:26)
⑤장수의 복을 받게 됩니다.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출 23:26)
철수와 영희가 있었는데 영희는 오랫동안 믿어 왔고 철수는 이제 믿음을 시작하는 초신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철수는 영희에게 점심을 사주겠다고 했습니다.
아주 근사한 식당에서 영희는 음식을 앞에 두고 잠시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를 신기하게 보던 철수는 영희에게 "뭐라고 기도했니?"
영희는 "일용할 양식을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지."
그러자 철수는 갑자기 화를 버럭 내며
"야! 점심은 내가 사는데 왜 엉뚱한 기도를 해? 감사는 나에게 해야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하고 순종하며 기도하는 생활을 지속하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꿇어 경배하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하고, 앞으로 받을 축복을 인하여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아드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림으로 환난 날에 하나님께로부터 건져주시는, 보장을 받게 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맨 서두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첫 번째 두 번째 부류에 속한 사람은 이러한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강조한 내용을 성경을 통해 조금이라도 이해한 사람들은 반드시 감사의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보세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세가지 절기를 지키라' 고 하셨습니다. 출애굽의 기적 사건을 기념하는 무교절(유월절)과 처음 곡식을 수확한 것으로 감사제를 드리는 맥추절과 가을 추수의 풍요로움속에서 수장절(추수감사절)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성인 남자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삼대 절기를 키켜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구약의 3대 절기와 깊은 관련이 있는 신약의 3대 절기인 부활절과 그리고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을 꼭 지켜야 합니다.
옛날에 믿음 좋은 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하들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관직을 지키며 백성들의 가지고 호위 호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왕은 큰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어느날 큰 잔치를 배설하자 거지가 들어왔으나 신하들이 거지를 내좇아버렸습니다. 거지가 밥을 먹다 그냥 가려하자 왕이 거지를 불러 세웠습니다.
이를 본 신하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왕이시여 당장 저 놈을 능지처참하십시오"
그러자
왕이 하는 말 "저 걸인은 왕인 내 앞에서 단 한번 배고픈 가운데 배를 채운 것이다. 그러나 대신들 가운데는 매일 먹으면서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 왕이 그렇게 말하자 신하들은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배고플 때는 감사하면서도 배부른 삶을 살 때는 감사를 소흘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꼭 배 고파야 감사한 마음으로 밥을 먹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생각하실 때 “어짜피 감사가 없는 인생이라면 배 고프게 만들면 감사를 잊지 않겠다”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의 생활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이어야 하겠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이러한 감사의 절기를 맞이하여 자신의 어려웠던 지난날의 생활을 돌이켜 보며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