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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45-50절)
1. 45절,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하십니다.
a. 35절부터 44절까지가 장차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성도들이 얻게 될 부활의 몸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라면 45절부터 50절까지는 이런 부활의 은혜가 주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첫째 아담을 통해 육의 몸이 주어졌다면,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을 통해 신령한 몸인 부활의 몸이 주어졌다 하십니다.
45절에 말씀하는 첫 사람 아담은 창세기 2장에 등장하는 최초의 사람 아담을 의미하고, 마지막 아담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아담’은 ‘흙’을 뜻하는 ‘아다마’에서 유래한 말로 최초의 사람 아담이 흙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창 2:7) 이런 이름이 주어진 것입니다. 여하튼 첫 사람 아담이 최초의 사람으로 온 인류를 대표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온 인류를 대표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의미에서 둘째 아담 혹은 마지막 아담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b. “첫 사람 아담이 생령이 되었다”는 말씀은 창세기 2장 7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이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하십니다. “생령”이라는 단어가 영어 성경에는 ‘living soul’이라고 되어 있는데, ‘살아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첫째 아담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 즉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인데, 이에 반해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life-giving spirit)”이 되었다 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하신 말씀처럼 마지막 아담이요, “살려주는 영(life-giving spirit)”이 되신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겁니다.
2. 46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하십니다.
a. 첫 사람 아담이 지음 받고, 그 다음에 둘째(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이 오신 것처럼, 우리에게 육신의 몸이 먼저 주어지고, 다음으로 둘째 아담을 믿는 자에게 신령한 몸인 부활의 몸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두 번 태어나는 사람은 한 번 죽고, 한 번 태어나는 사람은 두 번 죽는다.”했습니다. 육신의 몸으로 태어난 뒤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은 한 번 죽고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사는 은혜를 얻게 되지만, 육신의 몸으로 태어난 뒤 영적으로 거듭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육신의 죽음뿐 아니라, 백보좌 심판 때 불못에 던져지는 둘째 사망(계 20:14)을 경험하게 된다는 겁니다.
b.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해지는 것은 아담이 처음 지음받을 때, 죽을 수밖에 없는 육의 몸으로 지음받은 것인지, 아니면 영원히 죽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지음받은 것인지 하는 점인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학자들 대부분은 최초의 사람 아담은 우리와 똑같은 육의 몸으로 지음받은 것이라 주장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우리와 똑같은 육의 몸으로 만드신 뒤에,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보이면 영원히 죽지 않는 신령한 몸을 주시려고 했는데,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그가 신령한 몸을 얻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처럼 첫째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신령한 몸을 얻지 못했지만,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신령한 몸인 부활의 몸을 얻게 되었고, 또 그를 믿는 자들에게도 신령한 몸, 부활의 몸을 주시는 “살려주는 영”(45하)이 되셨다는 겁니다.
3. 47절,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하십니다.
흙으로 지음 받은 첫 사람 아담의 기원이 땅이라면,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하늘에서 난 자(from heaven), 즉 그 기원이 하늘에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땅에서 살아갈 때는 첫 사람 아담이 준 육신의 몸이면 충분하지만, 하늘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하늘에서 나신 자”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신령한 몸, 부활의 몸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4. 48절,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하십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흙으로 지음받은 아담의 후손으로 흙에 속한 것들이 갖고 있는 숙명, 다시 말해 흙으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창 3:19), 하늘에서 오신 둘째 아담이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이 저주에서 벗어나 하늘에 속한 천사들처럼 ‘신령한 몸’을 입고 하늘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겁니다.
5. 49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하십니다.
우리가 첫 사람 아담을 통해 흙에 속한 형상을 입은 것처럼, 하늘에서 난 자인 예수님을 통해 하늘에 속한 형상, 즉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6. 50절,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하십니다.
a.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하심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체를 가지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첫째 사람 아담으로부터 주어진 혈과 육은 땅에서 살아가기에는 적합하지만,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육체이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기 위해선 반드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고 죽은 자들이 육신을 땅에 두고 영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인데, 지금은 영혼만 들어가 천국에 머물지만 마지막 부활의 때에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하늘과 땅을 오고가게 될 것입니다.
b.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하시지만, 사실 신구약 성경에 보면 육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 때는 에녹과 엘리야(모세)가 그들이고, 신약 시대 때는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도 요한과,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서 “십 사년 전에 (내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육신의 몸을 가지고 하늘에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이들 가운데 특별히 에녹과 엘리야(모세)는 지금도 육신의 몸을 가지고 하늘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비록 육신의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 머물고 있지만 이는 주인이 아니라 손님처럼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영으로 가 있든, 육으로 가 있든, 하나님의 나라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주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고 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기 위해선 반드시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II. 성도의 부활 휴거(51-57)
1. 51, 52절,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하십니다.
a. 51절에서는 휴거의 사건을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하심으로 지금까지 감춰졌던 ‘비밀’로 소개합니다. ‘비밀’에 해당되는 헬라어 ‘뮈스테리온’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지식’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까지 감춰졌던 것이 때가 차매 드러나는 지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도 휴거의 사건을 예표하는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 사건이 있지만, 휴거에 대한 온전한 지식은 신약시대에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이 비밀을 알려주겠다”하신 겁니다.
b. 휴거 사건의 첫 번째 비밀은 예수를 믿은 성도들이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여” 휴거의 사건에 참여한다는 겁니다. 휴거의 사건을 묘사한 또 다른 말씀인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 17절에서도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하심으로, 휴거의 사건이 나팔 소리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간혹 환난통과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51절에서 설명하는 “마지막 나팔”을 요한계시록 10장 7절에 기록된 마지막 7번째 나팔이라고 해석하면서 이때 휴거 사건이 일어난다는 주장을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성경의 배경도 맥락도 이해하지 못해서 비롯된 잘못된 해석입니다. 요한계시록 10장 7절에 기록된 7번째 나팔은 재앙을 알리기 위해 천사가 부는 나팔이고, 본문에서 설명하는 나팔은, 재앙을 알리기 위해 부는 나팔이 아니라 성도들을 깨워서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기 위해 부는 ‘하나님의 나팔’(살전 4:16)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51절에서 설명하는 “마지막 나팔”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스라엘의 7대 절기 가운데 휴거의 사건을 예표하는 나팔절(로쉬 하샤나)에 부는 나팔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팔절을 히브리어로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 혹은 '욤 테루아'(יוֹם תְּרוּעָה)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로쉬 하샤나’는 ‘해(하샤나)의 머리(로쉬)’ 혹은 ‘새로운 해’라는 뜻이고 ‘욤 테루아’는 ‘나팔을 부는(테루아) 날(욤)’이라는 뜻입니다. 종교력으로 7월 1일에 해당되는 로쉬 하샤나는 민간력으로는 1년의 시작을 알리는 1월 1일이기도 합니다. 유대인의 모든 절기는 해가 아닌 달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한 달이나 한 해의 시작도 그믐달에서 초생달로 바뀌는 순간을 그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로쉬 하샤나가 가까워지면 절기를 주관하는 대제사장은 두 명의 증인들을 세워서 각기 다른 곳에서 달을 관측하게 한 뒤, 두 사람 모두 새로운 달이 떠올랐다(그믐달에서 초생달로 바뀌었다)는 보고를 올리면 바로 그 때 나팔을 불어 로쉬 하샤나 -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음을 알렸습니다.
이때 나팔을 부는 제사장은 양각나팔을 가지고 4가지 의미를 가진 나팔 소리를 조합해서 총 백번의 나팔을 불게 됩니다. 왕의 대관식을 의미하는 한 번의 나팔소리를 테키아 -Tekiah (תקיעה)라고 하고, 회개하라는 의미를 가진 굵고 짧게 세 번을 부는 나팔 소리를 쉐바림 - Shevarim (שברים)이라고 합니다. 스타카토로 짧게 아홉 번 부는 테루아 - Teruah (תרועה)는 영적인 각성을 요청하는 나팔소리입니다. 이 3 종류의 나팔 소리를 조합해서 99번의 나팔을 분 뒤에, 맨 마지막으로 100번째 부는 나팔이 테키아 하가돌 - Tekiah Ha’Gadol (גָּדוֹל –תקיעה)인데, 이때는 제사장이 온 힘을 다해 숨이 다할 때까지 크고 웅장하게 나팔을 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상징한다는 테키아 하가돌이 바로 본문 51절에서 설명하는 “마지막 나팔”(고전 15:51)인 것이고,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팔”(살전 4:16)인 것입니다. 바로 이 마지막 나팔(테키아 하가돌)에 우리의 몸이 변화되어 부활과 휴거의 사건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c. 휴거 사건에 대한 두 번째 비밀은 마지막 나팔이 불릴 때 우리가 “홀연히”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 변화할 것이라 하십니다(51하). “홀연히”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아토모’인데, 이 단어에서 ‘원자’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 ‘atom’이 파생된 것입니다.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물리 단위인데, ‘아토모’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짧은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겁니다. ‘홀연히(아토모)’, 인간이 감지할 수도 없는 짧은 시간에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지는 휴거의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이 땅에 남겨진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겁니다. 이렇게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 바로 외계인 어젠더입니다. 휴거의 사건을 외계인 납치 사건으로 꾸며, 휴거에 관한 성경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이런 작업을 진행해 왔다는 겁니다.
d. 휴거 사건에 대한 세 번째 비밀은 휴거의 순서에 관한 것인데,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52)하십니다. 예수님이 공중재림하시고 하나님의 나팔이 들려올 때,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 부활의 몸을 입고, 그 다음으로 살아있는 자들이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 휴거의 사건에 참여한다는 겁니다. 참고로 이때 부활의 몸을 얻지 못한 구약의 성도들과 7년 대환난 기간 동안 예수를 믿고 순교한 환난성도들은 예수님이 지상재림할 때 부활의 몸을 입고(단 12:2), 또 천년왕국 기간동안 육신의 몸으로 살아가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백보좌 심판이 끝나고, 신천신지 새예루살렘이 펼쳐지기 전에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신령한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부활의 몸을 입는 사건이 총 4번에 걸쳐서 일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2. 53절,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하십니다.
휴거의 사건에 대한 네 번째 비밀은 우리가 휴거될 때,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몸을 입게 된다는 겁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하신 말씀처럼 지금의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후패(is decaying)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우리가 휴거의 사건에 참여하게 될 때는 영원히 썩지도 죽지도 않는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3. 54절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하십니다.
휴거의 사건에 대한 다섯 번째요, 마지막 비밀은 휴거의 사건을 통해 비로소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하신 호세아 13장 14절의 예언이 성취된다는 겁니다.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삼켜버리면 그 존재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면”, 더 이상 사망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된다는 것인데, 그 출발점이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고, 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부활사건인 휴거의 사건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는” 최종적인 사건은 언제 일어나는 것일까요? 요한계시록 20장 14절에 보면 최후의 심판으로 알려진 백보좌 심판의 때에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워질 것”이라 하십니다.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는” 최종적인 사건은 천년왕국이 끝나고 신천신지 새예루살렘이 펼쳐지기 직전인 백보좌 심판 때에 일어난다는 겁니다.
4. 55-57절,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하십니다.
55절부터 57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의 은혜를 얻게 된 일에 대해 사도 바울이 올린 감사의 찬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진리와 은혜를 깨달았으면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겁니다.
창세기에 보면 인간은 본래 죽지 않고 영원히 살도록 지음 받았지만, 인간이 범죄함으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차단되고, 그 결과 죽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며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 대신 먹지 말라 하신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지음으로 이 기회를 놓치게 된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말씀과 “사망의 쏘는 것은 죄”(56)라 하신 말씀처럼 죄로 인해 사망이 찾아온 것입니다. 죄로 인해 사망이 찾아온 것이기에 우리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인데,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이 바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믿을 때 우리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예수님처럼 영원히 죽지 않는 신령한 몸, 부활의 몸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하십니다.
III. 부활이 있기에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 하십니다(58).
58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하십니다.
58절은 부활 장으로 알려진 고린도전서 15장의 결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57절에 걸쳐 부활에 대해 긴 설명을 마치면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는 짧은 말씀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 땅의 삶이 우리의 삶의 전부라면 예수를 믿고 주안에서 수고하는 것이 헛될 수밖에 없지만, 부활의 주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있기에 우리의 믿음과 수고가 헛되지 않은 겁니다. 조만간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에게 썩지 않는 부활의 몸을 주시고, 수고에 따라 상급과 면류관을 주실 것이니, 그때까지 믿음 안에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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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모든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게 되므로
얼굴엔 늘 미소를 짓게되고 밝고 유쾌하게 된답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과 함께 오늘도 멋지게 시작하시고요.
항상 웃음이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