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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무예 여행 스크랩 고수를 찾아서 <11> 유상호 합기도협 원로 최고 위원
天風道人 추천 1 조회 121 13.08.31 11: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수를 찾아서 <11> 유상호 합기도협 원로 최고 위원
"무술 명예 지킨 한 사나이로 남고 싶어"
해방되던 해 무술시범 본 뒤 '유술'에 입문, 일흔 나이 불구 전광석화 같은 발차기 일품, 불의 못 참는 '무림정신'으로 한 평생 매진


1945년 11월 7일(음력 10월 3일). 이날은 이 땅의 사람들이 오랜 일제강점에서 벗어난 뒤 처음으로 맞는 감격스런 개천절. 경남 통영에서도 새 세상이 열렸음을 기리는 행사가 마련됐다. 그 가운데 특히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무술시범과 검무. 씨름과 비슷한 격투기도 선을 보였다. 많은 구경꾼들의 틈에서 만 여덟살의 한 소년은 숨을 죽이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순간 무술꾼들의 현란한 몸놀림에 푹 빠져버렸다. 간혹 대처의 도장을 기웃거려봤지만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전박대 당했던 아픈 기억도 떠올랐다. 소년은 다짐한다. "저 것을 한번 배워 보리라."

하지만 모든 것이 어수선하던 시절. 조선사람이 운영하던 도장이란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개천절 행사장에서 본 동작이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한 치 앞의 미래가 보이지 않던 때, 체계적인 수련을 한다는 것은 사치였다. 한데 인생은 미리 예정되었던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소년은 가까운 친척에게서 무술을 사사하는 행운을 잡는다. '유술'로 불리는 몸짓이었다. 이후 60여 년 세월동안 무술은 이 소년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유상호 대한합기도협회 원로 최고위원. 합기도 9단. 1937년생으로 만 일흔의 노고수가 털어놓은 무술입문 계기다.


#"무림정신은 아직 살아 있다"

부산 북구 금곡동의 한 합기도 도장. 그리 크지 않은 체구의 노신사가 악수를 청해온다. 이런, 손아귀 힘이 보통이 아니다. "지금도 젊은이 서너 명은 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유 위원을 소개해 준 모 인사의 말이 비로소 실감난다.

"저는 무술을 하면서 지금까지 '정의'에 입각해 살아 왔습니다. 쉬운 말로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죠. 그래서 집사람에게 혼도 많이 났습니다. 쓸데없는 짓 한다고요. 허허." 진짜로 젊은이들을 상대로 아직도 힘을 쓸 수 있느냐는 유치한(?) 기자의 질문에 유 위원은 다소 에둘러 대답을 내놓는다. 지금은 늙어 힘이 다 빠졌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어느 고수와 마찬가지로 유 위원도 젊은 시절에는 타인이 감히 범접하기 힘든 실력자였다. 20대 때 당시 꽤 악명을 떨치던 불량배 7명과 명륜동에서 싸움이 붙었 적이 있었다. 그들은 유 위원의 완력을 당하지 못하자 이내 도망을 쳤다. 혈기왕성했던 유 위원은 지금의 동래역까지 그들을 쫓아간 뒤 일부를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미남로터리 부근에서 도장을 운영할 적에는 자꾸 집적대는 인근 도장의 관장과 '지는 사람이 깨끗히 떠나자'라는 약속아래 단판승부를 벌인 일화도 있다.

유 위원의 가공할 무술실력은 합기도뿐만 아니다. 태권도 공인 9단이며, 활기도 분야에서도 공인 9단의 자리에 올라 있다. 또한 검도 고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 위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술 단수에 대해 흔쾌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주먹을 뻗어 상대를 가격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권투를 배운 사람의 주먹에는 권투가 들어 있고, 태권도를 배운 사람의 주먹에는 태권도가 들어있지 않겠습니까. 즉 주먹 하나에는 그 사람이 배운 모든 무술이 담겨있다는 말이죠. 어떤 것이 권투용 주먹이고, 어떤 것이 태권도용 주먹이라는 식의 구분은 불필요합니다. 따라서 무술인에게 단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무술을 열심히 한 것은 고도의 무술세계에 올라가보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의 말마따나 유 위원에게 합기도를 비롯한 무술은 자신의 삶을 제대로 지탱할 수 있게 해준 버팀목이다. 유 위원은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집을 떠나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그 때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무림정신'은 힘든 생활 속에서 정신력 배양에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지금도 "만약 무술이 없었다면 제대로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란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유 위원이 자신의 도장을 처음 연 것은 1970년 마산에서였다. '한국 팔광류 유술 경남본부 도장'이라는 간판을 달고서다. 이는 합기도란 명칭이 지난 1971년 유사무술을 합쳐 '통합 대한민국 합기도협회'가 발족하면서 비로소 알려졌기 때문이다. 유 위원은 지난 1994년부터는 (사)대한합기도 부산시협회 초대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2003~2005년에는 영산대 생활스포츠학부 겸임교수로 후학을 지도했다.


#생을 합기도와 함께

 
칠순 노인에게 시연을 부탁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큰 결례. 그러나 유 위원은 도복 띠를 질끈 매고 제자들 앞에 섰다. 빈틈없는 자세가 고희의 나이를 무색하게 한다. 몸놀림 역시 가뿐하다.

사범들의 공격이 펼쳐졌다. 유 위원은 상대의 손목을 잡는가 하더니 번개처럼 메다꽂는다. 뒤에서 껴안는 상대는 유 위원의 동작 하나에 고꾸라지고 만다. 나이가 믿기지 않는 엄청난 힘이다. 상대를 메칠 때의 기합소리도 젊은이 못지않게 우렁차다.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라고 단언하던 발차기 역시 날카롭다. 사범 한 사람이 복부에 발차기를 맞은 뒤 서너 발자국 이상 뒤로 물러섰다.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70대 고수가 30대 제자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도 대련에 임한 사범들은 싫지 않은 표정이다. 젊은 나이에 유 위원과 같은 최고수와 맞선다는 것은 좀처럼 오지 않는 기회인 까닭이다. 전총성 대한합기도 부산시협회 상근부회장은 "사범들이 오늘 처음 원로 최고위원님의 손을 직접 잡아 봤다"며 "이것만 해도 큰 영광일 것"이라고 귀띔한다.

시연을 끝낸 유 위원의 얼굴은 땀범벅이다. 그렇지만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말 그대로 노익장. 유 위원은 몇 가지 더 보여 줄 술기(術技)가 있다며 시연 도중 이제 그만 하시라는 취재진의 요청을 거부(?)하는 패기를 보일만큼 정정함을 과시했다. 오히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어 간병을 하느라 전날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합기도를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다며 미안해하기까지 한다.

합기도의 술기는 대략 알려진 것만 3000여 가지. 하지만 이 숫자는 무술인의 수련 정도에 따라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여기에는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살법(殺法)도 포함된다. 단 한 수에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의미다. 누가 목조르기 공격을 해 왔을 경우,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시간은 1분 30초 정도. 이 시간 안에 상대 공격을 풀지 못하면 자신이 목숨을 잃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살법을 써야 한다.

"합기도에는 실제로 쓸 수 있는 술기가 무궁무진합니다. 상대방의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술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숫자라는 것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상대의 키나 체중, 무술 수련 정도, 몸 움직임의 방향 등에 따라 다양한 수가 나올 수 있습니다. 어느 장소에서나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는 것이 합기도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생을 합기도와 함께 하겠다는 그는 나중에 후배들에게 어떤 무술인으로 남길 바랄까. 짧지만 강력한 대답이 돌아 왔다. "무술의 명예를 모범적으로 지켜나간 한 사나이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 합기도란

- 삼국시대 '수박'에서 원류 찾아

합기도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대한합기도협회에서는 부족국가시대에 부족의 단합과 풍요를 기원하던 제례의식이 삼국시대에 접어들어 부국강병 정책과 합쳐지면서 무술의 개념으로 발전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고구려에는 맨손 기법인 '수박'이 발달했고, 백제에는 손을 검처럼 쓰는 '수벽타'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신라의 화랑들은 학문과 함께 무예수련을 했다. 고려시대는 우리 역사상 무술이 가장 활성화됐던 시기다. 고려사 등에 따르면 삼국시대 때 행해지던 수박이 체계화돼 무인들 사이에서 성행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역시 수박이 널리 행해졌다. 그러나 맨손으로 상대를 제압한다는 뜻의 수박은 근세로 내려오면서 여러 무술로 분화된다. '조선무사영웅전'에는 손기술 위주의 수박이 발기술에 중점을 둔 '탁견'으로 발전했다고 적고 있으며, '해동죽지'에는 발기술인 '탁견'과 손기술인 '수술'이 있다는 글이 나온다. 따라서 합기도협회 측에서는 고대의 수박이 후대에 합기술로 변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합기도 기술의 기본형은 꺾기 던지기 치기 차기 찌르기 등이 있다. 단전호흡 발차기 권술 낙법 호신술 등도 수련한다.

현대 합기도의 원류는 해방 이후 대구의 최용술 도주에게서 찾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는 합기도 관련 단체만 40여 개에 이르러 정통성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유상호 대한합기도협회 원로 최고위원이 상대방을 제압하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손목꺾기로써 공격자를 무력화시키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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