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은 곧 수레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재촉해
주인 없는 관문을 지났다.
전날 길을 잡은 대로 낙양을 향해 나아가는데
발 없는 소문이 먼저 낙양에 이르렀다.
그때 낙양태수는 한복이란 자였다.
관공이 공수를 죽이고 동령관을 지났다는 소문을 들은 한복은
무리를 불러모아 어찌할 가를 의논했다.
"승상께서 주신 통행장이 없다면
관우의 이번 길은 사사로운 것임에 분명합니다.
막지 아니한다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장인 맹탄이 일어나 똑똑한 체 말했다.
한복이 걱정스런 얼굴로 그 말을 받았다.
"관공은 사납고 날래
하북의 명장인 안향과 문추가 나란히 그에게 죽음을 당했을 정도요.
아무래도 힘으로는 그에게 맞설 수 없으니
꾀를 써야만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외다"
"제가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맹탄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한복이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
"그 계책이 무엇이오?"
"먼저 관 입새를 녹각(대나무로 얽은 울)으로 막은 뒤,
관우가 오기를 기다려 제가 군사를 이끌고 나가겠습니다.
한바탕 싸우다 제가 거짓으로 패한 체 관우를 유인해 오거든
태수께서는 녹각 뒤에 미리 숨겨둔 궁수들로 하여금 그를 쏘게 하십시오.
관우가 그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질 때
바로 사로잡아 허도로 보내시면 됩니다.
아마도 조승상께서는
태수께 큰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들으니 그럴싸한 데다 달리 마땅한 계책도 나오지 않아
한복은 맹탄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부산하게 녹각을 세우자마자
관공이 가까이 이르렀다는 전갈이 왔다.
한복은 스스로 활과 화살 통을 맨 뒤
1천 인마를 이끌고 녹각 앞으로 나가 관공을 맞았다.
"거기 오는 분은 누구 시오"
자못 정중한 물음이었다.
관공이 말 위에서 몸을 굽혀 예를 표하며 답했다.
"나는 한수정후 관우요. 감히 지나가는 길을 빌리러 왔소이다"
"조승상의 문빙이 있으십니까?"
한복이 여전히 정중함을 잃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일이 바빠 미리 얻어 두지 못했소이다"
관공이 그렇게 대답하자 돌연 한복의 눈길이 실쭉해졌다.
"나는 조승상의 크신 명을 받들어
이곳을 지키며 첩자가 드나듦을 살피고 있소.
어찌 한 치라도 허술할 수 있겠소이까?
문빙이 없다면 그것은 바로 달아날 때뿐이오!"
맹탄의 말투에 목소리까지 차갑기 그지없었다.
관공도 그 같은 한복의 표변에 불끈 노기가 솟았다.
이미 일없이 지나갈 수 없을 바에야
공연한 입씨름으로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아 봉의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동경관의 공수는 이미 내 손에 죽었다. 너도 죽고 싶어 길을 막느냐?"
하지만 딴에는 채비를 갖출 대로 갖춘 한복이라 쉽게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채찍을 들어 관공을 가리키며 좌우에게 물었다.
"누가 저놈을 사로잡아 오겠느냐?"
그러자 맹탄이 기다렸다는 듯이
쌍칼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나갔다.
관공은 다시 수하들에게
두 부인이 탄 수레를 모시고 저만큼 비켜있게 한 뒤
말을 박차 맹탄을 맞았다.
맹탄은 원래 관공의 적수가 못되는 데다
미리 짜놓은 계책이 있어 3합을 채우지 않고 말머리를 돌렸다.
관공이 그런 맹탄을 놓아줄 리 없었다.
적토마를 박차 맹탄을 뒤따르더니 한 칼질에 두 동강을 내어버렸다.
맹탄은 관공을 유인한 것만 생각했지
그가 탄 말이 빠르기로 이름난 천하의 적토마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맹탄의 죽음이 전혀 헛된 것은 아니었다.
관공이 맹탄을 죽인 곳은 녹각 문 어귀에서 멀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던 한복이 말머리를 돌리려는 관공을 보고 화살 한 대를 날렸다.
활께나 쏘는 한복이라 화살은 어김없이 관공의 왼팔에 박혔다.
관공이 입으로 왼팔에 박힌 화살을 물어 뽑자 피가 샘솟듯 흘렀다.
그러나 관공은 돌아서지 않고 그대로 한복을 항해 말을 몰았다.
1천 인마가 가로막았으나 관공의 기세는 대쪽을 가르는 칼날 같았다.
무인지경 가듯 군사들을 헤치며 한복을 향해 청룡도를 거누었다.
그제야 한복은
급히 숨을 곳을 찾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한복의 머리에서 어깨 어름에 걸쳐
관공의 청룡도가 바람을 일으킴과 함께 한복의 목은
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관공은 그 여세를 몰아
관을 지키던 일 천 인마(人馬)까지 가랑잎 흩듯 흩어 버렸다.
그리고 두 부인이 탄 수레를 보호하며
바람처럼 관을 지나갔다.
관을 벗어나고도 한참을 간 뒤에야
관공은 비로소 헝겊을 째 화살에 다친 왼팔을 싸맸다.
그러나 도중에 다시 비열한 급습을 받을까 두려워
오래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밤낮으로 길을 재촉했다.
하북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처야 할 기수관을 향해서였다.
☆☆☆
기수관은 유송추(=철퇴의 일종)를 잘 쓰는
변희란 장수가 지키고 있었다.
병주사람으로 원래는 황건의 남은 무리였는데
조조에게 항복해 기수관을 지키는 장수가 된 자였다.
관공이 머지않아 그곳에 이르리란 말을 듣자
한 가지 계책을 짜내었다.
관 앞의 진국사란 절에 도부수 2백을 숨겨 놓은 다음
그곳으로 꾀어들여 술잔을 던짐을 신호로 일시에 들이쳐 죽인다는 계책이었다.
그 계책에 따라 모든 준비를 끝낸 변희는
관공이 왔다는 말을 듣기 바쁘게 스스로 관을 나가 맞아들였다.
관공도 변희가 공손하게 마중을 나오자 말에서 내려 예를 표했다.
"장군의 크신 이름은 천하에 떨쳐 울리고 있으니 누가 우러르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지금은 유황숙께 돌아 가신다니
실로 놀라운 충의라 하겠습니다.
그런 장군을 모시게 된 것은
이 변 아무개 일생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관공의 자부심을 알고 있는 변희가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관공은 그런 변희가 기특하면서도
먼저 공수와 한복을 죽인 일을 말해 은근한 으름장을 대신했다.
혹시라도 딴마음을 품을까 미리 경고해 둔 셈이었다.
그러나 변희는 도적 출신답게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일이 그러했다면 그자들은 죽어 마땅합니다.
다음에 승상을 뵈옵게 되면 제가 장군을 대신해 여쭈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능청을 부려 관공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변희의 능란한 말재주에 넘어간 관공은
그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진국사에 이르렀다.
관공의 일행이 경내로 드니
모든 승려들이 종을 울리며 나와 마중했다.
원래 진국사는 명제의 어전에 향화를 올리던 절로
본사에만도 승려가 30명이 넘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관공과 같은 고향사람으로 보정이란 승려가 있었다.
변희가 꾸미는 일을 짐작한 보정은 어떻게든 관공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관공 앞에 나가 물었다.
"장군께서는 포동을 떠나신 지 몇 해나 됩니까?"
"거의 20년은 되는 것 같습니다만"
낯선 승려 하나가 벌써 오래 전에 떠난 고향을 들먹이자
관공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보정을 쳐다보았다.
보정이 다시 관공에게 물었다.
"장군께서는 빈승(貧僧)을 알아보지 못하겠습니까?"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되어 알아보지 못하겠습니다"
관공이 한동안 보정을 살피다가 대답했다.
그러자 보정이 관공의 기억을 깨우쳤다.
"빈승의 집과 장군의 집은 개울 하나를 건너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관공은 그 말을 듣고도 보정을 기억해 내지 못했으나
어쨌든 고향사람이라는 데 반가움이 일었다.
오랜만에 그리운 고향 얘기라도 나누려고 입을 열려는데
문득 곁에 있던 변희가 보정을 꾸짖었다.
"내가 지금 장군을 위해 잔치를 마련하고 모시려 하거늘
한낱 중에 지나지 않은 네가 무슨 말이 그리 많으냐?"
보정이 같은 고향사람의 정으로
자신의 흉계를 관공에게 알려 줄까 두려워 쫓는 것이었다.
☆☆☆
관공이 그런 변희를 말렸다.
"그렇지 않소이다. 고향사람끼리 서로 만났으니
어찌 옛정을 풀려들지 않겠소?"
그리고 변희의 험악한 기색에 눌려
자리를 뜨려는 보정을 붙들었다.
관공이 그렇게 나오자
변희도 더는 보정을 떼어놓으려 들지 않았다.
공연히 억지를 부리다가
관공이 내막이 눈치챌까 두려웠던 까닭이었다.
"옛정에 차 향기가 스미면 더 다사롭습니다.
잠시 제 방으로 드시지요. 차 한 잔을 끓여 올리겠습니다"
변희가 수그러드는 걸보고
보정이 용기를 내어 관공을 청했다.
눈치만 살피다가 일을 그르칠까 걱정돼 마음을 다잡아먹은 것이었다.
보정의 타는 속도 모르고 관공은 한가로운 소리만 했다.
"두 분 부인께서 수레에 계시니
먼저 그곳부터 차를 올린 뒤에 함께 마시도록 하는 게 옳겠소"
이에 보정은 급한 중에도 두 부인에게 먼저 차를 올린 뒤에야
관공을 자기 거처로 청해 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둘밖에 없는 방안이라고는 하나
변희가 사람을 보내 엿듣는 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보정은 알고 있는 것을 말로 하지 못하고 눈짓손짓으로 대신했다.
손으로는 자기가 찬 계도를 가리키고 눈은 관공을 바라보는 식이었다.
무심코 찻잔을 들던 관공도 이내 그 뜻을 알아차렸다.
한번 고개를 끄덕인 뒤 건성으로 몇 마디 고향 얘기를 나누나가 보정의 방을 나왔다.
그리고 자신을 따라온 군사들을 불러 가만히 영을 내렸다.
"너희들은 모두 칼을 몸에서 떼어놓지 말고 두 분 형수님을 잘 지켜라.
그렇게 대비를 하고 있을 때
변희가 법당에다 술자리를 마련하고 관공을 청해 들였다.
그때 관공이 불쑥 물었다.
"그대가 관 아무개를 이리로 청한 것은
좋은 뜻에서인가, 나쁜 뜻에서인가?"
그 돌연한 물음에 변희는 일순 말문이 막혔다.
얼른 대답을 못해 어물거리로 있는데 관공이 먼저
법당에 늘어뜨린 휘장 뒤에 칼과 도끼를 든 군사들이 숨어 있는 걸 보았다.
"나는 너를 좋게 보았는데, 어찌 감히 이럴 수가 있으니까?"
관공이 큰소리로 변희를 꾸짖었다.
그제야 변희는 자기가 꾸민 일이 들켜버린 걸 알았다.
관공이 건네려 던 술잔을 내던지며 소리쳤다.
"모두 나와 손을 써라!"
그 소리를 듣자 휘장 뒤에 숨어 있던 도부수들이 우르르 달려 나왔다.
그러나 어느새 뽑아든 관공의 칼 아래
짚단 넘어가듯 하다가 거미 새끼처럼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그 광경을 본 변희는 급했다.
술상을 걷어차며 법당을 빠져나가 낭하쪽으로 달아났다.
차고 있던 칼로 도부수 등을 베어 쫓은 관공은
곧 그 칼을 버리고 청룡도를 집어들더니 변희를 뒤쫓았다.
변희는 관공의 손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깨닫자
소매 속에 감춰두었던 철퇴를 꺼냈다.
유성추라 하여 던질 수 있게 된 철퇴였다.
변희는 때를 보아 철퇴를 날렸다.
평소에 뽐내던 솜씨라 철퇴는 관공의 면상을 향해
그야말로 유성처럼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선 것이 관공의 솜씨였다.
날아오는 철퇴를 청룡도로 가볍게 쳐낸 뒤
그대로 변희를 뒤쫓아 한칼에 쪼개 버렸다.
이어 두 형수가 타고 있는 수레가 걱정이 된 관공은
절 마당으로 몸을 날렸다.
변희의 졸개들일 성싶은 한 떼의 군사들이 수레를 에워싸고 있다가
관공이 피묻은 청룡도를 든 채 달려오는 걸보고 질 겁을 하며 흩어져 달아났다.
관공은 그들을 멀리 쫓아버린 뒤에야
보정을 찾아 감사를 드렸다.
"대사의 고마우신 가르치심이 없었던들
우리는 모두 이자들에게 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실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보정이 합장하며 담담히 대꾸했다.
"모두 부처님 뜻입니다.
하지만 빈승 역시 의발을 수습해 이곳을 떠나야 할 듯 싶습니다.
변희의 수하들이 이 몸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낯선 곳으로 가 구름처럼 떠 몰며 지내야겠지요.
다시 뵙게 될 때까지
장군께서도 옥체를 보존하십시오"
관공은 그런 보정에게 거듭 감사한 뒤
다시 두 형수가 탄 수레를 보호하며 형양을 바라고 떠났다.
형양태수 왕식은 한복과 집안끼리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한복이 낙양에서 관운장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소문을 듣자
무리를 모아 놓고 원수갚음을 의논했다.
마침 관공이 형양으로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걸 남몰래 그를 해칠 좋은 기회라 여긴 까닭이었다.
의논을 거듭해도
관공을 쉽게 죽일 수 있는 길은 역시 꾀를 쓰는 것뿐이었던지
왕식 또한 변희처럼
관공을 반기는 체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했다.
관 밖까지 나가 마중하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장군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형님을 찾아 하북으로 가는 길입니다.
승상께서도 이미 허락하신 일이니 조용히 관을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관공은 속으로 왕식이 또 길을 막고 나설까봐
은근히 걱정하며 대답했다.
그러나 왕식은 뜻밖에도 선선히 허락했다.
"승상께서 이미 허락하신 일이라면 이 왕 아무개가 들어서 마다할 리 있겠습니까?"
그래 놓고는 관공에게 넌지시 권했다.
"장군께서는 먼길을 말을 달려오셨고,
두 분 부인께서도 수레를 타고 오시느라 지치고 피곤하실 것입니다.
잠시 성안으로 드시어 하루 저녁 역관에 쉬어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길 떠나시는 일은 내일이라도 늦지 않으실 것입니다"
관공은 그러치 않아도 피로하던 차에
그렇게 은근함을 보이자 마음이 움직였다.
두 형수를 권해 형양성 안으로 들어갔다.
역관 안에는 이미 관공을 위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왕식은 또 술자리를 마련하고 관공을 청했다.
관공이 가지 않자
사람을 시켜 술과 음식을 보냈는데 정성스럽기가 그지없었다.
먼길을 고생스럽게 온 관공은 일찍 쉬고 싶었다.
두 분 형수를 청해 저녁식사를 마친 뒤,
따라온 이들도 모두 편히 쉬게 하고 자신도 쉴 방으로 들어갔다.
한편 형양태수 왕식은
관공이 너무도 쉽게 자신의 계책에 걸려든 걸 기뻐하며
종사로 부리는 호반을 불렀다.
"오늘 온 관우는 승상을 저버리고 달아났을 뿐만 아니라 여기로 오는 길에는
앞을 막는 태수와 관을 지키는 장수들까지 죽였으니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무예가 빼어나 맞서기 어려우니 꾀를 써서 죽여야겠다.
오늘밤 군사 1천을 이끌고 역관을 에워싼 뒤
각기 횃불 하나씩을 마련케 하여 3경이 되거든 일제히 불을 지르게 하라.
누구이든 묻지 않고 역관 안에 있는 자는 모조리 태워 죽여야 한다.
그때 나도 군사를 이끌고 가 그대의 뒤를 받치리라"
왕식이 그 같은 영을 내리자
호반은 곧 그대로 따랐다.
군사 1천을 점거하고, 마른 섶을 구해 다
역관 둘레에 쌓아 놓은 채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밤이 제법 이슥했을 무렵이었다.
3경이 되기만을 기다리던 호반은 문득 생각했다.
'관운장의 이름을 들은 지는 오래되었으나 아직 그 모양을 보지 못했다.
죽이기 전에 어떻게 생겼는지 보기나 하자'
그리고 몰래 역관으로 가 역리에게 물었다.
"관 장군은 어디에 계신가?"
"정청에서 책을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역리가 그렇게 대답했다.
호반은 가만히 마루에 올라
관공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그때 관공은 탁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왼손으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참으로 하늘이 낸 사람이로구나"
호반은 자기도 모르게 그 같은 감탄의 소리를 냈다.
그 웅장한 풍채에도 풍채이려니와 그 험난하고 고된 길을 가는 중에도
손에서 책을 떼지 않는 인품에 절로 감동이 된 거이었다.
"거기 있는 게 누구냐?"
사람의 기척을 들은 관공이 물었다.
호반은 얼떨결에 관공 앞으로 나가 절하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형양태수 아래 종사로 있는 호반이 관공을 뵙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허도성 밖에 사는 호화 어른의 아드님이 아닌가?"
호반의 이름을 듣자
관공은 언뜻 생각나는 게 있어 그렇게 물었다.
호반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관공은 곧 부리는 이를 소리쳐 부르더니 명했다.
"내 짐 속에 들어 있는 글을 가져오너라"
종자가 가져온 편지를 호반이 받아 읽어보니 아버지의 글이었다.
집안 소식과 아울러
관공을 도와주라는 당부가 들어 있었다.
그러잖아도 관공의 풍채와 인품에 반해 있던 호반은
글을 다 읽자 홀로 탄식했다.
'하마터면 충성스럽고 의로운 사람을 죽일 뻔했구나!'
그리고 가만히 관공에게 알려주었다.
"왕식은 어질지 못한 마음을 품고
장군을 헤치려 하고 있습니다.
몰래 사람을 시켜 역관을 에워싸게 해놓고
3경이 되면 불을 질러 안의 사람들을 모두 태워 죽일 작정입니다.
제가 먼저 가서 성문을 수습할 터이니
장군께서는 급히 수레를 수습해서 성을 나가도록 하십시오"
☆☆☆
그 말을 들은 관공은 크게 놀랐다.
곧 갑옷을 걸치고 말에 오른 뒤,
두 분 형수를 청해 수레에 오르게 하고 역관을 나섰다.
나오다 보니
담밖에는 과연 군사들이 각기 홰를 들고 담 안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관공은 일행을 재촉하여 급히 수레를 몰게 했다.
성문에 이르러 먼저 간 호반이 어느새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관공은 일행을 더욱 재촉해 성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몇 리 가기도 존에 홀연 등뒤에서 대낮같이 횃불을 밝혀 든 인마가 쫓아왔다.
앞선 사람은 바로 형양태수 왕식이었다.
"관우는 달아나지 말라!"
왕식이 따르는 졸개들의 머릿수에 힘입어
제법 호기롭게 소리쳤다.
관공이 말고삐를 당겨 돌아서며 왕식을 꾸짖었다.
"왕식, 이 하찮은 것아, 너와 나는 아무 것도 원수진 일이 없거늘
너는 어찌하여 나를 태워 죽이려 했느냐?"
그 말에 왕식은 자신의 비겁한 계책이 관공에게 들킨 것을 알았다.
부끄러움이 분노로 변해 겁도 잊고 말을 박차 달려나갔다.
창을 꼬나들고 관공을 향해 닫는 품이 자못 장수다웠으나
처음부터 어림없는 일이었다.
관공의 청룡도가 한번 번뜩이는가 싶더니
왕식은 어느새 허리가 동강나 말 아래로 떨어졌다.
태수인 왕식이 그 꼴로 죽자 따라오던 졸개들은 겁에 질렸다.
관공을 뒤쫓을 생각은커녕 무기를 던지고 달아나기 바빴다.
관공은 일행을 데리고 길을 재촉하면서도 속으로는 호반에게 감사해 마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