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똥 / 안이숲
멸치 똥을 깐다
변비 앓은 채로 죽어 할 이야기 막힌
삶보다 긴 주검이 달라붙은 멸치를 염습하면
방부제 없이
잘 건조된 완벽한 미라 한 구
내게 말을 걸어온다
바다의 비밀을 까발려줄까 삶은 쓰고
생땀보다 짜다는 걸 미리 알려줄까, 까맣게 윤기 나는 멸치 똥
죽은 바다와
살아있는 멸치의 꼬리지느러미에 새긴
섬세한 증언
까맣게 속 탄 말들
뜬눈으로 말라 우북우북 쌓인다
오동나무를 흉내 낸 종이관 속에 오래 들어 있다가
사람들에게 팔려온
누군가의 입맛이 된 주검
소금기를 떠난 적이 없는
가슴을 모두 도려낸 멸치들 육수에 풍덩 빠져
한때 뜨거웠던 시절을 우려낸다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뼈를 남기고
객사한 미련들은 집을 떠나온 지 얼마만인가
잘 비운 주검하나 끓이면
우러나는 파도는 더욱 진한 맛을 낸다
안이숲 프로필
경남 산청 출생
경상대학교 행정대학원 산업심리학과 졸업
경남 문인협회 회원, 사천 문인협회 회원
멀구슬 문학회 회원
수상경력
2017 김유정 신인문학상 수상
2019 평사리 토지문학제 문학대상 수상
2021 천강문학상 수상
2021 “시사사”신인상 수상
첫댓글
이런 좋은 시를 혼자 감상하는 것은 죄를 짓는것 같아 공유합니다.
시인님께서는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