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화산의 달밤
이윽고 중양절 달이 둥실 떠올랐다. 청청히 밝은 밤이었다. 다만 바람에 풀잎 스치는 무심한 소리가 섞여 들어 으스스한 기운을 자아낼 뿐이었다.
화산 양쪽 기슭을 메우고 수많은 사람들이 산봉우리로 오르고 있었다. 사람마다 각양각색이요, 생각도 천차만별이었다. 악심을 품고 갖은 수단을 다하여 왕중양의 손에서 그 천하의 기서를 빼앗으려는 사람, 별 생각 없이 구경이나 실컷 해두자는 사람……. 하지만 천하에 드문 고수들의 싸움을 지켜 보려는 일념만은 너나할것 없이 똑같았다.
화산 양지쪽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산기슭의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조용하던 밤 하늘에서 불현듯 우레 소리가 은은히 들려 왔다.
"이거 좋지 않군. 인기척이 있어!"
누군가 큰소리로 말했다. 화산파의 곽명송이었다.
그 말에 사람들은 입을 다문 채 서로 근심스런 눈길을 주고받았다. 순간 암벽 쪽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이내 쿵쿵 소리가 진동하며 큰 바위 하나가 사람들을 향해 곧추 굴러 내려왔다.
"피해욧! 누가 저 뒤에 매복하고 있소!"
곽명송은 급히 외치고는 몸을 날려 절벽 쪽에 바투 붙어 섰다. 절벽에 붙어 선 그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 맹수와 흡사했다. 몇몇 사람들은 비록 곽명송의 고함소리는 들었지만 영문을 몰라 멍청히 있다가 굴러 오는 바위을 안고 그대로 나뒹굴었다. 악 비명 소리가 날카롭게 허공을 찢었다. 순식간에 족히 십여 명은 될 듯싶은 사람들이 바위에 깔려 죽었다. 요행 살아난 사람들도 혼이 다 달아날 지경이었다. 그들은 한곳에 모여 서서 떠들썩하니 갑론을박을 했지만 그 바
위가 어디에서 굴러 왔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 길은 좁으니 빨리 지나가야 해요. 어물거리다간 위험하단 말이오!"
곽명송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제압하며 고함을 내지르곤 앞장서서 성큼성큼 내달아 갔다. 모두들 서로 먼저 가려고 밀치락거리면서 뒤를 따랐다.
이윽고 저 높이에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좀전에 바위가 굴러 내린 것말고는 요행히 그때껏 그 누군가가 그들을 암해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 산봉우리에도 사람의 자취는 아직 없는 듯했다. 보름달은 아닐망정 교태로운 달빛이 내리비추고 맑은 바람이 불고 있을 따름이었다. 일순 무리 중에 누군가가 목멘 소리로 말했다.
"사제, 사부님께선 날더러 자네를 잘 보살피라고 당부하셨지. 그런데 결국 그 《구음진경》을 빼앗으려고 길만 다그쳐 다니다가 이 꼴이 됐구먼. 경서는 구경도 못하고 싸움 한 번 못해 본 채 형제만 죽고 말다니."
그 사람은 일단 말을 꺼내 놓자 서러움이 복받치는지 끝내 대성통곡을 터뜨렸다. 아까 그 바위에 자기 문파 사람이 하나 깔려 죽은 모양이었다. 곡성이 화산 위로 애처롭게 울려 퍼졌다.
"사형, 너무 그렇게 비감해하지 마시오. 우리라도 어서 가서 무예 시합을 구경해야 하지 않겠소? 사형이 만일 갈 생각이 없으시다면 이곳에다 그냥 우리 시체를 묻도록 합시다!"
아마 그 사람의 사제인지 누군가가 입을 떼자 그는 쓱 눈물을 훔치며 급히 나섰다.
"아니, 안 돼. 어서 산에 올라감세. 사부님께선 우리들에게 꼭 그 《구음진경》을 갖고 오라고 당부하셨어. 난 꼭 그걸 빼앗고야 말 테야!"
그 사람은 울음을 뚝 그치고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곽명송은 이윽고 화산 남쪽 기슭에 당도했다. 그 뒤로 강호 호걸들이 한 무리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잔뜩 긴장한 채 내처 걸어왔는지라 온몸이 뻣뻣이 굳어질 지경이었다. 곽명송은 잠시 멈춰 서서 산정을 올려다보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여인들의 낭랑한 웃음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리고는 이내 꽃같이 어여쁜 여인들이 바위 뒤쪽에서 몰려 나오며 앞을 가로막았다. 호걸들은 얼떨떨하니 서로를 마주보며 주춤주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여인들 가운데서 한 여인이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여러분은 밤이 이렇게 늦었는데 뭣 하러 화산을 오르는 거예요?"
호걸들은 눈앞에 나타난 사람들이 모두 여인인지라 의아스럽기 그지없었다. 강호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몰려들었기로서니 한꺼번에 이처럼 많은 미인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개중에 꼭 원숭이같이 생긴 사람이 제일 먼저 나서서 말을 건넸다.
"처녀를, 오늘 밤에 좋은 구경거리가 있는데 그쪽도 그걸 보러 가는 길이우?"
"우리가 어찌하든 그건 상관할 바 아니에요. 전 다만 여러분한테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시라고 권하려는 것뿐이에요. 만일 뱀한테 물리기라도 하면 앞으론 아무 구경도 못할 게 아니에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 기색은 적이 냉랭했다.
'난 화산에서 여러 해를 지내 왔지만 도적들이 들끓는다는 말은 종래로 들어 본 적이 없다. 한데 저 여인들은……. 실로 우리 화산파의 명예를 더럽히는구나.'
곽명송은 여인들을 뚫어지게 쏘아보면서 생각을 굴렸다. 곽명송은 그 여인과 눈길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 여인은 대뜸 쌀쌀하게 내뱉었다.
"곽 대협, 당신은 강호의 명인이니만큼 이런 어중이떠중이들과 한데 섞여서는 안 되지요. 만일 당신이 물러서신다면 살 길은 내드리겠어요."
그 말은 아주 사정을 보아 주는 듯하여 모두들 곽명송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곽명송은 그 말이 몹시 거슬렸다. 그는 평소 성품이 아주 온화하여 누구와도 큰소리로 대거리하는 법이 거의 없었으나 이처럼 감히 화산파를 건드리고 깔보는 여인들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뭐 하는 계집들이냐? 감히 화산에 와서 무례하게 굴다니, 화산파의 검술을 배워 보겠다는 겐가? 썩 물러가지 못할까!"
그러자 여인은 냉랭히 낯색을 굳히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
"네 녀석이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이군!"
그녀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세 여인이 일제히 검을 빼 들고 곽명송을 향해 똑바로 찔러 왔다. 사정없이 검을 휘두르는 품이 무예가 만만치 않음에 분명했다. 곽명송은 급급히 피하며 홱 검을 빼들었다. 세 자루의 검이 일제히 곽명송을 겨누고 춤을 추면서 그의 검과 맞부딪쳐 밤 하늘에 불꽃을 날렸다. 곽명송은 화산 검술을 정통으로 전수받은 화산파이 으뜸가는 제자로서 한치의 빈틈도 없이 세 여인의 검을 번개같이 받아 쳤다. 네 사람은 한데 어우러져 차 한잔 마
실 시간 동안이나 싸웠으나 승부를 내지 못했다.
곽명송은 원래 일단 자신이 초수를 써서 눌러 놓으면 세 여인이 순순히 물러서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세 여인이 만만치 않게 세 자루의 검으로 맹렬한 공격을 들이대자 속이 뜨끔했다. 아무리 화산파의 정통 검술을 펼쳐 낸다 해도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데야 별 재간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 여인들이 똑같은 초수로 연이어 공격을 들이대자 적이 의아하여 한켠으로 썩 물러났다. 아무래도 이 여인들에겐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음이 분명했다.
"당신들은 왜들 이러는 건가?"
곽명송은 고함을 내질렀다.
"우린 다만 당신들더러 산에서 내려가라는 것뿐이에요. 산놀이를 하시겠거든 내일 다시 오세요."
"무슨 농담을 하는 게냐? 우린 바로 오늘 밤에 일이 있어서 화산에 온 것이다. 허튼수작 말고 냉큼 길을 비켜라!"
"당신이 화산파 대협 곽명송이라는 걸 우리는 익히 알고 있어요. 정히 그러시다면 다른 분들은 올라가세요. 하지만 곽 대협께서는 오늘 밤 절대로 화산에 올라가셔서는 안 돼요."
곽명송은 안색이 확 달라졌다.
"내가 화산에 올라가면 왜 안 된다는 거냐? 무슨 연고로 다른 사람은 화산에 올라가도 일없고 나 이 화산파의 제자만 못 올라간다는 말이냐?"
세 여인은 의미 심장한 눈길로 서로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곽 대협, 창 앞이 밝고 땅속이 밝은데 정의도 몰라봐서야 되나요?"
여인의 그 한마디에 곽명송은 삽시에 안색이 변했다.
"다, 당신들은……."
"곽 대협께선 강호에 명성이 뜨르르한 분이시라 모두들 우러러보지요. 하지만 우리 가문의 처녀들만 보면 몸둘 바를 몰라 하시거든요."
뭇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얼떨떨하게 곽명송을 바라보았다. 그는 필시 말못할 고충이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는 세 여인을 바라보며 고분고분 말했다.
"여인들께선 무슨 분부가 있어서 그러시오? 속시원히 말해 보시오."
그러자 뭇사람들은 그만 아연실색해졌다.
"무슨 어려운 건 아니에요. 단지 곽 대협께선 이 화산 꼭대기에 올라갈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한 여인이 정색을 했다. 곽명송은 하얗게 질리더니 이윽고 결심을 내린 듯 말했다.
"좋소, 이 곽모는 물러가리다."
곽명송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고개를 꾸뻑 숙이고는 쏜살같이 산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괴이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곽명송이 왜 저리도 황황히 떠나가는지 도무지 그 연유를 알 수가 없었다. 뭇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내두르면서도 한시 바삐 화산 꼭대기로 올라가 무예 시합을 볼 생각이 앞서 곽명송의 일을 자세히 따져 보려 하지 않았다.
"여인네들, 난 필히 화산에 올라가 무예 시합을 구경해야겠소. 우린 가게 해 주겠지?"
누군가가 운을 떼자 또 한 사람이 거들었다.
"난 당신네와 초면강산 처지인데 내가 가는 걸 막을 리야 없겠지."
"우린 이곳에서 사람들이 산정에 오르는 걸 막고 있어요. 당신이 화산에 올라가지 않는다면야 막을 필요도 없겠지요."
한 여인이 쌀쌀하게 말했다. 적이 냉기가 감돌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화를 발끈 내며 소리를 질렀다.
"당신네들이 그런다고 화산에 안 올라갈 내가 아니야! 이렇게 쉽게 돌아갈 거면 애초부터 나서지도 않았어!"
그러나 여인들은 이번엔 대꾸할 필요조차 없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문 채 매섭게 쏘아보기만 할 뿐이었다. 여인들의 눈빛에선 살기가 번쩍였다. 그러자 사람들 가운데 연장자인 듯한 사람이 손짓을 하면서 사람들을 물리고는 앞으로 나섰다.
"처녀들, 처녀들은 왜 우리가 산에 올라가는 걸 막는 겐가? 뭘 알아야 내려가든 올라가든 할 거 아닌가?"
그러자 그 여인은 옥같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활짝 웃었다.
"노옹, 화산 꼭대기는 위험하기 그지없으니 노옹께서는 올라가시지 않는 게 좋아요."
"내 나이 많은 것이야 처녀들이 걱정할 바 아니네! 그래 우리가 산에 올라가지 않는다고 해서 처녀네 가문이 그 기서를 빼앗을 수 있을 성싶은가?"
"빼앗고 못 빼앗는 것은 내 손에 달린 거예요. 노옹께서 올라가고 못 가는 것도 내 손에 달린 거지요."
도시 말이 통하지 않는지라 연장자 노인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사람들 중에 귀영자(鬼影子) 오신(吳信)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눈알을 부라리며 세 여인들을 험악하게 쏘아보고 있었다. 저따위 섬약한 계집들이 어찌 호랑이 같은 강호 무객들을 막아낸단 말인가……. 그는 코방귀만 뀌어대다가 곽모라는 얼뜨기가 여지없이 꽁무니를 빼고 나자 여인들이 더한층 기세를 올리는 것을 보고는 벨이 꼴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오신은 대뜸 노인을 밀치며 노한 기색으로 외쳤다.
"네 년들이 날 어떻게 막나 두고 보리라!"
그리고는 바람을 일으키며 화산 꼭대기를 향하여 곧추 달려갔다. 그의 경공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그러나 세 여인은 여유만만하게 소리를 질렀다.
"도망가지 마라. 그러다가 후회할라!"
귀영자 오신은 시답잖은 듯 맞받았다.
"내가 왜 후회하냐? 내가 산꼭대기에 올라간들 너희들이 어쩔 셈이냐?"
오신은 눈 깜짝할 사이에 족히 백여 보는 뛰어갔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돌처럼 굳어졌다. 그는 간신히 머리를 돌려 세 처녀를 노려보았다.
"네……네……네 년들이……."
하지만 그는 채 말을 잇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털썩 쓰러져 그 즉시 뻗어 버리고 말았다. 세 여인은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가 검으로 시체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귀영자는 어디 가고 썩은 고깃덩어리밖에 없는 게야?"
사람들은 모두 놀라 입이 떡 벌어진 채 아무 말도 못했다. 연장자 노인이 낯색이 확 달라지면서 간신히 한마디 토해 냈다.
"너네들은 하……향녀……."
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에 식은땀이 확 솟구쳤다. 일찍이 향녀들이 지독하기 이를 데 없고 특히 사내들을 미워해 어느 사내든 맞닥뜨리기만 하면 가차없이 못살게 굴다가 죽여 버린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돌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거개가 향녀들을 처음 보는지라 아무리 강고한 호객들이라 하더라도 한결같이 사족을 못 펴고 와들와들 떨어댔다.
세 여인은 희색이 만면하여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
"저자는 자기 재주만 믿고 날뛰다가 죽어 버렸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저 사람처럼 과오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래요."
모두들 잠자코 말이 없었다. 화산 꼭대기에 이르기도 전부터 이처럼 시끄러운 일이 생기게 될 줄은 그 누구도 꿈에도 생각지 않았었다. 한동안 침묵만이 흘렀다.
이윽고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안 되겠어, 안 돼. 사부님께선 나더러 기필코 그 《구음진경》을 가져 오라고 하셨는데 예서 말 수는 없지! 산에 올라가지 않고서야 그걸 어떻게 손에 넣는단 말이여? 이봐 사제, 가세나!"
그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한발 한발 떼놓았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이 잠시 주춤거리더니 장탄식을 하며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세 여인에게서 서너 장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처녀들, 인사드리오!"
세 여인은 표정을 굳힌 채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먼저 나섰던 사람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회양파(淮陽派)사람 허도(許度)라고 하오. 우리 사부님께선 우리 삼형제더러 반드시 《구음진경》을 가져 와야 한다고 엄명을 내리셨소. 한데 한 형제는 저 밑에서 바위에 깔려 죽어 버렸고……. 어쨌든 난 사부님의 명을 거역할 수 없소."
그 사람은 바로 회양파 대응조문(大鷹爪門)의 계승자였다. 워낙 회양파는 일찍이 다른 6대 문파들과 나란히 천하의 7대 문파를 이루었다. 그런데 회양파의 대력응조(大力鷹爪)는 꽤 날쌘 초수이기는 하나 충분한 내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으로서, 갈수록 정치하고 변화무쌍해지기는 했지만 내력은 갈수록 못해져서 드디어는 그 대응조문의 공력은 강호에서 명성을 잃게 되었다.
형세가 이런지라 사람들은 그의 무예가 그리 대단치 않으리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 사람은 기백이 강고한 사나이였다. 그는 여인들에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갔다. 기어이 산꼭대기로 올라가고야 말 심산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고 진땀만 빼고 있었다.
세 여인은 삽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들은 검 끝으로 오신을 가리키며 내뱉었다.
"저자의 무예가 당신보다 어때요?"
허도는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저 사람은 나보다 퍽 강하오."
"당신은 그처럼 뻔히 알면서도 왜 죽으려 드는 거요?"
"난 분명히 말했소. 우리 사부님께서는 우리 형제더러 《구음진경》을 꼭 가져 오라고 하시면서 우리 회양파의 공력을 빛내라고 하셨다고 말이오. 이건 우리에겐 아주 요긴한 일이오."
"목숨을 살리는 게 요긴한 일이지 목숨을 잃고서야 어찌 《구음진경》을 손에 넣을 수 있겠어요?"
"모르겠소. 어쨌든 사부님께서 그 《구음진경》빼앗아 오라고 하셨으니 그대로 하는 수밖에. 이제 산으로 올라가야겠으니 길을 비켜 주시오!"
"사부님께서 당신이 이번에 가기만 하면 목숨을 잃는다고 말해 주었더라도 당신은 그냥 갈 셈인가요?"
그래도 이 억센 허도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곳으로 오르다가 죽더라도 난 사부님 말씀을 거역할 수는 없소! 사제는 죽고 싶지 않아도 죽어야 하는 거요. 산에 올라 그 경서를 빼앗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소."
"당신은 산에 올라가기만 하면 《구음진경》을 빼앗을 수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오만, 아무래도 그렇게는 안 되겠어요. 당신은 내 말을 안 들으니 산에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나의 검에 찔려 죽어야 해요."
그 여인은 더는 말을 나눌 필요도 없다는 듯이 잽싸게 검으로 사나이의 앞가슴을 찔렀다. 사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나 사내의 가슴팍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 나왔다. 달빛 아래에선 핏빛도 시꺼멓게 보였다. 섬뜩했다. 여인은 내심 흠칫 놀라며 사내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당신이 돌아서서 가기만 하면 아직 목숨은 살릴 수 있어요."
하지만 허도는 우직하게 하던 말만 곱씹었다.
"사부님께선 우리 형제더러 꼭 《구음진경》을 가져 오라고 하시었소. 죽고 사는 건 요긴한 일이 아니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앞으로 발자국을 떼놓았다. 여인은 연거푸 몇 걸음이나 물러서면서 소리쳤다.
"당신은 내가 죽이지 않을 거라고 오산하지 말아요. 그렇게 나오면 난 사정을 두지 않겠어요!"
"난 화산에 올라가 《구음진경》을 빼앗아야만 하오!"
그는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되뇌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세 여인은 참으로 진퇴양난이었다. 그러자 더욱 화가 나서 외쳤다.
"좋아요! 당신이 자초한 죽음이니 절대 우릴 원망하지 마세요!"
세 여인은 일제히 검을 치켜 들었다.
그때였다. 불현듯 긴 염불 소리가 들리더니 한 사람의 그림자가 번개같이 눈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사람은 바로 주백통에게 혼쭐이 났던 라마 중이었다. 그는 워낙 서역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조했으나 이역만리 중원 땅까지 왔다가 도저히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 화산에 오르던 중이었다.
"처녀들, 살려 줄 만한 사람은 살려 줘야지, 처녀들한텐 이만한 공덕도 없단 말인가?"
세 여인들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대력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검마저 푸르르 떨리며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여인들은 두 눈 뻔히 뜬 채 태연한 기색으로 서 있는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을 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이 시주님의 심사는 오로지 사문(師門)을 위해 《구음진경》을 얻으려는 것뿐이잖소? 사내인 나도 보고 자못 감동되는데 당신들 세 처녀들은 마음도 움직이지 않는단 말이오?"
세 여인은 기가 막히다는 듯 서로 마주보더니만 한껏 이죽거렸다.
"마음이 움직여요? 당신은 우리가 향녀라는 걸 모르세요? 향녀더러 감동을 받으라고 하다니, 그런 농담은 집어치우세요!"
세 여인은 하나같이 코웃음을 쳤다. 개중 한 여인이 목청을 높였다.
"모두들 들으세요. 우리 향녀들이 있는 한 오늘 밤 화산에서 잡인들은 소란을 못 피우니 당신들 남정네들은 엄두도 내지 말아요!"
그러자 라마 중은 앙천대소를 하고는 허도를 보고 물었다.
"시주님, 당신은 화산에 가길 원하고 계시는지요?"
그러자 허도는 장탄식을 했다.
"대사님께 말씀드리지요. 제가 화산에 온 건 남들의 뛰어난 무공을 보기만 하자는 게 아니었습니다. 당당히 그 기서를 빼앗으려고 온 겁니다. 내 이 회양문의 무예로 그 기서를 빼앗는다는 건 하늘에 오르기보다 어렵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나 사부님의 명이 지엄한지라 예서 말 수는 없습니다. 하나 이 여인들이 이렇게 막아 나서니 예서 죽는다 해도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다가 죽으면 유감이 없을 것입니다."
라마 중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그 경서를 얻자면 어려운 일이 아니오. 당신이 내 말만 들으면 그 책을 꼭 얻게 해 주겠소."
"대사의 말씀이 참말입니까?"
허도는 반색을 했다.
"출가한 몸으로 어찌 거짓말을 하겠소? 내 말을 믿으시오. 다만 당신은 누가 물으면 이 라마 중은 경서를 빼앗기 위해 온 것이 아니고 바로 당신을 도우려 할 따름이라고만 말하시오. 어떻소? 그러시겠소?"
라마 중은 주백통과 한 언약 때문에 아무래도 찜찜했다. 그래서 이 우직한 사내를 내세워 명분이나 세워 보자는 심산이었다. 허도는 허도대로 방도가 없던 판이라 가뭄에 단비 만난 듯 이 라마 중의 제안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는 속으로 적이 감격하면서 얼른 외쳤다.
"그럼요, 그럼요!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요.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요. 대사님, 대사님이 날 데리고 가겠다니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요?"
세 향녀는 라마 중을 바라보다가 서로 이마를 맞대고 한바탕 귀엣말을 나누었다. 그러더니 그녀들 중 하나가 웃음 띤 얼굴로 라마 중을 바라보며 물었다.
"스님, 당신은 화산에 올라가 《구음진경》을 빼앗으려고 그러시나요?"
"아니, 아니오. 화산에서 무예 시합이 있단 말을 듣고 그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러오. 백년을 두고도 볼 수 없는 희한한 구경거리가 아니오?"
라마 중은 정색을 했다.
그러자 의외로 향녀들도 낯색이 펴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워낙 이 여인들은 모든 사람들을 다 막자고 하는 게 아니었구나. 저 여인들의 비위에 맞게 잘 구슬리면 산정으로 올라갈 수도 있겠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향녀들의 비위를 맞춰 보려고 저마다 허리를 굽실거리며 어설프게 웃어 보였다. 한 사람이 쭈뼛쭈뼛 나서며 사정을 했다.
"향녀들, 우리가 산 위에 올라갈 수 있게 해 주구려. 우린 하나같이 다 재간이라고 해야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니 그 《구음진경》을 쟁탈할 궁리도 안 하우. 백년 이래에 보기 힘든 희한한 구경거리라 한번 보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 거라오."
그러자 향녀들은 웬일로 데면데면하게 구는 것이었다.
"좋아요. 저 라마 중을 봐서 당신들을 모두 산으로 올려 보내겠어요. 구경이나 잘하세요!"
세 여인은 더는 다른 말은 하지도 않고 사뿐사뿐 산 위로 올라갔다. 그녀들은 기실 모름지기 중은 여체를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마음이 바뀐 것이었다.
화산 북쪽 기슭에서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산꼭대기로 오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닫아붙인 채 묵묵히 걷기만 했다. 화산 꼭대기에 거의 다 와서야 그들은 멈춰 섰다. 두 사람이 길다란 의자를 들어다가 내려놓았다. 한 사람이 그 의자에 앉아 호령을 했다.
"됐어. 자 줄들을 서! 줄을 좀 잘 서란 말이야!"
목소리가 우렁우렁했다.
"오늘 밤 일은 아주 중요하다. 평소 너네들이 다소 과실을 저질러도 내 너그러이 용서해 주었으나 만일 오늘 조그만한 실수라도 있었다가는 모두 죽을 줄 알아라! 산 위로 올라오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몽땅 도로 쫓아 보내라. 만일 안 듣고 시비를 거는 놈이 있거든 사정을 두지 말고 죽여 버려라! 알겠느냐?"
뚱뚱보 여인들은 저마다 꼿꼿이 서서 대환희 보살의 훈시를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듣고 있었다. 보살의 말이 떨어지자 그녀들은 여러 패로 나뉘어 바위 뒤에 숨어서 길목을 지켰다.
한 순간, 누구인가 천천히 올라오는 기척이 들려 왔다. 그 사람은 내내 구시렁구시렁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시합을 하려면 낮에 할 거지, 이 야밤에 할 게 뭐람? 맑은 날 낮에 하면 얼마나 좋아? 그리고 또 평지에서 하면 누가 뭐라나? 이따위 산꼭대기에서 할 건 또 뭐람? 아유, 성가시다, 성가셔!"
뚱뚱보 여인은 한층 경각심을 가지며 똑바로 쏘아보았다. 그 사람은 바로 노완동 주백통이 아닌가. 그는 몸을 앞뒤로 건들거리면서 곧추 다가오고 있었다. 뚱뚱보 여인들은 근심이 태산 같았다. 그때 낡은 절에서 그의 무예를 익히 보지 않았던가. 대환희 보살은 누구를 막론하고 산꼭대기로 올려 보내지 말라고 했지만 무슨 재간으로 주백통을 막아낸단 말인가. 여인들은 전전긍긍하다가 떼밀리듯이 바위 뒤에서 튀어나갔다.
주백통은 그들 두 여인을 보자 눈동자가 휘둥그래지더니 실없이 허허 웃었다.
"실로 괴이한 일이로군. 화산엔 원래 뚱뚱보가 많은 건가? 그래 당신들은 모두 화산 사람들인가?"
"주백통,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ㅇ! 우린 대환희 보살님의 수하들이다. 네 놈은 오늘 밤 이 산 위에 오르려고는 꿈도 꾸지 마라!"
주백통은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
"당신들이 날 산 위에 못 올라가게 하겠다구?"
두 여인은 팔을 떡하니 허리에 얹고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주백통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절주절 늘어놓기 시작했다.
"안 돼, 난 꼭 산꼭대기로 올라가야 해. 그래 당신들은 내가 중양 진인의 사제라는 것도 모르고 있나? 난 애시당초 남한테 무공 배우는 걸 아주 좋아해. 듣자니 중양 진인의 무예가 천하에서 으뜸이라고 하는지라 종남산으로 찾아가 그분을 스승으로 모시려 했는데 그분이 날 제자로는 받지 않고 사제로 삼을 줄 뉘 알았겠나? 뿐만 아니야. 앞으로 전진교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날더러 그걸 타개하라고 하셨다구. 그분 재간이 그처럼 대단한데 무슨 어려운 일이 있을까 하
는 생각이 들더군. 천하에 나의 사형을 이길 만한 사람은 없으니까. 당신들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은 거렁뱅이 홍칠공과 싸워야 해. 그 거지는 무공이 대단해서 난 그 사람을 이기지 못해. 그 밖에도 황 약사라는 동해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재간이 대단해. 그 사람은 늘 상냥한 여인 한 사람만 데리고 다니는데 무예는 대단하거든. 또 대리 황제도 이 세상에서 희귀한 일양지란 무공을 연마해 냈단 말야. 난 화산에 가서 그 멋진 시합을 구경해야겠어. 그러
니 어서 길을 비키라구!"
"글쎄, 네 녀석은 못 가!"
뚱뚱보 여인은 시답잖게 대꾸했다. 그러자 주백통은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왜 내가 가선 안 된다는 거야?"
"우리 보살님이 엄명을 내렸거든. 어쨌든 네 녀석은 절대 못 올라가!"
"당신들의 그 무슨 보살이 당신한테나 명령을 내리는 게지 나한테는 명령을 내릴 수 없는 거야. 난 전진교 사람인데 왜 개떡 같은 대환희 보살이 날 가로막는 게냐?"
주백통은 대뜸 주먹을 들이댔다. 그러자 두 여인은 급히 피하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삽시에 뚱뚱보 여인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좋아, 너희 모두 덤벼 봐라. 안 그래도 근질근질하던 참이다!"
주백통은 신바람이 나서 주먹을 날렸다. 그의 주먹이 어찌나 빠른지 뚱뚱보 여인들은 당황하여 가까이 다가들지도 못하고 쩔쩔매기만 했다.
"대환희 보살이 운남에서 대문파를 이루고 있다고 하더니만 무예는 아주 형편이 없군 그래. 그래 이까짓 재간으로 나의 사형과 겨루어 보겠다구? 안 돼, 안 돼, 절대 안 돼! 나와 싸워도 안 되겠는데 우리 사형과는 몇 합도 못해 보고 패하고 말아."
주백통은 연신 주먹을 날리면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재간이 있으면 어서 빨리 덤벼들어.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다구! 질질 끌다가는 화산 무예 시합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단 말이야. 행차 뜬 뒤에 나팔 분다고 다 끝난 다음에 당도하면 누구 검술이 훌륭한지 보지도 못하게 된단 말이야. 빨리 덤벼!"
그는 발싸심이 나서 주먹질도 더욱 빨리 해댔고 입도 더욱 바삐 놀려댔다.
"대환희 보살, 어서 나오너라. 네 년의 제자들은 네 년처럼 뚱뚱하기는 하지만 모두 바보들이라 도저히 내 상대가 안 되는구나!"
대환희 보살은 바위 뒤에 몸을 가린 채 나갈 생각도 안 했다. 혹 이 길목으로 대단한 고수가 지나갈지도 모르므로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주백통과 싸울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도저히 주백통의 적수도 못 됐던 것이다.
주백통은 연신 주먹을 휘둘러대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빨리, 빨리, 난 가야겠어. 난 가야겠단 말이야!"
주백통은 대환희 보살의 수하들을 한쪽으로 밀어붙이면서 십여장이나 나아갔다.
"저 놈은 왕중양의 사제다! 절대로 놓아 보내서는 안 된다!"
뚱뚱보 여인들이 무더기로 달려들어 손을 써도 주백통을 놓칠 듯한 형세이자 대환희 보살은 도저히 안 되겠던지 육중한 몸을 달빛 아래 드러냈다. 주백통은 우뚝 멈춰 서서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흥 거기 숨어 있었구먼? 그러니까 당신은 내 무예에 탄복하지 않는단 말이지? 그렇다면 어디 덤벼 봐!"
"얘들아, 저 놈을 붙잡아. 독약을 쓰란 말이다!"
주백통은 코웃음을 쳤다.
"독약을 쓰면 두려워할 줄 아느냐? 어디 맘대로 써 봐!"
큰소리는 쳤지만 그는 멀찌감치 서 있을 뿐 감히 가까이 오지는 못했다. 뚱뚱보 여인들이 이미 앞다투어 독사를 풀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주백통은 이 세상에서 독사를 제일 두려워하는지라 그만 혼비백산하여 소리쳤다.
"안 놀겠다. 안 놀겠어. 네 년들하고는 안 놀아! 어서 화산 무예 시합이나 보러 가야겠다!"
주백통은 소리소리 지르고는 주먹을 휘두르며 여인들 사이를 냅다 뚫고 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림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대환희 보살은 떨떠름하니 입맛을 다시며 그가 사라진 쪽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달은 벌써 중천에 걸려 그 교교한 빛으로 티 하나 없는 밤 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월색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왕중양은 화산 산정 천대평석(天臺平石) 위에 앉아 고요히 밤하늘을 우러르고 있었다. 그는 임조영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그예 그 음습한 활사인묘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통탄을 금치 못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핏 눈물이 가랑가랑 어른거리는 것이었다. 《구음진경》, 그녀도 세상을 떠나고 난 마당에 이 경서가 그에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나 당대 천하 무림의 영웅으로 그는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고 오늘 구구 중양절을 맞아 화산에 올라와 침잠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가벼이 인기척이 들려 왔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무림 4대 고수들이 이미 천대평석 위에 올라 자못 숙연한 자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