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과
성령의 역사의 결과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초대교회는 놀라운 부흥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껏 기독교 역사이래 가장 모범적인 시대가 초대교회 시기일 것이다.
그럼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임한 결과 초대교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오순절 성령이 내린 뒤 첫 번째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바로 방언의 은사였었다.
1. 방언의 은사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초대교회에 임한 방언의 은사는 어떤 것이었는가?
“불의 혀 모양은 그때에 제자들에게 내려 주신 선물의 상징으로서,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이제까지 알지 못하였던 언어들을 유창하게 말할 수 있게 하였다.”(행적, 39)
초대교회에 임한 방언의 은사는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이 지금껏 알지 못했었던 다른 나라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사렛 사람을 사형에 처하였지만 지금 무식한 갈릴리 사람들인 그의 종들이 당시 통용되는 모든 언어로 그분의 생애와 봉사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행적, 40)
말하는 사람도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말했을 뿐만아니라 듣는 사람들도 각기 자기 나라의 언어로 듣게된 것이었다.
(행 2: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 이 때로부터 제자들의 언어는 그들의 본국어로 말하든지 외국어로 말하든지 깨끗하고, 간결하고 정확하였다.”(행적, 40)
“사도들은 이제 그들이 위하여 수고하고 있는 사람들의 언어들을 정확하게 말하면서 널리 해외에까지 복음의 진리를 선포할 수 있었다. ”(행적, 40)
그렇다면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방언의 은사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 알려진 모든 언어가 모인 사람들에 의해 다 나타났다. 이러한 언어의 다양성은 복음선포에 큰 장애가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적적인 방법으로 사도들의 부족함을 채워 주셨다.”(사도행적, 39)
방언의 은사는 오직 복음전파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언어는 복음 전파의 장애가 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복음전파를 위해 주신 것이었고 방언의 은사 역시 사도들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기 위함이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방언의 은사가 허락되자 제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않고 담대히 말씀을 전파하였다.
(행 2: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말씀을 전함에 있어서 담대해졌고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 곳에 있는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여전히 악의로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그리스도에 대한 끊임없는 증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의 손은 세상의 구주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 흘려진 피로 여전히 더럽혀져 있었다. 그들은 제자들이 압제와 살해의 위협으로 공포에 떨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오히려 제자들이 모든 공포를 초월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나사렛 예수의 신성을 능력 있게 선포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행적, 42)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담대히 말씀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붙잡고자 하였지만 백성들에게 폭행당할까봐 행동을 취할 수가 없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이 놀라운 현상을 보고 몹시 분노하였으나 백성들에게 폭행을 당할 것이 두려워 감히 그들의 악의를 실행하지 못하였다. ”(행적, 40)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오순절 성령이 내린 뒤 두 번째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바로 말씀과 기도의 부흥이었다.
2. 말씀을 배우고 기도에 힘씀
(행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말씀을 들은 자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자 말씀을 배우고자 모였고 기도에 힘쓰게 되었다.
말씀을 들을수록 말씀을 사모하게 되었고 기도할수록 더욱 기도에 힘쓰는 자들이 되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할수록 그 감동은 계속해서 증가하게 된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말씀의 부흥과 기도의 부흥으로 이어졌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자신의 부족함은 더욱 크게 느껴지게되고 말씀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더욱 크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하게되고 하나님과 멀어져 갈수록 말씀과 멀리하게된다.
“그가 빛을 나눠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많은 빛을 받게 될 것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그 말씀은 우리에게 더욱 명백하게 된다. 우리의 지식을 더욱 많이 활용하고 우리의 능력을 더욱 많이 사용할수록 우리는 더욱 많은 지식과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실물교훈, 354)
“진리의 광맥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그대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대들의 유익은 더욱 커질 것이며, 그대들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라고 바울처럼 부르짖고 싶어질 것이다. 매일 그대들은 성경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감추인 보화를 찾듯이 성경을 탐구하라. ”(5증언, 265)
“성경을 매일 연구하면, 거룩하게 하는 감화를 마음에 받게 될 것이다. 그대는 하늘의 분위기를 호흡하게 될 것이다. 이 귀중한 책을 그대의 마음에 묶어 두라.”(1증언, 241)
“같은 것끼리는 서로 통한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요 8:47).”(5증언, 695)
왜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토록 기도에 힘쓰는 자들이 되었을까?
“죄가 없노라고 주장하는 그 자체가 성결에서 참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증거가 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순결과 성결에 대한 진정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이 반드시 하나님의 품성과 일치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할 때, 또한 예수님의 순결과 고상한 모습, 그리고 사악하고 지독한 죄의 성질에 대하여 진정한 개념을 깨닫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성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이 자기와 그리스도와의 거리를 멀리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품성과 그분의 요구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자신이 자기 자신의 눈에 의롭게 보인다.”(쟁투, 473)
예수님과 멀어질수록 우리의 죄는 작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가까이 하면할수록 우리의 죄는 더 자세히, 점점 더 크게 보일 것이다. 우리의 부족은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가까이 하는 자일수록 더욱 기도에 힘쓰게될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워졌는지를 반영해주는 것이다. 말씀충만, 기도충만이 있는 곳에 성령충만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오순절 성령이 내린 뒤 세 번째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바로 서로 물건을 통용하는 것이었다.
3. 서로 물건을 통용함
(행 4:32-38)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어떻게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을 수가 있을까?
“신자들 편에서의 이러한 관대한 행위는 성령의 부어 주심을 받은 결과였다. 복음으로 개심한 사람들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의 공통된 관심, 곧 그들에게 위임된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일로 마음이 가득 차서 탐심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었다.”(행적, 70-71)
이렇게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한 마음 한 뜻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
“구주께서 가르치신 원칙과 모든 말씀이 거룩한 아름다움으로 사랑하는 제자의 기억에 간직 되었다. 그의 생애의 만년에 요한이 교회들에게 보낸 증언의 요지는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1, 16)는 말씀이었다.
이것이 초대 교회에 충만한 정신이었다. 성령의 부어 주심을 받은 후에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그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었다(행 4:32, 34, 33).”(소망, 551)
바로 그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을 통해 그들이 십자가 사랑을 배우자 그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던 것처럼 형제를 사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정신이 초대교회에 충만한 정신이었다는 것이다. 이 정신 때문에 서로 물건을 통용하며 자기의 것을 재것이라 여기지않고 형제를 위해 소유를 팔아서 돕고자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얼마나 잘 깨달은지를 알려준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들을 이렇게 변화시킨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하나의 은혜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삶을 지배하였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신앙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우리의 신앙을 지배하고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정신이 되어야할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실천하였던 그 신앙과 삶이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삶에 실천되어야할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무엇에 애착이 있었을까?
“형제들과 저희가 지지한 사업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돈과 소유물에 대한 애착보다 훨씬 더 컸다. 그들의 행위로 보아 그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세상 재물보다 더욱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이 분명하였다.”(행적, 70-71)
교회의 선한 활동들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될까?
“ 교회의 영적 힘과 번영은 체계적인 자선에 크게 좌우된다. 그것은 마치 신체 각부에 생명력을 공급하며 온몸으로 흘러가야 하는 혈액과 같다. 그것은 동료 인간의 영혼에 대한 사랑을 증가시킨다. 왜냐하면,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와 더욱 밀접한 관계에 이르기 때문이다. 영혼의 구원을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더 많이 투자하면 할수록, 그 영혼들은 더욱 가까이 우리의 마음과 밀접해진다. 우리의 수효가 지금의 절반일지라도 그들이 모두 헌신한 일꾼들일 것 같으면, 세상을 흔들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1보감, 385)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을까?
(행 4:31-33)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함께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로하여금 함께 기도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은 결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마음 속에 깨달아지자 다른 사람에게 은혜가 흘러가게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깨달음 없이는 결코 자기 것을 남에게 베푸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300 데나리온에 팔 수 있는 향유옥합을 주님의 발에 부은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300 데나리온의 향유옥합의 가치보다 훨씬 더 컸기때문일 것이다.
(눅 7:46-47)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가? 그것은 내가 평생 벌어서 모은 돈이나 재산으로도 갚을 수 없고, 온 인류가 모은 돈을 다 합쳐서도 갚을 수 없다. 그럼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온 우주를 다 판값이면 갚을 수 있을까? 아니다. 그 은혜는 온 천하보다 귀한 우리의 생명의 값을 다 합해도 갚을 수 없는 은혜요 사랑이다. 이 작은 내가 그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가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 사명을 다할 뿐이다. 그것이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갚는 길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오순절 성령이 내린 뒤 네 번째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바로 한 마음 한 뜻으로 연합하는 것이었다.
4. 한 마음 한 뜻으로 연합됨
(행 2:46)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로 의견이 일치되어 다투는 일이 없게되었다는 것이다. 내것을 내것이라 생각하지않고 같이 사용해도 마음이 불편하지않는다는 것이다. 내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았다는 것은 남이 아니라 한 형제, 한 가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라는 뜻이 무엇이었는가?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신 것처럼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요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그런데 놀랍게 초대교회는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 예수님의 소원이 이루어진 교회가 된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 마음 한 뜻이 되기를 바라고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소원에 얼마나 가까이 가고 있는가?
어떻게하면 이렇게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
“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 그들의 생각은 그리스도로 가득하였다. 그리스도의 왕국을 발전시키는 일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마음과 품성에 있어서 그들은 주와 같은 자들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그들이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행 4:13)을 알게 되었다.”(교육, 95)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은 제자들이 완전한 연합을 이룬 후, 그들이 더 이상 최고의 자리를 위하여 다투지 않게 되었을 때였음을 주목하라. 그들은 하나로 일치되었다. 모든 불화는 제거되었다. 그러므로 영이 주어진 후 그들이 한 증언은 같은 것이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행 4:32)었다는 말씀을 주목하라. ”(8증언, 20)
“그리스도의 훈련을 통하여 제자들은 성령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성령의 가르치심을 힘입어 그들은 최종적인 자격을 얻어 필생의 사업을 향해 나아갔다. 이제는 더이상 무식하지도 교양이 없지도 않았다. 그들은 더이상 개인주의적 모임이나 조화되지 않고 다투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그들의 희망은 더이상 세속적인 위대함에 고착되지 않았다.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하”고, “한마음과 한뜻이 되”(행 2:46, 4:32)었다. 그들의 생각은 그리스도로 가득 찼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되었다. 마음과 품성에 있어서 그들은 주님과 같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들이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행 4:13) 을 알았다.”(행적, 45)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과 교통하면 할수록 그의 애정은 그리스도 안에 더욱 집중되고, 이 세상에서 그가 당하는 고생과 난관에 의하여 적게 방해를 받게 될 것이다.”(5증언, 483)
“연합의 비결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평등 사상에 있다. 모든 분열, 불화 및 차별의 근본 원인은 그리스도에게서 이탈되는 데 있다.”(1기별, 259)
우리 모두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해야할 것이다. 또한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하나로 연합되고 한 마음 한 뜻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모두가 평등하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높고자하는 마음을 버리게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한 마음 한 뜻 한 몸이 되어갈 것이다.
“성령을 받는 자는 그리스도의 속성으로 물들여지게 된다. ”(소망, 805)
(롬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야할 것이다. 우리의 과거의 죄된 본성은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한 마음 한 뜻이 되고 한 몸으로 지어져가는 성도가 되어야할 것이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오순절 성령이 내린 뒤 다섯 번째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바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나아오게되었는 것이다.
5.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많아짐
(행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5: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일이 여기저기 불이 붙어 갈수록 불이 커지듯 하나님의 사업의 결과는 제자들이 생각할 수 없는 결과를 보게되었다.
“유대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의 사업이 그의 죽음으로 끝났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렇게 되기는커녕 그들은 오순절의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행적, 44)
“제자들이 구속하시는 은혜의 기별을 선포하였을 때 사람들의 마음은 그 기별의 능력에 굴복하였다. 교회는 각처에서 모여 온 회심자들로 가득 찼다. 뒤로 물러갔던 사람들이 다시 회심하였다. 죄인들은 값진 진주를 구하며 신자들과 연합하였다. 복음에 대해 가장 혹독하게 반대하던 어떤 이들이 복음의 옹호자들이 되었다. ”(행적, 48)
“제자들은 엄청난 영혼 구원의 수확을 보고 놀랐으며 또 몹시 기뻐하였다. 그들은 이 놀라운 수확을 자신들의 노력의 결과로 여기지 않았다.”(행적, 44)
“ 유대교의 요새인 예루살렘에서도 무수한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가 메시야임을 믿는 신앙을 공공연히 선언하였다.
제자들은 엄청난 영혼 구원의 수확을 보고 놀랐으며 또 몹시 기뻐하였다. 그들은 이 놀라운 수확을 자신들의 노력의 결과로 여기지 않았다. ”(행적, 44)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온 이스라엘을 놀라게하였고 그 결과는 오늘날까지 2,000년이 흐르도록 멈추지않고 있다. 이렇게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서 수많은 영혼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고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자기 물건을 재것이라 하는 이가 없이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있는 부흥의 물결이 일어나는 가운데서도 다른 한 싹이 자라는 일이 일어났다.
다른 마음을 품은 사람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위선적인 마음의 싹이 나타나게된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왜 성령을 속이고 성도들을 속이려고하였을까?
“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탐욕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성령을 슬프시게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약속을 후회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큰 일을 하려는 소망으로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던 그 아름다운 축복의 감화를 잃었다. ”(행적, 72)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처음에는 성령에 이끌려서 구제를 하고자 하였다.
아까운 자기의 땅을 팔아서 헌금해야겠다는 마음을 품을 정도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열심도 있었고 헌신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고자하는 결심을 한 이후에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보다 돈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더 커지게되었다. 돈에 대한 욕심이, 모든 것을 다 헌신하기에는 아깝다는 마음이 그 온 마음을 사로잡게되었다. 그 후 그들은 땅을 판 값의 일부를 숨기고 나머지만 헌신하고자 결심하였다. 사단의 마음이 그 마음을 지배하도록, 돈에 대한 욕심과 아까운 마음이 그 마음을 지배하도록 허용하게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계신다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한 것이다. 교회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때문에 드러나지않는 위기속에 있었지만 위선적인 신앙이 사라짐으로 부흥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교회가 정결해지자 믿고 주께 나아오는 자가 더욱 많아지게되었다.
(행 5:12-14)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근묵자흑”이란 말처럼 가까이 하는 것에, 함께 있는 것에 물들게 되어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돈에 대한 욕심을 이기지못하고 함께 위선적인 일을 함께 공모하게 되었다. 부부는 똑같은 욕심에 물들게된 것이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물들게 된다.
믿는 자들이 더 많아지는 것을 본 사두개인들은 대제사장과 함께 똑같이 시기가 가득하였다.
(행 5: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두개인들은 대제상과 “함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같은 것끼리 모이고, 같은 것끼리 식별된다. 거룩한 것은 거룩한 것과 연합하고, 믿음은 믿음과 합한다. 겸손한 마음과 진실하고 알고자 하는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성경이 빛과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정신으로 성경을 접하는 사람들은 선지자와 사도들과 교제를 나누게 된다. 그들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에 동화되고, 그들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자 갈망하게 된다.”(2보감, 310)
나는 무엇을 좋아하며 누구와 함께 있기를 좋아하는가? 우리는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에 영향을 받게된다. 우리는 무엇에 물들어 가고 무엇에 영향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하겠는가? 초대교회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들이 따라가야할 교회의 모습이 되어야할 것이다.
말씀을 듣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말씀을 더욱 배우려하였고 기도하였고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서로 물건을 통용하는 자들이 되었다. 그들의 생각은 그리스도로 가득찼었고 그들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품게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가 된 것이다. 우리 교회도 이와같이 초대교회를 따라가고 닮아가서 부흥하는 교회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