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산상수훈 8복중 5번째 “긍휼이 여기는 자의 복” (2) 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 “복이 있도다. 긍휼히 여기는 자여! 너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마 5:7).
II. 긍휼한 자가 되라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서로 불쌍히 여기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합니다. 즉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물어 봅니다 : “예수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 정도면 됩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화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한 종이 주인에게 1만 달란트 약 100억원의 빚을 졌습니다. 종은 도저히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앞으로 끌려 옵니다.
주인이 말합니다 : “저 종과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빚을 충당하도록 하여라.”
종이 땅에 엎드려 울면서 사정 사정합니다 : “주인님, 좀 봐 주십시오. 곧 갚도록 하겠습니다.”
주인이 종을 볼 때 불쌍해 보입니다. 가족들이 너무 불쌍해 보입니다) 그래서 100억 빚을 다 탕감읗 해 주었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절을 10번도 더하며 “감사합니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을 대리고 주인의 집에서 풀려 나가다가 친구를 만납니다. 자기한테 천만원을 빌려간 친구입니다.
그 친구를 보자 마자 그 종은 “야! 너 이놈, 잘 만났다”하고서는 친구의 멱살을 붙잡고는 “빚 갚아!”하고 난리를 칩니다.
그러자 친구가 발앞에 엎드려 빌면서 “여보게, 며칠 있다가 갚을 테니 조금만 참아주게”하고 사정을 합니다.
그러자 그 종이 “안 돼, 너같은 놈은 따끔한 맛을 봐야 돼!”하고서는 “가자”하고 친구의 멱살을 잡고 경찰서에 대리고 가서 유치장에 집어 넣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주변 친구들이 “야, 이건 해도 너무한다. 저는 주인한테 100억을 탕감받았으면서 천만원 안 갚았다고 친구를 유치장에 집어 넣어?”하고서 주인에게 가서 사실을 다 고해 바칩니다.
그러자 주인이 종을 다시 잡아다 놓고 “야! 이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100억이나 되는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친구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하고서 종들에게 “이 놈을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집어넣어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는 “마땅히”라는 단어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 부터 긍휼의 은혜를 받았으면 당연히 이웃에게 긍휼의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일만 달란트 빚진 것”은 우리의 “구원의 빚”을 의미하고 “100 대나리온 빚진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진 생활의 빚”을 의미합니다.
즉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사람들입니다. 죄의 빚을 탕감 받았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100 데나리온”은 이웃이 우리에게 진 빚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에게 용서해 주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6:12)에서 “죄지은 자”는 원문에는 “빚진 자”로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우리 이웃의 빚을 탕감해 주어야 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죄의 빚을 탕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가 불쌍히 여김을 받기 원한다면 먼저 이웃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상대방 입장이 되어서 이해해 주고 용서의 눈으로 보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긍휼이 우리를 떠나지 않게 되고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긍휼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