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 스님 임명장
김광한
30여년전에 모 불교신문의 편집장으로 있을 때 평소 잘알고 지내던 스님이 한분있었어요.불교신문이라지만 돈있는 보살이 종이값이 생길때마다 발행하는 부정기적인 불교 차용신문이었지요.아무튼 이분은 조계종이나 천태종 태고종과 같은 잘 알려진 종단의 소속이 아닌 이름도 생소한 종파의 종정이자 주지스님이었어요.자신이 한국의 종단이 너무 한심해서 스스로 창시했다고 하더군요.
연세도 만만치 않게 들어 보이고 체구도 듬직하고 불교상식도 꽤 돼보이는 이 스님은 비구가 아닌 대처승이었지요. 부산에 절이 있는데 식구들은 절이 아닌 따로 근처 아파트에 기거를 한대요. 큰 아들이 장가들어 아이가 셋이고 딸이 결혼해서 외국에 나가있고 작은 부인(?)이 서울에 살고 있어서 불교행사때는 거기서 기거 한대요.이를테면 종교를 생활수단으로 하는 대처승이지요. 60은 넘어보였는데 무슨 클럽의 친목모임에 스테이크가 나왔는데 포크 놀림이 날렵한게 숙달이 됐더군요.가사장삼을 걸치고 피가 뚝뚝 흐르는 쇠고기를 열심히 잘 드시더군요.
이분이 제 알량한 겉보기식의 불교지식을 인정을 했는지 한번은 넌즈시 저를 불러요.
"김처사,(벼슬하지 않은 은둔 선비) 내가 부산에 절을 하나 세우려고 불사를 하고 있는데 주지 한번하겠소?"
"에이, 대사님도 무슨 말씀을..."
이 계통에선 주로 상대를 보살 처사 대사 등으로 불러요.
"아니오. 정말이오. 김처사같이 불경상식이 뛰어난 분이 있어야해요. 월급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속되고 시주 후원금은 후하게 드릴테니까...
집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하니 그거 괜찮다고 느꼈지요.월급도 잘 나오지 않는 불교 말사 신문사에 죽치고 아침마다 맘에 없는 삼배 올리는 데 있는 것보다 머리깎고 신도들에게 존경받는 주지,해볼만하지 않는가.머리 깎으면 뒤통수가 납짝해 보기가 안좋은데.그러다 누가 알아,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스님처럼 이쁜 여자 꿰어차고 어디가서 살림 한번해도 괜찮지. 암.?소설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이런 수준 낮은 불량한 생각을 가져 보았지요.
그러다가 다시 한번 생각했지요. 주지나 목사 같은 대중 상대하는 직업은 아무나 하는게 아닌데.언변에 뭐랄까 사기성이라고 하면 동종업에 종사하는 분들 화를 낼테지만 아무튼 카리스마가 있어야 되지 않는가. 그러다가 다시 한번 생각했지요.이제까지 걸어온길 그냥 가지 잘못하다가는 쇠고랑 찰 일이 분명 생기지. 그래서 그 대사님에게 극구 사양을 했습니다.대사님은 제 말에 매우 안타깝다는 얼굴로 찬찬히 응시하다가
"김대사,"
그분은 저를 대사라고 불렀어요. 큰 스님 중이란 뜻이지요.
"시주 후원금생기지, 가끔 어린 보살들 생기지, 그 자리가 얼마나 좋은데...쯧즛..기회가 여러번 오는게 아닌데"
그리고 일년이 지났습니다.
어느날 신문 사회면 귀퉁이에 가십 식으로 실린 그분의 기사가 나왔어요. 부적과 용한 힘을 발휘한다는 부탄(불교국) 염주를 해준다고 억대의 금품을 어떤 보살에게 갈취했다는 기사였지요. 주지 하다가 큰일뻔했어요. 주지는 역시 아무나 하는게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첫댓글 하하하하!
옳으신 말씀입니다.
까딱했으면 큰일날 뻔 했네요.
그래서 송충이는 솔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나왔는가요?
저도 요즘 그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사양하길 참 잘했다 싶네요.
ㅎㅎㅎ
감히 선생님께----
이런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기도가
유혹이 없기를 바라며
발걸음 이동을 조심하자고
가슴에 새기고 살아갑니다
정말 큰일날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