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 서순희
하자고 말만 들어도 좋았다. 시장에서 떡, 순대, 튀김을 사고, 배달로는 치킨, 술, 담배, 과자도 추가한다. 치킨집에서는 두 마리를 시키면 덤으로 사다 주었다. 돈도 1000원짜리로 바꾼다. 토요일 오후에 학교 숙직실에서 만난다.네 명에서 다섯 명 서로 긴밀하게 조합을 이룬다. 일명 ‘고스톱’이다. 월드컵이 열리던 해부터 2005년까지 불이 붙었다. 한 달에 두 번 모이다가 나중에는 매주 패를 돌렸다.
사립학교이다 보니 친목이 잘 된다. 15년 넘은 선생님이 주 멤버였는데, 교감이었던 나는 양념으로 끼워주었다. 시간 정하고 화투를 치지만 갈수록 초저녁을 넘긴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지속됐다. 돈을 따거나 잃은 것보다 하다 보면 재미있다. 월드컵 때에는 삼계탕 집, 상갓집에서도 판을 벌렸다. 직원이 많다 보니 초상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조금이라도 오래 있어 주라 “고 말씀하신다. 장례식장 귀퉁이에 자리 잡았다. 명분은 고인 명복을 빈다고. 상주는 좋아하는 눈치다. 이래저래 한두 시간은 쉽게 갔다.
고스톱도 진화한다. 작은 돈이 오고 가지만 선수들은 머리를 굴린다. 나름대로 궁리하고, 따겠다는 목표를 향해 맹렬하게 표를 돌린다. 형님 아우님 하다가 싸움도 하고, 화투판도 엎어버린다. 옆 사람이 훈수 들면 막무가내로 억지를 쓴다. 내 표에 살짝 얹기도 한다. 옆구리를 꾹꾹 찌르며 ‘돈 조심하라’고 하지만 암만 봐도 잘 모르겠다. 앞사람이 죽고 순번이 되거나, 억지로 밀려서 패를 잡는다. 하지만, 언제나 떨리는 마음이 앞선다. 다른 사람 표를 보고 치는 것이 기본인데, 옆 사람 것에는 관심 없다. 그래서 번번이 푼다. 미련하게 치고 있는 나를 선생들은 깔보면서 웃기도 한다. 어찌 됐든 화투에 빠졌다 ‘선생님과 친목을 잘해야 좋은 학교를 만든다’는 엉뚱한 고돌이 예찬을 하는 것이다. 남편도 늦게 온다고 인상 써도 무시한 채 토요일에는 막무가내였다.
한번은 교직원 친목을 하러 담양 추월산에 갔다. 오랜만에 건강을 살피고 좋은 마음도 채우겠다는 것이 물거품이 됐다. 산 입구에서 부장들이 나에게 눈짓한다. 싫다고 해도 “교감선생님이 있어야 좋아요” 옆구리를 찌른다. 교장선생님이 선발대로 산을 올라가고 있어, 나를 비롯한 후발대 몇 명은 입구에 남기로 했다. 방석을 깔고 패를 돌렸다. 한 시간이 금세 갔다. 내려올 시간인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더 기다리면 오겠지 계속해서 고돌이를 쳤다. 하지만 산 너머 마을에서 식사를 하고 오느라고 아주 늦게 만났다. 하루 종일 굶고 많이 후회했다.
중독이 될수록 다른 사람 말을 멀리 한다. 그만하라고 해도 재미에 빠지고, 안치겠다는 결심은 사라진다. 도박으로 볼 수 없지만 건강한 시간은 아니다. 몸과 마음을 허비하면서 특히 가족에게는 토요일은 기러기 엄마였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남편과도 부부 시간이 필요했는데 물 건너갔다. 늦게나마 잘못된 행동이 부끄러웠다. 낭만을 왜곡했다. 우리 서방님께 제일 미안했다. 내게 주어진 소중한 하루가 운수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