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다향길 2코스-1
득량만 바라보며 걷는 길에는 질펀한 갯벌이 펼쳐지고
바다는 언제 가도 좋지만 나는 특히 겨울바다를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겨울해변은 분주하지 않아 백사장을 걸으며
온몸으로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매서운 바람에 가난해진 마음은 바다와 만나면 더욱 청정해진다.
‘보성 다향길 2코스’를 걷기 위해 율포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유난히 추웠던 올 겨울날씨가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차가운 날씨에는 미세먼지가 없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봄철에만 황사가 왔는데,
요즘에는 겨울철에도 기온만 높아지면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린다. 중국발 미세먼지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미세먼지가 합쳐져 대기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있으니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보성읍을 지나 율포해수욕장으로 가다보면 산비탈을 개간하여 만든 녹차밭이 ‘녹차의 고장’ 보성을 실감케 한다.
해변으로 넘어가는 봇재에 이르면 주변 산비탈이 온통 녹차밭이다. 봇재에서는 산비탈 녹차밭과
산 아래의 농경지, 저수지, 멀리 바다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한 폭의 풍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봇재를 넘어 율포해수욕장으로 달려간다. 해수욕장 주차장에 승용차를 주차해 두고 해변으로 향한다.
율포해수욕장은 고운 모래,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울창한 솔숲이 있어 매력을 더한다.
여름철이면 이 솔숲에는 텐트가 빈틈없이 꽉 차지만 오늘은 솔숲에 텐트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추운 겨울날씨라 율포해수욕장에는 겨울바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띌 뿐 백사장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1.2km에 이르는 백사장을 천천히 걷는다. 율포해수욕장 앞바다는 득량만 너머로
고흥반도가 수평선을 가로막아 시원하면서도 안온하다. 율포해수욕장은 이렇게 득량만을 끼고 있어
바다는 잔잔하고 평화롭다. 천천히 율포해변을 걷고 있으니 바다와 한 몸이 된다.
득량만 한 가운데에는 득량도라 불리는 섬이 떠있다. 득량도는 행정구역상으로 고흥군에 속하고,
면적 1.93㎢, 해안선 길이 6.5㎞에 불과한 작은 섬으로 인구가 100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섬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식량을 얻었으므로 득량(得糧)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산풀로 마름을 엮어 산꼭대기에 곡식처럼 쌓아 왜군들이 군량미로
오인했다고 하여 득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득량만에서 조업 중인 배들은 이미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상징한다.
해는 고흥반도를 넘어 득량만에 햇살을 비춰준다. 두 손으로 하트(♡)모양을 하고 있는 조각상에
카메라를 들이대니 하트 속에 득량도가 들어온다. 해수욕장 동쪽 끝에는 방파제로 감싸인
율포선착장이 있고, 선착장에는 소형어선들이 정박되어 있다.
율포선착장 방파제에서 바라보니 동쪽으로 고흥반도를 이루고 있는 산줄기들이 부드럽고,
남쪽바다 멀리 금당도, 약산도 등 다도해를 이룬 완도의 섬들이 까마득하게 바라보인다.
동해안처럼 망망대해가 아니라 육지가 길게 뻗어나가 반도를 이루거나,
올망졸망한 섬으로 이루어진 남해안 풍경은 포근하면서도 아름답다.
이제 우리는 율포해수욕장을 등지고 동쪽해변을 따라 걷는다. 보성 다향길 2코스의 매력은
잔잔한 득량만과 득량만 바다 뒤로 펼쳐지는 고흥반도를 바라보며 걷는데 있다.
득량만 가운데에는 드문드문 배들이 떠있어 바다를 적적하지 않게 해준다.
율포선착장을 벗어나자 오돌토돌 잔돌이 깔려있는 지압보도가 인도를 따라 이어진다.
지압보도는 해안선을 따라 1.6㎞나 이어진다. 지압보도와 바다 사이에는 작은 백사장이 함께한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모래밭은 부드럽고 유연하다. 외부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해변이라 이곳 해변은 사람구경하기도 힘들다.
인적없는 해변에 갈매기들이 날아와 외로움을 달래준다. 갈매기들은 수심이 낮은 바닷가에서 유유자적하다가
가끔 공중으로 비행을 하고나서는 다시 물위에 앉곤 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모래사장은 점차 자갈과 바위지대로 바뀐다. 바다 쪽으로 돌출된 전망대에 서서 사방에서 다가오는 풍경에 취한다.
햇빛이 역광으로 비춰 윤슬을 만들어내고 있는 득량만은 검푸른 바다색을 드러낸다.
바다 건너에서 길게 이어지는 고흥반도는 득량만의 그림을 다채롭게 해준다.
조금 전 걸어왔던 해변의 모습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율포해변 뒤로 멀리 장흥 천관산이 듬직하게 서 있다.
앞으로 가야할 북동쪽 해안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보성군 득량면에 있는 오봉산이 북동쪽 해변을 보호하고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추운 줄도 잊어버린다.
다향길 2코스는 잠시 포장도로를 걷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이다.
전망대를 출발하여 걷는데, 해변은 작은 백사장과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바다에서 고개를 내민다.
득량만 너머 고흥반도에는 고흥의 대표적인 산, 팔영산의 여덟 봉우리도 가장 뒤쪽에서 듬직하게 서 있다.
곡선을 만들며 이어지는 호젓한 해변길이 우리에게 ‘느림의 미학’을 전해준다.
해안선 안쪽 밭에는 봄철이면 감자를 심어 초여름에 수확을 한다.
보성은 감자생산이 많은 고장이지만 그중에서도 회천면에서 가장 많이 재배된다.
금광마을길을 지난다. 이곳 해변 마을사람들은 산을 등지고 바다를 마당삼아 살아간다.
여행객들에게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바다는 지역주민들에게는 치열한 삶의 터전이다.
마을 앞에는 바다가 펼쳐지고, 주변에는 농경지가 있어 이 마을사람들은 바다와 밭을 오가며 경제생활을 영위한다.
마을 앞으로 드넓게 펼쳐지는 바다는 썰물 때면 갯벌을 드러내고, 밀물 때면 잔잔한 바다가 된다.
마을사람들은 바닷물이 빠지면 갯벌에 나가 조개와 바지락을 캐거나 낙지를 잡는다.
바닷물이 찰 때는 배를 타고나가 고기를 잡는다. 마을 언저리에서 볼 수 있는 경운기나 비료더미는
농사를 짓는 흔적이고, 그물을 친 후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설치하는 부표나 소형어선들은
바다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식이다. 이 지역주민들은 반농반어(半農半漁)를 하며 살아간다.
<보성 다향길 2코스-2>로 계속
첫댓글 와운선생님 덕분에 즐감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