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국의 「후렴」 감상 / 이강엽 후렴 강현국 큰일 났다, 봄이 왔다 비슬산 가는 길이 꿈틀거린다 꿈틀꿈틀 기어가는 논둑 밑에서 큰일 났다, 봄이 왔다 지렁이 굼벵이가 꿈틀거린다 정지할 수 없는 어떤 기막힘이 있어 색(色) 쓰는 풀꽃 좀 봐 벌목정정 (伐木丁丁) 딱따구리 봐 봄이 왔다, 큰일 났다 가난한 내 사랑도 꿈틀거린다 —시집 『고요의 남쪽』 2004 ........................................................................................................................ 생동하는 봄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땅밑을 뚫고 올라오며 스멀대는 기운을 꿈틀거린다고 했다. 천천히 가기의 명수인 굼벵이조차 여유 부릴 새 없는 한순간, 정지 없는 전진이 용을 쓰는 중이다. 색 쓰는, 벌목정정의, 과하다 싶은 관능미조차도 다 용납되는 순간이다. 아니 용납이 아니라, 애써 기꺼이 나아가야 할 환장의 순간, 환장의 사랑이다. 누구나 그 가운데 서면 가난도 미움도 없는, 하늘과 땅이 온 힘으로 사랑하도록 북돋는 기막힘뿐이다. 그러나 이 시를 쓴 시인도, 이걸 읽어가며 무릎을 칠 독자도 대부분 인생의 봄을 지나쳤을 가능성이 크다. 봄의 한가운데서는 여간해선 봄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는 신기하게도 온 세상이 다 봄이어서 봄이 귀하게 보일 까닭이 없다. 십년 전쯤, 어머니께서 연로하셔서 휠체어에 의지하게 되셨을 때, 꽃구경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멀리 나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난감해하던 차에 아내가 모교 캠퍼스가 어떻겠느냐고 했고, 그 참에 들러본 캠퍼스는 그런 야단이 없었다. 꼬박 20년의 청춘을 지낸 곳이었으나, 그날이 첫 봄이었고 첫 꽃이었다. 마침 아마도 까마득한 후배일 청춘들이 꽃들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어수선했다. 소리 내어 말은 안 했지만 마음속으로 뇐 말은 너무도 또렷했다. “늬들이 꽃보다 더 이뻐.” —계간 《가히》 2024년 봄호 --------------------- 이강엽 / 서울 출생. 연세대 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저서 『바보설화의 웃음과 의미 탐색』 『강의실 밖 고전여행』 『살면서 한번은 논어』 『삼국유사 어디까지 읽어봤니』 외 다수. 대구교대 국어교육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