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루 「거대한 문화의 누각」
『아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온다 지나가는 나그네야 걸음을 멈추어라 고요한 달빛 어린 금옥산 기슭 위에서 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영남루 천진궁 왼쪽 담 너머에 있는 박시춘 선생 옛집에서는 「애수의 소야곡」 「신라의 달밤」 등 선생의 숨줄같은 노래들이 바람에 몸을 싣고 있어요. 멀리서 들으면 잉~잉~ 거리는 것이 제법 애잔하게 들려요. 선생이 3000여곡을 만들낸 그 왕성한 창작의 원천은 조선시대 유림들이 시조를 낭낭하게 읊었던 영남루와 사촌처럼 가까운 곳에 선생이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더불어 우리 나라 3대 누각입니다. 하지만 평양 부벽루는 갈 수 없고 진주 촉석루는 한국전쟁때 불타 새로 지은 것이니 밀양 영남루가 으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영남루는 신라때 세워졌던 영남사가 폐사한 뒤에 고려 공민왕 14년(1365) 신축해 그 절이름에서 딴 것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불타 인조 15년(1637)에 다시 중건, 헌종 8년(1842)에 실화로 불에 탄 것을 헌종 10년(1844) 다시 개창한 것이 지금의 건물이구요. 두번의 큰불 때문인지 영남루 내부에는 용 모양의 들보가 10개 있습니다. 담당 직원도 아직 다 찾지 못했다는 용의 형상들이 불을 다스리기 위해 영남루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다더군요.
영남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커다란 이층 누각인데 서쪽에 침류각(枕流閣)을 동쪽에 능파각(凌波閣)을 태극의 형상으로 거느려 음양의 이치를 그대로 안고 가는 건축물입니다. 특히 손님의 방인 침류각과 연결되는 계단 「월랑」과 「층층각」은 누각을 훨씬 장대하게 하면서 치밀한 구성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 줍니다. 영남루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죠. 동쪽 산서 달이 뜨면 달빛이 색시처럼 고스란히 드는 침류각에 초대된 손님은 얼마나 귀한 손님이었을까요.
이층 누각에 오르면 영남루를 찬양하듯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지는 밀양강(남천강이라고도 함)과 둔치의 잔디가 융단처럼 눈에 들어오지요.
영남루 주위에는 함께 어우러지는 볼거리도 많아요. 천진궁, 밀양시립박물관, 무봉사, 아랑각을 차례로 돌아볼 수 있거든요. 천진궁(天眞宮)은 영남루 바로 뒤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단군과 역대 8왕조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지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음력 3월15일과 10월3일에 각각 어천대제와 개천대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천진궁 앞에는 석화(石花)가 있어요. 말 그대로 돌꽃. 돌의 무늬가 꽃을 닮았습니다. 아랑각 밑 길바닥에는 석화를 더 많이 피어있습니다. 비가 온 뒤에 꽃 무늬는 더욱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천진궁 옆으로 작은 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밀양시립박물관이 나와요. 계단이 높아 보여 오르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약간의 수고로움치고 그 댓가는 적잖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소중한 유물이 많은 알짜베기 박물관이기 때문이죠. 선유도(김홍도작), 군어도(조정규작), 밀양12경도 등의 서화자료와 밀양 출토 고고유물을 포함한 6000여점에 가까운 유물이 있습니다. 박물관 옆길을 따라가면 있는 무봉사(舞鳳寺) 법당 안에는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도 있습니다.
영남루서 강변으로 내려가면 만나는 아랑각(阿狼閣). 밀양 아리랑의 유래가 된 아랑이라는 처녀의 사당입니다. 한을 품고 죽은 처녀 귀신 이야기의 전형이 아랑의 이야기죠. 인물과 마음 고운 아랑은 영남루에 달 구경을 갔다가 괴한이 겁탈하려 하자 저항하다 죽임을 당합니다. 아랑은 영남루 아래 대나무숲에 버려졌고 그후 밀양에 오는 태수들에게 한을 호소하기 위해 원혼이 나타나지만 그때마다 놀란 태수들은 죽고 말죠. 그러다 한 용감한 태수가 한을 풀어준다라는 그 전형적 귀신 스토리... 아랑각 옆 대나무숲에는 아랑의 시체가 발견된 곳에 아랑탑이라는 작은 비석이 있습니다. 우거진 대나무 숲은 죄가 없어도 섬뜩하리만큼 어둡습니다. 난데없이 아랑을 대면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여요. 혼자 가지 마세요.
이런 역사와 전설들이 어우러졌기에 밀양에서의 문화제는 더욱 향기로울 수 밖에 없다고 칭찬해야할 순서로군요. 5월이면 열리는 밀양종합문화제(구 아랑제)가 벌써 40여회를 훌쩍 넘기면서 50여종의 풍성한 문화예술행사를 선보이입니다. 10월이면 밀양예술제가 마련된답니다. 축제기간 중 가장행렬, 사물놀이, 부채춤, 평양성 탈환 승전보고 등이 이어집니다. 재밌는지는 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유익한 볼거리가 되리라 믿습니다. 밀양 영남루만으로도 족한 데 나머지를 덤으로 받는 것이니 썩 재밌지 않아도 손해보는 건 아닐 겁니다. 아랑규수 선발대회와 밀양의 대표적 민속놀이인 백중놀이, 법흥상원놀이, 무안용호놀이 등의 공연 펼쳐지고 특히 최근 2년여 작업끝에 발굴된 「밀양 12차 농악」의 시연은 영남루를 떠나선 호흡이 끊어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겁니다. 영남루 일대에서 봄이면 실시되는 전국 규모의 백일장에 참가하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능파당에서 모시한복 입고 시조를 읊조리던 유림들의 향수를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영남루는 과거와 현재를 매개하면서 샘처럼 끊임없이 유형무형의 문화를 주변에 쏟아 내고 있습니다. 돌조차 꽃으로 피워내는 영남루는 밀양의 문화를 두루 살피기에 충분히 넉넉한 「문화의 누각」임을 스스로 증명합니다. 한번쯤 들러 보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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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제 가볼수 있을까?
참 좋더이다. 밀양강에 배 띄우고 시 한수 얼쑤, 근데 내는 영남루에서 한 잠 했어유 불어오는 바람과 경관에 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