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 올립니다.
근래에 고열 감기로 온 식구가 돌아가면서 고생을 좀 했고 택이 형의 수능이 있어서 제가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나니 결과와 상관없이 좀 편해지네요. 택이 형제들에게는 늘 자라면서 엄마가 용돈을 주는 시간은 정확히 수능 끝난 12월이라고 딱 못을 박았습니다.
대학등록금과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용돈(먹고, 자는 것)만 줄꺼고 이후에는 스스로 알바로 인생을 개척을 하라고 했습니다. 올 해 대학 2학년인 큰 아이는 과외며 알바며, 또 수시로 장학금 주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제 둘째인 아이는 어찌 살지..^^
지난 2 달간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학교 가기 전 아침에 집 뒤에 있는 시골길을 30 ~40분씩 꾸준히 걷고 있고, 토요일, 일요일은 등산을 가거나 해서 좀 많이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 장 추천으로 타지역에 가서 장학금도 받고 왔습니다. 생애 처음 장학금입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학교에서 추천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
매주 토요일 점심은 한식이나 두끼 떡볶이 등 한번도 안 가본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하고 있고요. 부페는 아직 시도를 못해 보았습니다. ^^
산에는 늘 직진본능 택이를 위해 간식을 싸 가지고 갑니다.
요 근래에 큰 사건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1. 선생님, 친구, 엄마 a4 용지 가져오기
택이가 하얀 A4 용지에 참 많이 집착을 했습니다. 온 집안, 학교에 있는 모든 a4 용지를 가지고 옵니다. 친구가 한 학습지 부터, 선생님 책상, 제 책상에 있는 모든 A4 용지...쓰기를 좋아하면서 이렇게 하얀 종이 집착을 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안 계실 때는 담임 선생님 책상 위에 있는 A4지를 얼른 옷 속에 숨겨서(?) 가방 안에도 넣고, 친구 사물함에 있는 학습지 꺼내서 가방에 넣고.. 그래서 지난 2달간은 다른 사람의 물건에 손을 대는 행동에 강한 재제가 있었어요. 다행히 요즘은 눈치를 보거나 반 이상 사라는 졌는데 아직도 늘 다른 사람의 것에 손대는 것에 대해 강하게 혼을 내고 있습니다.
대신 무엇의 동기부여에서 가장 좋은것이 A4지 이기도 합니다. A4지 2장이면 산에도 잘 올라갔다 옵니다. 방도 잘 정리합니다. 공부도 잘 합니다^^ 애증의 a4지 입니다.
A4 1장이면 1줄 ~ 2줄 짜리 책도 앉은 자리에서 10권 뚝딱 읽습니다. ^^
2. 지구대에 실종신고
요즘 택이와 학교에 다녀오면 사람들이 많은 오후 시간에 동네를 다닙니다. 서점에 가서 책 사기, 세탁소에 옷 찾으러 가기, 엄마와 카페에 커피 사러 가기, 길거리 닭꼬치 사기 등..사회적인 경험을 자주 하려고 합니다.
지난 주에 다이소에 다녀오면서 택이가 고른 물건은 10권짜리 공책입니다.
집에 와서 공책을 뜯어서 또 열심히 글을 씁니다. 요즘은 교통기관 좋아해서 교통기관을 열심히 쓰는데, 문제는 1권 꺼내서 2장 쓰고 또 다른 1권 꺼내서 2장, 또 다른 1권 꺼내서 1장 등 끝까지 쓰지 않길래 제가 다 치우고 저녁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분노가 치밀은 택이가 집 밖을 맨 발로 뛰어 나갔고 바로 제가 나가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5분 후에 아파트 경비실에 신고했고, 다시 5분 지나서 근처 지구대에 전화를 했더니 어떤 아이가 도로 1차선을 뛰어다닌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지구대에서 출동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 짧은 20 분도 안된 시각에 택이는 집에서 1,5KM 떨어진 다른 동네에 있었습니다. 본래 직직 본능 녀석이라 집 앞쪽을 찾았더니 이 녀석은 저와 반대로 학교 가는 길로 그냥 달렸습니다. 아이가 없어졌을 때 정말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다시 한번 이름 등을 기억하고 말하게 하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분노가 조절이 되지 않을때 문제 상황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문제는 문제일 뿐, 또 해결을 해야 하니 더 열심히 가르치고, 운동하고, 또 달려나가야지요. 작년 까지 택이는 식당에 데리고 가는 것 자체가 엄두가 안 났습니다. 특히 도로 걷는 것도 어디로 튈지를 몰라서 많이 부담이 되었어요.
오늘 산에 가기 직전 택이 책상 위 한컷..저렇게 반듯하게 정리가 되어야 나갑니다.ㅠㅠ 저는 수시로 올려져 있는 것 중에 쓰레기 같은 애들은 몰래 몰래 버리고...하루 하루가 택이와의 신경전입니다. ^^
첫댓글 제가 유일하게 수능 잘보라고 말해줄 사람이 택이형 뿐이라 잘보라고 속으로 백번은 더 되뇌였습니다. 원래 사정 잘 모르는 사람이 수능이나 대학입시 언급하거나 궁금해하면 그게 요즘은 큰 실례라고 하기에 속으로만 응원하고 택이일기 올라오길 기다렸습니다. 잘 치뤘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평생 해볼 수 없는 경험을 하셨으니 부럽기도 하고... 저라면 어떻게 했을까 반면교사해 보기도 합니다.
택이가 더 많이 성장했고 경험도 업적도 더 풍부해진 것같아 너무 좋습니다. 이제 맘편히 택이한테 더 매달릴 수 있고 택이는 더 발전할 듯 합니다. 간만의 일기 너~~무 반가왔습니다!
하얀 A4에 집착하는 택이씨, 그냥 영문 모를 짠함이 있습니다. 순백의 종이가 주는 설레임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택이씨와 맑은하늘꿈님, 늘 응원합니다.🙏🙏🍒‼️
저도 수능을 봤던 세대인지라.ㅎ 그때가 생각이 나네요. 그땐 참 어리고 아무것도 몰랐구나 라는 생각에 스스로 여러모로 안타깝습니다.ㅎ 대학다니며 경제활동을 동반하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대견한 첫째와 대견해질 둘째를 가지셨네요. 부럽습니다.ㅎ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 택이가 아직 저런 돌발행동을 한다고 하니 정말 철렁하셨겠어요. 찾으러 나가는 심정이 어떨지 상상도 되질 않네요. 부디 꾸준한 치유로 한없이 평화로운 나날 찾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