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연변 견문기
훈춘(吉林省 珲春市)에서 점심식사를 한 농장 식당.
"창근이네 통나무 집".
농장의 위치가 외지고 한갓진 곳이라 조용하기 이를데 없는 곳이다. 갑자기 찾아 온 물 속 같은 고요로 시작되는 혼란. 어디선가 휴대폰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는 '이앙코'의 혼돈에 모두들 공감했다. 무언가 일이 일어나야만 안심이 될 것 같은 불안한 예단(豫斷).
그렇지만 전화도 팩스도, 메시지에 이메일 까지 지운 침잠(沈潛)속을 유영(遊泳)하는 나는 완벽한 자유인~ 일년에 열흘만 요로코름 살자구여~
어지럽게 허공을 난무하는 소음도 혼란도 찾을 수 없는, 물 속 같은 고요에 잠기고 또 잠기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이 도시의 정숙(靜肅) 이라니... 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이 고요의 깊고도 심오(深奧)한 묘미(妙味)를 그대 연변에 가시면 꼭 한번은 마음에 새기고 돌아 오십시요~ 그것은 생각지도 않게 덤으로 얻는 백두산 연변 관광의 플러스 알파입니다. (길림성 훈춘시 영안진 농장마을)
무엇을 먹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디서 먹느냐도 중요한 선택 기준. 그러나 그러면서도 국경을 건넌 연변의 먹거리는 이국적인 이질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조선족 식당이면 고유한 우리 음식의 자연스런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양념이 쎄지않으면서도 조미료에 길들여진 우리네 취향에도 거부감 없는 순수한 맛을 즐길수 있다.
연변에 가면 꼭 먹어 보라는 권유를 받은 양고기 꼬치구이는 따라 나온 양념에 화학조미료가 듬뿍 든 것과 즈란(孜然:코스모스 씨앗과 같이 생긴 향기 나는 식품)이라는 독특한 향신료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별스런 맛을 느끼지는 못했다. 연길에선 1개에 30전이지만 훈춘에선 1개에 60전으로 값에 비례해 양도 맛도 곱으로 커진 훈춘의 꼬치가 우리 입맛에 더 맞는 것 같았다. 꼬치구이는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은데 가리봉동 조선족 거리에서 1개 600원씩에 먹을 수 있다. 특이한 것은 羊肉串店이라 써 놓고도 조선말로는 양육뀀점이라 읽는 것에 의아했다. 가리봉에서 만난 조선족 꼬치집 주인도 ‘곶‘이라 하지않고 '뀀'이라고 읽어낸다. 연변의 중국 음식도 서울의 중국 음식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라 특히나 까탈스런 입맛이 아니면 무난하게 지낼 수 있다.
이곳 도시의 아파트는 거의 모두가 주상 복합형이다. 1층은 상가나 공장이고 2층부터가 주거층. 층수도 5층이나 7층 9층 같이 다양하게 지어져 아파트의 외양이 한국과 달리 곽 집(?)으로 불릴 정도로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거의 모든 일반상가의 간판은 네온사인 간판이 귀한 대신 실사 인쇄 간판이고 공공기관의 그것은 글씨를 부조(浮彫)한 청동주물로 만들어 붙여졌다. 색깔은 하나같이 황금색 아니면 붉은색 일색. 한글을 혼용하여 쓰기 때문에 중국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곳 연변의 모든 것들은 부분적인 진화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게 아니라 한번에 선발국(先發國)으로 부터 배워들인 일체적 기술 도입형. 중간 과정이 생략된 채 몇 단계를 뛰어넘은 형태로 경제력만 받쳐진다면 우리가 10년 걸려 해낸 일을 이곳에서는 1~2년이면 가능할 것 같다.
조센징으로 불리는 재일교포의 설움을 익히 알고 있는 차에 조선족이라는 표현이 조심스러워 오가며 만난 현지인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속으로 삭이는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별스런 거부감을 드러내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한족 조선족 몽고족 만족 묘족 등 20여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인 중국의 지극히 일반적인 종족 분류라 거부감은 커녕 별걸 다 궁금해 한다는 뜨악한 표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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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장(牡丹江)과 숭화장(松花江) 하류에 형성된 분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이 숙신족(肅愼族)으로 지금 만족(滿族)이라 불리는 이들이 바로 그 후예이며 랴오시(遼西) 산지와 타싱안링(大興安嶺) 산맥이 펼쳐지는 초원을 터전으로 삼아 살아 온 동호족(東胡族). 그들을 사이에 두고 만주 한가운데에 살림을 차린 사람들이 예맥족 이다. 숭화장 중류에 자리 잡았던 부여, 압록강 중류에서 일어
난 고구려, 그 후예가 말갈과 연합하여 세운 발해가 바로 이들이 건설한 나라이다.
한반도의 6배가 넘는 광활한 대지에 역사를 꾸려갔던 주인공은 이처럼 크게 세 집단으로 나뉜다. 우리의 핏줄이 된 예맥족은 동부의 숙신족, 서부의 동호족을 좌우의 날개로 삼으며, 지금의 지린성과 랴오둥 지방을 무대로 오르 내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발해의 멸망과 함께 그들의 발자취는 한반도로 움추러 들어버렸고, 그 대신에 중원의 한족(漢族)들이 그 자리를 메워버렸다.
그리고 1천년이 흐른 뒤인 19세기 후반에 다시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기 시작하여 오늘날 중국에서 조선족, 러시아에서 고려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중앙일보 00/10/10 압록강 두만강 대탐사 송기호<서울대 교수․발해사>
연변 여행을 거친 백두산행에서 적잖이 갈등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쇼핑이다. 진품이면 모두가 상당한 가격이겠지만 거의가 가짜나 짝퉁 아니면 조잡한 물건들로 나는 애초부터 쇼핑 할 생각을 접은 채 환전도 하지 않았다. 산삼을 캐는 '심마니'가 직업(?)인 일행 중 한사람이 거의 '진품' 같은 장뇌삼이라고 판정한 백두산 장뇌삼도 2만원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진짜 지리나 설악의 장뇌삼이었다면 기천만원은 호가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것은 백두산 장뇌삼이 흔한 탓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5년근 재배삼 에도 미치지 못하는 약빨없는 장뇌삼의 효능 때문이기도하다.
그러나 여행중의 쇼핑에 관심을 접은 나도 호감을 가진 물건이 있어 여행 때 마다 쇼핑 일정을 살피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런 기대는 기대로 끝나고 말았다. 몇 년전 심천여행에서 본 골프공 보다 조금 더 큰 향나무로 만들어진 공(球)이 그것으로 손목운동을 위한 노리개나 장신구로, 내공 외공이 따로 움직이는것이 들여다 보이게 속의 공을 바깥공의 격자무늬 사이로 깎아 낸 것이다. 그렇게 공 속의 공으로 3공5공까지 깎아 만드는데 내가 본 것은 3공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향나무로 깎은 공력도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승천하는 용의 '움직이는 여의주' 나 옥 주전자 물부리의 '격자망'과 더불은 옥 공예의 3대 명품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렇게 세간에 전해오는 팔랑귀에 쏠긋한 이야기로 장광썰을 푼 상인들이 내미는 짝퉁 제품의 판별은 애시당초 전문가의 영역, 고급진 명품이나 값나가는 귀중품은 아이쑈핑이나 귀동냥으로 만족하고 지나칠 일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추앙받는 옥(玉)명장이 목포의 장주원 명장(*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100호 옥장(玉匠))이라는 사실이 구경하기 힘든 명품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연변을 관광하며 느낄 수 있는 특이한 점은 대개의 식당이나 호텔 음식점의 접대원들의 엇비슷한 체격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Prokroustes)의 침대'를 거쳐 나온 사람같이 키160에 몸무게 55정도의 모두가 하나같은 붕어빵(?) 체형이다. 사회주의 나라의 계획경제가 접대원의 기준을 그렇게 정한 것인지 고객이 접대원을 대하는 만만함(?)이 그런 기준을 만들어 낸 건지 어느 것이 잣대가 된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연변의 어디를 가거나 느끼게 되는 공통한 접대원들의 모습이었다.
일반 서민의 일년치 봉급과 맞먹는 첨단 PDA를 지닌 소비계층이 1억이 넘는 경제 대국. 18칸짜리 장대열차로(길기도 하드먼~) 30시간을 내쳐가야 북경에 닿는 변방.
도시의 노인(버스)과 도시의 술집 아가씨(택시)와 도시의 쥐(자전거)가 신호를 지키지 않고 다녀도 사고나 사고로 인한 분쟁을 찾아 볼 수 없는 도시.
외지로 나가 돈을 벌어 돌아와도 다방이나 노래방외에 달리 투자할 곳을 찾을 수 없는 곳이 연변이다. 젊은 사람은 기회만 닿으면 한국이나 도시로 떠나 빠르게 노령화 하는 우리의 70년대와 너무도 흡사한 급속하게 진행되는 농촌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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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쟁이, 너는 넝마주이. 나는 자전거, 너는 인력거. 나는 호미, 너는 대패"
.“ 삶은 천형인가? 13억 인민이 떠돈다. 인민은 황사(黃砂)다. 하루가 왜 이리 긴가. 부자는 더욱 부자되게 한다는 중화 인민 공화국. 가난한 자는 이젠 스러 없어지는 종족인가."
중앙일보 02/10/03 신연행록 한․중 문화교류의 대동맥 / 유홍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