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기르다 보면 사춘기부터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갈등이란 칡넝쿨과 등나무가 새끼를 꼬듯 서로 엉켜있는 모양이다. 학교 등나무 그늘이 있는 경우는 무슨 모양인지 상상이 될거다. 칡은 한술 더 뜬다. 아무거나 걸리면 걸리는대로 감고 끝을 모르고 올라간다. (물론 땅속에는 칡차 향긋한 칡뿌리가 있다.)
아이가 자기의 가치관을 형성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사고방식과 새로운 사고방식의 충돌이다. 어찌보면 사춘기는 부모란 껍질을 깨고 나오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건강한 성장과정이다.
그런데 가끔, 착실하게 부모말 잘듣고 자란 원칙적인 부모의 경우,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한다. 부부가 둘다 그런 스타일이면 아이는 질식한다. 말을 하지 않는다. 결국 동떨어진 세계에서 살아간다.
대학때 강남 어디 알바갔는데 부모가 한양대 이대 출신이다. 거기다 엄마는 경상도다. ( 지방을 폄하하는건 아니지만 서울사람이 볼때 경상도는 직설적인 사람이 많다. 직장생활중 어려웠던 경우 80%가 경상도 사람의 돌직구, 직설적인 표현때문이었다. 경상도 사람들이 일은 깔끔하게 잘한다.) 놀기좋아하는 분위가 물씬 풍기는 아들에게 공부하라고 소리치는것도 들었다. 알바때문에 가기는 했지만 안스러웠다.
난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공부하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시골에서는 농사짓는 부모가 바빠 그냥 방목했다.
집이 과수원을 했는데 도매로 넘기지 못하고 남은 물건이 있다 그러면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시장에 팔러간다. 자녀를 키우기 위해 시장에 좌판깔고 행상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어머니가 자랑스러웠고 그런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더 열심히 공부했다. ( 그 어머니는 지금도 기른 작물을 더운 여름날 시장에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팔아서 손자손녀 용돈 주는것을 기뻐하신다)
난 내 아들에게는 중1때 영문법을 가르치고 프랭클린 다이어리를 소개하며 계획 및 실행하는법도 알려줬다. 이즈음 성적이 급상승했다. 이후 사춘기 방황으로 공부에 손을 놓았을때 공부하란 말을 한번 했다. 아들은 그걸 엄청 싫어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그런말 한다고...
상수리 싹이 올라오기까지 도토리 한알이 땅속에서 수분과 에너지를 흡수하는 시간이 있고 줄기가 굵어져서 재목이 되려면 숱한 비바람과 더위 추위를 겪으면서 나이테가 두터워지듯 모든게 때가 있고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은 딸에게 일절 공부하란 말을 안한다.
그냥 뭐 도와줄까? 중간 기말고사 준비할때 수학 과학 모르는거 있으면 가져오라한다. 물론 머릿속에 개념을 그리도록 성심껏 도와준다. 명품 파운드 케익을 사서 깜짝 선물을 하기도 한다. 학교 스턴트 달걀 대회 나가는것도 도와주어서 3층 높이에서 떨어져 깨지지 않았다. 짜잔! 장려상.
이제보니 내가 자녀를 키운다고 회사일로 고생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자녀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되도록 훈련시킨다고 생각이 든다.
그 과정에서 나의 부족함 모남이 드러나는데 자식만 탓해봤자 자식이 바뀌나? 내가 바뀌지 않으면 개선이 안된다. 쉬운건 아니다. 첫번째로 나의 잘못을 깨닫는데 시간이 걸린다. 아니면 참 덕이 높은 부모다.
일찍 결혼한 중학동기 여친의 아들이 공부를 잘했다.
여친은 네임밸류 약한 상고 나왔고 남편도 전문대졸인데 아들이 연대갔다. 왜그럴까? 주위에서 보이는 서울대 커플 자녀중에 아들이 문제인 경우가 제법 있는데 차이가 뭔지 많이 생각이 되었다.
이 중학 동기여친은 성격이 참 너그럽고 좋다.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자녀를 공부하라고 몰아치거나 하지는 않았을거 같다.
그런데 아는 설대 부부는 둘다 원칙적이고 승부욕이 강하다.(아닌경우도 있다) 아들에게 원칙을 주문한다. 그런데 아들은 자유분방하다. 머리는 좋은데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공부는 않좋아한다. 전학간 당일 친구들을 집에 몰고오는 정도다.
그 아빠는 자녀와의 관계가 쉽지 않다. 만일 아빠가 빨리 변했으면 더 좋았을거 같은데 여러분도 알듯이 그게 쉽지 않은거다. 나이가 들수록 타고난 성격이 더 강화되지 부드러워지는 것은 쉽지 않다.
대한민국 1% 잠수네 엄마들은 그런다.(그럼 난 잠수네 아빠?) 아이를 키우면서 사리가 생긴다고... 부모가 SKY급이고 자녀가 둘인 경우,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어찌 그리 다를수가 있을까?
첨 들었을때는 몰랐다. 나도 둘을 키워보니 진짜 다르다. 양극단이다. 두뇌도 성격도...
이해가 아니라 인정하고 적응해야 할 영역이다.
오늘도 나의 성장은 진행형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려웠던 그 아버지가 점점 존경스러워진다.
첫댓글 그러게요..사춘기 아이를 키운다는건 내가 성장하지 않으면 하루도 집안이 조용할날이 없어지는 일이네요.
요즘 무슨일로 기분이 안좋은지 일주일째 말을 안하는 딸래미를 보며 어디까지 참아주고 기다려주는게 부모일까 고민중이랍니다..
저는 아들이 그랬습니다.
아들이 뭐 사고 싶은데 부족한게 있으면 그냥 용돈 더 주고 그랬습니다. 다른거도 더 해주고...
엄마를 통해서라도 아이가 무엇때문에 어려운지 알수 있다면 좋을거 같네요.
제 태도가 변하니까 아들이 아는거 같더라구요.
자녀를 교정하려하면 실패확률이 높습니다. 공부건 다른 영역이건...
그냥 기다려주는게...
그리고 편지로 마음을 표현하는것도 좋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응원한다, 기다려 주겠다고 하면서..."
묵향님 응원합니다!!
지향하는 부모상입니다 ^^
저 역시 둘을 키우는데 성별만큼 성격도 공부태도도 상이하네요.
잘 관찰하고 지켜보고 있답니다 ^^
네.. 아들과 딸은 domain이 다르죠..
하루가 멀다하고 고성이 나는 중1남자둔 엄마예요. 어릴때 공부하란말 안듣고 살았는데 제가 공부공부하며 아이를 들볶고있네요. ㅠ 혼내니 점점 거짓말하고 자기 얘기 싫어하는게 보이네요.
저도 기다려주며 응원해야한다는거 아는데 왜케 어려운지...
어쩔수 없는 과정이긴 합니다.
특히 남자아이는 키가 엄마와 비슷해지면 동물적으로 엄마를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의도가 아니라 동물적 본성..
여자의 약함을 눈치채는건데..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철이 들수 있어요.
엄마는 자녀를 믿어주고 후원해주는 존재다 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들땜에 제가 회사에서 제공하는 심리상담을 여러번 받았어요. 그때마다 들은 말이 아들을 믿어주라는거였어요.
그땐 정말 아들이 이해 안되고 왜 저러지 참 이상하네.. 이렇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와 아내는 노선을 포기하고 기다려주기로 했습니다. 아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했고 시간이 지나니 아들 마음이 열리는 것이 보입니다.
제 아들은 1년넘게 공부에 아예 손을 놓았었어요. 수업만 듣고 땡. 시험때만 공부. 당연 내신 떨어짐.
그래도 아들들의 장점은
맘만 먹으면 훅~치고 올라갈수 있어요. 홈런도 기대할수 있어요.
네. 아이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하니 자꾸 걱정이되고 걱정이 아이를 채근하게되는 것같아요. 모르더라도 믿어야하는데 말이죠.
윗분말씀처럼 딸과 다르게 말이 별로없으니 속을 모르겠고 예측이 안되네요. ㅎ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8.29 13:14
방금 중2딸과 무식하게 대적하고ㅜㅜ
좋은글 감사합니다ㅠ
하루이틀 당하는것도 아니고 완전 엉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