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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스 와인길3 - 오베르네에서 셀레스타를 거쳐 콜마르에 도착해 구시가지로 가다!
6월 3일 아침에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 지방의 브장송 을 떠나 스트라스부르 에
도착해서는 호텔에 배낭을 맡기고는 다시 기차를 타고
서남쪽 알자스 화이트 와인 가도에 있는 예쁜 마을 오베르네 Obernai 를 봅니다.
그런후 오베르네역 Gare Obernai 에서 13시 15분 기차를 타고는
남쪽으로 달려서 13시 47분 셀레스타 Selestat 역에 내립니다.
셀레스타역에서 미련이 남아 혹시나 싶어 리보빌레 로 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해 보니 1시간 10분이나 기다려야 하기로 포기하고는.....
14시 10분 기차를 타니 15분만인 14시 25분 콜마르 Colmar 역에 도착합니다.
콜마르 Colmar 역 밖으로 나와서는 버스 정류소에서 교외에 산재해 있는 작은
마을들로 가는 버스 시간표 를 확인하는데 카이제르스베르그
Kaysersberg 와 니데르모르슈비르 Niedermorschwihr 는 여기서는 안보이네요?
해서 우리 부부가 원래부터 1순위로 꼽고 있던 “알자스의 진주” 로 불리는 예쁜 마을
리크비르 Riquewihr 는 16시 5분 출발이니 그럼 1시간 반 이상을 기다려야 합니다?
해서 그 시간에 이 도시 콜마르 부터 먼저 보기로 하고 Rue Messlmy 거리를
따라 걷다가 행인에게 물어 좌회전을 하니 바로크식 웅장한 건물이 보입니다.
그리고 분수에 공원 이 이어지는 것을 보니 아마도 여기가 상드 마리스인
모양인데..... 공원을 지나 계속 걸어서 구시가지 로 향합니다.
이 도시 콜마르 Colmar 는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에서 남쪽으로 70km
라인강변에 알자스 오랭주의 주도로 2차 대전 전쟁의 참화를
입지 않아 테트 저택 과 프피스터 저택 등 오래된 중세풍 건축물 이 많습니다.
콜마르 는 알자스 와인가도 의 중앙에 위치하는지라...... 13세기 부터 수로를
이용한 와인 교역 이 성했으며 중세풍 건물에 남쪽 운하에 작은
베네치아라 불리는 프티트 베니즈 등 동화속의 나라 를 연상시키는 도시입니다.
리프 광장을 지나 드디어 운터린덴 광장 Pl. Unterlinden 에 도착하는데
기차역에서 부터 치자면..... 거의 20분 이상을 걸은 것 같네요?
그러고는 이 광장에서 바로크식 오래된 건물인 콜마르 시청 Hotel de Ville 과
한 블록 떨어진 운터린덴 미술관 Musee d'Unterlinden 을 발견합니다.
수리중인 미술관 은 13세기 도미니코 수도원 에 종교화의 걸작 그리스도의 정신을
멋지게 표현했다는...“이젠하임의 제단화” 를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옆 골목은 테트 거리 Rue des Tetes 로 이른바 머리길 (Heads Street) 인데 여기에
머리의 집 이라는 메종데테트 Maison de Tetes, House of Heads 가 있습니다.
벽과 출입구에 100개 이상의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이 조각되어
있는 "머리의 집" 은 현재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을 제작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가
이 도시 콜마르 를 배경으로 만든게.....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라고 했던가요?
그 옆에 옛스런 멋진 건물은 도미니칸 교회 Eglise des Domincains 인 데... 13세기에
지어진 초기 고딕양식으로 콜마르 출신 숀가우가 그린 제단화 가 유명하다네요?
한 블록 거리에 또 다른 교회가 보이니 생 마르탱 교회 Eglise des Saint Martin
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지붕에 황새 둥지 가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1,234년에 건축했는데 아치형의 창 과 첨탑 으로 둘러싸인 웅장한 외관이며
벽면 곳곳에 조각된 생동감 넘치는 이무기돌 이 인상적이라고 하네요!!!
이 거리에서 독일풍 주택 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얽히고
설킨..... 알자스 - 로렌 Alsace-Lorraine 의 역사 가 다시 떠오릅니다.
지리적으로 알자스 는 라인강과 보주산맥 사이에 위치하며 기후가
온화하여 포도주 를 비롯한 농산물과 목재 가 풍부합니다.
로렌 은 알자스의 북서쪽에 위치하며 남쪽에 보주산맥, 북쪽에 아르덴의
숲을 끼고 있는 평야지대로 "석탄과 철 산지" 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로렌의 "철" 생산은 유럽 제1위 이며..... 그 때문에 예로부터 독일 · 프랑스
양국간의 분쟁지 가 되어왔으니 전쟁을 겪을때 마다 소속이 바뀌었던 것이네요?
그러니까 알자스인 들은 원래 프랑스에 속했는데 1870년에 벌어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하니 독일 로 편입되어 1차 세계대전 에서는 독일군 병사 로 징집당해 프랑스군과
싸웠는데 패전하는 바람에 "고향이 독일에서 프랑스 땅" 이 되니 입장이 곤란 했겠습니다?
알자스인 들이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끼여 난처한 입장 에 처해졌던 일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2014년에 김수현, 전지현 의 생수 광고 가
난데없이 역사 문제 로 비화되어..... 크게 논란이 되었던 일이 떠오릅니다.
"별에서 온 그대" 로 중국에서 엄청 사랑받고 있던 두 남녀 배우는 헝다 그룹 의
생수 광고 모델 계약을 했다가.... 어느날 난데없이 물벼락 을 맞게 됩니다!
생수의 제목은 병에는 큼지막하게 “헝다광천수 桓大冰泉(환대빙천)” 라고 적혀있지만 아래
쪽에 조그맣게 쓰인 물의 원산지 가 백두산 의 중국 명칭인 “창바이산 長白山“ 으로
되어있어...... 일부 누리꾼들이 ”중국의 동북공정 에 놀아난다“ 고 비난하고 나선 것이지요!
광고를 취소하면 전지현 이 물어야 할 위약금은 무려 100억원 이라는 데....
반면에 농심 이 중국쪽 백두산을 취수원 으로 하는 생수 를 생산하면서
상품의 이름을 “백산수” 로 선택한 것은 장사꾼 다운 절묘한 작명(?) 이네요?
백두산 은 BC 2세기 중국의 산해경 에 "불함산 으로 숙신(말갈, 여진) 땅에 속한다" 라고
나오며 위진남북조 시대에 태백산 또는 도태산으로 쓰이다 10세기경 장백산(長白山)
으로 변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281년에 일연 이 지은 삼국유사 에 "태백산" 이 처음
나오니... 일연은 각주에서 현재 묘향산 이라고 적었는데 아님 백두산 이나 구월산 일까요!
1451년 세종때 편찬된 고려사 에는 고려 성종때 백두산 이라 불렀다고 적혀있는데,
그전에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서인 1145년 김부식 의 삼국사기 등 고려시대
기록에는 백두산이란 용어 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백두산" 은 조선시대인
세종때 고려사와 세종실록 지리지등 문헌에 최초로 등장 하는 것이니 568년 전이라!
우리 민족은 신라와 당나라 가 함께 평양성을 함락시켜 고구려가 망한 668년 통일신라
시대에는 황해도와 금강산 선으로 국경선이 후퇴 하니 백두산에서 멀어 졌습니다.
무어 신라 입장 에서 보자면 국경선이 좀더 올라간 것이지만.... 이후 1712년에야
청나라와 백두산 정계비 를 세우느라 처음 답사했으니 백두산은 1,044년간 남의 땅 이라!
조선 숙종때 접반사 박권 과 함경도 관찰사 이선부가 국경선을 획정하기 위해 청나라측
오라총관 목극등과 교섭한 일을 조정에 보고한 장계 에는 한결같이 백두산 이 아닌
장백산(長白山) 으로 적었는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 초기에서 중기 까지 장백산
이라는 표기가 대부분을 이루다 조선 후기에 백두산 이라는 표기가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금나라 시조 아골타 는 신라 사람 김함보의 6대손이니 김함보는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건국되자 압록강을 건너서 북만주땅으로 이주했는데.... 금나라 황족은 성씨를
완안(完顔)씨 라 했지만 나라 이름은 경주 김씨 에서 땄으며, 이후 청나라 황족도
성씨를 아이신자오뤄(애신각라) 라고 했으니 김씨 로 아랄 울타이어로 금(金) 입니다!
숙신-말갈-여진-만주족 은 고구려 이전 부터 백두산 천지 북쪽 장백폭포 송화강 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으니... 장백산(長白山) 은 여진족 들이 자기 조상이 태어난
성산을 "골민샹기얀알린" 우리말로 "긴흰산" 이라 부르던걸 한자어 로 바꾼 것입니다.
금나라는 1193년 장백산(백두산) 에 開天宏聖帝(개천굉성제) 로 존호를 올렸고 청나라
강희제 는 1677년 12월 "장백산지신" 이라 부르며 손수 천지에 올라 제사를
지냈는데, 김대건 신부 가 페레올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 "만주족들은 장백산 을
청나라 시조 누루하치가 탄생한 곳 이라 하여 신성시하며 제사를 지낸다" 라고 적었습니다.
고구려 시대에 한민족은 농사를 지었으니 평야지대 에 살았으며 또 성 안의 도시 에 거주
했습니다만.... 고구려 영토 내에 살던 말갈족 은 농사를 짓지않고 사냥과 수렵 에
종사하며, 나무 열매를 채집하고 산에서 산삼과 약초 를 캐고 물가에서 물고기 를
잡으며 가축을 키웠으니... 깊은 산속 백두산(장백산) 일대는 여진족의 생활터전 이었습니다.
전지현이나 카라, BTS등 우리 한류 스타 에게 “백두산은 누구 것?”, “독도는?" 이라고
묻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그 의도는 참으로 훌륭하고 선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는 그들이 중국이나 일본에서의 연예인 활동을 포기 하는 결과로 되기가 싶습니다.
국제사회에는 역사 의견이 전혀 다른 상대방 이 있는데, 일부 네티즌이 이런 애국심 을
말하라고 한다면 중국과 일본에서 "한류 스타가 사라지는" 결과가 되지나 않을른지!
지난 3천년 세월은 중국 문화 가 일방적으로 동쪽 한반도로 흘러들어 왔지만....
한국이 성장해서 새로운 트랜드 를 만드니 반대로 한류가 중국땅으로 흘러들어 갑니다!
한자 를 비롯해서 태극과 8괘 및 음양오행설에 불교와 유교 에다가.... 설과 한식,
청명, 단오, 칠석, 추석과 동지 같은 중국 명절이 들어오니 우리 조상들의
오랜 고유 명절인...... 5월 삼한의 수릿날, 10월에 고구려의 동맹 과 동예의
무천, 삼한에 상달제 그리고 12월 부여에 영고 는 중국 명절에 밀려 사라졌습니다!
천자문 에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라고 나오는데 앞에 하늘, 땅,
검을, 누를, 집은 우리말 이고 천지현황우는 중국말 이니 산(山), 강(江), 해(海)는
중국말 로 산의 우리말은 "뫼" 이고, 강의 우리말은 "가람" 이며 해의 우리말은
"바다" 인데, 동해(東海)는 중국말 이니 동쪽을 뜻하는 말을 잃어버렸는데 뱃사람
들이 동풍을 "샛바람" 이라고 하니 그럼 동해 는 우리 말로 "샛바다" 가 되는 걸까요?
오늘 우리가 쓰는 낱말은 한국말, 중국말, 일본말, 서양말 4가지이니 Company of limited
를 중국인은 유한공사와 총경리 로, 일본인은 주식회사와 사장 으로 번역(조어)했고
Train 과 Car 는 중국인은 화차와 기차 로 일본인은 기차와 자동차 로 번역했으니...
국어, 영어, 과학, 개인, 자유, 국민, 비행기, 민주주의, 낭만등 수천개 낱말은 일본인 이
만든 것인데, 해방 후에는 라디오, 텔레비젼, 컴퓨터, 힐링등 서양말도 함께 쓰고 있습니다.
주자학 을 받들며 명절 마저 중국 것 을 쇠고, 사용하는 낱말도 우리 말이 중국 말들에
밀려나다 3천년만에 반전이 일어나 한민족의 문화가 융성 해 "글로벌 문화 한류" 가
도도한 물결 처럼 중국땅으로 흘러 들어가니.... 중국 검색 엔진 바이두 가 쏟아내는
한류 소식은 130만건으로 네이버 38만건의 3배가 넘는데 그 차이는 더 벌어질 것이지요!
별그대 엄청난 광고 효과 는 “별그대노믹스” 로 불리는 세상에서 잘생긴 남자 배우가 의사로
나온 드라마 “닥터 이방인” 을 보고 중국인들이 "의료관광" 을 하러 오는 시대이며
트와이스 와 BTS 등 한류는 일본과 중국에 동남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등 전세계로
퍼져 지구인들을 열광 시키니, 바야흐로 한민족 문화 가 크게 일어나는지라 가슴뿌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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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건강(建康)은
몸을 단련(鍛鍊)해야 얻을 수 있고
행복(幸福)은 마음을 단련해야 얻을 수 있다...!
삶은 웃음과 눈물의 코바늘로
행복(幸福)의 씨실과 불행(不幸)의
날실을 꿰는 것과 같다~!
건강(建康) 가득한
멋진 시간(時間) 되시기를 기원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산골
도시 콜마르인가 합니다.
지상 최고로 아름다운 도시 아닐까요? 미야자끼 하야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실제배경이 된 도시. 콜마르, 작가가 그곳에서 살기도 했다고 하지요.
아..... 그렇습니까?
저는 미처 그것 까지는 몰랐는데.....
운하와 꽃등 예쁜 도시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