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동창으로 코레일에서 기술직으로 근무하며 전기, 설비, 용접 등 약 10여개의 기능사 및 기능장 자격증을 가지고 정년 퇴직 한 친구가 있다.
군 제대 후 고향에서 사과농사를 짓던 중 농사가 싫어 철도청 기술직으로 입직하였으나 철도청의 민영화로 공무원 신분에서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공사직으로 전환이 된 친구로 법 개정시의 경과규정으로 공무원연금 해당시까지는 공무원연금을 불입하고, 그 후에는 국민연금을 다시 가입하여 연금을 이중으로 수령하는 신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30년이 지나서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나게 되어 대화를 하다보니 뜻이 맞아 그 후 가끔 안부 전화를 하기도 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가 근무지인 분당에서 자기 축구팀의 일원으로 대전에 경기를 하러 내려오면 연락을 하여 음료수를 사 가지고 가서 만나기도 하고, 내가 수도권에 교육이 있어 올라가면 만나서 차라도 한 잔 하면서 대화를 나누던 사이였다.
그 친구는 코레일에 근무하면서 은퇴하면 고향에 내려 와 전에 짓던 사과농사를 계속하겠다며 방송대학교 농학과에 진학하여 농사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기도 한 친구로 가끔 만나 대화 시 귀농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많이 하였었고, 나 또한 은퇴 후에는 도시 근교에서 농사를 짓겠다며 약간이나마 농토를 준비하는 한편 방송대 농학과에 진학하여 농사에 대한 공부를 하기도 하였었다.
그러던 중 예상치 않았던 일로 고향에 태어난 집을 상속받은 형님으로부터 그 사후 내가 그 집을 매입하게 되면서 은퇴 후 일단 고향에서 일 년을 살아 보겠다며 고향으로 내려 와 있던 중, 일 년 먼저 은퇴한 그 친구가 고향에 내려왔다며 만나자고 하여 그 친구와 같은 마을에서 대단위로 사과농사를 짓는 다른 친구 과수원에서 만나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우선 대학졸업 후 군대 다녀온 뒤인 1986년부터 고향에서 대단위 사과 농사를 짓고 있던 친구는 나름 열심히 노력하여 새농민으로 선정되어 수상을 하는 등 고향에서 성공한 농부로 지위를 누리고 있었으나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곁눈 팔지 않은 채 농사만 짓고 있었다.
같은 동네에서 같이 자랐고 같이 사과농사를 짓다 철도청에 공무원으로 입직하면서 고향을 떠났던 친구는 아직도 80대 후반의 모친이 고향에 혼자 살고 계셔서 귀농을 하고 싶어 했으나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가 아직 퇴직을 하지 않았기에 혼자 고향에 내려오기도 뭐하다고 하였으나 깊은 속내에는 귀농의지가 많이 희석된 것 같았다.
은퇴 후 고향에 내려오더라도 새롭게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고, 그 나무가 자라 결실을 맺더라도 작업 인부 구하기가 어려워 인근인 광주에서 노령의 인부들을 데려와서 점심 및 새참 대접하고 다시 광주까지 태워다 주다 보면 자신을 위한 시간이 거의 없고, 그렇게 사과 농사를 짓더라도 여름에는 태풍에 의한 낙과 피해 초가을 결실을 앞두고는 갑작스러운 우박 피해 등으로 안정적인 수확이 보장되지 않는 대다 풍년에는 풍년대로 과일가격이 폭락하는 등 가격 보장 또한 되지 않다보니 생각지 않았던 애로가 많은 것 같았다.
그 친구와 대화 중 동네 이장 부분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자신이 고향에 오면 이장을 해야겠다고 하자 그간 쭉 그 동네에 살았던 친구가 “니가 고향에 내려온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다음 이장은 너다”라며 힘을 붇돋아 주자 그 친구는 자신이 그간 코레일에 근무하며 10여 가지의 기능사 및 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한 이야기를 하면서 고향에 내려오면 동네의 굳은 일은 자신이 도맡아 해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었다.
고향친구의 사과밭에서 친구 아내가 준비해준 김밥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면서 그 친구는 아내가 퇴직하는 2년 후쯤이면 고향에 내려올 수 있을 것 같다는 바람을 이야기 하였으나 언뜻언뜻 비추는 말에 2년 후에도 귀향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후 분당으로 올라간 친구에게 안부 전화를 하니 자신의 자격증을 사용할 수 있는 회사에 재취업을 하였기에 낙향은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고향을 그렇게 사랑하고 은퇴 후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겠다며 농학과에 진학하여 농사를 배웠던 친구가 귀농을 포기하는 현실에 가슴이 아팠다.
농촌을 사랑했고, 농촌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농촌생활에 필요한 용접, 전기, 설비 등의 기술이 있어 누구보다 준비된 이장이었던 친구의 귀농 포기는 고향 살아보기 1년이 벌써 3년차에 접어드는 내게는 가슴 아픈 현실이었고, 귀도를 꿈꾸게 하는 단초가 되고 있다. 준비된 이장의 귀향을 바라면서.
첫댓글 친구의 이야기를 가 감 없이
산문 형식으로
풀어내는 글
감명 깊게 읽어습니다
봉곡산인님 친구분
하루속히 이장되는 그날 오길 요
다음 이야기도 기다립니다
고생 많아습니다
안타깝네요.
그런분이 이장을 하시면 동네분들도 혜택을 많이 받고
산인님도 심심치 않으시고
그분도 보람있게 노후를 보낼 수
있을텐데요.
그동안 열심히 사셨으니 본인
좋아하는 일 하시며 인생 마무리
하는것도 좋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