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백두산 등정기
- 백두산석 마도진(白頭山石 磨刀盡)
*** 산수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 백두산이 여진과 조선의 경계에 있어서 나라의 갓머리 처럼 돼 있다. 산 위에는 큰 못이 있어 주위가 80리다. (* 택리지 이중환/1751 조선 영조)
* 산줄기가 요동을 가로 지르며 일어나 백두산이 되니 이 산은 조선 산줄기의 한아비라. 산에 3층이 있는데 그 높이는 200리가 되고 넓이는 1,000리 남짓 걸쳐있다. 그 꼭대기에 못이 있으니 이를 달문이라고 한다. (* 산경표신경환/1757 조선 영조)
안도현에서 부터 시작되는 백두산의 지형은 이도백하에 이르며 점층적으로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지리나 설악은 짧은 거리이기 때문에 고도가 상승하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이곳은 땅이 넓어서인지 느낌이 없을 정도다. 이도백하의 미인송은 기이하게도 자라면서 사람의 피부색을 닮아 국가 지정숲 으로 관리한다고 한다. 군데군데 벤취와 가로등으로 산책로가 만들어져 개방이 되어 있지만 다니는 사람의 흔적이 많지 않다.
이도백하 에서 백두산으로 향하는 날씨는 오락가락이다. 흐린듯 찌푸렸다가도 간간이 햇살을 드리우는 날씨는 창졸(倉卒)간에 희비가 교차되며 기대에 찬 일행을 우롱한다. 가끔씩 아침 일찍 천지를 돌아 나오는 팀들과 휴게소에서 교차하며 지나쳤는데 한결같이 제대로 된 천지를 보지 못한 것 같다는 가이드의 전언에 우리는 비 온 뒤의 개인 날씨를 삼대의 덕으로 승화시키고 쏘시락거리면서 고산준봉(高山
峻峰)을 등정으로 섭렵한 수많은 날들의 효험(?)을 그리는 기대치
를 높여 나갔다.
조선족 가이드는 수시로 산장
으로 통화하며 맑거나 흐리거나 비가 오는 천지의 날씨에 일희
일비(一喜一悲)하는 일행의 조바심을 노회하고 세련된 말 뽄새로 밀고 당기는 작란(作亂)
질 농락과 희롱(戱弄)을 반복
하며 좌중을 아우르는 탁월한 그의 능력에 우리는 끊임없이 탄성과 탄식을 쏟아냈으며, 창밖으로 펼쳐지는 맑음과 쾌청함이 어우러지는 명미
(明媚)한 풍광(風光)을 바라
보면서 우리는 초등학생 소풍길 같은 달뜬 분위기로 웃고 떠들고 박수치고 노래하며 백두산 오름
길을 좁혀 나갔다.
백두산은 산의 입구를 멀찍이 두고 천지, 또는 장백폭포 입구를 또 따로따로 두었는데 이것은 아마 요금을 나누고 쪼개려는 철저한 장삿속으로 보여졌다. 요금의 단위는 천원 아니면 만원으로 한국인을 봉으로 보는 상술 같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재원이
라니 그나마도 안심이되었다. 대개 중국인들은 도보로 장백
폭포로 향하는 것 같았는데 천지 입구에서 길만 갈라져 있을뿐인 장백폭포는 폭포 바로 아래에서 다시 요금을 받아 입구에서 멀리 폭포의 사진만 찍고 탁족이나 온천을 하는 실속 코스로 백두산
을 다녀 오는 모습도 볼 수 있었
다.
천지 기상 관측소는 오래전에 중국에서 길을 내 짚차가 정상까
지 오를 수 있으며 짚차를 이용
하는 백두산 짚차 등정은 거개의 경우 별도 옵션으로 이용 해야
한다. 통상 노약자나 부녀자들이 무리해서 등산으로 오르다가 고산증세를 일으키는 중간에 이르러 포기하고 짚차로 오르게 되는데 백두산이나 천지는 체
력을 준비하여 계획을 해서 오를 일이지 어느 날 갑자기 오른다고 해서 예사로이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고 담근다고 해서 쉬이 손을 담글 수 있는 물이 아니다.
백두산을 오르는 등산의 초입은 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우회하는 도로를 버리고 능선으로 치고 오
르다 다시 돌아 오른 길을 만나 길과 능선을 번갈아 오르게 된다. 도로는 포장이 잘 되어 있었고 도로를 따라 벽돌처럼 깎아 만든 돌로 토사를 방지하는 석축을 쌓았다. 인력이 넘치니 벽돌 같은 돌로 석축을 쌓았겠지만 백두산 돌은 다듬기가 수월한 푸석푸석
한 현무암이다. 밀밭 형님은 그 길을 오르며 아사무사한 기억 저
편의 시를 읊으셨다.
* *
白頭山石 磨刀盡
豆滿江水 飮馬無
男兒二十 未平國
後世誰稱 大丈夫
( * 남이장군(1441~1468/조선 예종 역모 모함으로 처형)
개방 초기에 돌이 날아 다니는 강풍에 등산객이 휩쓸리기도 했
다는 백두산의 바람은 대단한 위력이다. 심할 땐 큰나무를 뿌리
째 뽑아 버리는 백두산의 바람은 천지의 물을 하늘로 끌어 올리는 용오름이라는 바람을 일으키기
도 한다. 백두산 흑풍구에 서슬 퍼런 그 바람의 위세에 지난달 이곳을 답사한 유수님은 허리까
지 차 오른 눈밭을 기다시피 엉
금엉금 올랐다고 한다. 돌멩이가 흩날리고 사람도 띄워 보낼 바람
의 위력. 예리하게 각을 세워 섬
찟하게 치솟은 송곳 같은 기암으
로 몰아치는 검은 바람이 무시로 불어대는 흑풍구 에는 속이 덜 차 몸이 가벼운 사람이나 머리가 비
어 처신이 가벼운 사람은 하시라
도 접근을 금 하시랴~.
바람도 바람이지만 백척간두 벼랑에 올라앉은 흑풍구의 바위는 저승문을 가로막은 야차(夜叉)같이 험상한 기세가 등등한 모습. 그러나 그래도 오금이 저리도록 까마득한 벼랑 아래 난분분한 장백폭포의 안온한 풍정이 시야를 누그러 뜨린다.
흑풍구를 지나면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고소현상은 숨이 가쁜 정도를 넘어 숨을 쉬기도 불편
하다. 지리나 설악의 강파른 능선을 치고 오르는 가열찬 산행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불편한 호흡이다. 천지 입구에
서부터 간헐적으로 내리던 빗방울이 흑풍구를 지나면서 부터 기세를 더한다. 장대같이 쏟아지는 비. 비는 뼛속까지 스미는 한기로 짧은 우의 아래 고스란히 노출된 바짓단을 파고 들었다. 날씨는 분명 영상의 기온인데 쏟아지는 비에 노출된 맨손이 영하에 가까운 통증을 느낀다. 군데군데 얼음이 녹지 않은 잔해를 볼 수 있었지만 고도가 높아진 백두산의 비는 얼음에 다름 아니다.
안부(鞍部)가 저긴데... 다리는 풀어지고 눈꺼풀은 무거워지고... 어젯밤 늦도록 마신 술이, 오는 길 차안에서 잠시도 눈을 부치지 않고 창밖의 풍광에 집착했던 체력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서울에서 가져온 오이와 천지물을 담기위해 준비한 2리터 피트병의 생수까지 고스란히 담긴 배낭을 열었지만 먹는 것 마져 부담스러운 누구도 무게를 줄이려는 시도에 선뜻 나서주지 않는다. 이젠 정상에 올라 천지를 보겠다는 일념보다 비나 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하다. 바람과 빗발이 교차하며 안개가 시야를 묶는 뇌풍항우(雷風恒雨)에 천변만화(千變萬化)한 것이 백두산의 날씨다. 아직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2500고지의 험난한 길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정상에 가까울수록 기대는 커지고 희망은 부풀어 갔다. 짖궂게 흩뿌려 대던 빗발이 줄어들며 환영 아치 같은 무지개가 쌍무지개봉(2,625)에 걸린다. 이게 왠 횡재수~ 우리는 아이들처럼 고함을 지르며 환호하며 뛰어 올랐고 산장이 지척인 마지막 능선을 올라서자 기다린 듯 막이 열리는 연극의 첫 장면 같이 스르르 안개가 걷히는 천지를 볼 수 있었다. 등산을 통해서 얻은 내 생애 최고의 감동과 감격의 순간이었다.
* 장백산에 기를 꽂고 두만강에 말을 씻겨
썩은 저 선비야 우리 아니 사나이냐!
떻다 인각화상(麟閣畵像)을 누가 먼저 하리요.
( * 김종서(1383∼1453) 조선 세종 육진개척의 공로자)
백두산 기상 관측소는 지난달 답사한 유수님의 예측과 달리 거의 호텔급 산장으로 변해 있었다. 전기난방에 노래방 까지 갖춰진 산장은 식당과 주방까지 있어 설악의 중청산장이나 지리의 세석산장 버금가는 규모다.
뼛속까지 스미는 한기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조별로 식사를 했다. 춘천에서 온 두 분의 여기자가 별스레 긴 그들만의 치장(?) 끝에 우리조에 합류했다. '원보연' 이라는 이름만 탤런트를 닮은 여기자에게 자리를 내주며 은근짜로 수작을 붙였다.
‘성이 주씨인 동료 기자는 부르기가 민망하겠다~’ 고 운을 떼니 작심하고 준비해 온 듯 기다린 듯 되받아쳐 온다.
‘주 기자만 있는게 아니고 우리 사무실엔 안 기자도 있고요~...방 기자 소 기자 우 기자 이 기자 지 기자 개 기자 갈 기자...~‘
어절시구리~
세상이 삼류라고 부르는 남자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여자(* 영화 파이란/2021.11/송해성 감독 최민식 장박지 주연)도 있지만 백두산 천문봉에 오르니 산첩첩 하는 남자에게 물겹겹 하는 여기자도 있었더란다~
(* '원보연' 이라는 여기자로 부터 주회장은 산사랑이 춘천 근교산행을 하면 인원에 관계없이 막국수를 쏘겠다는 더도 말고 덜도 말 더 이상의 원(願)이 없을 각서를 받아뒀다.)
이도백하 마을에서 준비해 온 송아지 고기는 가열찬 등정길에 뱃구레가 헛헛해진 일행 앞에서 게 눈 감추듯 사라졌고 주방에서 내 온 더운밥은 식욕을 돋우기에 더 없이 자르르한 윤기가 흘러 넘쳤다. 방과 식당으로 나누어 차려낸 음식은 이제껏 산사랑이 산을 다니며 산에서 취한 최고의 성찬(盛饌)으로 기록 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만찬은 산장의 고조된 분위기에 음주와 가무가 더해지며 축제 같은 이벤트로 이어졌다.
따끈한 온돌방에 빵빵한 노래방 사운드. 숨겨둔 비기에 묘기가 나오고 고량주나 백주로 골라골라 두어 순배에 고조된 분위기는 최상의 엑스터시(ecstasy) 황홀경으로 이어졌다. 정상으로 오르던 힘든 과정을 보상이라도 하듯 가열찬 분위기는 끝 간데 없이 고조되며 산장의 빈 곳을 가득 채우고도 남은 열기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백두산 천지에 배를 띄워라
어이야 엇차~ 노를 저어라~
좌청룡이 발호하면 우백호가 포효한다.
어지기 어쟈~ 노를 저어라~
무르익은 분위기는 어젯밤에 못다 건넌 두만강으로 좌중을 인도하고 모두가 떼창하며 함께 노를 저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위팔방(四圍八方)이 침잠(沈潛)하는 칠흑같은 어둠이 깊이를 더하고 산장을 배회하며 반전((反轉)의 기회를 노리던 안개비는 맹렬한 위세에 눌려 어딜 감히 숨을 죽였다. 조중(朝中)도 손을 쓰지 못한 천지의 물보라가 뱃전에서 주춤하고 군웅이 할거하며 초한(楚漢)을 다투던 백두의 연봉(連峰)들도 숨을 고르는 가운데 우리는 목청을 드높이며 승전고(
勝戰鼓)를 두다렸다.
왔노라~올랐노라~ 정복했노라~
밤이 이슥하도록 열기에 달뜬 산장의 이벤트는 고급한 등산 스틱으로 노를 젓는 열정 가득한 분위기가 달아 오르며 신명을 더해갔다. 칠흑같은 어둠에 감싸인 밤은 길었고 세상 만물을 다 포용한 산장의 공간은 터질듯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손바닥 마주치고 바닥을 구르며 장단 맞추는 기뻐서 소리치며 환호(歡呼)하고 작약(雀躍)하는 광분의 시간. 미친 듯이 거칠게 일어난 광란(狂瀾)의 물결.
이 희대의 이벤트를 혼자 보기가 아까웠던 옥황의 상제님께서 수호 천사들을 찾았는데 어디에도 그 흔적이 없어 동자를 시켜 알아보니 윤허도 없이 몰래 천지로 밤마실을 나가 이벤트가 열리는 산장의 툇마루에 죽치고 앉아서 뱃꼽을 싸안고 걀걀대며 웃고 떠들다 밤이 깊어 가는지 날이 밝아 오는지 승천하는 날개옷을 천지호에 낚시꾼이 낚아 채 갔는지 산도적넘이 훔쳐 갔는지 나뭇꾼이 감춘지도 모르고 도끼자루에 새싹이 돋는지도 모르는 채 앙천대소(仰天大笑)하며 놀고 있더라는 기발(騎撥)이 다섯밤 하고도 여섯날 만에야 대한민국 속초의 동명항을 거쳐서 올라 왔다고 하더란다...
To be continue 백두 산문록-최종편 천지 견문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