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순찰차를 미국차로 바꾼다.
책 : 왜 80이 20에게 당하는가 / 출판사 : 철수와 영희
한미 FTA 10년, 건강보험 없어진다(정태인이 바라본 세상)
글쓴이 : 정태인
지난 4월 2일 저는 KBS스튜디오에 있었습니다. 한미 FTA가 타결되니까 방송3사에서 전부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어요. 근데 이상하게 KBS가 어떻게 정보를 알았는지 굉장히 빨리 움직였나봐요. 이른바 반대쪽이 호화로운 팀으로 구성됐어요. 저(정태인씨), 심상정 의원, 최재천 의원, 이해영 교수 이렇게 구성됐습니다.
그날 김종훈 대표가 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와서 타결 내용을 설명하고 질의 응답을 하고 토론에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안 왔습니다. 안 온 이유가, 대통령이 그날 9시쯤인가 특별담화문을 발표했죠. 거기에 배석하기 때문에 안 왔답니다.
속으로 기가 막혔죠. 제가 청와대 비서관 출신입니다. 배석 많이 해 보았습니다. 그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서 있는 거죠. 텔레비전 카메라 돌아가면 몸도 이렇게 움직이면서 아무것도 아닌데 거기에 가느라 못 왔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대표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한미 FTA에 대해 스스로 평가를 하면 점수를 어떻게 주겠느냐, 수, 우, 미, 양, 가로 평가를 해 달랬더니, 수를 주겠다, 더이상 잘할 수 없다, 이런 얘기죠. 그러면 그중에서 가장 잘한 걸 들라면 어떤 걸 들겠느냐고 했더니, 자동차 분야라 했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알기에도 정부가 '자동차가 가장 큰 수혜 분야다' 라고 얘기하고 있죠?
그럼 자동차 분야부터 살펴보기로 하죠. 자동차에서 정부가 성과라고 내세우는 것이 3000cc 이하 자동차(우리나라 수출품의 대종인 소나타를 생각하면 됩니다)에 붙어 있는 관세 2.5%를 즉각 철폐했다고 합니다. 내년 5월이 될지 언제가 될지, 한미 FTA가 국회 비준 동의만 얻으면 발표가 되는데, 그 다음날 즉시 2.5%의 관세는 제로가 됩니다.
이건 잘한겁니다. 특히 저는 '잘한 거다' 하고 말해야 됩니다. 왜냐면 작년에 200회의 강연을 했는데, '2.5%의 관세도 즉각 철폐 못한다. 두고봐라. 5년이나 10년에 걸쳐서 철폐할 것이다' 하고 말했거든요. 즉각 철폐되었으니 이것은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2.5%의 관세 인하는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소나타 값을 2000만원이라고 했을 때 2.5%는 약 50만원 정도에 해당합니다. 물론 값을 내릴지 말지는 정몽구 회장이 결정합니다. 다만 미국 국경을 넘을 때 한대 당 50만원씩 미국 관세청에 내던 세금을 내지 않게 됐으니 미국 시장에서 50만원 정도 깍을 수 있는 거죠. 이것이 한미 FTA에서 제일 많이 얻어 냈다고 정부가 자랑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우리는 무얼 줬느냐. 우리 나라가 자동차를 수입할때 붙이는 관세 8%를 즉각 철폐하기로 한겁니다. 우리가 세배 이상 더 빨리 관세를 철폐하기로 한겁니다. 이것은 섬유, 의류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가 평균 관세율이 미국의 세배쯤 됩니다. 미국은 워낙 큰 나라고 이미 많이 개방했기 때문에 FTA나 다른 국제협정을 통해서 동시에 관세를 제로로 만들고자 한다면 미국은 무조건 유리합니다. 미국에 비해 우리는 세배 정도 많이 관세를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관세 8%를 내린 것 외에도 우리는 이른바 '비관세 장벽'을 철폐합니다. 우선 세제 개편을 합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보유세는 5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제일 작은 차에서 가장 큰 차까지 다섯 단계로 나누고, 큰 차에 높은 세율을 물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의 요구로 5단계의 세제를 3단계로 축소시키고, 최고 세율을 낮춰 버립니다. 그럼 어떤 차에 유리해지는 거죠? 네, 큰차에 유리해집니다.
그리고 특별소비세를 8%를 5%로 낮춰 버립니다. 특별소비세는 어떤 거죠? 사치채에 붙이는 세금입니다. 골프채라든가, 대형차에 붙이는 세금인데 이것도 미국의 요구로 3%로 인하합니다.
다음은 환경규제를 약화시킵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환경 규제는 유럽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상당히 높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상당히 높은 규제를 두어 수입을 막았던 거에요. 그런데 규제가 약화됩니다. 우리나라 환경부는 원래 배기가스가 덜 나오게 하는 자동차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다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걸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동차를 시장에 내놓을 때 적용하는 환경 규제 기준을 미국기준, 캘리포니아 기준으로 바꾸게 됩니다. 그것도 사실은 우리나라 기준보다 훨씬 약화된 기준으로 바꾸는 겁니다. 이것 역시 대형차, 고급차인 미국차에 유리하게 바뀌는 겁니다.
여기에 더해서 협정문 외에 얼마나 더 양보했는지는 모릅니다. 타결 3일 전에 미국은 여든 가지 법과 제도를 바꾸라는 우리에게 요구했는데, 얼마나 수용했는지 모릅니다. 한국 정부가 밝힌 것은 요 정도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어떤 것도 있었냐면, '한국 소비자 인식을 전환시켜라' 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정부가 무슨 뇌 수술을 하나요, 어떻게 소비자 인식을 전환시켜요?
공무원들이 어떻게 대답했는지 궁금하죠? '고속도로 순찰자를 미국차로 바꾼다'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왔다 갔다 하면 미국차에 친숙해질 거라는 거죠. 그리고 뺑소니차 잡는데, 미국 차가 잡는다 이러면 미국차는 성능도 좋네, 이런식으로 소비자 인식이 전환된다는 겁니다. 우리 공무원들이 미국한테 양보할때는 천재적입니다.
세제 개편만으로도 세금이 1년에 4000억원 줄어듭니다. 세금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인데, 우리 자동차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 가난한 분들을 위한 재원을 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덧붙였는데, 자동차 협상에서는 도대체 볼 수 없었던 '분쟁의 신속처리'라는 항목이 들어갔습니다. 원래 이 조항은 농수산물 협상에서 나오는 겁니다. 분쟁이 붙어서 오래 끌게 되면 다 썩어 버릴테니 예컨대 6개월 이내에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겁니다. 그런 조항이 자동차에 들어갔는데, 아마도 미국 자동차는 잘 썩는 모양이에요.(웃음)
왜 이런 조항이 들어갔는가 하면, 스냅백(snap back)이라는 제도를 넣기 위한 것입니다. 위에서 얘기한 여러 약속, 즉 미국차에 유리하도록 한국의 법과 제도를 바꾸겠다는 약속을 정부가 잘 지키면 스냅(관세 0%)이지만, 지키지 않는 순간 백하겠다는 얘깁니다. 다시 2.5%관세 장벽을 세우겠다는 얘깁니다. 이건 굉장히 치욕적인 불평등 조항입니다.
더구나 이 스냅백에는 비위반 제소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즉 정부가 한미 FTA에서 한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미국 자동차 수출이 기대했던 것만큼 증가하지 않으면 보복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어떤 트집을 잡을지 모르는 거죠. 아시다시피 미국은 깡패입니다.
그럼 8% 관세 인하의 효과는 어떻게 될까요? 미국차는 보통 대형차고, 비싼차지만, 비교를 위해서 한국에 소나타급의 중형급 차가 들어온다면 이제 미국 회사는 160만원 정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게 자동차 분야 협상 결과의 전부입니다. 제가 보태거나 뺀 거 없습니다. 정부 발표를 보셔도 똑같습니다. 그러면 이런 협상내용이 결국은 경제적으로 국민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살펴 볼까요? 정부가 11개국의 국책 연구원을 동원해서 경제적 효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은 한미 FTA로 자동차 값을 50만원 정도 떨어뜨리면 매년 수출이 10억 달러 증가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소나타와 미국에서 실제로 경쟁하는 차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일본차입니다. 혼다 아코드나 도요타 캠리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 살아 보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소나타는 아코드나 캠리에 비해 한 급 아래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소나타는 각종 보너스를 왕창 붙이고 초기 품질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따서 미국 시장 점유율을 많이 늘어났지만, 요즘 들어와서는 굉장히 고전하고 있습니다. 좀 무리를 많이 했어요. 십년보증, 이런것도 막 집어 넣고. 렌트카 싸게 공급해서 점유율을 늘렸는데 그 약효가 떨어진 거죠. 중고차 가격이 떨어졌거든요.
그런데 과연 정몽구 회장은 50만우너의 여유를 가격 인하에 사용할까요? 제가 보기에는 현대 자동차는 가격 안 떨어뜨려요. 현대는 이렇게 판단할 거예요. 가격을 떨어뜨려서 판매가 급증한다면 가격인하를 선택하겠지만 만일 가격을 내려도 비슷하게 팔린다면 한 대당 50만원씩 주머니에 넣는 것이 훨씩 이익입니다.
과연 50만원 떨어졌다고 한급 위로 평가하는 혼다 아코드나 도요타 캠리를 타던 사람들이 소나타로 차를 바꿀까요? 아니면 새차 사려는 사람이 '소나타 값 50만원 떨어졌네. 소나타 사야지' 이렇게 마음먹어야 되는데 과연 그럴까 의문입니다.
반대로 한국 쪽은 어떨까요. 원산지 규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FTA에서 원산지 규정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면 FTA는 차별관세잖아요. 한국은 미국에 대해서만,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만 관세를 떨어뜨려 줍니다. 제가 만일 이 마이크를 미국에 수출한다 했을 때, 관세 등에서 특혜를 얻으려면 이걸 한국산이라고 증명을 해야합니다. 그럼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품목에 원산지 규정이라는 규정이 붙게 됩니다.
이번 한미 FTA에서 자동차는 현지에서 50% 이상 부품을 조달하면 그나라 제품으로 인정하자고 결정했습니다. 혼다 아코드나 도요타 캠리는 이미 미국에서 75% 이상의 부품을 조달합니다. 즉 미국에서 생산된 혼다 아코드나 도요타 캠리는 한미 FTA에서는 미국산으로 인정 받습니다.
미국산 혼다 아코드나 도요타 캠리는 한미 FTA 상의 특혜를 다 받을 수 있다는 얘기죠. 혼다 아코드, 도요타 캠리가 160만원, 심지어 여기 있는 다른 비관세장벽상의 이익을 다 보게 되면 200만원 가까이 가격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가격을 떨어뜨릴지, 아니면 그냥 관세를 챙길지는 혼다의 판매 전략에 달려있겠죠. 하지만 가격을 떨어뜨려서 왕창 팔수 있다면 가격을 떨어뜨릴 것입니다. 지금 정부나 현대는 여유를 부리고 있습니다.
왜? 지금 혼다 아코드나 도요타 캠리가 미국에서 너무나 잘 팔리고 있어서 수출한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FTA를 추진하는 목표의 첫째로 꼽는 것이 "미국이라는 안정적인 시작을 선점한다"는 겁니다. 마침내 광고에 광개토대왕까지 등장했죠. 광개토대왕이 미국 시장을 정벌하는 것처럼 그런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어줬습니다. 그럼 거꾸로도 마찬가지죠. 도요타 캠리나 혼다 아코드 입장에서 보면 한국 시장이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겁니다. 8% 가격 떨어지죠, 이만큼 더 이익입니다. 확실히 왕창 팔만한 자신만 있으면, 한국 시장을 장악하려고 할 겁니다. 이에 따라 소나타가 거의 독점하고 있는 한국의 중형 자동차 시장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근데 한국 정부 판단에는 별로 수입이 늘어나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뭐, 어떻게 계산했을지는 대충 짐잠이 가는데, 한미 FTA때문에 자동차의 경제 구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계산법입니다.
에이,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일본차 많이살까? 천만에요. 지금제일 잘 팔리는 외제차가 뭐죠? 렉서스죠. 어디차입니까? 바로 도요타차입니다. 이제 우리 국민은 일본 차니깐 안 산다, 이런건 없어졌습니다. 혼다의 전략에 따라 우리의 자동차 시장이 위험에 빠질 소지가 다분합니다. 우리는 세제개편 등 비관세장벽도 허물었습니다. 비관세 장벽이라는 것을 결국 그나라의 법과 제도입니다. 반면 미국은 하나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자동차 분야 뿐 아니라 전 분야에서 모두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한미 FTA하면 우리는 160개의 법을 다 바꿔야 합니다. 최재천 의원의 주장이 그렇고 정부는 70개 정도라고 하는데 이건 나중에 세어 보면 알겠죠. 반면 미국은 바꿀게 하나도 없습니다. 즉 우리는 미국의 비관세 장벽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기술표준 같은것도 굉장히 많고, 주마다 표준이 다르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말도 못 꺼냈습니다.
반면 미국의 요구는 대부분 다 들어줬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살은 이미 예측된 일이었습니다. 미국의회조사국 보고서라는게 있습니다. 미국의회조사국은 미국에서 매우 권위 있는 연구기관입니다. 작년 5월 20일자 보고서를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한미 FTA의 목표는 관세 장벽보다 비관세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있다" 처음부터 미국의 목적은 이것이었습니다. 남의 나라 법과 제도를 왜 바꿔요? 미국은 미국 기업의 최대 이익을 위해서 한국의 법과 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꾸려합니다. 한미 FTA는 미국의 법과 제도를 한국에 이식시키는 것입니다. 160개의 법을 바꾸는 것은 어마어마한 큰일입니다. 법률 대란이라고 할 만 하죠. 이것이 첫째로 정부가 자랑하는 부문의 결과입니다.
아고라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