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쪽 거실 벽으로 피아노를 옮겼다.
소프라노와 알토리코더를 손닿기 좋은 위치에 올려두고 악보는 항상 펴 두는거야.
주방과 거실 안방 공부방 베란다 어느 곳을 향하던지 피아노 옆을 지나야하니 오며가며 한 번씩 불어본다.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더 정신이 없던 때라 시간을 더 쪼개어 연습해야하는데 궁여지책으로 화살연습이라도 일단 자주해야지.
선생님께서 조심스럽게 중주를 해보라 권하신다.
부족하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열심히 연습하면 되겠지.
알토를 맏기로 했다. 어련히 알아서 나눠주신 것일터이니 무조건 순종이다.
합주단 책 맨 뒤에 4성부 조곡을 펴보라시는데...
워마~ 대체 이게 몇 페이지 짜리란 말입니까?
연습에 들어갔다. 다른 분들이 워낙 잘하시는 분들이라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
합주단 연습을 비껴 각자 파트 연습 후 한 번 더 만나 맞춰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선생님께서 대전에서 있는 리코더콩쿨대회에 나가보자고 하신다.
워메나~ 이 일을 워쩌면 좋대요?
연주도 연주지만 그 긴 곡을 외워서 해야 한다잖아요.
이 썩은 머리로 외워질까나 걱정되기도 했지만 집에서 엄마만 쳐다보고 있는 어린 새끼들에게 집중해야 되는데.....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엄청난 자극이 될 것이며 실력도 향상될것을 확신하며 일단 해보기로했다.
감당해내야 할 여러가지 일들을 소홀함 없이 균형을 잘 맞춰가며 살려면 더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예선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몇 개월 뒤에 있을 본선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썩어가고 있다고 믿고 있던 내 기억력도 절박함 때문인지 초능력을 발휘해주어 고마웠다.
하루하루 우리의 연주는 날로 좋아지고 단원들 앞에서 몇 번이고 연주를 하며 조언을 구했다.
대회 당일 새벽.
비가 내린다.
새벽 기차에 몸을 싣고 익산역에서 환승을 위해 기다린다.
아침 출근을 하시는 분들인지 플랫폼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두 기차가 들어오는 방향을 응시하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다.
아름다운 비소리를 들으며 서 있노라니 짧게나마 리코더연주를 해보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단원들도 기꺼이 응한다.
재빠르게 악기를 조립하여 겸손함의 표시로 구석에 자리를 잡아 연주를 시작한다.
영화의 한 장면에 내가 서 있는것 같이 아름다웠다.
내가 연주를 하고 있는데도 내가 배우를 보고 있는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멀리 기차가 들어올 즈음 우리의 연주도 끝이 나고 박수가 터진다.
얼떨결에 고맙다는 인사도 받았다.
처음보는 알토 테너 베이스 리코더가 신기한지 여기저기서 그게 뭐냐고 물어 보신다.
용기를 내어 연주는 했지만 부끄러움이 나를 감싼다.
부지런히 악기를 챙겨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간의 노고에 대한 보답인지 부족한 실력으로 금상을 받았다.
기대를 안했으니 기쁨이 두배이다.
내 짧은 리코더와의 연애사에 길이 남을 사랑의 짜릿한 추억.....
죽어도 못 잊어
첫댓글 정말 행복한 추억을 갖게 되셨네요.
그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글솜씨가 좋으셔서 순식간에 다 읽었네요. 5탄을 기다리겠습니다.
멋집니다! 멋진 추억..함께 나누심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