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도 격어보지 못한 생소한 곳에서 풍속과 음식을 맛보면서 문물과 명소를 돌아보며,견문을 넓히게 되는 것으로 많은 곳을 돌아보고,살피게 되는 것으로 여행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오다 가다가 생소한 지역[地域]을 들리고,나그네의 발목을 붙잡게 되는 시설로 조잡하기 그지 없는 장소로 아무것도 아닌 지역에 역사적[歷史的]인 아무런 연관도 없는 해괴망측[駭怪妄惻]한 구조물[構造物]이나 조형물[造形物]로 지친 나그네들의 심신을 우롱하는게 아니라 혼란만 가중하게 하는 명물[名物]이 아니라 흉물[兇物]도 없지 않다고 하면 틀린 말이 아니다.
오래된 도시일수록 명물이 많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역사가 오래되고,오래된 역사만큼 전통을 이어가는 역사적[歷史的] 유물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역사를 하루아침에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불가능[不可能]한 일이다.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질 수 없다는 말처럼 역사는 하루아침이 아니라 장구한 세월을 말한다.
현대를 3,디[三,D]의 시대라 한다.
흔히 말하는 더럽고[durty],어렵고[diffcult] 위험[danger]함을 뜻하는 3,D가 아니고 ,21세기 새로운 사조로 등장한 디자인[design],디지탈[degital],디엔애이[DNA]를 뜻하는 말이다.
이 세가지 가운데 최근 강원도[江原道]를 디자인 한다고 보도 되었다.
그렇다면 바뀔 것이 분명 한데 사실 우려반기대반[憂慮半期待半]이다.
해야 될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하지 않음만 못한 부자연[不自然]스러움과 흉물화[兇物化]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예술과 외설의 차이를 설명하는 게그를 본 적이 있다.
감동을 주면 예술이고,그렇지 않다면 외설이라는 것이다.
각 지방[地方] 도처[都處]에 세워진 조형물[造型物]들을 보면 예술성[藝術性],심미성[審美性],정체성[正體性]을 갖추고,있는지 의문[疑問]스러운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하면 틀리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미학적[美學的] 관점이나 심미적[深美的] 예술관[藝術觀]을 제대로 갗추지 않은 보통 사람에게조차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보편적[普便的] 정서상[情緖上]으로 감탄사[感嘆辭]가 튀어 나오거나 가슴이 뭉클해지고,콧등이 시큰해지는 작품을 보고 싶은 것이다.
과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군사정권시대[軍事政權時代]에 턱없이 세워 놓은 조형물[造形物]을 지금 보게 되면 모골[毛骨]이 송연하다.
자연自然]을 앞서 보호[保護] 할 국립공원[國立公園] 입구[入口]에 자연보호[自然保護]라고 굳이 자연석[自然石]에 세겨 놓은 모습을 보면 그 발상[發想]이 한심[限心]스럽다.
도내 88 올림픽 성화봉송로[聖火逢送路]마다 돌로 새겨 놓은 표지석[標識石]은 이미 그 역사성[歷史性]이나 상징성[象徵性]을 뒤로 한 채 관심에서 멀어져 흉물로 변한지 오래다.
그것을 한 때 관심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아직도 그런 일들이 계속되고 있으니 문제다.
대학시절[大學時節] 즐겨 불리던 소양강처녀[昭陽江處女]가 거대한 잔다르크상이 되어 해 저문 소양강[昭陽江]가에 불쑥 나타난다면 그것도 놀랄 일이다.
그래서 명물과 흉물 사이가 모호하다.
작가는 혼신의 노력으로 만들지만 보는 사람들 사이에 공감대[共感帶]를 형성하지 못하면 공룡의 흉물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흉물이 되어가는 자칭 명물에 대한 예산심의[豫算審議]나 감사는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다.
흉물이 되면 철거도 쉽지 않으니 세우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세워져야 할 곳에 뭔가 없다면 그것도 문제다.
세계 무형문화유산[無形文化遺産]으로 자랑스럽게 지정받은지 두 해가 다 되도록 강릉다오제[江陵端午祭] 상징물[象徵物],기념물[紀念物],또는 그것을 표지하는 뭔가가 없음은 차라리 이상하다.
경직된 꽃 치장 홍길동상[洪吉童像]을 치우면서 정작 세웠어야 할 초당의 생가터 앞에는 제대로 형상화[形像化]된 홍길동[洪吉童]상 하나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2007년 대한만국[大韓民國]의 대표브렌드대상 선정위원회[選定委員會]에 따르면 대한민국[大韓民國]을 키우는 50대 브렌드 지방자치단체[地方自治團體] 부문에 전남의 장성군[長城郡] 대표브렌드인 홍길동[洪吉童]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400년전 시민평등[市民平等]과 호민론[護民論]을 외치며,홍갈동전[洪吉童傳]을 지은 허균 선생의 고향인 강릉에는 낯이 뜨겁다.
세계적[世界的] 대문호[大文豪] 영국의 세엑스피어나 독일의 괴테의 고향처럼 부가가치[附加價値]를 생산하지는 못할 망정 죽 쑤어 남을 준 형세다.
실존 홍길동[洪吉童]과 문학작품[文學作品]으로 형상화[形象化] 시킨 명작 홍길동전[洪吉童傳]은 작가의 고향 깅릉시[江陵市]와 장성군[場城郡]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따라서 그나마 세워 놓은 홍길동상[洪吉童像]을 없애려 하기 보다 장성[長城]이 어떻게 홍길동 브렌드를 추진[推進]하는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지역을 이끄는 사람들이 최초로 한문과 한문소설[漢文小說]을 쓴 김시습[金時習]과 허균[許均]에 대해 모를리 없다.
이들과 강릉의 인연이 상당한 부가가치[附加價値]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모른다면 더 문제지만,명물과 흉물사이에서 우리는 갈등을 격게 된다.
하나를 세우더라도 주민들이 원하는 눈높이 행정을 펼쳐 나가는 것이 올바른 일군이다.
굳이 제일강릉[第一江陵]을 자연석[自然石]에 새겨 세워놓아야 제일이 되는게 아니다.
하늘로 치솟는 마천루[摩天樓]와 같은 높은 청사에서 내려다 봐야 반드시 수준높은 행정을 펼 수 있는게 아니다.
공자는 스스로 낮은 곳에 처하면 높아진다고 하였다.
즈믄해를 견더 낼 명물을 만들려면 그것을 세워지는 곳이 적당한 장소인가.
또는 진정으로 의미있는 일인가.
예술성[藝術性]은 있는가.
지역의 연관이나 학술적[學術的] 고증른 제대로 되어 있는가.
후대까지 명물로 남아 있을 것인가.
등을 객관적[客觀的]으로 심사숙고[深思熟考]하고 검증햐야 한다.
시민들이 참여하고,가꾸지 않는 나홀로 지역만들기는 허상에 불과하다.
오스트리아의 남동쪽 작은 농촌마을 세필드 주민들은 60년간[六十年間] 90여종[九十餘種]의 벽화를 그려서 세계적[世界的] 벽화도시[壁畵都市]를 창안하였다고 한다.
지금 뭔가를 만든다면 머잖아 흉물로 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다시 한 번 길게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다 하여 아무렇게나 하면 오히려 하지 않음만 못하다.
명물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오랜 역사가 필요하다.
동양에서는 중국을 서양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종주국[宗主國] 행세를 하게 되는 것도 실은 그들의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으로 역사적[歷史的]인 뒷바침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모두가 인정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툭하면 세웠다가 헐어치우고,다시 짖게 되는 건축물[建築物]을 보게 되면 역사성[歷史性]은 온데 간데 없고,합리성[合理性]에 합목적성[合目的性]으로 구호로만 반만년[半萬年] 역사를 자랑한다고 하지만 만년은 고사하고,몇 백년이 된 건축물[建築物]도 없으니 중국과 서양의 수백년[數百年]이 된 건축물[建築物]이 건재한 모습에 비견되는 명물은 눈을 닦고,찾아보아도 없으며,그들이 문화를 보고,부러워 해야 하는 것으로 이제는 명물을 많이 만들어서 지금까지 흉물로 방치되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는 흉물[兇物]이 아니라 명물[名物]이 많이 탄생[誕生]하는 찬란[燦爛]한 반만년[半萬年]의 역사[歷史]를 다시 일으키는 르네상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