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사람들이 진성(眞城)이씨 중흥조이고 퇴계의 증조부로서 퇴계의 발복처로 보고 100대명혈 심지어 조선8대혈 운운 한다. 답사한 바 혈 뒤에 뭉친 도두(倒頭또는 頭腦, 입수하기전 두툼한 곳. 보통 월아 꼭지 뒷 부분) 일절(一節)은 상당히 좋고 도두에 묵뫼1기가 있다. 이정 묘 보다 먼저 들어온 묘로 짐작된다. 그러나 도두 일절은 기(氣)탱크 역할을 하는 것이고 혈처는 그 아래에 있으므로 묵뫼가 된 것이다. 풍수속담에 도두 일절은 버려야 된다는 말이 있다.
* 약도---간산기에 이 묘의 소재지를 물한리96-1로 적은 것이 많은데 오류이다. 기룡혈이라고 하나 당판이 칼날 같이 좁은 산등에 있으므로 고달프다. 이정묘 아래에 조모묘와 이희열묘가 있으나 평범하다. 이정(4세손)은 세종때 여진족 정벌의 공이 있다. 3남을 두어 모두 번성하였다고 하므로 발복처를 찾으려면 이정의 윗대 또는 후대(퇴계는 7세손이므로 5세, 6세손)를 찾아보아야 될 것 같다. 이정을 위한 묘재사로 1480년(성종11년)에 건축한 가창재사가 있고 다른 곳에 있던 고려후기 문신 이자수를 기리기 위한 작산정사를 옮겨왔다. 100대혈에 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등초급(2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