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아~ 천지다 -천지 견문기
* 백두산은 그 마루에 천지가 없다면 볼품이 그만큼 없어지고, 천지 또한 그를 둘러싼 뭇 봉우리들이 없다면 벌판에 있는 호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지가 백두산의 자랑이듯 백두산 또한 천지의 자랑이라고 한다. 백두산 천지는 북한의 천연 기념물 제 351호로 정해져 있다.
(*백두산 그 형성과 역사, 자연, 생태계 한겨레신문사 93/06/15)
일출에 대한 욕망으로 새벽잠을 설쳤지만 백두산은 우리에게 더 이상의 베일을 벗는 호혜(互惠)를 베풀지는 않았다. 바람과 안개비로 흠씬 젖은 그 아침의 백두산은 한치 앞도 분간 할 수 없는 악천후였다. 팀별로 무리지어 끼리끼리 손을 잡고 눈 앞을 가리는 자욱한 안개속 길을 장님 코끼리 더듬듯 더듬더듬 헤매며 터벅터벅 코끼리 걸음으로 능선길을 내려갔다. 바람에 씻겨 흐르는 구름 사이 부분적으로 간간히 드러나는 천지의 모습은 신비와 경이(驚異)와 찬탄(讚歎)이 아깝지 않은 도원경(桃源境)에 다름 아닌 장관이었다.
조물주는 백두산 허리에 나무가 자랄 수 없는 식생 한계선(약 2000미터)을 그어 놓았지만 정상의 능선에 삼림(森林) 대신 군락을 이룬 야생화로 오묘(奧妙)하고도 신묘(神妙)한 그림을 그려 놓았다. 야생화로 그려낸 풍광을 완상(玩賞)하며 걷는 천지로 내려서는 노정(路程)은 백두산과 연변 관광과 산장의 이벤트까지 두루 섭렵하고도 덤까지 챙긴 분수(分數)
에 넘친 호사(豪奢)였다. 이곳의 야생화는 강풍에 적응하며 견디느라 모두가 바닥으로 퍼지는 대부분 키가 작은 것들이다.
* 백두산의 고산 식물들은 특수한 생태환경 조건에서 자라므로 대체로 땅에 붙어 뻗고 털, 뿌리가 발달 돼 있다. 또한 꽃들은 꽃송이가 크고 꽃색이 뚜렷하며 향기가 진하다.
(*백두산 그 형성과 역사 자연생태계 -식물편/1993/06/15 한겨레신문)
양귀비(洋貴妃) 보다 20배 이상(?)이나 환각효과가 더하다는 이곳의 두메 양귀비는 바닥으로 깔린 작은 체형으로 앙증맞은 흰색 꽃송이를 담고 있어 작으면서도 소담스런 그 모습이 무척이나 탐스럽게 보여진다. 그러나 두메 양귀비가 20배나 더 효과가 있다는 조선족 가이드의 그말이 사실이라면 멸종이 되고도 남을 일이지 지금까지 실체가 있다는건 그 반대의 해석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
양귀비는 아편을 취하여 법으로 재배가 금지된 마약 양귀비 외에도 주로 관상수 화초로 애용되는 개 양귀비류와 지역적 특성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종류인 아이슬랜드 양귀비, 캘리포니아 양귀비 등이 있으며, 고산지대 양귀비로 분류되는 히말라야나 티벳트의 양귀비는 약효는 차치(且置)하고 그 화려한 꽃과 희소성으로 인해 가치가 매우 높다.
백두산의 두메 양귀비도 한자리를 차지한 분류기준에 만약 자그맣고 앙증맞은 꽃의 자태(姿態)가 제대로 평가를 받으면 백두산 야생화 두메 양귀비도 히말라야 양귀비나 티벳트 양귀비에 더불어 쏠찮이 값나가는 평가를 받게되지나 않을까?
효능(약빨)이냐 외양(꽃빨)만이 판단에 미치는 중요한 기준이 아니다.
눈과 비와 바람으로 점층(漸層)된 영겁의 시간을 거스른 돌뿌리에 채이면서도, 능선에 비껴선 너덜돌을 굴려 생각지도 않은 불상사(?)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우리는 꼬불꼬불 내리막 길을 눈으로 더듬고 손으로 훑으며 조심조심 발을 옮기고 허정허정 맥이 풀린 다리에 힘을 느끼면서 아래로 내려갔다.
2750미터의 장군봉이 주봉이고 백운봉이 2741미터. 천지의 수면 표고는 2257미터. 우리는 그렇게 고도 500여 미터를, 더듬듯한 걸음으로 천지로 내려서는 마지막 노정(路程)을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조근조근 서로를 격려하면서 함께 길을 내려갔다.
* 백두산 최고봉을 북한에서는 '장군봉' 이라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병사봉(兵使峰)'이라 부른다. 조선시대부터 병사봉으로 불려진 명칭 대신 장군봉이란 이름은 김정일 위원장이 1963년, 백두산을 방문했을 때 붙인 이름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백두산 최고봉 이름이 병사봉이란 이야기를 듣고, 김일성 주석 탄생지에 걸맞지 않다고 장군봉으로 바꿨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하지만 이것은 병사봉의 이름에 따른 오해로, 원래 병사봉은 일반 사병을 뜻하는 '병사(兵士)'가 아니라 조선시대 지역사령관이자 고위 장수를 뜻하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의 줄임말인 '병사(兵使)'에서 온 이름이다. 조선시대 동북방면 일대를 수호하는 장수로 '북병사(北兵使)'란 직함이 있었는데, 여기서 온 말로 추정된다. * 아시아경제/2018.09.20.
천지의 화산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가? 앞뒤도 제대로 분간 할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우리는 태초에 조물주가 천지를 창조하는 듯한 백두산이 포효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늘땅이 개벽(開闢)하는 뇌성 벽력같은 소리가 천지의 수면위로 퍼져 나가는 한참 동안 우리는 몸을 움츠리고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어 귀를 쫑긋한 채 심드렁 쿵드렁한 혼돈에 잠겼다. (* 소리는 장백폭포로 통하는 달문 맞은편 너덜지대에서 간헐적이면서 집중적으로 쏟아져 내리는 낙석 구르는 소리. 이곳은 등산객들을 위한 안전한 방편으로 석축을 쌓았으나 통과 시에는 매우 주의를 요하는 곳이다.)
간간이 비치는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고 감추는 천지의 모습에 감탄과 탄식을 교차하며 우리는 산장을 출발해 고스란히 두 시간여 능선을 더듬은 끝에 천지에 내려설 수 있었다. 수만년을 이어져 온 백두 연봉을 비추는 햇살은 녹색을 머금은 천지의 수면위로 찬란하게 부서져 내렸다. 천지 주변의 연봉들은 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위용(威容)을 뽐내고 백두의 최고봉 병사봉은 사람들의 눈길에서 초점이 맞춰지는 잠시잠깐 동안 웅장한 자태(姿態)로 드러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애를 태웠다.
허위단심 산을 향한 열정으로 맥을 이어 온 이십여 년 산사랑의 일념에 감읍한 백두산 천지가 드디어는 우리에게 아무런 가감이 없는 적나라한 원시의 모습을 열어 주었다. 한라에서 백두를 바라보던 그 열망에 감읍하고 감동한 지금 이 시간 이렇게 화창한 천지를 위해 날씨는 속초에서 부터 그렇게 속절없이 비를 뿌렸던 것인가? 국화꽃 한송이를 피우기 위해 봄 부터 소쩍새가 수 없이 울어 예는 싯귀의 인과(因果)처럼...
잔 물결이 이는 천지에 손을 담그고, 고개숙여 입맞춤하고 준비해간 물병에 물을 담고... 부푼 희망을 안고 올랐던 천지에 이르러 아아하고 오오한 끝 간데 없는 천지를 마주하는순간은 평생토록 새겨질 감동과 감격이었다. 민족의 시원(始原)으로 추앙받는 백두 연봉의 성스러움은 우리가 선 이자리에 부르튼 발이 묶이고 활개짓하는 팔과 다리에 전율을 안긴다.
남과 북이 따로없는 하나되는 한민족 한겨레.
사만자 단교의 어둠속을 건너오던 목소리 앳띤 병사의 작은 울림이 귓가를 맴돈다. 민족의 성지에서 다가오는 따로 또같은 숙명을 지닌 하나되는 울림이었다.
"통일되서 만납세다"
우리는 속살이 드러난 천지를 도마위에 올렸다. 살아서 펄떡이는 싱싱한 천지의 껍질을 벗긴 살을 베어내고 뼈를 발라내며...
우리는 두 손을 담그고 두 눈으로 훓으며 두발로 물 속을 뒤적거리는 게걸스런 탐욕으로 속속들이 집적이며 배불리 탐식하고 포식을 하고 나서야 다시 그자리에 천지를 내려 놓을 수 있었다. 천지에서 잡았다는 가이드의 뻥을 알면서도 넘어가 주는 영산에 오른 후하고 너그러운 마음.
짝퉁(?) 산천어로 회치고 초쳐서 열병처럼 속앓이 하던 백두산 천지의 갈증을 누그린 우리는 그렇게 천지의 호반에서 두시간을 머물다 달문을 지나고 승사하(乘梭河)를 거쳐 송화(松花)강을 이루는 68미터 높이에서 장관을 이루며 쏟아지는 귀가 멍멍한 장백폭포의 위용을 벅찬 가슴에 담고 귀국길에 올랐다.
* 나는 거기서 차라투스트라를 보았다. 솔로몬을 보았다. 석가모니를 보았다. 더욱 부지깽이 사이에 한가하고도 만족한 듯이 피어 있는 이름없는 풀꽃들의 위에 동서고금 어떠한 시인 역사가에게서도 듣지 못하던 인간의 그윽한 기밀을 퉁기어 받았다. 그리하여 손길을 마주 잡고 고개를 숙였다.
(* 백두산 근참기/1926 동아일보 최남선)
'노루 때린 막대기 수 삼년을 울궈 먹는다'는 말을 떠올리며 우리가 무사히 백두산을 다녀 온 것은 용맹한 전사가 평생을 간직할 무공 훈장만큼이나 가슴에 새길 되풀이 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백두산을 다녀 온 그 감격이 기억이 퇴색되어 빛이 바래는그날까지 천지를 그리는 가슴앓이는 이어질지 모른다. 어쩌면 천지나 백두산에 몰입해서 할 일도 제대로 못하는 외통수 매니아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도 그렇지만다시 기회가 주어지면 관광 일정을 줄이고 더 많은 시간을 백두산에 머물며 천지의 들숨날숨 긴 호흡을 함께 하는 것이 작은 소망이고 그에 더해 러시아나 중국을 통하지 않고 평양을 거쳐서 우리땅을 밟고 백두산을 오르겠다는 생각이 백두산을 다녀 온 지금의 큰 소망이다. 냉혹한 남북의 대치상태가 꿈으로만 그칠 언감생심(焉敢生心)이겠지만 이룰수만 있다면 생애 최고의 이벤트가 될테니 잊지는 말고 살자구나 - ‘꿈은★이루어 진다’는 붉은 악마의 구호처럼...
The end.
후원 42차 백두산 원정산행 일정 및 참고 자료
백두산 일정
* 일 시 : 2003/06/27~07/02
* 참석인원 : 후원회장 이용탁 외 34명
(T/C 장순병 게스트 원보경 진선미)
(현지 가이드 이훈 김철 외)
* 03/06/27 (금)
07:20 안국동 출 (전세버스)
10:50 속초 동명항
14:50 속초 세관 출국/동춘호 승선
16:00 속초 동명항 출항
17:30 석식 (선내 식당)
21:00 야식 (선내 식당)
* 03/06/28 (토)
05:00 조식 (선내식당)
(현지시간 러시아 07:00)
09:40 러시아 자루비노 입항
10:40 동춘호 하선. 세관 입국장 대기
11:30 자루비노 세관 통관/러시아 입국
12:10 자루비노 출 (버스)
13:30 러시아 국경
13:50 러시아 프라치노 세관 통관
14:30 장영자 세관 통관/중국 입국 (버스)
(현지시간 중국 13:30)
15:10 중식 창근이네 통나무집
16:10 창근이네 통나무집 출
17:10 방천 삼국전망대
(북한중국러시아국경)
18:20 도문 권하구 권하대교
(북한 원정세관)
18:35 권하구 안중근 의사 유적지
19:30 사만자 단교
20:30 석식 중국식당
22:30 백산 호텔
23:00 자유시간
* 03/06/29 (일)
06:00 모닝 콜
06:40 조식 (호텔 식당)
07:40 백산호텔 출 (버스)
08:50 안도현 휴게소
09:50 신교식당 (조선족 기념품 매점)
10:20 신교식당 출
10:40 만경대 전시관 (북한 국가직영)
(원방 우황청심원 안중우황원)
11:10 만경대 전시관 출
12:20 중식 이도백하 고려식당
13:40 고려식당 출
14:00 백두산 입구 (장백산 매표소)
14:40 천지 입구 (버스 하차)
15:00 천지 입구 산행 시작
16:30 흑풍구
18:00 천지 기상 관측소
19:00 석식 (산장) 및 자유시간
* 03/06/30 (월)
05:00 기상
06:40 조식 (조별 취사)
07:30 산장 출
07:50 능선 대피소
09:00 천지
10:20 달문
10:50 승사하
11:30 장백폭포
11:40 장백폭포 매표소 (노천온천 찐계란)
12:00 온천욕 및 자유시간
(노천온천 탁족 소천지 도보관광)
13:20 장백 폭포 출
14:10 중식 고려식당
(산사랑 천지 기념-전자시계 증정)
15:20 고려식당 출
16:40 만경대 전시관
17:10 만경대 전시관 출
17:30 신교식당
18:30 신교식당 출
19:10 대성중학교 (윤동주 시비)
(狗肉麵(개고기 라면)기념품/백승호)
20:00 대성중학교 출
20:10 곰 농장
20:40 곰 농장 출
21:40 석식 훈춘 평양 금강산 식당
22:40 평양 금강산 식당 출
23:00 훈춘 길성 호텔
23:30 자유시간
* 03/07/01 (화)
06:30 기상
07:00 조식 (호텔 식당)
08:30 길성 호텔 출
08:40 훈춘 재래시장 관광 및 쇼핑
09:40 재래시장 출
10:30 훈춘 장영자 세관
11:30 장영자 세관 통관/중국 출국
13:00 중국 국경 통과
14:00 러시아 국경 통과 (현지시간16:00)
14:20 러시아 프라치노 세관 통관
15:30 자루비노 세관 통관/러시아 출국
17:40 동춘호 승선/석식 (선내 식당)
19:30 백두산 뒷풀이 만찬 (선내 휴게소)
* 03/07/02 (수)
06:30 기상
07:00 조식 (선내 식당)
11:30 속초 동명항 접안 예인
12:00 속초 세관 통관/귀국
12:20 중식 속초 동해 식당
14:50 속초 동해식당 출/집으로...
백두 산문록 참고 문헌 및 자료
* 時 - 국경의 밤/1925 金東煥
* 백두산 여행정보 몇가지 hyejin1229@hanmail.net 김혜진
* 두만강 기행 2000/12 월간조선 徐炳旭
* 時 - 두만강 金奎東
* 時 -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李庸岳
* 들꽃의 천국 백두산 서쪽 2001/07 월간지 사진예술
* 백두산 가는 길(백두산 종합 정보) baikdoo.pe.kr
* 백두산 근참기 baikdoo.pe.kr 1926 동아일보 崔南善
* 백두산고전등산기 baikdoo.pe.kr
- 洪世泰의 白頭山記 1712년 4월 29일 洪世泰
- 白頭山記 1751년 5월 24일 李宜哲
- 白頭山 遊錄 1764년 5월 14일 朴 琮
- 遊 白頭山記 1766년 6월 10일 徐命膺
- 白頭山 日記 1885년 10월 6일 李重夏
* 국경의 밤 - 두만강반 에서 1939년 8월 28일 朴相義
* 압록 두만강 대탐사 2000/09/22~11/22 중앙일보
* 신연행록-다시 밟은 역사의길 2002/09/26~10/17 중앙일보
* 백두산 그 형성과 역사자연 생태계 1993/06/15 한겨레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