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그 카간-바이올린
타우노 한니카이넨-지휘
핀란드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1965
애국적 교향시 「핀란디아」로 잘 알려진 잔 시벨리우스의 주요 업적은 7개의 교향곡과 5개의 교향시로 집약된다.
「근대 낭만파음악의 아버지」란 칭호를 듣는 그이지만 개인적 감성을 아기자기하게 묘사한 소품과는 거리가 멀다.
협주곡도 알려진 것은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한 곡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20세기의 훌륭한 바이올린
협주곡들인 바르토크, 스트라빈스키 등의 작품보다 훨씬 인기가 있다.
그 이유는시벨리우스가 남긴 단 하나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면 우리들은 흔히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빠져드는
고요와 같은 감상에 젖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즉 이 협주곡은 그 격정적이며 까다롭고 어려운 특성을 뚜렷하게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가운데 북유럽의 순수한 서정을 담은 아름다운 선율에 감싸여 있는 것이다.
물론 1904년 2월 8일 헬싱키에서 초연되었던 이 협주곡 처음의 악보는 다소 실패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의 작품 평가에 무척 엄격하였던 시벨리우스도 이 곡에 대해서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였으며 다시 수정을
하여 개정된 작품을 1905년에 새로이 선보였다. 그런데 1903년 처음 작곡된 것과 1905년에 개정한 것은 모두
버머스터(Willy Burmester)를 위하여 작곡된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시벨리우스는 이 바이올린 협주곡이 두번이나
무시되는 것에 몹시 불쾌해 있었으며 더욱 훌륭한 연주를 위하여 이 곡은 또 다른 음악가에게 헌정되어졌다.
한편 시벨리우스의 전기작가인 타바시스테르나(Erik Tavaststjerna)는 이 같은 시벨리우스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시벨리우스는 버머스터를 위해서나 또 다른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해서 이 협주곡을 작곡한
것이 아니며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하여 이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가 일종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과 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그는 멘델스존이나 브람스와는 달리
바이올린 독주의 전문적인 테크닉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바이올리니스트의 충고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그의 상상력 속에서 그는 바잉로린 협주곡의 독주자로서 자신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협주곡의 노스탤지어와 강한 낭만적인 성격에 대한 훌륭한 설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일찍부터 바이올리니스트로서도 재능을 나타내 보였던 시벨리우스가 바이올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만든 이 협주곡에 대한 훌륭한 해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에 전해지는 이 협주곡의 개정판은
1905년 10월 19일 베를린에서 당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하릴(Carl Halir, 1859~1909)의 바이올린 독주와
작곡가로서도 유명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휘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여졌으며 이후 이 곡은
시벨리우스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근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1악장: Allegro moderato
내용적으로 가장 심오할 뿐 아니라 전곡의 절반을 점유하는 장대한 규모로도 돋보이는 악장. 독주 바이올린과
관현악이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며 구축해가는 이 교향악적 악장의 구조는 상당히 독특하다. 전체의 구도는
일종의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특히 제시부 직후에 놓인 대규모의 카덴차
(독주 바이올린의 기량 과시를 위한 무반주 부분)가 마치 발전부와도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제2악장: Adagio di molto
마치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의 울창한 침엽수림을 펼쳐 보이는 듯한 목관 파트의 앙상블로 시작되는 아다지오
악장. 전편에 걸쳐 면면히 흐르는 바이올린 독주의 서정적 선율선에는 인간 영혼의 진솔한 고백과 깊숙한 내면의
토로가 서려있는 듯하다. 그리고 중간부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이제까지의 응어리를 일거에 터트리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다.
제3악장: Allegro, ma non tanto
기묘한 느낌으로 가득한 스케르초 풍의 춤곡 악장. 다소 묵직한 리듬 위에서 사뭇 정열적인 춤곡이 현란하게
펼쳐진다. 베버나 멘델스존의 요정음악을 연상시키는 독주 바이올린의 경묘한 움직임 위로 북유럽의 환상이
아련히 떠오르는 느낌이랄까? 그러면서도 북유럽적인 음산한 기운이 서려 있어 신비롭고 마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