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장,
김성배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린 자신이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들도 딸도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아들은 병원에서 딸은 단칸방을 얻어 따로 나가 살고 있는 현실에 김성배는 가슴이 막히고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윤지 또한 몰골이 말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얼굴을 들고 윤지를 찾아가 보리라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워낙에 철강 산업의 위기를 맞아 모든 기업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자신들처럼 자본이 약한 기업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은 그대로 남의 수중으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자신으로 인해 윤지의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린 것을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김성배는 문밖출입을 하지 않고 좁은 방구석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고영림은 그런 남편의 심정을 이해하겠다는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매일 일을 나간다.
아침에 남편의 밥상을 챙겨 놓는다.
그리고 작지만 용돈을 놓고 나간다.
그러나 남편은 하루 종일 꼼짝도 하지 않고 밥도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여보
지철아빠!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를 하고 당신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꼼짝도 하지 않을 겁니까?
우리 보다는 은서네를 생각해서라도 당신이 움직여서 힘을 보태야 할 것이 아닌가요?
지금 은서가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
“그 어린 것이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자라온 어린 것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봐요.
당신이 어떤 일을 해서라도 그 모녀를 돌봐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나 김성배는 그런 아내의 말을 듣지 못하는 척 한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고영림은 더 이상 심하게 남편을 질책할 수가 없다.
그녀는 남의 집 가사 도우미로 나가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가서 일을 한다고 해도 은서의 등록금을 마련하려면 아끼고 절약해야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다행이 아들 지철이 월급을 고스란히 엄마의 통장으로 보내온다.
그러나 고영림은 그런 아들의 월급을 건드릴 수가 없다.
자신이 버는 것으로 남편과 둘이 먹고 살면서 은서의 등록금을 위해 저축을 한다.
남편과 둘만의 삶이라고 해도 최저한의 생계비만을 가지고 유지를 해 나간다.
좌절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용기를 주고 싶고 영양가 있는 음식도 먹이고 싶은 마음이지만 은서를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을 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하든 은서를 대학을 가르쳐야만 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처럼 생각을 하고 있는 고영림으로서는 허리띠를 졸라맨다.
그대로 모른 척 하게 된다면 은서는 대학을 다닐 수 없게 된다.
고영림으로서는 그런 은서를 그대로 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버티어 왔다.
이제 남편이 출소를 해서 남편의 힘에 의지를 하려던 고영림은 남편이 아무런 의욕도 없이 삶 전체를 주눅이 들어 있는 것을 보니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내색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시간이 지나고 날짜가 흘러가면 그 모든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 일을 할 남편임을 믿고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모든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찾아오기 전이라고는 하지만 새벽의 가을바람은 꽤나 쌀쌀하다.
고영림은 윤지보다는 은서를 만나고 있다.
윤지 또한 아직도 과거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방황하고 현실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어 은서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은서는 묵묵히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드리며 현실에 적응을 해 나간다.
그런 은서의 모습이 고영림은 너무나 대견스럽고 사랑스럽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엄마를 달래고 어르면서 마치 엄마와 딸의 역할이 바뀐 듯한 모습이지만 짜증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 해내려는 노력을 한다.
고영림은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하든 은서가 고생을 덜 하게 하기위해서라도 남편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남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생을 하고 있은 은서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마음을 잡고 막노동이라도 해서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겨우 등록금뿐이다.
생활비와 모든 용돈은 은서가 스스로 해결을 해 나가는 것이 안쓰럽다.
그렇다고 아들의 돈에 손을 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고영림이다.
어떻게 하든 자신의 능력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고영림은 노는 날도 거의 없이 일을 나간다.
아직은 자신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에 감사하며 그저 주어진 환경에 묵묵하게 적응을 해 나가면서 남편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매일 정확한 시간에 집에 도착을 한다.
남의 집 문간방에 방 한 칸을 얻어 살고 있다.
매달 돈을 내야 하는 월세 방이다.
그렇지만 친정에 신세지며 사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안하다.
아들이 벌어주는 아들의 월급을 모아 보증금을 마련해서 얻은 방이다.
고영림은 조금 가파른 언덕을 힘겹게 올라간다.
벌써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려면 힘에 겹다는 것을 생각하며 자신의 나이를 생각해 본다.
오십을 넘어 오십의 중반에 들어서는 나이다.
지금까지 편안하게 살아왔던 세월이 얼마나 되던가?
젊어서 남편과 함께 맞벌이를 하며 살아왔고 남편이 윤지와 사업을 한다고 하면서 그 뒷바라지에 힘든 세월을 보냈던 고영림이다.
그러나 이제 더욱 힘든 일들이 눈앞에 놓여있고 이 난관을 뚫고 나가려면 더 이상 남편이 방황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며 또 다시 남편을 설득해 보리라 생각하며 집으로 향하는 고영림의 발걸음은 무겁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서로 어깨를 기대고 다독이며 함께 풀어 나가야 하는 것이 부부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고영림은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을 한다.
거의 일 년여 동안 수감생활을 했던 남편의 마음이 얼마나 황폐하고 비참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참으로 강직한 성품이고 빈틈이라고는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업을 하면서부터 남편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가면서 변하고 있었지만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해를 해주던 고영림이다.
그들은 서로 깊은 신뢰와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어 주고 다독이며 살아왔다.
오해하기보다는 서로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했고 상처를 주기보다는 감싸 안으며 도닥이며 위로하며 살아왔던 세월이다.
참으로 자상하고 따뜻한 남편의 성품이었다.
사업을 하면서부터 남편은 조금씩 변하면서 그러한 세심한 자상함이 사라져 버리고 때로는 냉정하고 냉혹한 면도 보이곤 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변해가는 남편의 모습이 낯설어지곤 했던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제 남편은 그 모든 것을 상실하고 그저 무덤덤하고 아무것에도 흥미와 관심조차 갖지 못하고 거의 폐인이 되다 시피 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고영림은 대문을 열고 들어선다.
이 집은 안채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대문 곁에 달린 방이다.
안채에 두 노인들만 살고 자식들은 모두 외지에 나가 있어 가끔씩만 집에 들리곤 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조용한 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자신의 방에 불이 켜져 있지 않은 것을 본다.
“응?
이이가 어디를 나간 것인가?“
불을 밝혀야 할 정도로 어두운 시간이다.
늘 자신이 들어오기 전에 불을 켜 놓고 기다리던 남편이다.
고영림은 스윗치를 찾아 불을 켠다.
방안에 누워있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이이가 잠이 들었나?”
무심코 옷을 벗어 걸려고 하던 고영림의 눈에 약병이 보인다.
“뭐지?”
고영림의 얼굴은 점차 하얗게 굳어져간다.
이미 싸늘한 시신으로 김성배는 누워있었다.
아무런 유서도 남겨놓지 않은 채 김성배는 그렇게 홀연히 세상을 등진다.
더 이상 자신이 감당을 할 수 없는 상태를 고스란히 산 사람의 몫으로 해 놓고 그렇게 아무런 유서도 남겨놓지 않고 그대로 떠나버린 것이다.
고영림은 차리리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하기에 남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이 밀려오지만 통곡을 하지 않는다.
그런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길 정도로 깊은 상심과 고통을 혼자서 감당했을 것이다.
김성배의 장례는 조용하고 조촐하게 거행이 된다.
자식이라야 아들과 딸 단 두 명에 아직 미혼인 아이들이다.
가까운 친척들만 참석을 했을 뿐 조용한 영안실의 모습이다.
은서는 김성배의 소식에 할 말을 잃는다.
윤지와 은서는 김성배의 영안실을 찾아오지만 서로 할 말들이 없다.
더우나 윤지는 이 모든 것을 부인하고 싶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고 자신이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꿈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현실을 부정하려는 몸부림을 친다.
“선배!
이건 아니지?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될 수가 있어?
어떻게 선배가 이렇게 홀연히 우리 곁을 말없이 떠날 수가 있느냐고? 응?
대답을 해봐!
나하고 우리 은서는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떠난 거야?“
윤지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을 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무언가는 믿고 기다릴 수 있었던 사람이 이제는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무엇에 기대고 무엇을 믿으며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인가?
윤지는 더욱 서럽게 통곡을 한다.
김성배의 죽음이 애처로운 것보다는 자신의 앞날이 더욱 캄캄하고 미로 속을 헤맨다는 기분이고 앞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래도 김성배가 무언가는 해결을 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버팀목이 되었던 윤지는 허탈하고 캄캄한 생각뿐이다.
김성배의 장례는 그렇게 조용하게 거행이 되고 모든 것이 막이 내려진 것처럼 조용하다.
은서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겠다는 다짐을 더욱 절실하게 한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큰엄마와 큰아빠가 많은 힘이 되어 준 것이 사실이다.
힘들어도 어떻게 하든 생활을 이끌어 오기만 하면 등록금을 해 주었기에 학교는 빠지지 않고 나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해 내리라 결심을 한다.
은서의 생각대로 고영림은 그대로 쓰러진다.
그동안의 심적 육체적 고통이 고영림을 쓰러지게 한 것이다.
아들인 김지철은 어머니를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시킨다.
그동안 어머니의 건강을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과 후회가 밀려든다.
아버지를 그렇게 어이없게 떠나보낸 자식으로서의 회환이 어머니를 보살펴드리도록 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신경을 쓰게 한다.
이제 김지철은 병원에서 융자를 받아 작은 아파트를 얻어 어머니를 모신다.
더 이상 어머니의 고생을 모른 척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머니와의 생활을 시작한다.
이삼일에 한 번씩은 집에 들어가면서 어머니의 건강을 체크한다.
다행히 고영림의 건강은 큰 이상은 없지만 그동안 무리를 했던 탓으로 아무런 심한 일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고영림은 마음도 몸도 지친 자신을 바라본다.
“지철아!
어떻게 해서라도 은서의 등록금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어머니!
지금 우리가 그럴 수 있는 형편이 되질 않습니다.
제 월급에서 융자금이 매달 제외되고 나옵니다.
나머지를 가지고 우리 생활도 빠듯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니?
은서가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면 불쌍해서 어떻게 하겠니?“
“어머니!
은서 스스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어머니도 그 사람들에게서 놓여나셔서 편안한 마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머니가 하실 수 있을 만큼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지철은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건강이 우선이었다.
자식으로서 그 이상의 중요한 것은 없는 것이다.
지철은 그렇게 어머니가 일을 하러 다니시는 것 또한 만류를 한다.
고영림 또한 의사인 아들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남의 집 도우미 일을 하러 나갈 수도 없고
갑자기 나약해진 자신의 몸으로 아들 몰래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다.
남편을 그렇게 어이없이 보내고 난 고영림은 건강 또한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고영림은 아들의 말대로 집안에서 아들만을 위해 살림을 한다.
늘 은서가 걸리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고영림으로서는 그저 마음뿐이고 이따금 윤지를 위해서 반찬과 김치를 해서 가져다주는 것뿐이다.
“큰엄마!
이제 저희에게 신경을 쓰지 마세요.“
”은서야!
너에게 미안해서 어떻게 하니?
네 등록금만이라도 책임을 지려고 했는데 몸이 예전 같지가 않구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해서라도 제 힘으로 견디어 나갈 것입니다.
사년에 졸업을 할 수 없으면 오년, 육년이 걸리더라도 졸업을 해서 좋은 곳에 취업을 해서 엄마를 편안하게 모실게요.“
”정말 미안하다.
그 사람이 그렇게 갈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
“큰엄마!
마음 편안하게 살아가세요.
저희들은 제 힘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은서는 고영림의 마음을 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힘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더 이상은 짐이 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더욱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한다.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모두 해 낸다.
이제는 세상을 알아가고 세상과 함께 살아가려는 은서의 노력이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고 엄마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힘을 얻으며 노력을 하는 은서의 마음을 윤지는 깨닫지 못하는지 윤지는 매일 짜증이 늘어간다.
은서를 향해서 늘어만 가는 윤지의 짜증을 말없이 견디어 내고 있는 은서다.
첫댓글 헉~세상에 ㅜㅠ
저는 자살하는 사람이 젤 미워요^^
죽을 각오로 뭐든 해야지~ㅜㅠ
동감합니다만 오죽했으면 그럴까? 안타깝습니다
@대장/정해남 오죽하면으로 살아야하는 거래요ㅜㅠ
@들꽃(강용숙) 그렇치 그래도 악착같이 살아야겠지
@대장/정해남 그치유~그래야혀유~요즘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 많어요.
자살하는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는 나쁜사람이여유~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