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에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되었다. 이때 《주역(周易)》 고경(古經)을 위에 바친 자가 있었는데, 상이 본관(本館)으로 하여금 교정해서 베껴 올리도록 명하니, 공이 이를 인하여 상차(上箚)하였다. 그 대략적인 내용을 보면,
“대저 《주역》이란 책은 네 분의 성인(聖人)을 거쳐 대의(大義)가 밝혀지고 세 분의 현인(賢人)을 경과하여 미지(微旨)가 드러났습니다. 그리하여 괘효(卦爻)의 강유(剛柔)와 상수(象數)의 변역(變易)과 유명(幽明)의 일과 귀신의 정상과 삼극(三極 삼재(三才), 즉 천(天)ㆍ지(地)ㆍ인(人)임)의 도리가 모두 드러나 명쾌하게 밝혀지면서 숨김없이 들추어 내지고 길흉(吉凶)과 회린(悔吝)의 도(道)가 마치 손바닥을 가리키는 것처럼 쉽게 이해됨으로써 혐의하던 것을 해결하게 되고 유예하던 것을 결정하게 되었으니, 이렇게 해서 비로소 사람들이 헤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현(顯)과 미(微)에 간격이 없고 체(體)와 용(用)의 근원이 하나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그 말이 오묘하고 가리키는 그 뜻이 심원하고 그 변화가 무궁한 만큼 참으로 성인의 마음과 같은 경지에서 보고 올바른 의리를 터득한 자가 아니면, 대부분 다른 길로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옛날에 정자(程子)와 주자(朱子)가 각각 전(傳)과 본의(本義)를 내지 않았던들 그 속에 온축(薀蓄)되어 있던 조촐하고 바르고 정미로운 도가 하마터면 없어질 뻔하였습니다.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선천(先天)의 학문은 심(心)를 근본으로 한다.’ 하고, 또 말하기를 ‘선천도(先天圖)야말로 심학(心學)인 것이다.’ 하였으며, 주염계(周㾾溪)의 태극도(太極圖)에 이르러서는 중정 인의(中正仁義)로 단안을 내리면서 이 도리에 따라 닦아 나가면 길(吉)하게 되는 반면 이에 어긋나게 할 경우엔 흉하게 된다고 경계하였는데, 계사전(繫辭傳)을 보면 ‘성인이 이것을 가지고 마음을 닦아 그 의식(意識)의 비밀스러운 곳에 보관해 둔다.’ 하였습니다. 따라서 《주역》을 공부한다고 하면서 이를 먼저 마음에 적용하지 않으면 《주역》을 배우면 배울수록 더 배우지 못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아, 선(善)의 길로 발동되면 양(陽)이 움직여 복(復)이 되지만 악(惡)의 길로 발동되면 음(陰)이 싹터서 구(姤)가 됩니다. 한번 구(姤)가 되고 한 번 복(復)이 됨에 따라서 혹 곤(坤)의 위태로움에 처하게 될 수도 있고 혹 건(乾)의 강명(剛明)한 덕과 짝할 수도 있으니, 그 차이가 현격하다 할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그 누가 또한 저쪽을 버리고 이쪽으로 나아오려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천리(天理)는 기르기는 어려운 반면 잃기는 쉽고 인욕(人慾)은 빠져들기는 쉬운 반면 막기가 어려운 법인데, 이에 대해서 제어할 방도를 알지 못하게 되면 가려진 자는 더욱 가려지고 어두운 자는 더욱 어두워지기만 한 결과 음(陰)의 기운이 끝까지 치고 올라가 양(陽)을 모두 떨굼으로써 천지가 폐색(閉塞)되고 말 것입니다.
《주역》에서 말한 ‘적연부동(寂然不動)’은 곧 자사자(子思子)가 말한 ‘미발지중(未發之中)’이고 《주역》에서 말한 ‘감이수통(感而遂通)’은 곧 자사자가 말한 ‘발이중절(發而中節)’로서 하나로 관통되는 것일 뿐 처음부터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나의 심체(心體)로 하여금 적연부동한 가운데에서 천기(天機)가 어두워지지 않도록 하고 감응(感應)할 때에 본원(本源)이 늘 깨끗해지게 하면서 외물(外物)이 내 앞에 교차되어도 같이 휩쓸리지 않고 명경 지수(明鏡止水)처럼 티끌 하나라도 오염되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신령스러움과 밝음이 내 몸에 있게 되고 열리고 닫히는 것이 나를 말미암게 될 것이니, 상(象)을 관찰하고 점(占)을 음미하는 것은 단지 여사(餘事)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천도(天道)는 원(元)에 기초하여 만물을 내고 인주(人主)는 그 원(元)을 몸받아 만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니, 남의 임금이 되는 도는 하늘과 똑같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천도는 꾸준하여 쉬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오면서도 그 차서가 문란되지 않고 어둠과 밝음이 교체되면서도 그 운행에 착오가 없는 것인데, 한 번이라도 쉬는 일이 있게 되면 만물을 내는 공이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 《주역》을 통해 법받아야 할 것이 바로 건(乾)의 꾸준함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구두(口讀)와 문의(文義)에만 신경을 쓰지 마시고, 여러 주석가들의 자질구레한 해석에도 구애를 받지 마시고, 오직 중정 인의(中正仁義)로 방향을 정하시어 만물을 곡진히 이루어주는 묘한 이치를 탐구하도록 하소서. 비(否)의 극한 상황에 당하면 그 상황을 전환시킬 도리가 무엇인지 생각하시고, 규(睽)의 극한 상황에 당하면 모여 합하게 할 도리가 무엇인지 생각하시고, 손(損)의 때를 당하면 아랫사람들에게 더해 줄 계책을 생각하시고, 박(剝)의 때를 당하면 수레를 얻을 방법을 생각하소서. 이런 식으로 해서 하나의 괘(卦) 하나의 효(爻)를 만날 때마다 모두 그 시의(時義)를 궁구하여 각각 쓰임에 맞게 하면 쉽고 간명하게 되어 천하의 이치를 터득하게 될 것이니, 영원히 지속될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것 또한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아, 양수(陽數)는 1이고 음수(陰數)는 2인 관계로 예로부터 지금까지 잘 다스려진 때는 항상 적었고 어지러운 때가 늘 많았는데, 이 점을 성인이 걱정하시어 소장(消長)과 관련된 절목에 대해서는 일찍이 근실하게 하지 않은 것이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시대에 따라 응하면서 변통해 그 기준에 합치되게 함으로써 이 세상을 대유(大有)의 성세(盛世)에 올려놓고 미제(未濟)의 어려움을 면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나름대로 성명(聖明)에게 기대하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하였는데, 선묘(宣廟)가 너그럽게 답하였다.
선묘가 또 옥당에 명하여 《춘추(春秋)》에 대한 좌씨(左氏)ㆍ호씨(胡氏)ㆍ정씨(程氏) 등 3가(家)의 전(傳)을 모아 1편(編)으로 만들게 하였다. 이에 공이 또 차자를 올려 《춘추》에 나오는 복수(復讐)의 대의(大義)를 신명(申明)하였는데, 그 대략에,
“《춘추》 한 책이야말로 성인의 대용(大用)이요 오경(五經)의 단안(斷案)입니다. 왕자(王者)를 높이고 패자(霸者)를 물리치며, 명분을 바르게 하고 분수를 정하며, 시비를 분별하고 선악을 분명하게 판별하여 이미 지나간 2백 년 동안의 자취를 가지고 천만 세 미래의 모훈(謨訓)을 삼았으니, 그 뜻이 은미(隱微)하고 그 의리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성인에게 또한 부득이한 면이 있었다 할 것입니다. 가령 과거에 주(周) 나라 왕실이 동천(東遷)하지 않고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교화가 없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부자(孔夫子)의 도가 당시에 행해질 수 있었다면, 《춘추》 1부(部)의 글이 바로 그 당대에 바로 시행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을 것이니, 어찌 앞으로 올 세상을 가르치는 정도로만 끝나고 말았겠습니까. 성인의 마음을 여기에서 알 수 있고 성인의 정치를 여기에서 징험할 수 있습니다.
성인의 말씀을 높고 위대하여 행하기 어렵다고 하지 마시고, 옛날의 도를 오활하고 시대에 동떨어져 준행(遵行)하기 어렵다고 하지 마소서. 가슴 속에 간직하는 것은 반드시 천리(天理)의 바름에 기초하시고 인욕(人慾)의 사사로움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실 것이며, 일을 행하실 때에는 반드시 왕도(王道)의 표준에 맞도록 궁구하시고 치우친 패도(霸道)의 술수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크게는 나라를 경륜하고 다스리는 일과 작게는 갖가지 일에 응수하는 일과 은미하게는 아무도 보지 않는 방에 혼자 있을 때에 이르기까지 모두 천덕(天德)을 지니고 계신다면 백왕(百王)의 바꿀 수 없는 대법(大法)을 어찌 오늘날에 행할 수 없겠습니까.
더구나 《춘추》의 기록을 보면, 난신(亂臣)적자(賊子)에 대해서 그렇게 엄할 수가 없고,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을 분별하는 데 그렇게 근실할 수가 없으며, 복수의 의리에 대해서는 더욱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씨(胡氏)의 전(傳)을 보면 이 점에 대해 간절하게 이야기하면서 후세(後世)를 위해 경계해 주고 있지 않은 것이 없는데, 애석하게도 그 말이 쓰여지지 않은 채 남도(南渡)하여 목전의 안일만 탐하다가 날로 쇠퇴해진 나머지 끝내는 이적이 중하(中夏)에 들어와 주인 노릇을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니, 이는 꼭 이러한 뜻이 밝혀지지 않아 그런 길로 이끈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아,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면 금석(金石)도 뚫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군신(君臣) 상하가 힘을 합치고 마음을 같이하여 진정 복수의 의리를 가슴에 새긴 뒤 한 세상을 떨쳐 일어나게 하여 통쾌하게 이목(耳目)을 일신(一新)시킨다면, 전하께서 이 책을 숭신(崇信)하시는 그 실효를 더욱 보게 되실 것입니다.”
하니, 선묘가 다시 너그럽게 답하였다. 그리고 그 차자들을 두 책의 첫머리에 아울러 싣도록 명하고 특별히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진시켜 가장(嘉獎)하는 뜻을 보였다.
첫댓글 이번 5차 행장의 내용
은 주역과 춘추의 내용
을 소상히 아뢴바로 가
선대부(종2품하계)에
오른 과정을 소상히 개
진해 주시니 읽기 편한
명문입니다.
10월3일 전남 순창의
공부자묘에서 신안주
씨 종친회가 주관하는
백일장 시제와도 연계
돼 있어 오묘하고 심원
한 내용을 참고해서 또
인용할수도 있겠어요.
이런 공부를 하다보니 부가적으로 얻는 일거
양득의 기쁨도 생겨서 남몰래 웃습니다.
그누가 이맛을 알까
요? 문암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상촌 선생의 행장이 선생님께 도움이 된다고
하시니 저 또한 올린 보람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