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3. 6. 수요일.
하늘에 구름이 끼었어도 덜 춥다.
<아름다운 5060카페> '수필 수상방'에 오른 '나무랑' 님의 글을 보았다.
"용의 형상을 한 봉황이라니요 .... 구경 함 해 보실래요"
충남 홍성군에 위치한 용봉산에 관한 내용이다.
오래 전 나는 용봉산에 오른 기억이 나서 대전 C고교 여자친구의 카페에서 혹시 내 글이 남았을까 검색하니 다행히도 아래 글이 뜬다. 퍼서 여기에 올린다.
2001. 11. 19.에 쓴 글이다. 오탈자가 많을 게다.
충남 용봉산과 덕숭산을 다녀와서
2001. 11. 18(일요일). 충청남도 출신의 중앙부처 공무원으로 구성된 ‘고향사랑 모니터(moniter)’와 충남도청 간부와의 會同이 충남 홍성에서 있었다. 고향사랑 모니터와 그 가족 일행은 서울 사당전철역에서 집결한 뒤 2대의 버스에 분승하여서 아침 일찍이 충남 홍성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최장의 대교인 서해대교 (행담도)를 막 건너 Ocean bank resort(행담도)에서 1차 하차하였다. 서양의 뾰족한 성채를 연상케 하는 건물로 이루어진 휴게소는 西海大橋를 관광하려는 많은 인파로 붐볐다. 서해대교 소유가 충남 당진의 것인지 경기도 평택군의 것인지의 소송으로 판가름을 한 듯이 동 휴게소의 북편에 자리 잡은 충청남도 농수산물 판매센터에 들렸다.
도내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과 공업제품이 구색을 갖추어 진열되었으며, 특히 특산품으로써 공주 무령왕릉에서 발굴한 봉황으로 이루어진 향로(香爐)의 모조품이 눈길을 끌었다. 1개 190만 원이다. 비록 모조품이라지만 금색 찬란한 도금이 옛 시절의 풍요로움과 섬세한 장인의 솜씨를 발휘하고 있었다. 일천몇백 년 후에도 옛 장인의 솜씨(眞價)를 발휘한 이 天下名品은 옛 백제시대의 땅에서 출토된 충남의 대표적인 유물이 되었다. 百濟 敗亡 후 통일신라의 침탈과 호족세력의 영역권에서 벗어남으로써 천대를 받았던 현 충청/전라도 권역의 백제문화유산이 황폐화되어 그 명맥이 희미하였다. 그러나 이 유품의 발견으로 백제문화의 진가를 일시에 회복한 걸출한 명품을 보유한 충청인의 긍지를 가지게 되었다.
오전 11시경에 충남 홍성에 도착하여 주차장을 빠져나오니 홍성시장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건과 예산의 상징인 사과 두 알을 등산의 선물로 받았다. 등산 시에 땀을 닦게 배려한 홍성시장의 성의에 감사하면서 산을 타기 시작했다.
내포지역의 주요 郡인 홍성의 용봉산은 해발 381메타의 조그마한 산이다. 휴양림이다. 용봉산은 산 입구 초반부터 산세가 가파르고 기암괴석이 처처에 있어서 강원도 설악산을 압축한 듯했다. 굵은 모래가 많이 박히고 지질이 장구한 세월을 거친 듯하여 사암이 쉽게 무너져 내린 탓인지 산세가 험하고 토질 상태가 척박하여 수형이 극히 부실한 소나무만 밀생한 자연생태계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토사가 심하여 제대로 자라지 못한 소나무가 참으로 많았다는 게 아쉬움이었다.
九龍臺를 거치고 屛風바위에 오르고 전망대에 올라 眺望이 뚜렷한 농촌지역을 내려다보았다. 惡鬼峰에서 회귀하여 산 아래로 내려오니 암반을 깎아 조각한 고려초기의 마애석불 하나가 웃는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여겨지며 조각한 솜씨는 서툴렀다. 장의를 입은 석불의 하체가 다소 빈약하여 보였다. 안면이 지나치게 큰 대신에 어깨 아래의 상체가 다소 부실하고 특히 하반신은 극히 빈약하였다. 여석불인 듯하다. 아마도 부끄러운 하반신이 드러나지 않도록 적당히 처리한 듯하였다. 사실성이 減한 인상이 아쉬움처럼 남았다. 마애석불은 산 하단에 1기가 더 있었다.
산세가 급한 급경사 아래 좁은 공터에 자리잡은 용봉사의 경내가 다소 답답함을 자아냈다. 경내 외곽의 오래된 樹木과 단풍나무의 잎새는 빨갛게 불타오르 듯 그 빛깔이 참으로 고았다. 아마도 병풍의 산으로 둘러싸여서 風雨를 덜 탄 탓인지도 모르겠다. 용봉사와 주차장 사이는 600메타이다. 이렇게 구룡대(九龍臺)로 시작으로 일주하여도 불과 한시간 반의 짧은 코스였다.
우리는 당일 코스로 귀경해야 할 여정이었으므로, 단거리 코스를 택한 아쉬움이 남았다. 용봉산의 전 구간을 일주한다 해도 산의 부지면적이 협소하므로 여자와 아이들의 걸음으로도 하루일정 거리는 충분할 것 같았다. 최영장군의 활터와 장군바위가 위용을 자랑하고, 거북바위가 숨어 있는 풍광을 맛보기 위해서는 아쉽게도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다. 한 번 등정하고픈 名所이다.
산하 산입구의 도로변에 자리 잡은 달팽이 전문 요식점에 들렸다. 충남도청 간부와 합석하여 화기애애하게 오찬을 즐겼다. 금산의 인삼으로 빚은 인삼주로 반주를 곁들였으며, 프랑스의 별미인 달팽이 요리로 안주를 삼았다. 정력제에 좋다는 여주인의 설명에 안주를 더 청구했으며, 도백을 대행한 행정부지사와 간부 일행의 인사 소개가 있었으며, 또 중앙부처 공무원 중 신임 모니터와 간사의 임명장과 소개가 있었다. 副知事는 2001년도 및 2002년도의 道政을 간략하게 설명했으며, 특히 내년 4. 25. ~ 5. 19.까지 충남 태안군 안면도의 꼭지해수욕장에서 개최 예정인 국제행사계획을 설명하였다.
2002안면도 국제꽃박람회(floritopia)이다. 한국이 치른 국제적인 정식 엑스포는 대전에서 치른 과학엑스포와 내년도의 floriautopa가 두 번째란다. 국가적인 행사이자 충남의 위세를 자랑할 만한 꽃박람회가 내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위하여 도청에서는 혼신을 다 하여 행사를 준비한다는 설명에 우리는 박수를 쳤다.
오찬장에 참석하여 오찬을 제공한 홍성시장의 성의에 감사를 했다. 우리들의 일행을 반갑게 맞아준 것은 明淸道人의 고향사랑이 아니었던가? 또 충남 C고등학교 7회 출신인 동문 후배 지영애 여성정책관(충남도청)을 만났으며, 또한 모니터 간사 중 C고등학교 19회 출신도 있어서 선·후배 간의 우의를 다지며 더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냈다.
오찬 후 예산군 부군수의 안내로 덕숭산의 수덕사에 들렸다.
국보 제49호 대웅전과 보물을 많이 지닌 대사찰이다. 그러나 아담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대웅전은 옛 백제풍의 건물로 아름들이 싸리나무 기둥으로 세워졌음이 더 유명하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큰 아름들이 싸리나무의 기둥은 전후면 각각 네 개, 좌우측면 다섯 개. 정면 3간 측면 4간의 조촐한 규모이며 배흘림기둥으로 단층 겹처마 맞배지붕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대웅전의 전후면 그리고 내외부를 살펴보았다. 쓸데없는 장식이 전혀 없는 소박함, 정확한 균형에서 오는 안정감, 빛바랜 단청들이 보여주는 단백함이다. 단순하되 치밀하게 짠 나무 문틀은 형식에 구애됨이 없었다. 수더분한 인상을 풍기는 사찰이었다.
1938년 중건하면서 발견한 묵서명(묵서銘)에 의하면 이 사찰은 1308년(려조 충렬왕 34년)에 건립되었다 한다. 700년이란 장구한 세월의 풍우를 견디기 어려웠는지 자연 그대로의 裸木으로 방치된 아름들이 기둥에는 곰팡이가 끼어 목재의 부식(腐蝕)이 눈에 띄는 점이 우리를 안타깝게 하였다.
중앙공무원 일행이 왔다는 전갈을 받은 듯 노스님이 우리를 반겼다. 이백여 명의 비구니와 스님을 거느린 주지스님은 간단한 설법으로도 세속에 물들어버린 大衆인 우리의 마음을 한 순간일 망정 청정히 닦아내었다. 선(禪)이란 幸不(카오스 chaos)이 함께 존재하므로 이를 마음으로 다스리는 것이란다. 즉 幸과 不은 마치 손바닥을 펴서 앞뒤로 뒤집는 것과 같다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행불이 변하며, 이 변화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과 같은 사유(思惟)의 변화 즉 調和 속에 있다고 하셨다. 즉 “움켜쥐야 할 때는 움켜쥐고 또 펴야 할 때는 손바닥을 펴라” 했다. 주먹을 항상 쥐는 것도 손바닥을 항상 펴는 것도 아니란다. 즉 욕심을 피우되 또한 그 욕심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먹을 쥔다는 지나친 아집과 편견을 버리라” 하셨다.
장중한 체구와 걸출한 목소리를 지닌 老 주지스님의 안내로 불교유물을 전시한 도량 내의 박물관(240여 평)에 들렸다. 1920년대 말 - 1930년 말까지 대웅전을 중수하면서 基壇과 상량전에서 발굴하고 발견한 각종 유물 중 이백여 점이 전시되었다 한다. 특히 수덕사의 중흥을 이룬 한말의 경허스님과 만공스님(1872~1946년)의 유물이 관심을 끌었다. 조선불교와 일본불교를 합쳐야 한다는 일본총독을 호령하였다는 만공스님이 생시에 입었던 헌 누더기 가사(架裟) 한 벌과 法文을 표구한 병풍과 액자가 눈에 띄었다.
춘원 이광수의 연인이 되어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남녀간의 사랑행각을 이끌었던 新女性인 일엽스님은 여성 최초 잡지인 ‘신여성’을 창간했다. 1933년에 수덕사에 입산하여 “청춘을 불사르고’ 를 집필하였다. 당사자는 멸적하였어도 생시의 원고지와 만년필 두 자루가 우리를 대하고 있었다. 일엽은 자유분방한 만공스님의 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옛사랑은 끝내 잊지 못하였나 보다.
주지스님은 근자에 개설한 전시관을 운영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한다. 그래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무모함을 일타하셨다. 즉 우리나라 중앙박물관의 본관을 일시에 부수고 귀중한 유물을 지하창고에 쳐박아 두었다는 사실에 강분하셨다. 옛 중앙청 안의 박물관이 일제강점기의 잔존건물이라는 명분 하에, 새로운 박물관을 건립도 아니하고, 무조건 옛 중앙청건물부터 철거한 그 무모함을 탓했다. 수덕사의 유물은 일천여 점이 있으나 협소한 전시관의 형편으로서는 6개월에 200여 점씩을 교대로 전시하고 나머지는 창고에 보관한다며, 또 전시관의 운영은 온냉시설과 전기료가 만만찮아서 매년 1억 원의 손해를 보면서 운영한다며, 도청의 지원을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수덕사의 옥에 티라면, 주차장 입구부터 경내 입구까지 즐비하게 늘어선 관광상품 점방이 너무 밀집하고 또 많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관광객을 상대로 지전(紙錢)을 벌기 위한 商術이 지나쳤는지 새로 짓는 관광 상품점이 도로변을 길게 차지함으로써 조용한 수덕사가 아닌 이제는 시끌벅적거리는 장사 속의 사찰입구가 되었다 한다. 옛 모습을 기억해 내는 사람의 지적이 빈 말이 아니었음에 안타까워 했다.
주말의 서해안고속도로는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는다 하여 예산에서 천안까지는 국도를 탔다. 천안 IC부터는 경부선고속도로를 탔지만 예정 시간을 훨씬 경과하여 서울 사당전철역에 도착하였다. 교통체증이 빚은 일요일 오후의 지루한 귀경길이었다.
극히 짧은 여정 속에서 走馬看山한 아쉬움이 남았기에 여기 몇 자를 적어 두어 후일을 약속한다. 다시 한번 가고픈 內浦地區의 답사(踏査)였다. 그리고 충남지역 출신자의 모임으로 고향사랑을 다시 한번 더 느꼈다.
2001. 11. 19. 최윤환 씀
첫댓글 예산의 용봉산이 갑자기 유명해진 느낌입니다^^
높이에 비해 아기자기한 바위들과 조망이 멋진
산이라서 부담없이 갈 수 있어 좋지요.
그 아래 휴양림은 지방자치로 운영되는데 거기
묵으면서 자연을 느끼기 좋습니다. 저렴하구요.
댓글 고맙습니다.
충남 내륙에 소재한 용봉산은 예산군과 홍성군에 걸쳐서 길게 드리운 산맥이지요.
저는 홍성 쪽에서 용봉산을 산행했지요.
예.
바위가 제법 많더군요.
언제 기회가 되면 휴양림에서 숙박해야겠습니다.
제 고향은 충남 보령시 무창포해수욕장 인근이라서 위 예산 홍성 서산 지역에는 정이 많이 갔지요.
서해안고속도를 달리면서 내륙지방을 바라보면 예전에 산행했던 기억이 나고,
서산 개심사, 일락사, 용현자연휴양림, 가야산, 덕숭산 등에 등산했던 그때 그시절이 생각나는군요.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여행다녀야겠지요.
나이 든 지금은 그저 추억꺼내기나 고작 하겠지요.
2001년 이면 20년도 지났네요.
예전에 홍성과 지금에 홍성 다른건
몰라도 교통이 넘넘 좋아졌어요.
맨 처음 산행은 제 티스토리에 산행기 보니까
2005년 12월 산행을 했어요.
눈이 삽시간에 무릎까지 쌓였거든요.
그 후로도 몇 번 갔었는데 첫 번째 산행은
잊을 수가 없어요.
저는요 성격이 무쟈게 급해서 글을 한 번에 쫘악쓰고 올리거든요.
그래서요 오타는 기본이예요.
오타가 있음 어떤가요.
결재 받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교정보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넘 민감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나무랑 님도 자신이 쓴 이야기/스토리를 오래토록 저장하시는군요.
나이가 많아질 수록 예전에 했던 기억 경험 등이 생각이 나겠지요.
사진 일기 메모장 기타 등을 잘 간수해야겠지요.
위 사진.. 눈이 많이 내렸는데도 산행하셨군요.
설경 속의 사진 좋군요.
부럽습니다.
홍성지방...교통이 아주 편리해졌나요?
제 어린시절에는 기차... 나중에는 기차... 더 나중에는 자가용...
지금은 저는 홍성에 갈 일이 별로 없군요.
함께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저는 고향을 떠났지요.
시골집 빈 집이 되어 만10년이니...
그래도 올봄에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는 충남 보령지방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용봉산은
처음 듣는 산인데
윤환님 덕분에 자세히 알고 갑니다
감사드려요~^^
댓글 고맙습니다.
이 글 쓴 지가 22년도 더 넘은 과거이니, 어색한 문구가 많을 겁니다.
그래도 제 글 읽어주셨으니 고맙습니다.